▲부산지방보훈청 선양담당 황지영.
3․1절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독립운동가는 검정치마에 하얀 저고리를 입고 아오내 장터에서 “대한독립만세”를 목 터져라 부르던 유관순 열사가 아닐까 싶다. 유관순 열사의 삶과 3․1운동 발발 배경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소녀의 기도’(권순도 감독 제작, 연출)가 일본 시마네현이 주최하는 '다케시마의 날' 하루 전인 21일에 서울 이화여고 백주년기념관 시사회에서 발표되어 기대를 모았다.
유관순 열사는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3월 5일 만세시위에 참가했으나, 총독부 임시휴교령으로 이화학당이 휴교 당하자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으로 내려온 그녀는 4월 1일(음력 3월 1일) 아오내 장날을 기해 만세시위를 전개하기 위해 안성·목천·연기·청주·진천 등의 마을 유지와 유림계를 규합하기 위한 연락원으로, 20일 동안 수백 리를 왕복하며 시위운동에 참여할 것을 설득했다.
운명의 날인 4월 1일, 수천 명의 군중이 모인 가운데 조인원의 선도로 시위가 시작되자 시위대 선두에서 독립만세시위를 벌였다. 일제의 무력진압으로 시위 도중 아버지와 어머니가 피살당하고 자신은 주동자로 잡혀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형을 언도받았다. 이에 항소했으나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자 재판장에게 자신의 투쟁이 정당함을 역설하고 의자를 집어던져 법정모욕죄까지 징역 7년형을 언도 받았다. 하지만 유관순 열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서대문형무소 복역 중에도 독립만세를 고창해 더욱 혹독한 고문과 형벌을 당해 건강 악화로 1920년 17세의 나이에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했다. 하지만 유관순 열사는 2014년에 현재 ‘소녀의 기도’로 다시 살아나고 있다.
그녀와 같은 17세의 꽃다운 나이의 나는 대학 입학만이 인생의 전부인양 학교와 집을 쳇바퀴 돌 듯 다니며, 올림픽에서 애국가가 울리면 코끝이 찡해짐을 느끼지만, 나라의 소중함에 대하여 깊게 생각한 적이 없는 철없는 학생이었다. 법정에서도 당당하게 자신의 투쟁을 당당하게 역설하고, 고문 중에도 독립만세를 외친 유관순 열사의 나라사랑은 아무나 따라할 수도, 흉내 낼 수도 없어, 모두가 존경할 수밖에 없음을 느낀다.
제95주년 3․1절을 맞이하여 17세의 어린 소녀가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어떻게 몸 바쳤는지, 독립된 이 나라가 선열들의 어떤 희생으로 이루어졌는지 배울 수 있도록 청소년들에게 유관순 열사의 대한독립만세! ‘소녀의 기도’를 들려주고 싶다.
그리하면 나라사랑하는 마음으로 무장한 청소년들이 성장하여 우리대한민국의 발전은 물론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도 기여하는 당당한 어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