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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효원의 시시콜콜 과학사] 일본은 올해도 노벨상을 수상한 국가가 되었다

입력 : 2016.10.29 13:40:49


서효원 식물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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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미운 이웃이 또 논을 사서 배가 아프다. 작년에 이웃한 두 집이 모두 큰 땅을 사는 바람에 자존심이 구겨진 터라 속은 더 쓰리다. 내년에는 무슨 농사를 지어야 땅을 살 돈을 벌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 때인데 가족 중 누구하나 마뜩한 의견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수확을 끝낸 이웃집 아들이 와서 몇 년이 지나면 자기네도 땅을 사지 못할 수 있다며 염장을 지르고 나갔다.

얼마 전 우리나라 고등과학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작년도에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일본의 가지타 다카아키(梶田隆章) 도쿄대 교수가 한 말은 매우 거슬리기는 하지만 울림이 크다. "지금 같은 상황이면 앞으로 20년 뒤 일본에서도 노벨상이 나오기 어렵다"는 것이다. 뒤집어보면 앞으로 20년 동안은 일본에서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성과가 나올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일본정부는 2001년 '제2기 과학기술 기본계획'을 통해 향후 50년 동안 30명의 노벨상을 배출할 것이라는 거창한 목표를 발표했었는데 금년까지 15명을 배출했으니 목표의 100%를 달성하고 있는 것이다. 잃어버린 20년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경제가 위축되었다는데 일본의 이런 자신감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과거의 노벨상 수상 업적은 퀴리 부인과 플레밍의 그것과 같이 실패한 결과나 우연히 발견된 현상에서 획기적인 결과를 얻는 것 즉, 세렌디피티(serendipity)에 의한 것이 많았다. 물론 자기 분야의 분석적 혜안과 축적된 경험이 수반되지 않으면 어려운 것이었지만 분명 행운이 따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근래의 노벨과학상은 오랫동안 쌓아온 것에서 얻어진 필연적 업적에 의한 것이 많다. 일본 사람들의 답답할 정도의 집착과 몰입하는 성향과 맞아 떨어진다. 작년 중국의 중의과학원 중의학자 투요우요우(85세)가 개똥쑥으로 말라리아 치료약-엄밀히 말하면 증상완화제-을 개발하여 노벨의학상을 받았다. 느리고 고집 센 중국 사람들의 성향이 만들어낸 성과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이미 허준의 '동의보감'을 통해 청호(靑蒿)라고 부르는 개똥쑥이 학질(말라리아)에 효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라 아쉬움이 크다.

우리나라 최초로 과학사를 저술한 홍이섭은 '조선과학사(1944년)'의 서문에서 "과학의 역사는 사회의 변천과 함께 진전해 온 인류 생활사의 근저를 이룬다"고 언급한 바 있다. 과학문화의 중요성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나 기초학문의 토대가 없이는 과학적 성과는 세렌디피티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여느 분야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우리나라의 기초과학은 시계열적 역사성이 매우 취약하고, 기왕의 성과에 대한 고찰도 아주 부족하다. 그렇다보니 과학기술 분야의 중장기 발전 계획수립 자료나 연구계획서들을 보면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다. 예를 들어 특정 식물군에서 유래한 신물질 개발을 위한 연구계획서에는 연구재료 확보를 위한 식물자원 수집이 세부과제로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00년 전의 연구기록만 잘 살펴도 쉽게 절약할 수 있는 노력과 시간과 예산이 허비되는 구조의 연구계획인 것이다.

특정 분야에 대한 연구기록을 수집하고 정리하는 취미로 알게 된 것이지만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중반까지의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진 연구기록물은 우리나라보다 일본에서 더 많이 발견되고 연구되고 있는 것에 놀라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존재 자체도 잘 모르고 있는 당시의 연구기록들도 아주 많다. 식민지의 잔재라고 없애버리고, 6.25전쟁 중에 불타버리고, 전쟁이 끝난 다음에는 대부분 폐지로 재활용되어 사라져버린 당시의 기록들이 일본에서는 여전히 연구되고 가치가 매겨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금도 반복되는 연구의 오류를 줄일 수 있는 내용들이 수두룩한 것들이다.


▲1930년대 일본의 기초생물학 분야 잡지인 ‘식물과동물(植物及動物)’. 나비박사 석주명이 논문을 가장 많이 발표한 잡지 중의 하나로 그의 연구 업적이 널리 알려지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준 잡지다. 나비의 개체변이를 정량적으로 분석해 분류기준을 새로 쓰게 한 그의 연구업적은 일본에서 더 크게 조명되었다.

연구논문의 구성에서 가장 앞에 배치하는 것은 해당 분야의 연구사이다. 연구이력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고찰은 연구의 방향과 시작점을 정확히 판단하고, 해당 연구의 당위성을 확보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의 학위논문의 연구사에도 앞서 연구한 논문의 재인용이 많다. 물론 출전을 밝혔으므로 표절은 아니라 해도 인용한 논문을 제대로 읽거나 이해하지 못한 것이 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출간된 연구 리뷰자료들을 보다보면 종종 특정분야의 연구사에 마치 조폭의 계보도처럼 사진계보를 실어놓은 것을 볼 수 있다. 백년도 넘게 정리되어 쌓여있는 기록은 연구의 방향과 출발점을 정확히 알 수 있게 하고 진보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기저가 된다. 일본이 가진 노벨상에 대한 자신감은 기초과학이 그렇게 다져져 있기 때문이 아닌가 판단된다.


▲일제시대 나카이 박사가 1915년부터 1939년까지 우리나라 식물을 21편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으로 집대성한 ‘조선삼림식물편(朝鮮森林植物編, 1915-1939)’의 원본(제15편)과 재발행 복각판(우). 이 자료는 일본에서 여러 번에 걸쳐 복간되었고, 우리나라에도 역수입되어 팔리고 있다.

정치적인 이슈에 매몰된 탓인지 금년엔 일본이 3년 연속 노벨과학상을 받았다는 것에 이렇다할 말들이 없다. 일본의 2년 연속 수상과 중국의 노벨의학상 수상으로 중장기적 대책들이 만들어지던 작년과는 매우 다른 분위기다. 자괴감을 넘어 포기나 자신감 결여인지 두렵다. 바닥을 치며 상승 동력을 얻어야할 때인 것으로 보인다.

일본과 독일처럼 시계열적 연구를 통해 얻어진, 수직적으로 쌓여진 연구성과를 기반으로 도출한 결과를 뛰어 넘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분야간 수평적 결합을 통해 브레이크스루(Breakthrough)의 성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최근 노벨상의 또 다른 트렌드가 있다면 융복합인 것 같다.

금년도 노벨문학상을 밥 딜런이 수상하게 된 것을 두고 말들이 많다. 그러나 이미 작년도 스웨덴 한림원은 벨라루스의 여성 언론인 알렉시예비치에게 노벨문학상을 수여하였다. 그녀가 다년간에 걸쳐서 기록한 현장 인터뷰를 모은 책들 '체르노빌의 목소리', '마지막 증인들' 등을 노벨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한 것이다. 이 역시 기존의 문학 장르에 해당하지 않았으나 "우리시대의 고통과 용기를 보여주는 다양한 목소리로 구성된 작품"이라며 이미 장르에 대한 확장을 예고한바 있지 않았나?

과학분야 뿐만 아니라 문학에도 고유영역이 없어지고, 전 분야에 걸친 융복합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아닌가. 우리는 IT와 BT에 강하다. 해답이 보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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