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에 제동 거는 ‘한 문장’의 주역들

2007년, 미국 하원에서 위안부 결의안이 통과됐다.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약 20만명의 여성을 위안부로 강제 동원한 것을 인식하고 사과하도록 촉구하는 내용이 담긴 결의안이었다.

그리고 2014년, 이 결의안을 준수하라는 내용이 담긴 법안에 오바마 대통령이 서명했다. 이것이 정치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미국 민주당 마이크 혼다 의원과 함께 위안부 결의안의 통과와 시행을 위해 힘써온 김동석씨에게 물었다. 김동석씨는 재미 한인 커뮤니티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1996년 뉴욕·뉴저지 지역에 시민참여센터(구 한인유권자센터)를 만들었고, 지금은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인터뷰는 이메일로 진행했다.

ⓒ시민참여센타 제공 뉴저지 팰팍에 있는 위안부 ‘기림비’를 방문한 혼다 의원(가운데). 왼쪽은 그 지역 빌 패스크렐 의원.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2014년 통합세출 법안에 정식 서명했다. 2007년 미국 하원의 위안부 결의안을 준수하라는 내용이 담긴 법안이라 한국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 담겼나.
미국 2014 회계연도 세출 법안 중 국무부 해외업무 예산안의 서두 지침(해설서)에 두 줄짜리 한 문장이 조건부로 삽입됐다. “2007년 7월30일 하원의 위안부 결의안 통과를 주목하고 국무장관이 일본 정부가 이 결의안을 준수토록 독려할 것을 촉구한다”라는 문장이다.
2007년 미 하원에서의 결의안은 말 그대로 미국 하원의 입장을 결의한 것이었다. 이번 법안은 이 결의안의 ‘시행’ 법안이다. 미 국무부는 앞으로 일본과 관련된 업무를 볼 때마다 일본에 위안부 문제를 물을 것이다.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향후 미국 정부의 대일본 정책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분석이 국내 언론에서 나오고 있다. 이러한 예측에 동의하나.
맞다. 강제력은 없다. 하지만 미 국무장관이 대일본 업무에서 위안부 문제를 조건부로 언급할 가능성이 높다. 2007년 위안부 결의안이 통과된 이래 지금까지 미국 정부가 일본 정부에 위안부 문제를 언급한 적이 없다. 이번 시행 법안은 군사 대국화의 길을 걷는 아베 권력에 결정적인 브레이크로 작용할 것이다.

위안부 결의안을 위해 힘쓴 민주당 마이크 혼다 의원은 어떤 인물인가.
마이크 혼다 의원은 7선의 연방 하원의원이다. 지역구는 캘리포니아 주 제16지역구인 새너제이다. 내가 혼다를 처음 만난 것은 2002년 2월, 맨해튼에서였다. 당시 맨해튼은 살기가 감도는 전쟁터였다. 2001년 9·11 테러의 여파가 여전했다. 테러범이 아시아 출신이란 이야기가 돌면서 아시아 출신 이민자들이 이유 없이 수시로 뉴욕 경찰에게 체포됐다. 공권력의 횡포에 대항해 인권운동을 하던 시민단체가 모두 폐쇄되고 활동가들은 어디론가 끌려갔다. 이때 맨해튼에 가장 먼저 달려온 연방 정치인이 바로 혼다였다. 당시 그는 초선 의원이었다. 그는 철저한 평화주의자이기도 하다. 일본이 미국 진주만을 공격했을 당시 일본인이란 이유만으로 갓난아기 시절 약 3년간 포로 생활을 한 경험도 갖고 있다.

(<시사IN>은 마이크 혼다 의원에게도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현재 위안부와 관련해서는 어떠한 인터뷰도 하지 않는다”라며 거절 의사를 밝혀왔다. 요즘 그는 일본계 미국인 등으로부터 낙선 위협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결의안 통과가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사실 이번 실행 법안이 예산안에 첨가돼 통과될 수 있었던 것은 민주당 하원 선거대책위원장인 스티브 이스라엘 의원이 혼다 의원과 협력했기 때문이다. 스티브 이스라엘 의원 지역구가 뉴욕 주다. 한인 유권자가 거의 1만5000명이나 되는 곳이다. 올해가 마침 하원 전원이 선거를 치르는 중간선거의 해다. 스티브 이스라엘로서는 만만치 않은 숫자의 한인 표심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시사IN 윤무영 김동석 시민참여센터 상임이사(위)는 2007년 위안부 결의안 통과와 이번 결의안 ‘시행’ 법안의 숨은 주역이다.

뉴욕 주에 사는 한인들이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스티브 이스라엘 의원을 압박했나.
지난해에 뉴욕 주, 즉 이스라엘 의원의 지역구 한인들이 “위안부 결의안을 일본이 무시하니 재결의안을 추진해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다. 이 때문에 2013년 9월 초, 혼다와 이스라엘이 국회의사당 식당에서 위안부 관련 문제를 논의했다. 당시 혼다는 “재결의안을 추진하기보다는 이미 만들어진 결의안을 행정부가 이행토록 해야 한다”라는 의견을 밝혔다.

김 상임이사는 2007년 위안부 결의안 통과의 숨은 주역으로도 알려져 있다. 당시엔 밝히지 않았지만 지금 공개할 수 있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2007년 아베 총리가 미국 연방 하원의 위안부 결의안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딕 체니 당시 부통령실에 “뉴욕의 한인유권자센터라는 단체가 중국 후진타오 정부의 사주(지원)를 받는다. 이 단체를 수사해달라”고 집요하게 요청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정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스트레스도 심했다. 처음엔 겁도 많이 났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연방수사국으로부터 인권을 위해 열심히 활동한다며 격려도 받았다.

세출 법안에 위안부 관련 내용을 끼워넣는 우회 방식을 택했다. 미리 알려지면 일본의 로비에 좌절될 가능성이 있었나.
맞다. 위안부 이슈와 관련한 단독 법안이 아니고 예산안에 첨가돼 통과됐다. 사실 일본 측의 반대 로비보다는 2014 회계연도 예산안이 정말 뜨거운 이슈란 점 때문에 더욱 긴장이 됐다. 예산안을 두고 여야의 제안부터 통과까지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일본 측 로비도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일본의 아베 총리는 미국 의회를 무서워한다. 2007년도 위안부 결의안을 막기 위해 당시 총리 자격으로 워싱턴 DC를 두 번이나 직접 방문했다. 부시 대통령과 의회 지도자들에게 결의안을 막아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거액을 들여 유력한 로비회사도 고용했지만 결국 허사였다. 현장에서 일하던 나로서는 미국 의회 곳곳에 박혀 있는 아베 수하 일본인들이 까맣게 모르는 상태에서 이번 법안이 통과되어 통쾌했다.
하지만 워싱턴, 특히 연방의회에서의 일본은 ‘물에 젖은 스펀지’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영향력이 강하다. 보이지 않아도 어디서든 질퍽질퍽하기 때문이다. 이번 일도 일본이 사전에 알았다면 통과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일본의 로비는 특별한 이슈가 있을 때에만 작동하지 않는다. 그들은 평소에 늘 영향력 있는 정치인, 오피니언 리더들을 잘 사귀어놓는다. 이 때문에 워싱턴에서 일본과 충돌하는 사안을 추진할 땐 아주 치밀한 전략이 필요하다.

앞으로 한국인, 특히 재미 한인 사회가 해야 할 일이 많을 것 같다.
마이크 혼다 의원은 “시민사회가 자기 지역 의원을 통해 국무부가 이를 얼마나 이행했는지 매년 따져보도록 요청해야 한다”라는 의견을 줬다. 의원이 요청하면 국무부는 반드시 보고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혼다 의원을 재미 한국인들이 지켜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혼다 지역구에서 인도계 젊은 변호사가 출마 선언을 했는데 온라인 모금액이 엄청나게 들어왔기 때문이다. 캠페인 전문가들은 어떤 집단이 조직적으로 선거판에 개입했다고밖에는 설명이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혼다 의원을 아끼는 동료들은 나에게 “누군가의 낙선 프로젝트가 틀림없다. 혼다 의원을 한국인들이 지켜야 한다”라고까지 말한다. 그를 지키지 못하면 미국 의회와 정치인들을 통해 우리의 의견을 관철하는 일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