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석아. 오늘은 그만 좀 하라고 말했는데 그 새 또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니.”

지난 14일 오후 3시 서울 강남구 일원동에 위치한 서울 로봇고등학교 3층 실습실. 키가 180cm에 가까운 덩치 큰 남학생이 조그만 노트북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지난 달 25일 캐나다 앨버타주 캘거리에서 열린 제40회 국제기능올림픽 대회에서 ‘모바일 로보틱스’ 분야로 금메달을 받은 우리나라 최연소 기능올림픽 국가대표 최문석(17. 로봇고 3)군이다.

최군과 한 팀으로 대회에 출전했던 김원영(17. 로봇고 3)군은 피로가 누적된 탓에 학교에 오지 못하고 병원에 입원중이다. 두 사람은 1학년 때 로봇동아리인 ‘로보스타’에서 처음 만났다. 지도를 맡고 있는 김인목 교사는 어린 나이에도 실력이 뛰어났던 이들을 ‘기능영재반’에 가입시켰다.

기능영재반에서는 고급수준의 프로그램을 처음부터 다시 가르쳤다. 대부분의 로봇 매뉴얼도 영어로 돼 있었기 때문에 학교 마친 후에도 오후 11시 넘어까지 영어 공부를 해야 했다. 2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 공부하며 눈빛만 봐도 통하는 사이가 됐다.

하지만 금메달을 손에 쥐기 까지는 결코 쉽지 않았다.

가장 큰 장애물은 대회 4일 째 로봇을 이용해 정해진 공간 안에 주어진 물체를 옮겨 놓는 시험이었던 ‘블럭쌓기’. 시험을 보는 공간과 시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더욱 긴장됐다. 물체를 다 옮기고 길이 15cm인 pvc파이프 하나가 남았다. 그러나 파이프를 놓을 자리가 없었다. 시간은 겨우 10초 정도 남아 손은 벌벌 떨렸다.

“원영이 눈을 봤는데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거 같았죠. 그래서 바로 테니스 공 위에다 파이프를 올려 놓았죠”

바로 지름 7cm의 둥근 빨간색 고무공은 빈 파이프 안으로 쏙 들어갔다. 두 사람은 순간 주먹을 불끈 쥐며 “됐다. 됐어!”를 외쳤다. 뒤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김인목 교사는 그 자리에서 뛰면서 환호성을 질렀다.

대회 중간에는 실력과 상관 없는 어려움이 닥치기도 했다. 대회 이틀째까지 우리나라는 2위와 큰 차이로 1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김교사는 심심치 않게 일본대표팀의 부정행위를 목격했다. 경기장 한 구석에서 다른 나라 심사위원에게 작은 선물을 주며 환심을 샀고, 일본팀 관계자 중 하나는 경기를 촬영하는 지도교사 옆에 와 카메라 앞을 막는 등 방해를 했다.

주최 측은 대회 2일이 끝나갈 무렵 ‘메인 컴퓨터와 로봇사이의 통신적 오류가 발생하여 부득이 하게 취소한다’는 통보문을 보냈다. 2일 동안 1위였던 한국의 점수가 모조리 없어지게 됐다. 너무 허탈하고 억울해 눈물이 흘렀다. 김 교사는 이들의 등을 다독이며 “흥분하지 말고 하던 대로 하자”고 위로했다.

“그 때는 정말 일본 참가자들이 얄미웠죠. 반드시 이겨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힘들게 노력해 금메달을 땄지만 올림픽이 끝나고 나서도 쉴 수 있는 시간은 없었다. 2달 앞으로 다가온 수능 시험 때문이다. 국내의 한 대기업에서 두 학생을 채용하고 싶다는 의사도 들어왔지만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로봇공학은 아직 우리나라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학문이에요. 그래서 대학에서 조금이라도 더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커서 트랜스포머에 나오는 범블비(Bumble B : 트랜스포머에 나온 로봇자동차 이름)를 만들고 싶다는 문석군은 올림픽 기간에 만난 유럽친구들처럼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

“유럽 선수들은 성적보다는 하나의 축제로 올림픽을 생각하는지 대회를 즐기더라고요. 즐기면서 제가 하고 싶은 로봇공부를 계속 한다면, 범블비도 언젠간 제 손에 있지 않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