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정치 성향 다르면 결혼 안 한다" 58.2%

ABC뉴스=이경 기자 / 정치적 양극화가 국회와 선거판을 넘어 연애와 결혼 문화까지 바꾸고 있다. 이런 현상은 미국과 유럽보다 한국이 훨씬 더 강한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독일 쾰른대 연구진이 국제학술지에 발표한 연구는 이러한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연구진은 미국의 20~33세 성인 1097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실험을 실시했다. 

데이팅 앱 환경을 재현한 실험에서 참가자들은 자신의 정치 성향과 같은 상대에게는 높은 호감을 보인 반면, 반대 성향의 상대에게는 뚜렷한 거부감을 나타냈다. 정치적 신념이 강할수록 이러한 경향은 더욱 두드러졌다. 

연구진은 사람들이 지지 정당을 보고 정치와 직접 관련 없는 특징까지 추정한다고 분석했다. 상대가 나와 비슷한 가치관을 가졌는지, 생활방식이 맞을지, 성격이 괜찮을지, 가족과 친구들이 그 관계를 받아들일지까지 정당 지지 정보를 통해 판단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이러한 현상을 이미 사회적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가 2020년 실시한 전국 단위 조사에 따르면 공화당 성향 응답자의 45%, 민주당 성향 응답자의 35%가 상대방이 반대 정당 지지자일 경우 연애나 결혼을 원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정치 참여도가 높을수록 이러한 성향은 더욱 강하게 나타났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23년 발표한 '사회갈등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 변화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미국보다 이런 양극화가 더 강한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에 참여한 성인 3950명 가운데 58.2%가 정치 성향이 다른 사람과 연애나 결혼할 의향이 없다고 답했다. 절반이 넘는 국민이 정치적 견해 차이를 배우자 선택의 장애 요인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다.

비슷한 사람끼리 결혼하는 현상 자체는 새로운 일이 아니다. 사회학에서는 오래전부터 종교와 학력, 직업, 소득 수준, 지역 등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결혼하는 현상을 '동질혼'이라고 설명해 왔다. 과거에는 종교와 계층이 배우자 선택의 중요한 조건이었다면 이제는 정치 성향이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정치 성향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지지 정당의 문제가 아니라 복지와 세금, 안보와 경제, 성평등과 사회 정의에 대한 인식 등 삶의 기본 가치관이 정치적 선택 속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상대방의 정치 성향을 통해 어떤 삶을 추구하는 사람인지, 자신과 미래를 함께 설계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가늠하려 한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사회적 분열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가족과 친구, 직장 동료는 물론 배우자까지 비슷한 정치 성향의 사람들로만 채워질 경우 서로 다른 생각을 접할 기회는 줄어든다. 자신과 같은 의견만 공유하는 이른바 '에코 챔버' 현상도 더욱 강해질 수 있다. 정치적 양극화가 인간관계의 양극화로 이어지는 셈이다.

결혼은 원래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차이를 인정하고 조율하며 살아가는 과정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결혼 풍속도는 점점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과정이 아니라 같은 편을 찾는 과정으로 바뀌고 있다. 독일 연구진의 실험, 미국의 여론조사, 그리고 한국의 조사 결과는 모두 같은 사실을 말해준다. 정치적 양극화가 가장 사적인 영역인 사랑과 결혼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