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직 교수, ‘침략과 저항론’ 비판 기고/“공업화 진전 등 개발 간과 말아야”

 
일제 식민지 시대사에 관한 연구 시각으로서‘침략과 저항론’과 ‘침략과 개발론’은 서로 어떻게 다른 것인가. 우선, 전자는 식민지 시대의 역사적 주과제가 민족 독립이라고 인식하고 있을 뿐 한국 현대사의 역사적 과제에 대해서는 명확한 견해를 제시하고 있지 않는 데 반하여, 후자는 한국 현대사의 역사적 과제가 선진화 내지는 현대화로서 한국 근대사의 그것과는 판이함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다. 즉, 양자는 한국 현대사의 과제에 대한 인식이 크게 다른 것이다.

둘째, 역사 연구의 시각에서 차이가 난다. 전자는 단안(單眼)적인 데 비하여 후자는 복안(複眼)적이다. 이러한 차이는 시대적 과제에 대한 양자의 인식 차이에서 필연적으로 도출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즉, 일제 식민지 시대사를, 전자는 침략 대 저항의 단순 구조로 보는 반면, 후자는 그것을 침략과 저항, 수탈과 개발, 식민지화와 근대화, 억압과 자유 등의 여러 벡터가 복잡하게 서로 교차하는 장(場)으로 본다. 다시 말하면 일제 식민지 시대사의 연구 과제를, 전자가 침략과 저항에 한정하는 데 대하여, 후자는 다양하게 열어 놓은 것이다.

일제 식민지 시대사를, 침략과 이에 대한 저항이 교차하는 단순한 역사의 장으로서가 아니라, 여러 벡터가 복잡하게 교차하는 역사의 장으로 인식하는 것은, 한국 근대사 연구에서 매우 큰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우선 식민지사 연구에서 우리들로 하여금 식민지 망령에서 벗어나게 한다. 즉, 독립 국가의 자유민으로서 식민지 시대를 냉정하게 관찰하게 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선진국 진입을 앞둔 독립 국가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인식은 60년대 이후 경제 개발의 성과라는 토대 위에서 가능한 것이다.

‘침략과 개발론=식민지 미화론’은 고의적 비난


 
둘째, 일제 식민지 시대에 대한 위와 같은 인식은 우리들로 하여금 한국 현대사의 시대적 과제와 논리적 일관성을 갖게 하면서 근대사 연구를 가능케 하고 있다. 한국 현대사의 역사적 과제는, 앞에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선진화 내지 현대화이다. ‘침략과 저항’이라는 시각에서만 보면, 식민 치하에서 어떻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개탄해 마지 않겠지만, ‘침략과 개발’이라는 시각을 가지고 보면, 식민지는 식민지에 불과했다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일제하 한국 사회는 매우 급속하게 근대적 내지는 자본주의적인 사회로 변모하고 있었던 것이다. 즉, 그러한 인식은 한국의 근대사와 현대사의 연속적 측면에 관한 연구를 가능케 했으며, 한국의 근·현대화에서 이러한 연속적 측면 가운데 계승해야 할 것이 무엇이며 부정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침략과 개발론은 물론 침략과 저항론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침략과 개발론은 한국 현대사의 시대적 과제를 크게 의식하면서 출현한 시각이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침략적 측면에 관한 연구에 중점이 놓여 있다기보다 개발적 측면에 관한 연구에 중점이 놓여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점 때문에 침략과 개발론의 시각을 가지고 행해진 여러 연구들이 침략과 저항론 시각을 가진 연구자들로부터 ‘식민지 근대화론’이라든지 ‘식민지 미화론’이라고 비난을 받고 있다.

이러한 비난은 그들의 고의적인 비난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침략과 개발론 연구자들은 근대사를 현대사와 일관되게 파악해야 한다는 바로 그 논리적 요청 때문에 개발적 측면을 중심으로 식민지 시대를 연구하고 있기는 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그 시대가 식민지 시대라는 것을 예리하게 의식하고 있는 것이다.

개발론적 관점에서 일제 식민지 시대를 고찰하면, 그 시대가 매우 동태적이었다는 사실이 명백하다. 1910~1938년의 연간 실질 경제성장률은 3.7%로서 세계적으로도 고도 성장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고도 성장이 가능했던 주요 원인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근대적 제도 도입과 식민지 개발이었다. 이러한 근대적 제도 도입과 개발은 일본 제국주의라는 외부의 권력이 가지고 들어온 것이기 때문에 매우 철저했다는 특징을 보인다. 물론 이러한 개발이 일본 제국주의 자신을 위한 개발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개발과 수탈은 동시에 이루어진 ‘동전의 양면’


그러나 이러한 개발은 침략과 저항론자들이 흔히 주장하듯이, 우리들과 전혀 관계가 없었던 것인가. 식민지 개발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고 2천5백만 조선 민족을 그 개발의 와중에 깊이 끌어들였는데도 말이다. 침략과 저항론이 식민지 시대의 개발은 우리 민족을 수탈했을 뿐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과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철도·도로·항만·전신·전화 같은 사회간접시설이 건설되고, 농업이 개발되고, 식민지 공업화가 진행되고, 거대한 도시들이 새로 건설되었는데도 말인가. 뿐만 아니라 식민지 치하에서도 조선인은 자본가로서, 노동자로서, 농민으로서 매우 명백하게 근대적 계급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물론 이러한 개발은 필연적으로 착취와 수탈을 동반하는 것이었으나, 개발과 수탈은 동전의 양면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된다.

침략과 개발론의 이러한 주장을 ‘식민지 근대화론’이라고 비난하는 주종환씨(전 동국대 교수)는, 일제 시대가 자본주의 시대임을 강조해 마지 않는다. 이러한 앞뒤가 맞지 않는 주씨의 주장을 보면서 우리는 주씨가 ‘사회 구성’으로서의 자본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이론적으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위에서 제시한 바와 같은 식민지 개발이 없고서야 어떻게 이 땅에 자본주의적 사회 구성이 성립할 수 있었겠는가. 주씨가 자본주의적 사회 구성과 생산 양식을 혼돈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정태헌씨(고려대 강사·한국사)는, <식민지 근대화론의 비판적 검토>에서 식민지 시기의 GDP는 5백50억엔이었는데, 이 가운데 80%에 달하는 4백40억엔을 일제가 수탈해 갔다고 주장하였다. 정씨가 과연 GDP가 무엇인가를 아는지 모르겠다.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의 잉여 가치를 남김없이 착취한다는 마르크스도 착취율을 50%로 보았다. 만약 정씨의 주장처럼 되었다면 조선인은 벌써 굶주려 멸종했을 것이다.

한국사회사학회와 한국역사연구회가 국수주의를 대변하는 기구가 아니고 학술적 공기(公器)임을 주장하려면, 명예를 걸고 위와 같은 폭론을 해명해야 할 것이다. 침략과 개발론 연구는 침략과 저항론 연구와 다르다. 우리는 ‘캐치 업’과정과 논리적 일관성을 통하여, 근·현대화로 나아가는 경제 발전 유형을 한국 근현대사 안에서 추구하는 것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이나 ‘식민지 미화론’은 우리와는 전혀 무관한, 낡은 시대 의식에 바탕을 둔 침략과 저항론의 자작극임을 밝혀둔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당신을 위한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