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 11년, 수백 명을 상담하고 내가 내린 결론 1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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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6. 30. 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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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교도소에서 배운 것'

는 11년동안 교도소에 있으면서, 약 5~6년 정도를 교육교화과에서만 근무했다. 말 그대로 수용자들을 교육하고 교화하는 일에 전념했다. 그들을 교육하기 위해서는 많은 공부가 필요했다. 교도관의 권위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나는 사명을 갖고 근무했다. 한 명이라도 더 바른 길로 가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틈나는대로 공부했다.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야간 근무를 들어가는 날이면, 성경과 관련 도서를 가지고 갔다. 다른 직원들은 서로 대화를 하며 근무를 했지만, 나는 조용히 구석에 앉아 성경말씀과 책만 보고 있었다.

그런 나를 싫어하는 직원들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조금 미성숙한 면도 있었던 거 같다. 30대의 나는 그랬다.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때 수많은 수용자들을 교육하고, 상담하면서 느낀 게 하나 있다. 사람은 벌로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11년 동안, 수백 명의 수용자들을 마주하며 내린 결론이다. 형량이 길어진다고 사람이 달라지지 않았다. 더 엄한 규율이 사람을 바꾸지도 않았다. 처벌은 행동을 잠깐 멈추게 할 뿐, 사람을 새로 만들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질문을 바꿨다. '어떻게 막을 것인가'가 아니라, '왜 여기까지 왔는가'를 물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엔 다 다른 사건처럼 보였다. 그런데 오래 듣다 보니, 거의 같은 자리에서 무너져 있었다. 관계였다.

원인은 언제나

관계의 왜곡에 있었다.

수용자 대부분의 인생을 거슬러 올라가면, 어느 지점엔가 망가진 관계가 있었다. 사랑받지 못한 자리, 버려진 자리, 인정받지 못한 자리. 그 결핍을 채우려다 잘못된 선택을 했고, 그 선택이 또 다른 관계를 무너뜨렸다. 죄는 결과였지 원인이 아니었다. 원인은 늘 더 깊은 곳, 관계의 왜곡에 있었다.

이걸 발견하고 나는 공부에 더 박차를 가했다.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었다. 눈앞의 사람을 제대로 도우려면, 내 직감만으로는 부족했기 때문이다.

범죄심리를 봤고, 상담 이론을 봤고, 인간의 행동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팠다. 그리고 결국 성경으로 돌아왔다. 사람이 왜 이렇게 만들어졌고, 어디서 뒤틀렸는지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는 책이 성경이었다.

거기서 하나의 틀이 잡혔다. 사람의 문제는 세 층위로 되어 있다. 표면에는 행동이 있고, 그 아래에는 감정이 있고, 가장 밑바닥에는 관계가 있다. 대부분의 교육은 표면만 다룬다. 행동을 고치라고 한다. 그러나 행동을 만든 건 감정이고, 감정을 만든 건 관계다. 가장 밑을 건드리지 않으면 사람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

이 틀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기 시작하자, 상담의 질이 달라졌다. 나는 더 이상 '그러면 안 됩니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당신은 어디서 처음 무너졌습니까'를 물었다. 그 질문 앞에서 우는 수용자들이 많았다.

변화가 일어났다. 분명히 달라지는 사람들이 있었다. 출소 후에 편지를 보내온 사람, 다시 사고 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 늦게나마 자기 가정을 지키려 애쓰는 사람. 나는 그들을 보며 확신했다. 사람을 바꾸는 건 처벌도 의지도 아니다. 무너진 관계의 자리를 다시 세우는 일이다.

인간은 모두 비슷하다.

나는 지금은 청년들의 연애와 결혼, 그리고 하나님 안의 정체성을 다룬다. 전혀 다른 일처럼 보이지만, 사실 똑같은 일이다. 사람이 무너지는 자리는 늘 관계이고, 사람이 다시 사는 자리도 늘 관계다. 나는 교도소에서 그것을 배웠다.

현재만 보며 사람을 판단하면 안된다. 현재의 모습을 보며, 그 사람을 비난해서도 안된다. 사람은 누구나 아픈 구석이 있다.

그것을 만져주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이 해야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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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만빠

reform dad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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