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도 이런저런챈 눈팅하고 다니는 거 좋아하는데 우연히 광고 보고 들어와서 소소한 본인 썰 함 풀어볼게

여기 나처럼 신학교 재학했던 사람도 있을거고 나도 한 학기 다니고 건강때문에 중도 포기해서 많이 아는 건 아닌데 그냥 심심해서 함 끄적여 볼게..

편하게 음슴체 사용하겠음


신학교 진학하기로 했던 동기는 처음엔 별거 없었음. 외가가 워낙 독실한 가톨릭 신자 집안이기도 했고 (외할머니가 아빠한테 결혼 조건으로 가톨릭 세례 받는 것 요구하심) 본인 외삼촌이 신부님이심. 그래서 내 세례명도 삼촌이 지어주셨음.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랑 같이 성당 다녔고, 엄마가 동생 낳고 산후 우울증이 너무 심하셔서 초등입학전에 2-3년정도 외할머니랑 살았는데 그때 할머니가 묵주기도 하는 법이나 기도문 등 가르쳐주셨어. 

할머니하고 엄마가 어릴 때 부터 나한테 항상 하시던 말씀이 있었는데 내가 삼촌 신부님하고 성격이 진짜 판박이라고 그랬음. 어릴 땐 신부님이 그냥 멋있어 보여서 동경했었는데 그런 말을 얼굴 볼때마다 듣다보니 마음 한켠에 성소가 자리 잡기 시작했음. 

중학교 1학년 진학하면서 본당 부제님께 신학교 궁금한 점, 입학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볍게 상담 받았었는데, 사실 이때는 확신한 건 아니었음. 인생이 걸린 만큼 신중해서 나쁠 것 없고 교구 예신 모임 참여하면서 고민해볼 생각이었는데, 상담 끝나고 부제님께서 신학교 교수 신부님 하시던 본당 신부님께 얘기를 했던거야. 그 다음주 교중미사 마지막 강복 주시기 전 전달사항 시간에 신부님께서 날 찾아서 제대 위로 부르셨음... 그러곤 교중미사 보러온 온 신자들 앞에서 내가 신학교 가기로 했다고 선언해버리심..ㅋㅋ


그날을 기점으로 난 일약 스타가 되어서 모두의 기대를 한 몸에 받게됨.. 당시 우리본당 부제님이 진짜 천재셨음.. 적어도 내가 신학교 다니던 시점에선 수시로 입학한 신학생 아무도 없었음. 무조건 정시성적 반영 했었고 수능 필수였다. 근데 우리 부제님은 수능 안보시고 고등학교 졸업장 들고 바로 신학교 입학하셨을 정도로 인재셨던 거임.. 근데 그런 부제님이 날 데리고 돌아다니시면서 우리 oo이 신학교 갈거라고 자랑하고 다니셨으니 차마 무를수가 없더라. 이미 본당 신자들 사이에서 내 신학교 입학은 기정사실이 됐음.


지금 생각하면 주님께서 그런 식으로 날 부르셨을 수도 있겠구나 싶지만 당시 어린 마음엔 너무 부담이고 온 시선이 짐이었음. 그래서 오히려 위축돼가지고 더 조용히 신앙 생활 함... 무엇보다 아빠는 내가 신학교 가는 거 엄청 반대하셨어. 결혼하기 위해 세례 받으신 분이지만 분과장도 하시면서 신앙 생활은 정말 열심히 하셨는데 장남인 내가 대를 잇기를 원하셨음. 신학교 합격 통보 받기 전까지 엄마하고 아빠하고 내 진학 때문에 자주 가벼운 말다툼 하셨을 정도로 불만이셨지.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내 마음속 불꽃은 점점 커져감. 고등학교도 우리 부제님 나오셨던 가톨릭 미션스쿨로 진학해서 교내 예비신학생 활동도 열심히 했음.


사실 고등학교 예비신학생 썰이 진짜 웃기고 재밌는거 많은데 쓰기 시작하면 너무 길어져서 패스.


아무튼 신학교에 진학하게 됐는데, 신학교는 일반 대학에서 입시 전형으로 나뉘어져 있는 모든 전형을 합친 것 같은 깐깐한 입시 조건이 있음. 내신 성적, 수능 성적은 당연히 보고 논술시험, 인성평가, 총장 신부님 면담, 교수 신부님 면접, 교구 예비신학생 활동 검사, 생활기록부 검사, 성모병원가서 신체검사 등 입학 조건이 복잡함. 오래 걸리는건 덤이고. 신체검사는 왜 하냐 싶을 수도 있는데 병원가서 바지 내리고 의사 선생님이 고환 만져서 온전히 있는지 검사하심.. 당시엔 진짜 수치스러웠다. 근데 나하고 내 고등 동창들은 가톨릭계 고등학교를 졸업했기 때문에 생기부하고 내신성적은 프리패스였음. 고등학교 입학할 때부터 알고 있었고, 그래서 우리동기들은 일부러 내신 시험은 망쳐서 보기도 했음. 내신 성적이 진짜 필요한 다른 친구들이 많았으니.. 졸업할 당시 기준 내신 성적으로 내 밑은 2명밖에 없었다. 


논술 시험도 자신 있었음. 어릴때부터 국어는 잘하기도 했고 교구 성소국에서 논술시험대비 고3 예신들 수능끝나고 2박 3일동안 합숙하면서 논술 교육도 해줘서 걱정 없었음. 근데 중요한 건 입학 조건중에 젤 큰 비중을 차지하는 수능을 커트라인 겨우 맞춘거임.. 사실 고등학교때 노는 맛에 눈떠서 야자째고 기숙사 탈출하거나 교목 신부님 이름팔고 시내 나가서 피시방가고 밥먹고 오고 그랬는데 공부를 했을리가..당시 신학교 입학 요구 성적이 국영수 평균 3등급, 탐구 과목 윤리와 사상 고르면 가산점, 제2외국어로 아랍어 고르면 가산점이었는데 난 국어는 항상 평균은 했음. 2-3등급은 공부 전혀 안 해도 꾸준히 나왔는데 문제는 수학이랑 영어를 엄청 못함...

모의고사 보면 수학, 영어가 항상 4-5등급 이랬음.. 결국 수능 100일 남기고 고등학교 다니면서 처음으로 문제집 사서 공부 시작함. 근데 남들은 중학교때부터 준비하는 수능을 고작 100일 공부해서 잘 볼 수가 있나.. 절대 불가능하지. 그래서 기도 메타 시작했음...


수능은 홀수형 짝수형이 있는데 내 기억이 맞다면 홀수형을 기본으로 짝수형을 변형해서 선택지를 비틀어 냄. 그래서 기본이 되는 홀수형 영어는 정배로 찍을 수 있는 찍기 방법이 존재함. 33245..뭐 그간 수능 홀수형 오지선다 답을 평균을 내서 자주 나오는 선택지를 고르는 그런 방법이 있었다. 그래서 영어는 아예 공부를 안하고 홀수형 배정받기를 기도함. 그러고 남은 100일을 수학에 몰빵 했음.

결과는...기적적으로 홀수형 받았고 영어는 듣기만 열심히 풀고 이후는 그냥 외운 대로 찍고 잠.. 근데 그해 문과 수학이 진짜 불수능 이었음.. 고작 100일 공부한 내 머리로는 도저히 풀 수 있는 문제가 없더라. 결국 기초적인 문제만 풀고 어쩔 수없이 찍음..


그러고 기숙사 돌아와서 가채점을 했는데 예년 기준으로는 5등급이 나오는 점수인 것임.. 가채점 하자마자 절망함. 당시에 내가 한번에 신학교 합격 못하면 아빠가 재수하는 거 지원 못해준다고 하셨거든. 

근데 이게 왠걸, 수학이 워낙 어렵게 나와서 내 점수가 4등급 컷이 돼서 기적적으로 4등급 나옴. 진짜 놀라운 건 영어였는데 듣기하고 쉬운 두세 문제 빼고 전부 찍은 점수가 3등급이 나온것임..국어야 늘 하던 대로 3등급은 받았고. 겨우 어찌저찌 사탐하고 아랍어 가산점으로 수능 성적 커트라인을 통과함. 지금 생각하면 정말 기적임..


수능을 보고 얼마 지나지 않은 겨울날, 성소국 주관으로 당시 고3 예신들을 모아서 논술&면접 시험대비 합숙을 했는데 교구 신학교 학사님들하고 부제님이 오셔서 우리를 가르쳐주심. 논술은 쓸 때마다 좋은 평가 받아서 걱정을 안 했는데 면접은 내가 넘 긴장을 해서 피드백을 진행해도 나아지지를 않는거야..당시 성소국장 신부님께서 최종 모의면접을 해주셨는데, 끝나고 돌아온 말이 '이대로 면접 보면 무조건 떨어진다'였음..


그 말 듣고 진짜 많이 울었어. 난 어릴때 부터 장난기 많고 사람들이랑 어울리는 거 좋아하는 성격이었는데, 이상하게 면접같이 진중하고 무거운 자리만 서면 그렇게 긴장을 했음. 그런데 별 수 있나. 그대로 논술 시험하고 면접 날이 와서 신학교로 향함. 


오전에 논술 시험을 보고 오후에 면접을 진행 했는데, 논술 문제는 합숙하면서 했던 모의 시험에서 풀어봤던 기출이 나와서 무난히 썼음. 근데 오후 면접 차례가 다가오니까 너무 긴장되는 거야. 면접장 앞에서 순번대로 기다렸는데 내가 세 번째였음. 근데 앞에서 나오는 애들 표정이 안좋았어.. 그거 보니까 진짜 미칠 듯이 식은 땀 났는데 결국 내 순번이 다가오고 면접장 들어갔음.


안에는 교수 신부님 네 분이 계셨는데, 내가 표정이 엄청 굳어 있었나봐. 나 보자마자 너무 긴장하지 말고 솔직하게만 대답해달라고 말하셨음. 첫 질문인 사제가 되고 싶은 이유를 포함해서, 고등 학교생활은 어떻게 했는지, 가족들 신앙 생활은 어떤지, 사도신경 외울 수 있는지, 사제를 위한 기도 알고 있는지, 신학교 생활 중에 동기하고 마찰이 생기면 어떻게 풀어갈지 등등 가벼운 질문들이 오갔어.

생각한 것보다 질문 난이도도 낮고 날 시험한다기 보다는 정말 궁금하셔서 물어보는 것 같이 분위기를 잘 풀어주셔서 처음 긴장했던 것이 무색하게 너무 편안했음. 근데 마지막 질문이 신학교에 들어오고 싶은 마음을 한번 표현해 보라는 거야. 나중에 알았는데 내 앞 순번 이었던 친구가 이 기습 질문에 당황해서 아무 대답도 못하고 어버버 하다가 나왔던 것임..


진짜 이 질문은 모의 면접 때도 한번도 안 들어봤고 솔직히 생각도 안해봤던 거였는데 갑자기 훅 들어오니까 순간 사고가 정지함...

그렇게 3시간 같은 3초가 지나고 마땅히 할 대답이 안떠올랐던 나는 다짜고짜 의자 박차고 일어나서 팔굽혀펴기를 해보겠습니다!! 시전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는데 당시 교수 신부님들은 얼마나 당황하셨겠어..

다들 어안이 벙벙하시고 한 분은 내가 팔굽혀펴기 하려고 엎드리니까 말리시더라. 근데 난 어떻게든 합격해야겠단 일념 하나로 당시 내가 최대로 할 수 있던 팔굽혀펴기 10개를 시전함..

팔굽혀펴기를 마치고 헉헉 대면서 일어나니까 신부님들이 다들 엄청 빵 터지셨음. 젤 오른쪽 앉아 계시던 신부님께서 왜 10개만 했냐, 더 할 수는 없냐고 질문했는데 난 진짜 열정을 다했고 지금은 이게 최선이라고 답했더니 '열정이 참 얄팍하네...'하심. 이거 듣고 신부님들 2차 빵터지셨음..


그렇게 혼란한 면접을 마치고 나오니까 뒷 순번 애들이 와서 무슨 대답을 했길래 신부님들이 그렇게 크게 웃으셨냐 물어보고 다른 교구 예비 신학생들 데리고 오신 성소국 신부님도 물어봄..

난 아직 꿈꾸는 것 같은 기분으로 팔굽혀펴기 했다고 대답했더니 나한테 질문했던 타교구 성소국 신부님이 자기가 데리고 온 타 교구 예신들한테 '쟤 진짜 도라이인 것 같으니까 입학해도 친하게 지내지 말라'하고 장난식으로 말씀하시더라 ㅋㅋ...


결과적으론 신학교 합격함. 신학교 합격 통보는 정식 발표 나오기 전에 성소국장 신부님이 전화해서 알려주시는데 보통 합격 발표 일주일전쯤에 미리 알려주심. 성소국장 신부님께 연락오면 합격한거고 안오면 불합격 한건데, 고등 동창애들 단톡방에서 한명 두명 자긴 전화 받았다 합격했다 말 나오기 시작함. 근데 다른 애들 다 연락 왔는데 나만 안 오는거야. 진짜 숨 막히더라..

결국 난 마지막으로 전화 받았는데 신부님이 내가 전화 받자마자 한숨 푹 쉬셨음..

그래서 난 아..불합격 했구나..생각했는데 합격 축하한다고 말씀하셨음.

당시 스피커폰으로 엄마랑 같이 듣고 있었는데 전화 끊자마자 엄마랑 부둥켜 안고 엄청 울었다. 퇴근하고 들어오신 아빠한테도 말했는데 아빠도 눈물 흘리셨음. 평생 당신 자식으로만 살 줄 알았던 내가 하느님 자식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더니 서글퍼지기도 하면서 뭔가 알 수 없는 뜨거운 게 가슴속에서 북받쳐 올라서 그랬다고 하시더라. 


결국 아빠도 인정해주시고 무사히 입학하나..싶었는데 합격 통보 받은 내 고등 동창 친구 하나가 등록금을 낼 형편이 안된다는 거야. 고등 동창 예비 신학생들 끼리는 이미 가족 같은 유대가 엄청 끈끈했고 부모님들끼리도 종종 봬서 다들 두루두루 알고 지내는 사이였는데, 내 친구 사정을 들은 우리 부모님께서 내 친구 따로 부르셔서 학비 지원해주겠다고 하심. 우리 집은 아빠가 사업을 크게 하셔서 어릴 때부터 유복했음. 우리 부모님 얘기들은 내 친구는 엄청 울면서 고마워했는데, 다행히 국가 장학금하고 걔네 본당에서 신자분들이 돈 모아모아서 어찌저찌 등록금 마련했다. 


아무튼 그렇게 신학교 입학한 뒤 한동안 선배님들이 나 볼 때마다 '아 너가 그 팔굽혀펴기야?'하고 물어보셨음.. 결과적으론 원래부터 안 좋았던 건강이 더욱 안 좋아 져서 주기적으로 병원 다니면서 치료 받아야 했는데, 신학교 다니면서는 어려워서 한 학기 다니고 자퇴했지만, 현재도 신학교 동기들은 자주 연락하고 방학 때마다 만나서 그때 있던 이런저런 얘기 나눔..

아카라이브 챈 망령으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눈팅하다가 왠지 정감가는 챈 만나서 그냥 함 끄적여봄.

신학교 자퇴 이후에 이런저런 일이 많아서 한동안 냉담하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신앙 생활 열심히 하고 있어.

여기 챈에 있는 사람들도 항상 행복한 신앙 생활 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