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적으로 격양된 상태에서 쓰는 글이라…양해 부탁드립니다.)
1. 사람들이 정신병으로 자기를 해석하는 건 세상과 연결되기 위한 마지막 발버둥이라고 생각함. 내가 나를 해석하는 방식과 세상이 나를 해석하는 방식을 어떻게든 일치시킴으로써 불가해한 고통 속에 고립되지 않으려고 하는 것임. 근대 이후 불가해한 것은 과학적으로 조직된 사회로부터 격리되어야 할 무언가가 되었으니까.
2. 지금 당장 이 세상과 화해하고 타협하면서 살아가려면 ‘나’와 ‘세상’이 아닌 제3의 통제 가능한 변수를 설정해야 함. ‘나’라는 것이 ‘나’의 현실 판단 능력과 지성 등으로 좁게 해석되는 사회에서 ‘정신병’이라는 언어는 나의 문제를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집중력’, ‘인지력’, ‘사회성’ 등에서 나타나는 일시적 문제를 ‘진정한 나’, ‘온전한 나’로부터 분리하기 위한 수단에 가까움. 그래서 정신병이 내 안의 어떤 심리적, 생물학적, 화학적 작용을 넘어선 또 다른 존재자처럼 호명되는 것이라고 봄. (ex-“정신병이 나에게로 온다.”) 중요한 건 나 자신이 아니라, 현대 사회를 배회하는 ‘과학적’ 유령인 정신병이라는 타자와 내가 맺는 관계인 것임. 당장 세상도, 나도 바꿀 길이 요원한 상황에서 나와 세상을 해석할 또 다른 변수를 찾는 건 어찌 보면 매우 ‘합리적’인 일임. 그러지 않고서는 나를 이 세상에 맞춰 살아갈 길이 안 보이니까 그런 것이라고 생각함.
3. 근데 그것을 두고 ‘그런 식으로 정신질환의 언어에 의존하는 게 문제다’라는 말을 반복하는 건 과도한 의료화 못지않게 문제를 개인화하는 결론임. 어떤 대안도 제시하지 않고 ‘지나친 자기 해석이 문제다, 지나친 의료화가 문제다’라고 하는 건은 고통 속에 내몰린 사람들이 손에 쥔 부실한 방패마저 뺏는 것임. 그 방패에 의존하는 사람들도 그게 근본적인 해결 방안이라고 생각하진 않음. 다만 내 고통을 설명할 주류적 언어에 기대지 않으면 상황이 더 미궁 속으로 빠질 것 같아서 의존하는 것뿐임.
4. 정신병이라는 언어에 기대는 사람들 개개인을 비난하는 걸 넘어서, 사람들에게 다른 언어를 허락하지 않는 사회를 비판해야 함. 측은지심 같은 걸 말하려는 게 아님. 전자의 방식은 애초에 그렇게 효율적이지 못함. 정신병을 낭만화하려는 건 아니지만, 정신병으로 자신을 해석하는 사람들 중 다수는 이미 자신이 병 뒤에 숨고 있을지 모른다는 자기 비난을 하고 있기 때문. 그러니 사람들이 정신병으로 자기를 해석하는 걸 ‘합리적이지 못한’ 문제 해결 방식이라고 보는 건 옳은 비판 방향이 아님. 반대로 왜 사람들이 왜 자기 존재를 해명하기 위해 ‘지나친 합리성’에 기대게 되었는가를 반문해야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