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가 지난달 북한에 소나무 재선충 약과 신장 투석기 등 1억6000만원 상당의 물품을 보낸 것으로 7일 확인됐다. 이에 앞서 오영훈 제주지사는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지난 2월 말 중국에서 북한 대남 공작원 리호남을 직접 만났다. 양측의 만남은 북측이 여러 경로를 통해 우리 정부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오 지사는 지난 2월 27일 오전 중국 베이징에 있는 젠궈호텔(北京建國飯店)에서 리호남 등 북측 인사 2명을 만났다. 이 자리에는 제주지사 정책 고문 A씨, 제주도청 B 국장 등도 배석했다. 양측의 만남은 약 30분 동안 이뤄졌다. 리호남은 오 지사 등에게 자기를 ‘유럽 주재 참사관 리호남’이라고 소개했다고 대북 소식통은 전했다.

북측은 이 자리에서 재선충 약, 신장 투석기, 한라봉 등이 필요하다며 제주도에 지원을 요청했다고 대북 소식통은 전했다. 리호남은 오 지사를 만나기 약 열흘 전인 2월 16일에는 B 국장 등을 베이징에서 만나 실무 협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 지사는 리호남을 만난 후 1억6000만원 상당의 재선충 약과 신장 투석기 등을 마련해 제주항에서 지난 3월 말쯤 중국 다롄항으로 보냈다. 한라봉은 부패 가능성 때문에 제외했다고 한다. 이 물품들은 북측 화물선이 지난달 초 다롄항에서 남포항으로 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소식통은 “제주도 측은 물건이 북한으로 들어갔음을 입증할 통관 서류를 북측에 요청한 상태로 안다”고 전했다.

제주도는 북한에 보낸 물품 구입 자금으로 제주도 남북협력기금을 활용했다고 한다. 제주도는 남북 협력 기금으로 약 70억원을 조성해 놓았다.

제주도 측은 이와는 별도로 지난 3월 둘째 주쯤 북한에 입경하겠다고 통일부에 신청했다. 소식통은 “제주도 측은 애초 지난 3월 넷째 주에 평양을 방문한다는 목표를 세웠으나 북측은 현재까지 오 지사 등에 대한 방북 초청을 하지 않은 상태”라고 했다.

오 지사는 본지 통화에서 “(북한에 물품을 보낸 것은) 남북교류협력법에 따라 민간 교류 협력 차원에서 한 사업으로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다”고 했다. 제주도 관계자는 “이번 협력은 한국 정부와 북한 노동당 간 정식 교류 사업은 아니다”라고 했다.

북측과 제주도 측의 만남은 이번이 8년 만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문재인 정부는 2018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제주도 방문을 추진했지만 성사되지 않았었다.

현 정권 들어서도 정부 차원의 가시적인 대북 교류 협력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측이 제주도와 민간 차원의 협력 사업을 추진한 배경을 두고는 김정은의 외가가 제주란 점이 거론된다. 김정은의 외할아버지 고경택과 생모인 고용희는 제주 출신으로 알려졌다. 고경택은 제주시 조천읍 출신으로 1999년 북한에서 사망했지만 헛묘(시신이 묻히지 않은 묘)는 제주에 있다.

오 지사가 만난 리호남은 2006년 노무현 정부 때도 노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었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를 만나 특사 파견과 남북 정상회담 등을 논의한 인물이다. 리호남은 쌍방울 대북 송금 사건에도 등장한다.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은 검찰과 법정에서 2019년 7월 필리핀 마닐라의 한 호텔에서 리호남을 만나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의 방북 비용 300만달러 중 70만달러를 직접 건넸다고 진술했다. 법원도 검찰의 이 같은 공소 사실을 인정해 두 사람의 만남을 주선한 이화영 전 부지사에게 작년 6월 유죄를 확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