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5.12.(화) 전남대학교 용지관 컨벤션홀에서 민희진 오케이레코즈 대표의 강연이 있었습니다. 전남대 5.18 연구소의 초청으로 K-POP, K-Culture의 본질적 가치를 5.18 민주주의의 정신과 연결 지으며 광주가 새로운 문화적 상상력의 거점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하는 강연이라는 소개가 있었습니다.
본래 이번 강연은 민희진 대표(이하 민희진)의 강연 이후 박구용 교수(이하 박구용)와의 질의응답 및 기념 촬영 순서로 진행되는 것이었으나, 실제로는 강연 없이 학생들과 약 1시간 50여분 간 질의응답 시간을 가지는 형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오늘의 강연은 강연 시작 40여분 전부터 용지관 앞에 줄이 늘어섰고, 컨벤션홀의 자리가 모두 찼으며, 앞, 옆, 뒤, 중간 통로에까지 사람들이 들어와 강연을 들었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습니다.
질문 및 답변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강연을 들으며 받아 적은 내용이라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질문 1 : 미감과 관련해, 미감이 좀 주관적이기도 하고, 디자인을 공부하며 어려움을 느낌. 엔터 쪽 취업을 희망하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주관적 감각, 미감을 성장시킬 수 있을지?
답변 1 : 개인적으론 미감이라는 말이 너무 남용되고 있어서, 사실 조금 단어가 징그럽게 느껴지기도 함. 그래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말은 아니긴 한데, 무슨 의미에서 그런 이야기하는지 알 것 같음. 왜 지금 시대에 미감이라는 게 집중, 조명받는지 말씀드려야 방법론에 대해서도 납득이 되실 것 같음. 그래서 그 이야길 하자면, (본인 생각임)
본인 생각에는 디지털 매체가 너무 다변화되고, 활발하게 일상에서 쓰여지고 있음. 감각 중 가장 예민한 게 청각과 시각, 많은 걸 보게 되는 시대가 되었음. 그리고 인간은 감각 하나에 의존하지 않고 오감을 다 충족시켰을 때 완벽한 감각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함, 미디어를 스스로 만들어내고 접하는 시대에서 당연히 보이는 것에 취약하고 이끌리는 게 너무나 당연한 일이 되었기 때문에, 이걸 대중들까지 체감할 수밖에 없는 시대가 도래했고, 도래한 지 꽤 됨. 그러니 이전 과거 케이팝 문화에서는, 음악에 집중하다 보니, 혹은 산업의 태동에서는 모든 것들에 집중하기 어렵다 보니 초반에 집중하지 못했었던 중요한 포인트들이, 본인이 엔터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보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데, 어떤 요소가 빠져있다는 결핍 같은 것을 인지, 그래서 본인은 이것을 개선해 보겠다는 마음으로 업에 뛰어들었음. 그렇다 보니 이 업에서 안 보여주던 것들을 보여주다 보니 더 관심이 늘어나고, 그 관심이 결국 상업적 히트로 이어지면서 그런 것들이 더욱 증폭된 것 같음. 그래서 본인은 이전부터 대중문화예술은 오감이 충족이 되어야 완성도가 높아지는 문화라고 생각, 그래서 이런 수순으로 발전하는 것은 당연,
그런 맥락에서, 미감을 어떻게 습득할 것이냐에 대해선 이것만 가지고도 하루 종일 답할 수 있을 정도인데 축약하자면 일단 많이 보면서, GV에서도 했던 이야기인데, 나 스스로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 기준을 인식할 수 있을 만큼의 학습이 필요하고, 거기에 대한 생각이 정립되어야 함. 내가 사실은, 이 결과물이 좋은지 안 좋은지는 주관적 영역. 미감도 주관적 영역. 주관적이지만 객관적으로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만큼의 완성도가 취향과 별도로 존재. 완성도가 너무 높아지면 취향은 그다음 문제가 되어버림. 취향을 뛰어넘는 완성도라는 것이 있음. 내 스타일은 아니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 다수 크리에이터들은 이 수준까지 가기 위해 정진하는 것이라고 생각.
그럼 판단기준을 남에게 맡기면 안 되고, 자기 스스로 기준이 서야 함. 그 판단 기준은 한 번에 생기지 않음. 불안해서 남에게 맡기는 순간 내게 있어서의 도달하고 싶은 지점, 미감이 좋은지 안 좋은지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게 되고, 어떤 면으로 보면 게으름일 수 있음. 찰나의 게으름이 내 판단을 희석시키기 때문에, 남의 판단에 의지할수록 자신의 미감을 찾을 수 없게 됨.
내 미감을 찾기까지의 숙련의 과정이 필요한 것이고, 어른들이 책 많이 봐라 영화 많이 봐라 그림 많이 봐라 생각 많이 하라는 말들 하시지만 이것이 미감을 깨우치는데 가장 정석적인 방법. 특히 어릴 때, 두뇌가 스펀지일 때부터 다양한 문화적 체험을 많이 할수록. 책을 많이 읽으면 좋음. 책 속엔 그림이 없으나 내 머릿속에서 상상하게 됨. 비단 소설뿐 아니라 인문학이나 과학책들도. 그렇게 연상하는 연습을 많이 할수록 자양분이 되고 사고력이 됨. 사고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보는 눈도 높아질 수밖에 없음. 본인이 한국 나이로 48쯤 되었는데, 본인은 경험으로 체득한 것. 꽤 많은 경험으로 이것이 현실이고 사실이다 하는, 제일 빠른 길을 알려드리는 것.
가장 중요한 건, 쉽게 얻기를 바람 사람들은. 그러나 미감은 옛다 먹어라 하며 던져주는 것이 아님. 감각이기 때문에 숙련을 하다 보면 감각은 올라감. 그걸 믿고, 굉장히 다양한 문화체험을 많이 하셔야 한다고 조언드리고 싶음.
박구용 - 어제 전라도에 처음 왔다고 했는데, 전라도를 보니 어떤 미감이 떠오르는가?
민희진 - 원래 전라도가 예인의 도시로 유명하다고 알고 있었고, 전라도가 멋의 도시라는 감각은 있었음. 판소리, 맛, 그리고 항쟁, 민주화운동 같은 것이 괜히 일어난 게 아님. 사고력이 높은 사람들이 계셨던 동네. 생각이 얕으면 그런 저항정신이라는 게 나올 수 없음. 자기 생각이 확고하고, 자기 주관이 뚜렷하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것이고, 그런 분들이 DNA적으로 많다는 것이기도 함. 사회현상학적으로 확대해석해 보면 괜히 그러는 게 아님. 본인이 전라도에 왔다고 띄우려고 하는 게 아니라, 원래 문화는 사회학과 철학과 동반한다고 생각함. 문화가 별도로 있을 수는 없음. 그런 개념에서 피상적인 전라도의 개념만 있었는데, 본인이 고흥에 갔었는데, 처음에 순천역에 내려서 고흥까지 진입하면서 깜짝 놀란 게, 식재. 산세나 나무들이 너무 실하다는 것. 굉장히 너무 영글어있다는 것. 너무 아름답다는 것. 그런 것들이 사실 여러분들이 삶을 살아가며 일상적으로 보기 때문에, 본인은 서울 촌놈이고 서울은 도심식재가 풍부하지 않은데, 본인은 그런 것들이 눈에 띄었음. 예술의 도시인 이태리, 스페인들 보면 보이는 족족 유적들이 많음. 그럼 자기도 모르게 미감이라는 게 되게 일상화됨. 그러니 귀한 줄 모를 수 있지만 태어나면서부터 수준 자체가 높을 수 있음. 그래서 본인은 깜짝 놀란 게, 땅끝쪽에 있어서 사람 손이 덜 타서 그런 건지, 너무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기본적으로 있고, 전라도 음식이 맛있는 걸로 유명한데, 그 정갈한 손맛은 고민에서 나오는 것. 투박하게 만들어진 게 아니라 맛을 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이것이 아트라고 생각. 아트 멀리 있지 않음. 그래서 진심으로 자연환경이, 그리고 본인이 소록도 앞까지 다녀왔음. 전망대 있는 쪽. 소록도가 제일 멀리 있는 곳인데 문명이랑, 슬픈 곳. 소록도 가기까지의 한하운 시인인가가 시도 쓰시고 하셨었음. 그걸 초등학생 때 읽었을 때 마음이 아팠는데, 그런 걸 보면서 영감을 많이 얻었음. 그리고 또 하나 웃긴 건, 박시영 실장님이 서울에서 일 많기로 유명한데, 소위 말하는 잘 나가는 디자이너. 그런데 박시영 실장님이 고흥에 내려오셔서 더 좋은 작업을 할 수 있게 마인드 컨트롤이 되는 것 같다는 이야기 하심. 너무 아름답고, 좋은 사람들, 동네 분들과 자연스레 어우러지고 하는 풍광을 겪는 자체가 영감의 원천이 된다는 것. 그래서 경험해 보라고 초대해 줘서 친구들과 다 같이 왔는데, 절감했음. 너무 좋다. 사람들은 다 도시로 가고 싶어 하는데, 박시영 실장님은 재택을 하심. 서울에 한 달에 한두 번밖에 안 감.
본인은 과학의 문명이나 시대의 발전이 분명 지방에 계시는 어떤 여러 예술인들, 예술인의 피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큰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함. 서울에서 영감이 안 떠오르니 여기까지 내려오는 사람들이 있단 말. 시대가 이전과 달라지고 있고, 그 급격히 달라지는 과도기에 여러분 학생으로 존재하는 것이니, 내가 기회가 뭔지 시대의 흐름을 쭉 보고 캐치한 사람들에게만 기회가 옴. 그러니 지방에 계신다는 어떤 상대적 박탈감이나 걱정, 이런 것들은 약간 접으셔도 될 것 같음. 서울에 있어도 서울촌놈이라 다른 동네 잘 안 감. 성향에 따라 집에만 있는 사람들 많음. 다 돌아다니고 하는 것 아님. 서울사람들도 다 집에서 인스타로 봄. 직접 가는 사람 그렇게 많지 않음. 관광지가 왜 관광지겠는가. 외지인들이 많이 오니. 성수동도 서울 사람들 잘 안감. 관광객들 너무 많아서 가면 힘드니. 그러니 물이 컵에 반만 있냐 반이나 차있다 하는 것과 똑같음.
남을 탓하는 사람들은 환경을 탓하고 수저를 탓하는데, 내가 갖고 있는 환경, 내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건 아니니. 이렇게 태어난 상황에서 내 환경과 탤런트를 얼마나 발휘할 수 있는지 자기 스스로 사고력을 발휘해 깨우쳐 생각한 사람만이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 그래서 강연에서 이런 말을 할 줄 몰랐는데, 시영실장님네 놀러 가서 깨달은 것. 시대가 바뀌었다, 같이 갔던 크리에이터 친구들이 있음, 감독도 있고 포토그래퍼도 있는데, 하나같이 여기에서 일하면 훨씬 잘 일할 수 있겠다는 이야길 했음. 놀랍지 않은가? 시대가 바뀌었고, 발상을 전환시킬 수 있다는 경험을 한 것. 또 실제로 잘 나가시는 분이 일 년에 2/3을 여기서 보내고 있고. 아마 이제부터 시작될 것. 그러니 여러분들이 여기서 힌트를 얻어서, 내가 적극적이고 내가 할 수 있다면, 서울에서 앉아서 미국과 일하는 사람도 많음. 지금 기름값도 비싼데 매일 비행기 타고 나갈 수 없음. 그러니 매스미디어와 디지털, AI를 우리를 침공하는 외계인의 이상한 공격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받아들여서 어떻게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사람이 미래 먹거리 차지할 것, 서울이나 전남이나 저 위에서 보면 크게 멀지 않음. 미국은 뉴욕에서 LA까지 차 타고 못 가는 수준. 그렇게 생각하면 같은 미국인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수도. 그러니 생각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에 무궁무진한 기회가 될 수 있고, 전라도는 그러한 DNA가 있는 곳이기에 리스펙 받을 만한 곳. 그런 생각이 외지인 입장에서 들었음.
박구용 - 여기 계신 분들에게 특별히 기회가 더 많이 올 것. 앞으로 3년 이내에. 광주-전남에.
민희진 - 무슨 계획이 있으신가 봐요? (웃음) 저는 정치적인 인물이 아님. 5.18 이러면 정치랑 연결시키는 사람이 많은데, 본인은 역사로 생각함. 정치문제 이전에 있었던 사실이고 역사임. 이것을 정치로 해석시키고 문제를 다른 이야길 하려 하면 불순분자들이 그렇게 하는 것이고, 전 국민이 이 역사를 외면하면 안 됨.
이것 때문에 온 건 아니고, 본인은 어느 부류에 기생하려고 하는 존재가 아니라 나는 나다 하며 사는 스타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수님 처음에 뵙기 전에 편견도 있었음. 나를 이용하려는 어떤 세력이라거나..(웃음) 정치인들이 만나자고 하면 무섭고. 정치에 입문하면 다 썩은 거고, 이렇게 하는데, 이게 웃긴 게, 정치를 너무 외면하면 실제로 우리 같은 예술인들, 창작인들은 사회에서 되게 소외됨. 정치인들의 뇌구조와 예술인들의 뇌구조는 아예 다름.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같은 것. 서로 이야기를 안 하면 종족이 다르니 교감도 못하고 이해를 못 함. 그러니 말도 안 되는 정책이 나오는 것.
오면서 본인은 한예종 광주로 갑자기 이전시키는 거 반대다, 자연스럽게 학생들과 학교가 원할 때 와야지, 정치적인 이유로 그걸 이용하냐, 그것은 개인적으로 반대다, 왜냐면 인위적인 것은 문화에서 도태됨. 인간의 본성이 밀어냄. 예술은 인간의 본성에 근원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정치적 갑론을박이 생기겠지만 결국 도태됨. 우리는 진화된 과정에서의 문명에서의 도구로서 예술을 써야 하니 장기적으로 도태될 일은 하지 말자는 것. 교수님 주위에 정치인들도 많으시고 근데 교수님이 되게 깨어있으신 분이어서 제 이야길 했음. 그런 쓸데없는 짓 하려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이야기해 주셔라, 그리고 교수님도 거기에 동의하심. 그래서 본인은 학계와 실제 현업에 있는 예술인들, 그리고 정치하는 사람들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이 필요하겠다는 것 생각하게 되었음. 이게 문화인들도 아무것도 모르니 정치인을 이상하게 악용하려고 하고 로비하는 등. 정치인들도 문화에 대한 관심이 없는데 인기가 많으니 인기만 악용하려고 하다가 탈이 남. 그렇게 하지 말고, 평소에 이해도를 높이고, 평소에 이야길 많이 들어보자는 것.
학교 이전 이런 것보다, 전라도에서 남도뿐 아니라 북도까지도, 숨어있는 예술인들이 많음. 그런 학생들이나 돈이 없는 예술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라는 것. 무엇이 필요한지. 어떤 인프라가 필요하고 어떻게 서울과 커넥팅 되면 좋을지 현업으로 고민하라는 것. 그래야 조금 더 나은 지방경제, 지방문화를 이끌 수 있는 것이지, 탁상행정으로, 문화인들 만나보지도 않고, 문화인들 중에서도 유명한 사람들 말고, 유명한 사람들은 유명한 입장에서 좋은 이야길 해줄 수 있지만, 실제로 도움이 필요한 것은 돈 없는 사람들. 유명한 사람들은 도움 필요 없음. 돈 없는 사람들은 태생적으로 돈이 없거나 학생들, 돈이 없을 수밖에 없는 학생들. 그런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해 보라는 것. 그것과 도합해 실제로 현업에 나오지 못한 학생들이 왜 현업에 나올 수 없는지에 대한 고충을 들어보는 것. 그래서 모두를 만족시킬 순 없겠지만, 현명한 사람이라면 문제인식에서 새로운 솔루션을 도출할 수 있다는 것. 100%를 만족시키지 못하더라도 안 하는 것보다 낫다는 것.
또 교수님도 정치하고자 하는 분도 아니고, 사익에 별로 관심 없고 재밌는 것(에 관심이 많으심), 그리고 교수이니 사명감이 있음. 학생들이 잘 되었으면 하는 부분. 이런 것에 대한 고민이 있으셔서 그런 이야길 나눴고, 질의응답으로 해보자. 도움을 조금이라도 더 드리려면 질의응답으로 진행하자까지 도출됨. 그래서 교수님이 이런 질문을 주셨고, 철학과 교수님이 학교에서 좋은 생각을 갖고 이렇게 현업에 있는 사람에게 질의를 해주신 게 굉장히 고무적이라고 생각, 전남대 학생들이 좋은 교수님과 공부하고 있구나, 여러분에게 생색을 안 낸다고 하시더라도 학생들에 대한 고민이 많으시구나 하고 감동받기도 함. 그래서 본인 생각은,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말을 할 수 있게 된 위치에 섰었을 때는 아무래도 대의에 대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음. 본인은 태생적으로 그런 고민이 있는 사람이고. 그러니 이 학교에서 어떻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고민을 했고, 그런 맥락에서 교수님도 이런 질문을 주신 듯.
질문 2 : 엔터사 취직을 준비하고 있음, 트리플에스가 소속되어 있는 모드하우스 대표 정병기 대표가 쓴 <기획의 감각>이라는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봤음. 아이돌 산업에서는 음악 자체보다 멤버의 캐릭터, 예를 들면 뉴진스의 파워퍼프걸 등 콘텐츠 소비 경험이 중요해졌다는 내용을 봤음. 실제 현업에서는 음악과 비음악의 요소 중요도를 어떻게 보는지 궁금.
답변 2 : 이게 왜 궁금하시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질문자 - 본인은 음악 때문에 아이돌을 좋아하는데, 콘텐츠 소비 경험이 잘 없음. 그래서 본인 같은 사람도 설득시키기에 음악의 중요도가 어떻게 되는지. 음악보다 콘텐츠 소비 경험이 더 중요하다고 하는데 실제 현업에서도 그런지. 음악과 비음악에 차이를 두고 작업하시는지.
민희진 - (정병기 대표는) 본인과는 생각이 완전 다른 듯. 본인과는 굉장히 다르신 것 같고, 본인은 사실 레이블을 하게 된 이유 자체가, 음악을 하고 싶어서임. 음악이라는, 본인은 사실 비즈니스적인 관점에서 결과론적인 이야기로 분석을 거꾸로 하신 것 같다고 생각함. 그런 이야기는 개인적으로 동의가 잘 안 되는 게, 결과론적 도출은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함. 잘 되면 그런 이유가 없었는데도 잘된 이유를 갖다 붙임. 사람들이. 그러나 본인은 결과론적 도출에는 관심이 잘 없고, 실제로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본질적인 것들에 관심이 더 많음. 그 본질적인 것이 굉장히 수준이 높았을 때 거기에 +a로 마케팅, 비즈니스적 영역이 영리하게 붙으면 잘되지 말라고 해도 잘된다고 생각함. 그런데 본질인 음악이나 오감을 충족시키는, 아까 말했던 비주얼의 영역, 이런 기본적인 것들이 수준이 높지 않은 상황에서 비즈니스의 영역인 새로운 컨텐츠들, 본질에서 파생된 컨텐츠들의 힘만으로는 오래갈 수 없다고 생각함. 그런 것들이 보통 많이 양산되는 쇼츠문화에서 보여지는, 단발성 컨텐츠들인 것 같음. 그럼 추구하는 방향성이 다르니, 그런 것들을 추구해서 빨리빨리 컨텐츠를 양산하고 싶다는 사람들은 그 가치대로 움직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제게 물어보시니 제 개인적 관점에서는 제가 지향하는 방향이랑은 완전 다르다, 본질이 흔들리는 상태에서 외부적으로 붙는 비즈니스적 스킬은 전혀 무용하다고 생각함. 기본이 탄탄하면 그 자체만으로도 산업의 핵심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재밌는 이야기 해볼게요, 이게 저밖에 할 수 없는 이야기인 것 같음, 이걸 어딘가에서 또 한 번 들을 수도 있음. 한 번 해보고 싶었는데 모든 분들이 계셨을 때 한 적이 없어서. 돈을 벌고 싶으면서 비즈니스의 모델을 바꾸지 않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말이 버벅이는데, 대본대로 말하는 스타일 아닌 거 아시잖아요, 비즈니스 모델을 바꿔야 돈을 많이 벌 수 있음. 이전의 고전적 방식, 예를 들면, 똑같은 일을 하면서 월급 100만 원씩 받는다, 근데 200, 300 받고 싶다고 하면서 하는 일은 똑같으면? 그렇게 벌 수 없음. 내가 하는 일이 1, 2, 3, 4인데 5, 6을 더 하지 않으면 그러지 못함. 젊은 분들 워라밸 생각 많이 하시는데, 워라밸을 깨면서 일에 매진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현상학적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 내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 생각을 하지 않고 과거에 묶여있으면서 돈은 과거보다 더 많이 벌고 싶다고 하면 그것은 과욕, 도둑놈 심보라는 것. 그렇기 때문에 내가 돈을 많이 벌고 산업을 확장시키고 싶으면 비즈니스 모델을 바꿔야 함.
어떤 케이스가 있냐면, 뉴진스 만들기 전에,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했는데, 본인은 제가 좋아했던 음반이나 이런 것을 굉장히 어렵게 구했음. 본인 때는 음반 사는 게 손 덜덜 떨면서 한 장 샀음. 그때는 스트리밍도 없었음. 그러니 항상 피지컬, 물성의 프로덕트를 갖고 사야만 내가 집에서 그걸 플레이어로 들을 수 있었음. 그러니 얼마나 귀했겠는가? 그러니 아무 음반이나 못 삼. 내가 진짜 사고 싶은 걸 사야 함. 그리고 좋은 걸 사야 함. 10개 100개를 못 사니 한 개 살 때 명반을 사고 싶음. 그리고 집에 사 와서 늘어지게 들음. 버릴 수가 없음. 그러니 그 음반을 1번부터 12번 정도까지 있는데, 이걸 계속 듣게 됨. 그런 추억이 있었고, 그렇게 듣다 보면 무슨 현상이 생기냐면, '타이틀곡 이외에 정말 좋은 곡이 많네, 근데 유명하지 않다.' 나만 아는 좋은 곡이 생기는 것. 그럼 왜 이런 곡들은 안 유명해지나, 더 유명해져서 다 알았으면 좋겠는데 하는 마음이 콘텐츠소비자로서 있었음.
그래서 본인은 음악 한 곡 한 곡을 모두 프로모션 하고 싶었음. 이건 비즈니스적 마인드 이전의 본능이었음. 한 곡 한 곡을 다 홍보해야 하는 것. 그럼 돈을 많이 벌 수도 있겠다는 것까지 이어짐. 보통 5-6곡 미니앨범 만들며 서브타이틀까지 만드는데, 모든 곡을 타이틀화해 버리면 음원수익이 5배 6배 더 늘어날 것. 어떤 확신이나 생각이 있었냐 하는데 그것이 제 재능. 종합선물세트처럼 끼워 넣는 것 만들지 않음. 1, 2, 3, 각자 트랙마다 이유가 있음. 저한테 처음에 질문했던 게, "뉴진스 첫 음반 4개 나눠서 내지, 어텐션 내고 하입보이내고 쿠키 냈으면 더 히트했을 텐데" 했지만, 무슨 소리. 결과론적인 이야기고 같이 들었기에 여러분들이 감동하신 것. 왜 타이틀곡 4개를 다 넣어버린 거야 하지만, 이건 비즈니스적 마인드 이전에 컨텐츠 소비자로서 누려보고 싶던, 누렸던 행복감을 그대로 주고 싶었음.
그리고 두 번째, 네 곡 타이틀화해서 히트하면 남들 하나 히트하는 것보다 4배 되니 뉴진스가 많이 벌 수밖에 없었음. 그래서 처음부터 자신이 있었음. 뉴진스는 안될 수가 없다. 내가 한곡 한곡을 이렇게 정성 들여 만들었고, 한 곡 한 곡 다 프로모션을 이렇게 잘하는데. 한 곡 한 곡이 다 타이틀처럼 홍보가 되면 안 될 리가 있나? 상식적으로. 그러니 이런 것들이 본능적으로 이어지는 거였어서, 여러분에게도 좋고 제게도 좋음. 모든 곡을 다 홍보할 수 있고 안 버려서 좋은데, 여러분들은 한 음반에서 좋은 곡들과 오감을 충족시키는 컨텐츠 경험 가능. 그렇게 경험하니 아직까지도 뉴진스를 못 잊는 것. 잊으라고 애를 쓰고 악플을 달고 언플을 해대도 사람들이 못 잊음. 본능에 각인되어 있으니. 한예종을 억지로 옮길 이유가 없다, 본능에 거스르는 건 도태된다는 것. 한예종 학생들도 슬프고 광주 사람들과 도 트러블이 일어날 텐데.
상생을 해야 하고 서로 좋아야 함. 이걸 책상머리에서만 일하는 아저씨들이 대부분 많으니 아저씨라고 표현하는데, 그런 아저씨들이 욕을 안 먹으려면 그런 잘못을 안 하면 되는데, 이걸 쉽게 생각하다 보니 그런 것들이 나오는 것 같고, 그러면 대중들에게 외면받는다. 내가 소비주체로서, 내가 공급하는 사람으로 효율을 높이는 방법, 본인은 욕심쟁이여서 둘 다 만족시키고 싶었음. 나도, 상대도 만족하는 그런 대중문화를 만들고 싶다는 것. 그래서 레이블을 한 거지, 무슨 돈 욕심이 있어서 한 게 아님. 제가 능력이 있는데, 적당히 어지간히 일하면 월급쟁이로도 잘 살 수 있음, 근데 한 번 사는 인생인데 한 번 칼을 뽑았으면 뭐라도 잘라야 한다는 것, 개인적으로는. 그런 스타일임. 그래서 그런 재미를 위해서 컨텐츠를 너무 열심히 만들었고, 이런 분쟁이 있고 이랬어도 이런 것에 대한 집착적인 열심을 보였기 때문에 저를 잘 모르는 분들도 민희진이 그럴 리가 있겠어? 생각한 것. 열 마디 홍보와 억지 언플보다 훨씬 큰 힘이라고 생각함. 사람을 움직이는, 진심의 에너지는 어떤 가식보다 월등해서, 결국에는 사람을 움직인다는 것. 이것이 문화의 힘이라는 것. 문화가 언제부터 바이럴로 떴는가? 항상 내 마음을 울리는 것들에 자연 동요를 했고 그 결과로 인기가 생긴 것이 대부분이었지, 지금 그래서 바이럴로 움직이고 어쩌고 해도 일정 부분 잠깐은 도움 받는 게 있을지언정, 큰 흐름을 바꿀 수는 없다는 것. 큰 흐름은 본질에 집중하는 사람이 바꿀 수밖에 없다는 것. 그런 사람이 있어야 저는 사람들이 실망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함.
박구용 - 민희진대표의 음악이 잠깐 멈춘 게 아쉽죠, 근데 민희진대표하고 한시간만 있어보면, 민희진의 음악은 계속된다.
질문 3 : 2008년 샤이니를 시작으로 K-POP을 사랑해 오면서 거의 20년 가까이 민희진의 크리에이티브한 모습을 보고 자랐고, 사랑했음. 2010년 후반 정도에 SM 이사로 있다가 임원으로 일을 하셨는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있을 때와의 차이 궁금.
답변 3 : 사실 큰 궤에서 보면 달라진 건 없고, 본인은 일을 제 삶이라고 생각하는 스타일이어서, 우리 직원들은 아니지만. 그런 직원도 있고 아닌 직원도 있지만 강요하진 않는데, 본인은 일을 괴롭게 생각하지는 않음. 물론 괴로운 일들이 있음. 기본적으로 내 일 자체를 숙제라고 생각하는데, 숙제하면 싫긴 한데 뭐 어떡해 인간으로 태어났는데 해야지, 굶어 죽지 않으려면 해야지, 이걸 당연한 거라고 받아들이니 본인은 별로 괴롭지는 않음. 당연히 누구나 해야 하는 일이니. 그래서 루틴이랄 건 별로 없음. 본인이 ADHD임.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런데 그 성향이 다 다른데, 본인은 하고 싶은 일에 몰입을 잘 함. 그런데 하고 싶은 일만 엄청 함. 하기 싫은 것들은 잘 안 함. 회피하려고 노력하거나.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에게 기회가 가기도 함. 본인이 하기 싫은 일인데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으니, 그래서 세상이 돌아가는 거라고 생각.
분쟁 때문에 제 인생이 달라진 건 있음. 저는 사람들 앞에서 옛날에는 말은 잘하지만, 나대는 걸 싫어했어서 잘 안 나섰음. 안 건드리면 안 나섰고,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도 않았음. 왜냐면, 이야기할 게 너무 많고 내 캐릭터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게 싫었음. 그 괴리를 많이 들었기에 사람들이 기대하는 제 모습이 있는데, 제가 엄청 걸걸하게, 저 아는 사람들은 다 저를 형님이라고 함, 그렇게 받아들이면 좋게 말하면 반전매력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모습들이 좀 피곤했고 즐기진 않았음.
그런데 분쟁을 상대방이 일으키면서 어쩔 수 없이 내가 항변을 해야 하니까, 억울한데 가만히 있을 이유가 없으니, 그렇게 이야기하는 과정 중에 제 캐릭터가 나오게 되었고, 그 캐릭터가 만천하에, 세수 안 한 생얼이 전 국민, 전 세계인에게 보여졌음. 본인은 그런 강박이 심해서 노출도 잘 안 했는데. SM 팬이면 본인이 얼마나 노출 안 했는지 알 것. 본인의 못생긴 모습이 나오는 게 싫었음. 그런데 그런 못생긴 최악의 모습이 4시간 동안 계속 나왔음 오만 앵글에서. 그 경험을 해보니 뭐 세상 별 거 없다, 근데 크게 생각해 보면 본인이 연예인도 아니고 익숙해지게 됐는데, 그런 경험을 크게 한 번 겪고 보니, 모든 것에 좀 초연해진 부분이 있음. 강박적인 성격인데 모든 것을 내려놓은 게 있고, 뉴진스 했었을 때 본인은 한 번도 쉰 적이 없음. 2년 반 동안 매일매일이 고난이었음. 매일매일 할 일이 너무 많고, 욕심이고, 돈 욕심 이런 게 아니라 컨텐츠 욕심이 많았음. 그러니 너무 매일매일 잘하고 싶으니 남에게 시키기 힘든 일은 다 제가 했음. 그러니 잡일이 너무 많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니 제가 해서 보여줘야 하는 일들이 많았음. 그러다 보니 시킬 수가 없음. 말로 하는 게 힘들어서. 그래서 너무 고달파서 항상 사람들이 제일 잘 나갈 때 "너무 좋겠다", 만나고 싶어 하고 그랬는데, 사람들을 만나지도 않았고, 괴로움을 호소했음. 너무 힘들고 괴롭다, 너무 힘들다. 그런 게 많았음.
그런데 오히려 분쟁 이후에 본인 삶을 되돌아보게 되었고, 여유가 생겼고, 많이 내려놨고, 성격이 급해서 빨리빨리 해야 하고, 24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성공의 목표가 있었음. 그런데 그걸 못하게 되니까 너무 빡이 치는 것. 그러니 그게 너무 화가 나고 25년의 원대한 계획이 있었는데 아무것도 못하게 되고, 그러니 그게 너무 괴로웠음. 사람들은 소송이 괴롭고 하지 않냐고 하는데 내가 하고 싶은 걸 못하게 되는 게 너무 싫었음. 그럼 세상이 경험할 수 없는 경험치가 더 높았을 텐데. 그리고 본인도, 본인이 경험할 수 있는, 일하면서 얻는 쾌감이 큰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데 그게 스탑 되니 화가 났었는데, 너무 놀랍게도 고통 중에 희망을 배우게 됨. 억지로. 억지로 희망을 갖는 게 아니라, 억지로 얻게 된 상황 때문에 사람은 죽으란 법은 없다고 회복이 됨. 분쟁을 겪어서 분쟁 전에 가졌던 스트레스가 회복이 됨. 사람들이 간증을 함, 죽을병 걸렸다가 살아난 사람, 이게 다 이유가 있는 것. 극심한 고통을 겪게 되면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고, 그 시각으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고, 광주 분들이라 더 아실 것 같은데, 항쟁이 있어야 변화가 생김. 어쩔 수 없음. 모든 것들에는 싸우기 싫어도, 저도 싸우기 싫음, 그러나 어쩔 수 없는 환경에서 거기에 저항하느냐 안 하느냐로 모든 게 바뀜. 이 저항이 성공으로 끝나지 못했다 하더라도 의의가 큼. 세상에 전달하는 의의. 한강작가의 노벨문학상이 어디서 나왔겠는가. 이미 동시대가 아닌 스토리인데. 사람의 마음을 울리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커다란 무언가는 고통이 있었기에 사람들이 더 절감하는 게 더 컸다는 방증이기도 함. 예술의 의의는 고통에서 비롯되기도 함. 창작의 고통은, 글 쓰는 분과 더불어 한 분야에서 오래 일한 분들 예술인이라고 생각하는데, 더 잘하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뼈를 깎으심, 고난이 있어야 다음이 있는데 고난이 없으면 다음이 없음. 그래서 본인은 더 편하게, 원래 예전 같았으면 이런 이야기 절대 못 했음. 회사에 피해가 갈까, 누가 헛소릴 할까 유언비어가 되지 않을까 했지만 여러분 제 캐릭터 다 아시잖아요.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그런 게 생겼기 때문에, 이런 이야길 솔직하게 해도 이해가 되겠다. 그리고 이런 솔직함이 사회에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는, 깨달음이 생겼음.
그래서 사실 저 같은 사람이 존재해야 업에 물꼬가 터짐. 항상 시스템 안에서 순응하는 사람들만 있어서는 시스템이 보이면 재미가 없음. 그러나 항상 좋은 방향으로 뭔가를 바꾸려고 하는 사람들의 의지가 성공이든 아니든 화두를 던지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다른 사람들에게 울림이 있을 수 있고, 본의가 아니더라도 세상이 그런 사람들을 만들어내고, 이런 사람들이 생기는 이유가, 그래서 하나님이 저를 쓰셨다고 생각함 본인은. 나 같은 기질을 골라 잘하겠다, 이렇게 생겼으니까 하는. 그러면서 사회가 변화되면서 이 변화가 선의로 가길 바라고 본인은, 좋은 쪽으로 가길 바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많은 깨달음이 생기길 바람. 그러면서 더 성숙해지고, 진화될 수 있다고 생각함.
질문 4 : 최근 인터뷰 중 감명 깊은 부분이 있었음. "나는 마이너 한 사람이 아니라 대중적인 사람이다. 다만 메이저와 마이너 그 경계에 있다. 그런데 다들 비어있는 느낌을 받는데, 그게 뭔지 모른다. 그런데 나는 안다. 가렵지만 아무도 긁어주지 않는 지점을 찾아낸다."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어떻게 이렇게 오래 K-POP 산업에 종사하며 대중들이 가려워하는 지점을 찾아내시는지, 대표님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점이나 방식이 궁금. 대표님이 생각하는 메이저함과 마이너함의 사이는 무엇인가, 왜 대중들이 그 사이 지점에 열광하는가 하는 개인적 의견 듣고 싶음.
답변 4 : 굉장히 좋고 재밌는 질문. 담론의 주제로 엄청 심도 있는 질문. 본인이 생각할 때, 본인은 왜 K-POP에 오래 있었지만 캐치할 수 있냐면, 케이팝을 안 좋아해서 그럼. 케이팝을 향유하고 즐겼던 사람이 아니고, 케이팝이라는 용어가 굳기도 전에 시작한 사람. 저희 때는 한류 이랬음. 처음엔 아이돌 산업을 막 박해하고, 아이돌들이 얼마나 놀랍냐면, 잡지 표지 매거진을 못하던 시절이었음. 잡지사에서 하대하고. 안 좋아하고. 아이돌 문화 자체를. 약간 경시했음. 그게 느껴질 정도로. HOT가 인기가 많았는데도 그런 게 있었던 시절임. 지금은 상상도 못 하지만. 지금은 매거진이 케이팝 아이돌 없으면 안 굴러감. 그렇게까지의 흥망성쇠를 겪은 사람임. 저는 애초에 그 케이팝의 불만 아닌 불만이 많았기 때문에, 대중문화가 조금 더 나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 계속 있었음. 대중문화가 대중문화인 이유가 있음. 쉬워야 절대다수가 좋아함. 어려우면 절대다수는 힘들고 고달픈, 인생이 힘들고 고달픈데 문화는 자기 힘듦을 씻기 위해 향유하는 경유가 많으니, 문화에 심취해 있는 사람들보다 현실의 시름을 씻기 위해 문화 향유하는 사람 많으니 대중문화 어려우면 히트하기 어렵다는 생각 있을 수밖에.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매스미디어 발달이전, 다들 방구석에만 있을 때. 70 80년대.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레트로 붐이 이는 이유가, 그 당시 사람들의 컨텐츠가 지금 같은 완성도가 없을지언정 진심이 있음. 방구석에서 뭔가를 진심으로 한 것. 방구석이라는 표현은 재밌으라고 극단적으로 한 건데, 교류가 없으니 자기 것만 하던 것들. 그 시절 음악은 가사가 다 절절하고 멜로디도 농밀함. 밀도가 높음. 테크닉 자체는 조금 떨어짐. 그러니 분출하고 싶은 열망은 많은데 테크닉은 떨어지던 시절, 그 미덕이 있음. 사람들은 그 열정과 에너지를 지금 각박하니, 이전의 에너지가 너무 세서, 어쩔 수 없이 땡김으로 좋아하고 있다는 생각을 함. 그런 관점으로 봤었을 때, 사람들은 진심의 에너지를 외면을 못한다는 게 이어지는 이야기인거고.
메이저함과 마이너함은 어디서 결정짓냐면, 문화에 높고 낮음이 있음. 어려운 문화가 있음. 그러나 귀천은 없음. 어렵다고 귀하고 쉽다고 천한 건 아니지만, 수준의 높고 낮음은 있음. 그래서 아까 미감을 얻으시려면 그 통찰을 갖는 방법을 스터디하고 체득해야 한다, 자기 통찰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씀드린 것. 그걸 위해서 좋은 책과 영화, 좋은 컨텐츠를 많이 접하셔라는 것. 거기서 자기가 크리티컬 하게 비판하는, 크리틱 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 그래야 좋은 문화와 아닌 문화를 구분한다는 것.
마이너 한 문화 중 왜 마이너 하냐면, 귀에서 마이너하고 천해서 마이너 한 게 아니라 어려워서, 너무 아티스틱해서 마이너 한 게 많음. 너무 안으로만 몰입하면 다른 사람들이 몰입하기 어려움. 추상미술 같은. "선 하나 그은 건데 왜 이렇게 비싸냐" 하지만. 마크 로스코의 작품을 실제로 보면 심도가 남다르다는 걸 알 수 있음. 왜 그 사람의 그림이 명상의 그림인지 이해가 됨. 전 세계인들이 그걸 실물로 경험하기 어렵기 때문에, 구전으로 듣고 책에 인쇄되고 인쇄되면 그 밀도를 책에 담기는 어려움. 그러다 보니 체득이 늦어지는 것. 마이너 한 문화 중 어쩔 수 없이 소수가 향유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철학 같은 것. 철학은 사고를 많이 해야 함. 생각을 많이 해야 함. 그러니 먹고살기 힘든, 실용 학문이 흥하는 시절에는 '야, 태평하다, 뭐 그런 걸 따지고 있냐, 지금 나 빨리 내일 나가서 출근해서 돈 벌어야 하는데'. '남들 쇼츠찍고 있는데 무슨 철학이야' 이렇게 됨. 그러니까 사고하는 시간이 짧아지니, 어찌 보면 이런 어려운 학문들이 자꾸 도태될 수밖에 없음. 그러나 인간은 본능적으로 인문학적 소양이 있음. 항상 그것을 갈구함. 정신이 그게 없으면 피폐해짐. 그러니 자기도 모르게 바쁜 현대생활을 하면서 정서적 갈급함을 느끼니 좋은 고급문화를 찾는 것.
그래서 마이너 한 문화는 그런 어려움 때문에 마이너 한 게 있고, 실제로 수준이 낮아서 마이너 한 것도 있음. 자기가 수준 낮은 줄 모르고 자기 하고 싶은 것만, 분별력 없이 통찰 없이 하고 싶은 것만 하면, 작품성도 없고 흥행성도 없는 마이너 한 게 됨. 그러니 마이너가 하나라고 퉁칠 수 없음. 메이저 한 것이라고도 퉁쳐서 천하다고 할 수 없음. 마이클 잭슨이나 비틀즈는 지금 시대에 들어도 엄청난 음악성과 흥행력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음.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대부>를 좋아하는데, <대부>는 흥행작이면서 명작임. 최고의 상업영화면서 최고의 예술영화. 이런 것들이 다 대중문화시대에서 마이너 한 것에서 좋은 것과 안 좋은 것이 상존하고 공존하듯, 메이저 문화에서도 안 좋은 것과 좋은 것이 공존함,
그래서 첫 번째로, 메이저와 마이너 간 문화적 귀천을 따지면 안 된다, 편견을 벗어야 한다. 그걸 전제했을 때, 제가 왜 마이너 한 것들을 대중으로 끌어올리고 싶어 하냐면, 그 문익점 정신 때문임. 예를 들면, 중국에서 목화솜이라는 좋은 걸 찾았음. 그런데 너무 따뜻하다는 걸 알았음. 너무 따뜻해. 이거면 많은 서민들의 삶이 윤택해질 수 있음. 그럼 몰래 가져오는 것임. 이게 법으로 보면 이상할 수 있음. 그러나 인생을 살면서 딜레마임. 약간 제 생각엔 그런 게 있었음. 마이너 한 시장이 잘되려면 마이너 한 사람들의 가치를 알아주는 메이저 한 시장이 필요함. 마이너에서 좋은 작가들이 많음. 그러나 유명해지지 않으면 이 사람들은 밥을 먹고살기가 어려움. 이 사람들이 예술을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음. 그러나 이 사람들은 곤조가 너무 강해서 대중문화와 타협이 잘 안 됨. 그런 태생학적 한계가 있음. 그 사람들이 예술만 잘하는 게 아니라 비즈니스까지 잘했으면 이미 올라왔을 것. 그러나 예술적 머리만 타고나고 비즈니스 머리가 없는 걸 어쩌나. 그러니 맨날 당함 사기당하고. 어떻게 확장해야 할지 모름. 본인은 그 큰 달란트, 예술적 감성이 있지만 비즈니스적 감각도 있음. 그러니 마이너 한 것에서 끄집어 올려주고 싶은 것. 그럼 하수구에서 머리카락 끌려져나오듯 연달아 올라오는 것이 생김. 그리고 그 문화에 대한 관심이 생김. 그런 마이너 한 문화들을 대놓고 소개하는 게 아니라 하더라도, 예를 들면 뉴진스가 새로운 비트를 제안해. 대중문화씬에 없었던. UK 개러지, 저지, 이런 것 뉴진스 때문에 들어봤잖아요. 우리 음악 하는 사람들은 너무 익숙한 장르들이지만 인기가 없었던, 메이저 씬에서 잘 안 다루던 것들. 유행이 아니니. 우리는 '유행이고 아니고'가 관심이 없었음. 같이 음악 했던 친구들은 그게 좋으니까. 그런 스타일이 팀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순수한 마음.
유행은 남들 따라가면 후발주자가 됨. 자발적 후발주자가 되는 게 비즈니스적으로 좀 바보 같음. 내가 1등이 되고 싶으면 남들이 안 했던 것 해야 함. 본인은 그런 것들에 태생적으로 관심이 많았음. 마이너문화에도 메이저 문화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제가 왜 대중적인 사람이라고 본인을 표현했냐면, 대중문화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유명하지 않아서 마이너일 뿐인 좋은 걸 봤을 때 나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내 친구들도 좋아할 것, 몰라서 그래, 하는 것이 많았기 때문에 대중적으로 흥할 수 있는 것들이 보였음. 그런 것들을 끄집어서 올려주자. 그리고 그런 것들이 재밌었음. 너무 자기 세계에 갇혀있는 것들은 재미가 없음. 그러니 제가 갖고 있던 취향이 그런 성향이었는데 이런 것들이 대중문화 발전에 충분히 이바지할 수 있을 것. 밀도 있으니. 이것이 주는 자양분과 끌어올려줄 가치가 보였음. 그래서 히트할 것들을 좀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고, 그런 것들을 스무스하게(끌어올려야지), 이걸 천박하게 끌어당기면 대중들이 다 알아봄. 그런 건 안 좋아함. 대중문화의 질을 올릴 수 있는 고급스러우면서 쉬운 방향성을 제안하고 싶었던 게 본인이 일하며 보람을 찾고 재미를 찾았던 것.
질문 5 : 소비자로서 궁금했던 점이 있음. SM에서 작업했던 패스코드를 재미있게 즐겼고, K-POP 씬에서 다신 나오지 않을 명작이라고 생각함. 패스코드라는 작업이 엑소의 '오글거리는 컨셉'이 대중들에게 더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이유라고 생각. 본인은 팬이자 소비자로서 그것을 추리하고, 떠먹음 당하고, 박수치는 입장인데, 세계관을 구축한 창작자로서 세계관에 대한 생각이 궁금. 또, 최근 케이팝 경영을 보면 기존 이미지를 탈피하겠다는 명목으로, 진부하게 있던 클리셰를 깨겠다는 명목으로 난해함을 내세우는데, 그 설득력이 떨어지더라도 세계관이 주는 난해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
답변 5 : 저는 모든 사람이 생각이 같을 수 없고, 제가 하는 방식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지 않음. 문화는 이견이 많아야 재밌음. 다양한 생각 공존해야 문화가 재밌음. 그래서 저랑 생각이 다르고 작업의 결이 다르다고 해서 폄하하는 견해는 없음. 제가 재미를 느끼냐 못 느끼냐의 관점으로 대하는데, 패스코드는 본인이 숙제를 받았음. 엑소가 데뷔하면서 세계관을 만들어버리신 거임 이수만 씨가. 그런데, 심지어 구체적인 스토리는 없었음. 그러니 나는 이게 나랑 너무 안 맞는데, 나는 직급자고 해내야 함. 그런데 '이 유치한 어떤 관념을 어떻게 바꿔야 하지'를 당연히 고민할 수밖에. 그래서 가설을 세웠던 게, 대안을 만든 게, 뜬금없는 외계인이 케이팝을 부른다가 와닿지 않았음. 그게 기조였었기에 그 당시 제가 설계했던 게 음악과 결이 맞아야 하는데 음악과 다르게 세계관이 돌아가는 게 너무 어려우니 본인은 으르렁을 되게 밀던 사람이었고 그게 타이틀이 되어야 한다고 했는데 다른 게 타이틀이 되었음. 그때 으르렁을 살리기 위해 가설을, 지구에 떨어진 초능력자들, 지구에 떨어졌으니 일반인이 되고 일반인이니 아무거나 할 수 있음. 그렇게 가설을 만들어서 사람들의 생각을 스핀오프 시킬 수 있는 캠페인이 필요하겠다 해서 패스코드 캠페인 만들었고 저 포함 3명이 했음. 패스코드란 이름도 우리가 지었고, 본인과 밑에 디렉터, 또 한 명의 직원이 아이디어를 내고 치고받고 해서 그걸 만들었음. 본인은 좋은 프로젝트는 절박함에서 나오지, 돈과 인원에서 나온다고 생각하지 않음. 패스코드는 회사에서 진행한 프로젝트가 아니었기 때문에, 본인이 삼성에서 광고받고 진행하고 이랬던 거여서, 예산도 많지가 않았음. 있는 예산에서 최대한 아이디얼 하게 뭔가를 만들어보자고 시작한 취지. 이런 진심과 절박함이 있는 작업들이 마음을 울림. 그래서 돈과 그런 것에 비례하지 않는다, 내가 얼마나 이 프로젝트 잘 수행하고 싶어 하냐에 따라 많은 게 달라진다는 것 말씀드리고 싶음.
세계관이라는 게 누군가에겐 콘텐츠에 몰입하는 재밌는 요소가 될 수 있는데, 본인은 세계관이라는 말 자체는 좋아함. 원래 케이팝의 세계관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세계관이라는 말. 소설에도 세계관이 있고, 만화에도 세계관이 있고, 현실의 어떤 부분에도. 본인에게 약간 생태계 같은 개념. 이걸 아이돌 문화에서 너무 한정적인 스토리를 파는 매개로 세계관이라는 단어를 쓰니까, 아티스트라는 호칭을 쓰듯, 그러니 오해가 생긴 것 같고, 세계관이라는 개념에는 이견이 없지만 동시대에 세계관이 아이돌씬에서 쓰이는 작법이 좀 더 다양해졌으면 좋겠다. 너무 비슷하게 흘러가는 세계관은 재미가 없다고 생각. 그래서 세계관이라는 말에 죄가 있는 게 아니라 세계관을 어떻게 형성할 것이냐, 작위적 스토리가 없었을 뿐이지, 뉴진스도 뉴진스의 생태계, 세계관이 있음. 그러나 그걸 세계관이라고 하지 않음. 이상한 오해나 확증편향 만들고 싶지 않아서. 용례가 잘못 쓰이고 있으니. 그래서 본인은 그걸 확실하게 분리하고 싶다, 세계관이라는 말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케이팝에서 세계관이 좀 더 재밌고 다양하게 사용되어야지 지금은 너무 한 방향으로 게임처럼 흘러감. 여기에서 왜 부담을 느끼고 재미가 없다고 느끼냐면, 본인은 아티스트가 진정으로 노래할 때 울림이 있다고 생각함. 노래에 집중해야지 연기자가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부류라, 연결고리가 안 맺어졌음. 그러다 보니 재미가 없었음 본인에게는 그런 류의 흐름이. 그래서 자연스러움을 추구한다는 게, 아이돌 산업이라는 문화 태생 자체가 어찌 보면 굉장히 시스템화되어 버렸기 때문에, 시스템 안 부품으로 되어 있으면 그렇게 깊이 공명하기 어렵다고 생각함. 그러니 이런 노래 울림, 컨텐츠 울림을 위해서 아티스트나 기획자나 서로 동기화가 되어야 함. 동기화가 되려면 자연스러운 게 가장 편하고 좋다는 것. 얘의 생김을 인정하고 나의 생김 인정해서 기획된 프로젝트인 걸 부인하지 말자, 그렇다고 너무 기획된 것처럼 보이는 것도 이상하다.
제가 기획하면 아티스트들이 본인의 크리에이티브를 실현함. 내 크리에이티브를 실현하는 게 아니라. 유독 아이돌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천대받음. 쟤네가 뭐 생각이 있겠어, 하는 것. 그러나 여러분들 다 어렸을 때 자기 생각과 하고 싶은 게 있었음. 그런 그들의 생각을 존중해 끌어올려주고 산업으로 발전하는 게 아이돌 문화에서 굉장히 '지금 필요했다, 필요하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뉴진스 같은 팀을 만들고 싶었던 것.
질문 6 : 예술과 산업이 결합할 때 그것이 굉장히 잔혹함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 케이팝을 싫어하기도 하고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음. 그래서 예술과 산업의 경계에 있는 대표님에게 질문할 수 있는 기회 소중. 대중문화나 산업은 생산과 소비의 논리에 의해 흘러가기 때문에 그 안에서 작업하다 보면 창작자의 감각마저도 도구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함. 어쨌거나 예술의 고유성을 지키는 일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대표님도 그렇게 생각하신다고 생각. 대표님의 작업물을 보면 제가 경험한 게 아니어도 경험한 것 같다는 생각. 캠코더 이용해 보지 못했어도 그를 이용한 뉴진스의 작업물 보면서 그런 것에 대한 그리움 느낌. 대표님은 그래서 예술의 고유성 지키려고 한다고 생각하는데, 예술과 산업에 동시에 있으면서 지키고자 하는 소중한 가치가 있으면 무엇인지, 그리고 한강 작가 말 인용하자면, '아무리 더럽히려 해도 더럽혀지지 않는 가치'가 있다면 무엇이 있는지 궁금.
답변 6 : 굉장히 철학과 학생 같은 질문, 질문의 수준이 (좋다는). 너무 가벼운 질문을 받으면 허무할 때가 있는데, 질문의 수준이 다들 좋으셔서 기쁜 마음이 듦.
본인이 사실은, 그런 데 딜레마를 느껴서 이 분쟁에 봉착한 것. 본인은 돈을 벌고 싶었으면 사실, 회사의 오너의 마음에 들려고 분쟁을 일으키지 않음. 문제제기를 안 함. 조금 더 기다리면 나한테 더 큰돈이 오는데, 돈 줄 사람, 보너스 줄 사람에게 찾아가서 "너 잘못했잖아", '몇 달 뒤에 당신은 보너스를 받으실 겁니다'라고 약속이 되어 있는데, 굳이 가서 "잘못하셨다", "사과하고 인정해라, 그리고 우리 아티스트들에게도 사과하라, 그게 옳다, 본인이 하신 말을 지키는 것이다"라고 하지 않았을 것. 돈을 생각했다면.
문제제기를 왜 했냐면, 문제가 일어났을 때 제기를 해야 함. 계엄이 터졌는데 계엄을 막아야 계엄이 안 일어나듯. 그런데 내가 막으면 죽을 것 같은데, 문제가 생길 것 같은데 안 막으면? 더 큰 문제가 일어남. 그걸 오히려 사적인 욕구가 컸으면 그게 더 컸으면 아마 참았을 것임. 문제제기를 안 했을 것. 그런데 그것보다 제 인생의 가치가 더 높은 데 있었음. 내가 불편하고 싫다 하더라도 누군가는 말해야 하는데, 내 주위에 아무도 말 안 할 것 같아서. 그럼 내가 말을 해야지 뭐. 그리고 말하라는 자리임 대표는. 대표의 책임의식이라는 게, 다 대표가 짊어지는 것. 좋을 때만 대표로 나서는 게 아니라, 문제가 생겼을 때 문제를 해결하려면 대표가 문제를 해결해야 함. 문제를 해결하려면 싫은 과정이 필요. 아무리 좋게 좋게 이야기해도. 사람들이 좋게 문제제기를 해도 다 기분 나빠함. 그게 인간임. 그렇지만, 그걸 겪지 않고서는 변화가 되지 않음.
그 당시 저는 그 문제제기를 하지 않으면 아티스트의 미래가 힘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음. 한 번 묵인하면 다음에는 더, '쟤네 조용했잖아, 다음에 또 하면 되지, 또 쉽게 되겠지' 하는 것이 두려워짐. 다음을 주고 싶지 않았음. 그래서 한 번 문제제기를 하고 싶었고, 되든 안되든 문제제기를 하는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고, 어린 친구들과 일하는데 가만히 있는 게 비겁하다고 생각했음. 보호라는 개념이 사람마다 다 다른 것 같은데, 제가 보호한다는 건 얘네 존엄성을 지켜주면서 나의 존엄성도 지키고, 창작의 가드를 쳐주는 것. 보호막을. 내가 쳐줄 수 있는 것. 그렇지 않고는, 그때 말들이 많았음. 그러나 우리는 한 번도 합의를 받은 적이 없었고, 괜찮다고 허락한 적이 없었음. 그런데 밖에서 다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데 회사 안에서 태평하게 가만히 있는다? 이건 비겁한 거라고 생각함. 문제제기는 당사자만 할 수 있음. 당사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해주면 그 사람은, "당사자는 가만히 있는 데, 니네가 왜 그래" 이렇게 됨. 그러니 본인은 필연이었기 때문에, 나잘났다고 이야기한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내게 닥친 사고다, 그런데 사고에서 물러나지 않고 할 이야기를 했다. 1심에서 이기고, 저는 모두의 평화를 위해서라면 이깟 돈 없이도 잘 살았으니 이거 니네 줄게 , 원래대로 되돌리라니까? 이걸 제안한 데는 다 이유가 있음. 본인이 처음부터 한 말을 지키기 위해서, 세상에는 돈으로만 사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음. 그래야 모든 사람들이 희망이 생기니까. 모든 사람들이 다 돈만 추구하며 살면 얼마나 괴롭겠는가. 돈을 못 버는, 뒤쳐지고 영악하지 않은 사람들은 거기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낌. 그러나 세상은 돈으로만 굴러가지 않음. 분쟁을 겪으며 느낌. 돈으로만 굴러가지 않음. 단 끈기와 참을성은 필요함. 내가 원하는 타이밍에 확 바꿔지고 하지는 않음. 문제제기를 하면 그걸 감수할만한 깜냥도 있어야 하고. 이렇게까지 길어질 줄은 몰랐지만. 나는 내가 포기하면 될 줄 알았음. 내가 이긴 다음에. '내가 이겼는데 내려놓으면 뭐라고 할 거야. 그러니 이긴 걸 보여주고 내려놓자. 그럼 사람들에게 울림이 있을 수 있고, 공감, 깨달음을 줄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진심이었음. 상대가 받으면 저는 0원임. 그런 것들, 그런 가치를 보여주는 사람이 이 시대에 필요하다, 그 돈을 얻는 기쁨보다,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만족감과 행복감을 주는 데에서 가치가 생기고 그런 게 더 좋음. 그러니 모든 사람들이 같은 가치로만 살아가는 건 아니다. 돈의 가치만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본인들이 그 가치로 살아가기 때문에, 뭐 눈에는 뭐만 보이는 것, 다른 생각의 여지 안 들어감, 보통 크리에이티브하지 않은 사람들이 그 여지 생각을 잘 못함. 그러니 창작하시는 분들이 제게 공감을 많이 하시는 이유가, 뇌구조가, 이미 약간 이런 쪽의 뇌구조인 것. 그러나 세상은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고 이 사람들의 모든 인생의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것. 저도 한 번 끝까지 도전해보고 싶은 것. 이 인생의 톱니바퀴가 어떻게 어떤 작용을 일으킬지, 어떤 현상으로 갈지. 순간순간에는 최대한 열심히 부딪혀보는 것. 이 부딪힘의 원동력은 떳떳함에서 생김. 아무리 상대가 없는 말로 음해를 하고 거짓말을 한다 하더라도.
오늘 제가 5.18 참배하러 묘지에 갔는데, 외지인들은 한 번 들르는 코스잖아요, 생색내려고 하는 건 아닌데, 거기 가서 광주매일신문의 기자님들이 그 사태를 겪고 붓을 내려놓겠다, 왜냐, 왜곡된 보도를 막지 못해서. 그런 글귀가 있는 걸 봤음. 교수님이 설명을 되게 잘해주셨고. 이게, 저보다 훨씬 처절하고 비교할 수 없는 대단한 일, 가치가 더 큰 일,
박구용 - 1980년 5월 18-27일 사이에 24일 날 상황을 보도를 할 수가 없음, 신문이, 광주매일신문 기자들이 우리는 보았다 피 흘리고 때려눕혀지는 걸 봤는데 기사로 쓸 수 없으니 붓을 내려놓는다는 글이 유명한 글인데, 이게 국립묘지에 시비로 쓰여있음. 그래서 다른 시도 쓰여있었는데 민희진 대표가 비슷한 감정을 느꼈나 봄, 최근 기간 동안. 그 이야길 하는 것.
민희진 - 절대로 비슷하다고 이야기한 건 아닌데 , 제가 겪은 고통이 있으니 시대가 발전되었다 하더라도 그 안에서의 분쟁과 새로 바뀐 시스템끼리의 충돌은 피할 수가 없음. 세상이 진화한다 하더라도 새로운 충돌은 생김. 그러니 그때보다 지금이 훨씬 시간이 지났음에도 언론보도가 그렇게 투명하고 건강하지 못함. 우리가 트위터나 다른 매체가 많아져서 알지만. 아는데도 못 바꿈. 그런 게 약간 자본의 힘이고, 권력 남용임. 그런데 그런 것들을 바꾸지 못하는 시대의 부조리함을 겪었고, 겪고 있는데도, 사실 저항은 필요하다는 것. 안 그러면 자본가들만 계속해서 돈의 힘으로 모든 것들을 잠식하려고 할 텐데, 특히나 문화는 돈에 잠식되는 순간 매력을 잃음.
그래서, 본인이 나중에 그리려고 하는 더 큰 그림은, 그래서 한 번 이런 이야길 했는데, 내가 예전에 전남대 가서 강연했는데 이런 이야길 했는데 이걸 이루고 싶어서 이렇게 했다는 것. 저 스스로 정확히 푯대를 세우고 남들이 뭐라 하던 간 오해가 있건 어쩌건 내가 옳은 방향으로 가면 된다, 지금은 오해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자기 일이 아니면 오해할 수 있음. 그 진심이 오래 있다 보면 바뀌는 게 있을 것이라고 생각. 세상은 가끔 생기는 푯대들로, 우리가 역사를 배우고 하는 게 배우고 성찰하여 현시대에 적용하고 해법을 만들기 때문인데 본인은 그 과정을 즐겨보려고 하는 거고, 문화가 자본의 영향력에 잠식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태도로 일을 대하고, 그 가치가, 저는 개인들의 크리에이티브는 어떤 것에도 잠식되지 않았을 때 크게 될 수 있고 그런 시대가 도래할 수 있다는 것 말씀드리고 싶었음.
질문 7 : 엔터취업 준비하는 취준생임. 서류합격했던 회사에서 제가 제출한 기획안과 유사하다는 느껴지는 결과물을 보고 관련 경험을 공유한 적이 있음. 많은 사람이 공감해 줬고, 여러 군데 확산되면서 상당히 이슈가 됨. 이 문제는 개인적 경험뿐 아니라 문화예술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구조적 문제라고 생각. 그러나 현실적으로 신입 창작자나 취준생은 아이디어 유사성만으로 문제제기하더라도 충분히 검토받거나 보호받기 어려움. 대표님은 문화예술산업에서 이러한 구조적 문제, 신인창작자 권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
답변 7 : 되게 어려운 질문이고 답답하실 것 같음. 그런데, 본인이 그걸 안 봤기 때문에, 가타부타 말씀드리기가 어려운데, 사실 저는 신인이 아님. 신인이 아닌데도 비슷한 경험을 한 거잖아요. 근데 신인이면 아무도 들어주지 않음. 아마 합리적 문제제기를 하셨겠죠 이유가 있으니까. 만든 사람은 알잖아요. 유사한 레퍼런스일 수도 있지만, 아니라는 포인트가 있으니 확신하신 거겠죠. 그게 맞다면, 너무 어려운 문제 같기는 한데, 사실 이게 아까도 이야기했듯, 자본가들의 양심에 좌지우지됨. 그들이, 이게 법이 구멍이 많음. 모든 것들을 다 법리화할 수 없으니. 그리고 세상은 진화하지만 법제는 진화하기 어려움. 개정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아시잖아요. 그러니 현실보다 법이 따라가는 게 훨씬 늦음. 분쟁하면서도 느꼈음.
그래서 아까, 현실적으로 대안을 드릴 순 없는 입장이지만, 공감대로 위안을 드리자면, 아까 본인이 이야기했음, 자본가에게 잠식당하지 않을 개인의 권리를 위해선, 자본가에게 저항하는 어떤 게 필요함. 그 사례가. 저항해서 한 번 이겨봐야 함. 그래야 아 이게 싸우는 과정이 사람들에게 노출되는 게 힘듦. 힘들지만, 그래야 인식이 발전하고, 모든 저항의 과정은 그 과정을 통하면서 인식 개선이 됨. 사람들이 알게 되어야, 창작의 영역은 자발적으로 무서워서 못하게 해야 함. 이렇게 다른 사람의 것들을 쉽게 도용하거나, 쉽게 돈의 힘으로 갈취할 수 있는 어떤 것들을 막는 첫 단계가 양심. 이런 일을 하면 안 된다는 스스로의 절박한 깨달음, 그리고 남들 눈이 무서워서 못 하게끔 해야 함. 이런 게 자연발생적으로 생겨야지, 법으로만, "내가 해결하기 힘드니까 판사님 해결해 주세요, 누구님 해결해주세요" 이것도 어려움. 왜냐면 케이스가 다 다름. 어떤 사람들은 거짓말로 그런 것들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음. 누군가는 참으로 주장하는데. 거짓과 참이 막 혼재되어 있음. 그걸 판별하고 분별하기가 너무 어려움. 그런 현실적 문제 인식해서, 사실은 그래서 제가 포기하지 않은 거기도 하거든요. 한 번 할 수 있는 데까지 이야길 하고 해 보자, (박구용 : 지금까지는 이기고 있잖아요) 그렇죠. 그리고 질 수가 없음.
이 분의 케이스에 대해 이입하다 보니 답답한데,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하시면서 이겨내는 게 자기를 위해선 우선임. 내가 이런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기 스스로 깨달아야 함. 알면서도 당할 수도 있음. 거기에 매몰되어 있으면 앞으로 못 나감. 저는 저분한테 뭔가를 도움을 드리고 싶어서 말씀드리는 건데, 일단 매몰된 상황에서 나올 생각을 하셔야 함. 그래야 자기 스스로 나아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인식의 개선이 굉장히 필요한 일이라는 것. 그러려면 단번에 고쳐지기는 어렵고, 순간순간에 저항과 싸움과 뭔가 그런 것들이 필요함. 이렇다라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을 듯.
질문 8 : 메시지를 하나 듣고 싶은데, 2023년에 전남대 축제 기획하면서 되게 기존의 어른들의 벽을 많이 느낌. 어린 마음에, 좀 푸릇푸릇한 감성으로 아이템 갖고 올라가도 '이래서 안돼, 저래서 안돼' 이런 좌절감을 많이 느끼고, '이 일을 왜 하지?' 하는, 현타도 받았음. 여기 계신 분들도 기획이나 창작 과정에서 현실의 벽을 부딪히고 좌절감을 느끼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내가 이렇게 망가지는데' 하는 감정을 느끼실 순간이 있을 듯. 그래서 혹시 이런 어린 창작자나 기획자들에게 힘들 때 힘이 될 수 있는 메시지를 하나 남겨주시면 어떨지.
답변 8 : 뭐가 힘이 될지 모르겠지만, 제 생각에는, 나만 겪은 건 아니다. 이 괴로움이 나만 겪은 건 아니다. 이게 가장 현실적으로 힘이 되는 이야기가 아닐까. 그리고 사실이고. 실제로, 제가 극단적인 비유를 할 때가 있는데, 나만 감기에 걸린 게 아님. 다 감기에 걸렸으면 다 억울함. 그런데 남들 다 멀쩡한데 여름에 나만 감기에 걸리면 살짝 억울함. 창작자로 현실에서 잘 살아가려면, 어쩔 수 없음. 뇌구조가 다른 사람들과. 그 사람들도 우리가 답답할 것. 뇌구조가 다른 사람들과 공생하는 건 어려운 일, 그런데 그게 사회고 그게 지구. 인스타에서만 보는 현실에서 빠져나와야 함. 현실은 냉혹하다, 현실은 정글이고 아마존이다. 오히려 학생 때 겪은 괴로움은 직장에 나가서 생존의 결투와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그리고 사람은 원래 힘든 게 자기가 제일 힘듦. 남들이 봤었을 때, 이 정도는 뭐 해도, 자기가 자기 인생이니 항상 제일 힘듦, 그런데 그게 다른 사람의 인생에도 항상 존재했음. 그럼 통과의례인 것임. 그냥 인생을 살아가려면, 겪을 수밖에 없는 일. 그럼 좀 덜 억울하고 덜 괴롭지 않을까. 우리가 고통을 어떻게 감수하고 감내하느냐를 배우는 게 인생. 그래서 한강 작가님이 작업에서 계속해서 인간은 무엇으로 살아가야 하는가를 이야기함. 첫 책에서는 인간혐오를, 상 받은 책에선 그다음을 이야기함. 그러니 사람들이 깊은 울림을 받는 것. 인간은 무엇으로 살아가지- 이 추악하고 더러운 사회의 인간을 경험한 사람들이 그다음 스텝으로 어떻게 남은 삶을 살아가야 해? 이걸 고민할 수밖에 없음.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작가님도 비슷한 고민을 했기에 이런 작품이 나온 것.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 <백치>라는 책에서 그런 이야길 함. 아름다움이 결국에는 구원할 건데, 왜 아름다움이 구원할 거냐면 외형적 아름다움이 아니라 내면의 아름다움, 인간 본성이 구원할 것이라는 것. 모든 철학과 시대를 막론하고 모든 생각을 할 줄 알았던 사람들은 똑같은 고민을 했다는 것. 거기서 출발했고. 이 고민을 포기하지 않고 나 스스로의 해법을 체득해야 함. 미감 질문과 똑같음. 남이 줄 수 없음. 이 고민 어떻게 해결해야 하지를, 괴로워야 해답을 찾을 수 있음. 그 괴로움을 감당하고, 온몸으로 감당하면서 감당하는 게 내 인생의 숙명이고 내가 인간으로 태어난 이유라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냉정하게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함. 겉으로 듣기 좋은 이야길 해서는 인생에 도움이 안 됨. 고통을 받아들여라, 나만 겪는 것 아니다. 여러분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많은 예술가들이 같은 생각을 했고, 비슷한 관문을 거쳐 뼈를 깎는, 우리에게 공감대를 주는 작품을 선사한 것. 그렇게 생각하면 본인은 조금 위로가 됨. 그러니 모두가 겪는 공감대로 치유하는 것. '너도 힘들어? 나도 힘들어, 너무 힘들다', 이러면서 이겨나가는 것이지, 특별히 누군가가 해결해 주기는 어렵다.
박구용 - 민희진대표가 했던 말 중, 광주로 한예종을 데려오는 것보다 광주 전남 어딘가에서 작품활동하고 있는 작가들 찾아내는 게 중요하다, 이런 말씀 되게 소중하다고 생각, 그리고 그럴 수 있도록 저 같은 사람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
민희진 - 그분들이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다 빛을 받았으면 좋겠음. 문화가 발전하면 인생이 풍요로워짐. 그걸 모두가 누리는 건, 삶의 건강한 쾌락이 굉장히 높아지는 것. 그러면 돈이 많지 않아도 인생 행복할 수 있음. 본인은 현실적으로 그런 이상을 만들어보고 싶은 게 제 꿈, 100%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다 하더라도,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만족감을 주면서 공생하는 방식을 비즈니스적으로 풀어보고 싶다는 게 제 바람. 그래서 앞으로의 일을 그런 태도로 봐주면 좋을 것 같음.
그리고 말씀 나누며 교수님, 또 다른 좋은 분들 만나며 느낀 게, 여러분들이 외롭다고 생각하지만, 여러분들 뒤에 '의외로 꼰대인 줄 알았는데 이런 생각을 해?' 하는 분들이 있음. 본인도 편견과 선입견으로, '저런 분들이 과연 이런 생각을 할까?' 싶지만 그런 리더들이 있음. 그런 분들에게 잘 소통하고 잘 이야기하며 깨우침을 주는 것도 방법이라는 것. 초반에 이야기했는데, 모든 것들이 단절만 되어 있으면 사실 발전이 안됨. 하기 싫어도 발전시키려면 누군가는 이야길 해야 하고, 개선하는 방식이 귀찮아도 필요함. 누군가가 앉아서 차려주는 밥상 받으려고 하기보다 나 스스로 '내가 내는 작업물이 좋냐 안 좋냐' 자기검열을 엄청나게 해야 함. 그런 것들이 서로 맞물리다 보면 우연치않게 좋은 기회가 생기는 것, 저도 교수님도, 여러분들도 다 자기 자리에 앉아서 아무 이야기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세상은 안 바뀜. 그러니 인간의 선순환하려고 하는 본성을 실망감이 많지만 믿어보고, 같이 힘을 내서 뭔가 잘 극복하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음.
그리고 긴 시간 끝까지 남아 주시고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박구용 - 처음 민희진이 그 모자를 쓰고 나타났을 때 놀람. 새로운 괴물이 나타났다. 철학자로서 놀람. 이 자리를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는, 새로운 형태의 전사가 나타났다는 느낌이 있었음. 그리고 내란 때, 12.3 때 여의도에서 여러분처럼 내란을 막는 걸 보고, 5.18 때 오신다는데 이런 사람을 만나게 해 주면 좋겠다 싶어 이런 기획을 했고, 거기에 동의해 주시고 초청해 주신 민병로 전남대 5.18 연구소장님께 박수 부탁드림.
민희진 - 저는 전사이고 싶지는 않음 원해서 된 건 아니고 어쩌다 보니.
박구용 - 어쨌든 민희진 대표가 지향하는 바가 희망도 위로도 되었으면 좋겠고 그런 시간이었길 바람. 민희진대표의 공학이 이 나라에 세계에 계속되길 바람. (끝).
간략하게 소감을 작성하기에 앞서, 나는 K-POP 문화에 아는 것이 별로 없는 문외한이라는 사실을 밝혀 둔다. K-POP 음악을 예전부터 들어왔긴 했지만, 아직도 이름을 다 아는 그룹이 몇 개 없고, 그들이 어느 소속사인지도 헷갈릴 정도이다. 그러니 강연과 관련해 강연 속 질문자들처럼 수준 높은 질문을 하거나, 감상을 멋드러지게 적어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저 개인적인 생각을 짧게 남겨보고자 한다.
내가 민희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건, 위 사진 속 사건 때문이었다. 이전엔 "민희진이라는 사람이 뉴진스의 프로듀서다"하는 말은 들어봤지만, 민희진이라는 이름 세 글자 말고는 아무것도 아는 게 없는 상황이었다. (사실 지금도 모르는 게 많다.) 그래서 민희진에 대한 첫인상이 좋지는 않았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개저씨가 어쩌고, XXXX들이 어쩌고 하는 모습에 거부감이 느껴졌고, 그런 모습에 환호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이후 복잡하고 지저분한 소송 과정과 더불어 거기서 삐져나오는 여러 사건사고들을 접하다 보니 피로감이 더해졌다. 그래서 민희진, 방시혁, 뉴진스와 관련된 일에 신경을 끄기로 했다. 어차피 내가 일의 명확한 전후사정을 알 수도 없고, 명쾌하게 법리적 결론을 낼 수도 없는 일이니.
그러다 민희진이 학교에 강연을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처음 느낀 감정은 '궁금하다'였다. 민희진이 어떤 사람이길래 누군가는 민희진을 엄청나게 좋아하고, 누군가는 민희진을 엄청나게 싫어하는 걸까 궁금했다. 그래서 우선 강연을 들어보기로 했다. 강연을 들으며 느낀 점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로, 일 혹은 작업물을 대할 때의 태도나 가치의 경우 분명히 배울 점이 있었다. 본질의 중요성을 강조하거나, 창의성을 발휘해 새로운 영역과 방식을 개척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성취를 위해선 부득이하게 워라밸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 등의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하기도 했고, 디렉터나 프로듀서로서 쏟은 열정과 관련된 일화들도 재미있게 들었다. 내가 잘 모르는 분야다 보니 더욱이나. (패스코드가 뭔지, 정병기가 누군지 처음 알았다 ^^;)
둘째로, 왜 사람들이 민희진을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았다. 과한 겸손은 오히려 실례라고 하지 않던가. 민희진은 분명 업계에서 이견 없이 인정받는 실력을 가진 사람이고, 강연에서도 본인의 실력과 안목에 대한 자부심을 숨기지 않았다. 그런 당당한 모습과 더불어 빙빙 돌리지 않고 직설적인 표현을 사용해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모습들이 사람들로부터 호감을 불러일으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동시에, 조금은 조심스럽지만 왜 민희진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는지도 알 것 같았다. 세 번째 이야기이다. 자기 확신과 나르시시즘이 지나치게 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직업의 특성상 자기 확신이 강해야 하는 측면도 있겠지만.) 밀어붙이고, 성과를 내야 하는 프로듀서나 디렉터로서의 민희진은 '능력 있는 사람', '대단한 사람'일지 몰라도, 인간적인 측면에서 민희진이 '좋은 사람', '닮고 싶은 사람'인지 섣불리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답변에서 반복적으로 (때로는 조금 뜬금없는 맥락으로) 등장하는 내용들을 듣다 보면, 민희진 본인이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지고 싶은 특정한 이미지들에 대한 욕구가 굉장히 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면, '능력 있고 안목 있고 열심히 일해서 혼자서 성과를 낸 능력 있는 사람이자 돈은 관심 없으며 그 이상의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 동시에 그로 인해 핍박받고 공격당한 사람.' 나는 이런 이미지에 쉽게 고개를 끄덕이기 어려웠다.
그래서 강연이 어땠냐고 물어본다면, 유익한 시간이었다고 하겠다. 아직도 민희진에 대해서 모르는 게 많지만, 그녀의 이야기 중에서 분명히 배울만한 점들이 있었다. 또, 내가 동의하지 않아도, 심지어는 싫어한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한 번쯤 필요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민희진은 어떤 행보를 보일지 계속 지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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