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의 중진들은 아직까지 대권과 관련하여 적극적인 활동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반면 영입 인사들은 총선을 거치면서 검증 받을 기회를 상당히 가졌습니다. 이 때문에 국민이 중진 의원들에게 크게 기대하지 않는

 
최형우. 그는 김영삼 정권 전반기 내내 ‘뉴스 메이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내무부장관을 끝으로 정치 뉴스의 전면에서 사라졌다. 중앙 정치권에서 오래 침묵하자 그가 대권 꿈을 완전히 접고 킹 메이커 쪽으로 전환했다는 관측도 나돌았다.

그런 최의원이 요즈음 다시 화제다. 그는 최근 개인 사무실을 연구소로 개편하고, 국회의원들의 정보화 관련 스터디 모임을 만들었다. 최의원의 빨라진 행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무성한 관측이 떠돌고 있다. 6월20일 서울 서교동 연구소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개인 사무실을 연구소로 개편하고 국회의원 스터디 그룹을 만드는 등 요즘 바쁘신데요. 최의원의 최근 움직임을 두고 대권 경쟁에 본격 시동을 걸고 세력화 작업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최근 국회 내에 ‘정보화전략연구회’라는 정보 스터디 그룹을 만들었고, 96년 정보엑스포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잖습니까. 개인 차원에서 꾸려오던 사무실을 연구소 형태로 운영할 필요를 느꼈어요.

우리 의원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어느 모로 보나 좋은 일 아닙니까? 세력화 운운 하는 건 조직의 ABC도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얘기입니다. 그런 단체를 기반으로 계보화를 꾀한다면 오히려 있던 조직도 와해되고 맙니다. 또 야당 의원들도 여기에 들어와 있어요. 그런데 무슨 계보 모임입니까.

지난해부터 줄기차게 ‘정보화’라는 화두를 붙들고 있는데, 이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동기가 따로 있습니까?

사람의 깨달음에는 항상 어떤 계기가 있습니다. 작년에 공화당 봅 돌 후보의 초청을 받아 미국에 간 길에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를 만나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어요. 그가 하는 말이 처음엔 만화 같기도 하고, 저를 무시하는 말 같기도 했어요. 귀국하고 난 뒤 이 분야 학자들과 경영인들을 만나서 21세기에 일어날 변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상당 기간 공부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보화야말로 우리가 21세기에 후진국으로 전락하느냐 선진국으로 도약하느냐를 가름하는 핵심이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최의원을 두고 정책 마인드가 없는 과거형 인물이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정보화에 대한 관심은 이런 세평을 극복하려는 정치적 행위로 비치기도 하는데요.

과거 우리 정치는 치열한 선택의 정치였어요. 협박과 공갈이 지배하던 시대에는 이성적인 투쟁보다는 감성적인 투쟁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문민 정부가 들어섰다고 해서 민주주의가 완성된 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아직도 남아 있는 군사 정권의 색채를 완전히 빼고, 비민주적인 의식 구조를 개혁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어요.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인물을 과거형 인물로 보는 건 단견입니다. 그러나 시대는 변합니다. 지금은 정보화 시대이고, 여기에 대비하지 못하면 낙오하고 맙니다. 민주화와 정보화는 함께 추구해야 할 과제에요.

얼마전〈시사저널>은 여권의 차기 주자와 관련한 여론조사를 실시했는데, 신한국당 중진 의원들에 대한 국민의 기대치가 극히 낮게 나타났습니다.

아직까지 당 중진들은 대권과 관련해 적극적인 활동을 하지 않고 있어요. 따라서 국민에게 검증 받을 기회가 없었습니다. 반면 최근에 들어온 분들은 4·11 총선을 거치면서 검증 받을 기회를 상당히 가졌어요. 그런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의 여론이 중요하다고 보진 않아요. 내년 7, 8월쯤 되면 언론이나 많은 대담 장소에서 저의 정치 철학이나 정책관을 모두 펼치고 검증 받을 때가 올 것입니다. 저는 그때의 평가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최의원에 대한 정치권의 평가는 크게 엇갈립니다. 본인 스스로 평가할 때, 자신을 대권 주자감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직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습니다. 다만 한 가지, 제 자신 항상 보자기에 싸여 살아온 느낌입니다. 보자기를 풀면, 그동안 알려진 것과는 다른 모습도 나올 겁니다. 저는 제 모든 것을 국민에게 펼쳐보이고 검증 받을 기회를 가져보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생긴 이미지만 항상 따라다녔습니다. 그렇다고 지난날을 후회하진 않아요.

정권 후반기에 나타나는 PK 독식 현상을 놓고 비판론이 일고 있는데, 이 지역 출신으로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과거 PK는 능력이 있어도 승진이 안되고 적체돼 왔습니다. 그런 적체가 해소되는 것뿐입니다. 그동안 부산·경남 지역에서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있었다면, 그건 오로지 ‘김영삼 대통령 만들기’였다고 봅니다. 그렇게 되면 하늘의 별이라도 따게 될 것 같은 심정이었지요. 하지만 지역 개발 문제를 비롯해서 별로 달라진 게 없습니다. 언론에서는 PK다 뭐다 떠들썩하지만, 정작 부산· 경남에서는 서운한 마음을 가질 정도에요.

최의원은 부산·경남에서도 확실한 대표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데다, 오랫동안 완전히 숨을 죽이고 지냈습니다. 정가에서는 그래서 킹 메이커로 돌아섰다는 관측도 나돌았는데요.

지금 부산· 경남을 대표하는 지도자는 단 한사람, 김대통령입니다. 아버지가 아직 정정하고 충분히 사회 활동을 할 수 있는데, 자식이 나서서 집안을 내게 맡기고 재산권을 달라고 할 수 있습니까? 저는 김대통령의 정치 문하생입니다. 유교 바탕에 뿌리를 둔 정치를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다 보니 최형우는 김대통령이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도 들어요. 제가 만일 큰일을 한다면, 김대통령과 사전에 충분히 의논하고 대화해야 합니다. 그러나 아직은 그런 일을 입에 올릴 시기가 아니라고 봅니다.

김대통령의 금언령 때문입니까?

대통령께서 금했다고 해서 그런 이야기를 못하는 게 아닙니다. 지금 국민이 정치인에게 바라는 게 뭡니까. 국회를 좀더 생산적으로 운영해 달라, 통합과 화합의 정치를 해 달라, 그런 것 아니에요? 오늘 다행히 노사 문제가 일부 풀리긴 했지만, 노사·남북·한약 등등 문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아직은 대권 논의를 할 때가 아닙니다.

최근 한 대학 특강에서 ‘합의에 의한 후보 추대’를 거론했습니다. 여권의 차기 주자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경선보다는 후보간 사전 조정이 바람직하다는 것입니까?

강연 내용의 앞뒤가 거두절미된 채 그 대목만 보도됐어요. 당헌·당규를 무시하자거나 경선의 당위성을 부인하자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민주주의가 무엇입니까. 합의가 이뤄지면 굳이 투표할 필요가 있습니까. 그렇지만 합의가 안되면 당헌·당규대로 정정당당하게 경선해야지요.

여권의 차기 주자가 되는 데에는 김대통령의 마음을 얻어서 되는 길과 투쟁해서 쟁취하는 길, 두 갈래 길이 있습니다. 어느 쪽이 더 가능성 있는 길일까요?

당 총재의 지지도 얻고 자기 노력으로 쟁취하기도 하는 양면이 다 필요하다고 봅니다. 사실 당 총재의 힘이 얼마나 큰데요. 살림을 날 때도 아버지의 도움을 받는 법입니다. 후보라면 누구라도 대통령의 지원을 얻고 싶어하죠. 당총재인 대통령의 지원은 큰 힘이 됩니다. 당 총재의 도움이 없이도 자신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가면을 쓴 이야기입니다.

김대통령이 그런 지지를 실어줄 후보를 결정할 때 무엇을 가장 고려하리라고 보십니까?

(잠깐 망설이다가) 모든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인물을 택하리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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