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삼차나 오미자차, 보리차 같은 대용차를 훨씬 좋아했던거?
굳이 따지면 그게 한국식 차문화지
홍차, 녹차 같이 차나무에서 나온 거에 한정지어 이야기하자면
막연히 고려는 당연히 차문화가 발달했을 거란 인식을 버려야함
좋아하는 거랑 고급진거랑은 다름
차 본고장에서 온 서긍은 고려도경에서 고려 차문화에 대해서 좋은 말 안 함
그 다음에는 조선이 유교를 숭상해서 차를 탄압했을 거란 인식도 버려야 하고
조선 초기부터 문인들이 차를 소재로 쓴 다시나 관련 언급을 보면
최소한 유학자들이 차문화를 부정적으로 본 흔적은 없음
조선 시대에도 차는 제사나 의식에 꾸준히 쓰였고 중요한 공납품이었음
인삼차나 오미자차를 더 좋아하게 되었을 뿐이지
그냥 중국, 일본보다 한국에서 다도, 더 상세히 말하면 잎차 즐기는 문화 발전이 늦음
중국에서 다례서들이 수입되어서 취미로 향유되는 게 조선 후기거든
그 대표적인 사람이 정약용이고
근데 이건 지금으로 치면 바리스타? 커피 매니아들 하는 동아리 활동 비슷한거라서 대중픽이 아님
그리고 알다시피 조금 더 지나서 임금부터 커피가 더 입맛에 맞네하면서 갈아탐
한국인의 찬물 선호랑 비슷하게 볼 수 있다고 생각함
댓글 영역
그러고보니 중국사람들 한국와서 제일 기겁하는게 겨울에 찬물 마시는거더라...
거긴 반대로 여름에도 끓인물이나 따끈한 밥 고수하는 데니까. 백성귀족에서도 중국인 외노자가 홋카이도 농가에서 일하는데 일이 바쁘니까 오차즈케 먹으려고 찬밥 준비하니까 격분해서 일 때려치고 돌아갔단 일화 나오고. - dc App
그것도 있기도 하고 고려말 전란으로 경상/전라지역의 차밭이 씹창난것이 조선시대에 제대로 복구못한상태서 왜란쳐맞았는데 차재배가 제대로 되기도 힘들지
지금 우리가 접하는 중국/일본의 차문화는 17세기 이후 양쪽의 차재배 발달도 어느정도 작용하는것도 있음 일본은 내 기억이 맞다면 에도시대 차밭재배가 활성화 되서 어린잎 녹차문화가 발달했고 중국은 복건성 중심으로 우롱차와 홍차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게 그시기 부터니까 ㅇㅇ
그리고 명나라시대부터 포다법으로 엽차문화가 중국에 나오면서 우리가 아는 엽차중심의 문화가 17세기 차대량재배와 맞물려서 작용한거니까.
그냥 뜨거운 물에 우리면 다 차가 아닌지?
역시 콩나물 국밥도 차가 맞았어
탕인데요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3419
19세기 이전에는 그냥 '있긴 있었다'지 다도가 발달한 건 아니란 건가
ㅇㅇ 고려~조선 중기에는 중국인하고 접촉할 일 있는 사람들이 얻어마시거나, 심화 없이 흉내나 내는 수준이었고 18세기에 중일에서 다서, 전적류 수입되고 이게 때마침 발전하기 시작한 출판사업과 맞물려 지방까지 퍼지고 양반들 사이에서 문예동아리 활동 활발해지면서부터 발달함. 양반가문내에서 나름 고유하게 차 음용 문화를 발전시키는 모습도 18, 19세기부터나 나타남
임금도 하루 종일 계속해서 찾아 먹을정도로 오미자차같은거 즐겨먹었다는 기록 있긴 하잖아.
그 오미자차라고 먹은것에서 왠지 술냄새가 나는것같은데 도대체 왠지 모르겠지만.
그냥 차 기르기엔 한반도가 안좋은것 같음. 왜란+소빙하기로 사실상 명맥이 끊겼으니
대붕이는 갤러리에서 권장하는 비회원 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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