짤막하게 한 줄 언급하고 넘어가던데 제대로 집더라
4군6진 19화 건설로봇 준비완료에서
저 친한 형님 겸 동맹이란 부분을 과대평가해서 + 명나라 대외기조 변화에 신경을 잘 안 쓰니까
이성계 여진 장악력을 과대평가하고
꽤 많은 대역물도 그거 따라갔음. 유료화에 성공했건 아니건
그래서 이성계가 한양 사는 이지란한텐 손절당해도, 국경사는 여진족에겐 영원한 따거인 신기한 사람이 되는데
실제로는 간다왼쪽이 4군6진에서 지적한 것처럼
명이 영락제 시절부터 여진 추장 포섭에 돌입하니 바로 돌아서서 간잽이 모드 들어가서 수시로 말 바꾸는 정도의 친함이었음
태조(명은 홍무제) 시절 명이 내부정리에 치중하느라 여진족에 관심이 없어서 조선쪽으로 기울어 있었던거지
우리가 아는 이성계의 여진 장악력은 세종이 편찬한 태조실록과 용비어천가 기반인데
여진족이 태조에게 복종했으니 여진족과 여진족의 땅은 조선으로 귀속되어야 한다는 프로파간다니까
액면 그대로 받으면 안 됨
조사의의 난으로 여진족 장악력이 떨어졌다는 건 역사학자들도 안 하는 소리고
조사의의 난에 여진족들이 관여했다는 어떤 증거도 없고,
정다함 같은 일부 학자들도 여진족이 이성계를 돕고 싶었겠으나 너무 빨리 끝나서... 하면서 영혼보내기(?)는 했을거란 추정만 살짝 던지고 넘어감
탈민족주의 관점에서 조선사 조명하겠다는 강박에 사실을 반만 이야기하는 논문을 쓴 정다함도
차마 여진족이 조사의의 난에 참전했다거나 그걸로 여진 장악력 떨어졌다는 말은 안 함
태조 시절에 여진과 우호 관계를 형성했다는 근거인 내조 기록을 참고하면,
여진 장악력은 (영락제의 개입과 시기를 맞춰서) 흔들리다가 힘으로 줘패서 인심 잃었다는 태종 ~ 세조 시기에 다시 올라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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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함은 탈민족주의에 집착하다 이읍읍 묻으니까 난 그런 의도 아니라고 해명한 게 코미디
그나마 세종 논문은 그 수준은 아니라고 보는데(근거가 상세하지 못한 쪽에 가까움) 태종 논문은 다른 논문 몇개만 읽어봐도 뽀록날 단장취의가 너무 심함
쉽게 말해 일본서기에서 망상 넣어서 주작한 임나일본부 같은 거구만?
세종은 프로파간다를 조성하고 끝낸 게 아니라 실제로 활발하게 정벌, 동화 정책을 밀어붙였으니 그보다 더 나아갔지
이징옥은 왜 대금황제로 죽었을까라는 의문이 다시 돋네. 사료가 없어서 추측만 할 수 있지만.
그 대금황제 그거 진짜였어? 걍 세조 때 쓴 프로파간다가 아니라?
이자춘대에 동북에서 집안 세력으로는 2위 3위인가 하다가 공민왕 손 잡고 경쟁자 쳐내고 동북 차지하고 이후엔 고려 중앙 정계에서 뛰기 바빳는데 시간도 없었을듯
대붕이는 갤러리에서 권장하는 비회원 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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