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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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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治維新과 '士大夫的 정치문화'의 도전이라는 논문이나 저서 내는거 보면 뭔가 이거 관련으로 자기만의 확고한 주관 같은게 있나
이유 중 하나지 성리학만 성공의 이유라고 말하지 않음
개인적으로는 성리학 등 기존 유학이 4분의 1, 국학이 4분의 1, 미토학이 4분의 1, 난학 등 그 외 나머지 4분의 1이 막말 토막파 이념이라고 생각함. 즉, 성리학만 보지말고 국학과 미토학에도 주목해야지.
박훈 교수도 여러 이유 중 하나로 성리학을 체득한 무사들의 사대부화를 꼽는 거지 그것만으로 됐다고는 안 함ㅇㅇ
https://www.chosun.com/monthly/monthly_people/2025/11/22/ZDAO2C27FBF4HDUXDCBAQSYCEQ/
저서를 읽어본건 아니지만 인터뷰를 봐도 "성리학(주자학)이 됐든 뭐가 됐든, 그게 어떤 학문 외적(外的)인 권위를 가지고 사람을 구속할 수 없었어요. 이 때문에 항상 상대적인 관점에서 받아들일 수 있었죠."라고 명시하고 있음. 메이지 유신이 성리학 혁명인게 아니라, 오히려 유신 이전에 성리학이 중국/조선처럼 강력한 권위를 갖지 못하고 대항하는 다른 사상들과 경합하는 위치였다는 것을 강조하는 논리임.
'무사'라는 존재가 경세제민을 논하는 지식인화되는데 성리학이 역할을 했다고 주장함. ㄱㅇㄷ글 먼저 보고 념글간 정보글 뒤늦게 봤는데 박훈 교수 주장이 념글과 꼭 일치하지는 않지만 성리학의 역할을 했다는 점을 부정하지는 않음
@헤트라 성리학이 one of them으로써 유신에 약간의 영향을 줬다는 것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음. 다만 그 부분은 제한적이고, 더 결정적인 역사적 분기는 주자학에 대한 비판적 논의가 백가쟁명으로 뻗어가며 혁명적 변혁론으로 나아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함. 념글은 마치 유신의 모든 부분이 성리학으로 기인한 것처럼 묘사했는데 이건 걍 명백히 틀린 전개임.
대붕이는 갤러리에서 권장하는 비회원 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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