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3편임.
이번 편에는 이왕가가 얼마나 '유럽 귀족들의 시선과 관점에서'
'기괴할정도로 완벽하게 이 일본의 체제와 대우와 취급에 완벽하게 동의' 하는 것처럼 보였는지 하나하나 분석해볼거야.
누군가는 그렇게 말할 수 있음.
고종의 옥새가... 이건 신하들이 강권한거고... 일본의 조약은 애초에 불법...
맞는 말일 수도, 틀린 말일 수도 있는데 일단 이건 논하지 않을게.
왜냐하면, 이왕가의 대처에 의해서 [유럽 위주의 관점에서는]
'이미 맨 처음의 조약이 불법이고 아니고는 중요하지 않은 수순' 에 빠르게 올라탔기 때문이야.
여기서 또 알아야 할 배경지식이 있어.
자, 또 유럽 위주의 사고관이야. (여러번 말했듯 이게 싫으면 과거로 돌아가서 초강대국 조선 만든 뒤 유럽 국가들 삼배구고두례 시키고 동양 의전 강요하면 됨)
한 가문의 주권이 살아있는지, 아니면 법적으로 사망했는지를 판별하는 가장 엄중한 잣대는 바로 아래 두 가지 요건이야.
'묵시적 승낙(Tacit Consent)'과 '금반언(Estoppel)' 의 원칙이지.
주권 가문임을 판단하는 요소들은 국제법과 유럽 왕실의 관습법 체계안에서 돌아가고, 이 둘은 아주 명징하게 이를 평가하는 잣대야.
국제법상의 금반언 원칙이 뭐냐면 "자신의 이전 주장이나 행위와 모순되는 새로운 주장을 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입힐 수 없다" 는 법리적 잣대야.
무슨 말이냐고? 그냥 직설적으로 바로 말해줄게.
만약 이왕가가 일본의 병합이 무효라고 주장하려면, 병합 이후 일본이 제공한 어떠한 혜택도 받지 않았어야 성립해.
일본은 이왕가에게 거액의 '세비'를 주고, 화려한 '군복'을 입히며, '왕'이라는 작위를 공식화했어.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지.
다만, 이왕가가 이를 수용하는 순간, 일본은 국제 사회에 다음과 같이 선언할 '국제적 관습법에 의거한 법적인 근거'를 확보하는거야.
"보라, 조선의 옛 황실은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그 대가로 예우를 누리고 있다. 이들은 스스로 일본의 일원이 되기로 선택한 것이며, 이제 와서 주권을 논하는 것은 금반언의 원칙에 어긋난다."
치졸하다고? 치사하다고? 음흉하다고? - 맞는 말일지도? ㅋㅋ
근데 적어도 [당시 기준으로] 국제법적으로는 '틀린 말이' 아니야. 좀 더 파헤쳐 보자.
1) 세비를 수용함의 법적 의미
유럽의 군주제 전통에서 주권 가문의 재산은 국가의 예산과 분리된 '가산 신탁'에 근거해야만 해.
주권자는 자기 땅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살아가는 존재야. 타국이 주는 돈을 받는 순간, 그 관계는 '대등한 군주'가 아니라 '종속된 수혜자'로 변질되기 시작해.
이왕가는 일본 궁내성 산하 '이왕직'을 통해 예산을 배정받았어.
이는 이왕가가 더 이상 독립적인 경제 주체가 아니라, 일본 제국의 행정 시스템 내에 존재하는 '연금 수령 계층'임을 자인한 셈과 다를 바 없어.
[알마나 드 고타] 편집자들은 이 점을 매우 중요하게 보았어.
"스스로 생존할 경제적 기반을 포기하고 타국의 예산에 편입된 가문은 독립된 House(가문)로 볼 수 없다" 는 논리가 형성된 거야.
강조하지만, 단순히 '일본에 살아서' 이런 논리가 형성된게 아니야. 일본 내 '부서'가 '지급하는' '연금' 에 의해 생활하기 때문에 이렇게 된거지.
2) 명예의 원천의 이전
유럽 의전학에서 군복과 훈장은 단순한 옷이나 장식품이 아니라, "내가 누구의 권위를 인정하는가"를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시각적 선언과 다를 바 없어.
군주는 군대의 통수권자여야해. 그러나...
영친왕 등 이왕가 남성들이 일본 제국 육군 군복을 입고 거수경례를 하는 모습은 국제 사회에
"나는 일본 천황의 장교로서 그에게 충성을 맹세했다"는 신호를 '실시간으로' 보내고 있었던 것과 완전히 동일해.
주권자라면 타국의 군복을 입더라도 '명예직'에 그쳐야 하며, 자신의 군대 계급을 우선시(최소한 의례적으로는) 해야해.
그러나 이왕가는 일본 군대 시스템의 하급 장교부터 시작해 계급을 밟아 올라갔어. 이건 유럽기준으로 '주권자의 자존심을 얌전히 반납' 한 것과 동일하지.
주권자는 명예를 '주는 자'이지 '받는 자'가 아니야.
이왕가가 자신의 가문 훈장(이화대수장같은거 말하는거야)을 수여하는 것을 멈추고 일본의 국화대수장을 가슴에 단 순간,
국제법적으로 그들은 '명예의 수혜자(신하)'로 고착화 되는걸 멈출 수가 없어.
3) 의례적 자율성의 포기
2부에서 가문법을 강조했지?
근데 결국 이왕가는 전부 '일본 천황'을 가주로 하는 가문법을 '완전히 수용'했어.
천황이 시키는 대로 결혼하고, 일본식 신토 의례에 참가했으며, 천황의 가족 행사에 참여했지.
이건 대우해준게 아냐. 전 세계에 티배깅 한거지.
'거봐. 애네는 '우리의 조약'에 동의한다니까???' 하면서.
4) 묵시적 승낙(Tacit Consent)
국제법상 권리를 침해당했을 때 즉각적이고 지속적인 항의가 없으면, 국제 사회는 이를 '묵시적 승낙'으로 간주해.
이왕가 구성원 중 누구도 국제 사회를 향해
"우리는 일본의 작위를 거부하며, 이 조약은 무효다" 라고 공식 서한을 보내거나 망명을 시도하여 주권자임을 천명하지 않았어. 단 한명도.
이게 1년...2년...5년..10년이 이어지면 이 집단이 '이 조약에 묵시적으로 동의한 것과 진배 없다고' 관습법적으로 판단한다는 거야.
물론 한 두개는 상황상 할 수도 있겠지. 그런데 이 모든 '동의' 가 모이면서... 그냥 국제적 기준으로는 이왕가가 '합병 조약에 동의합니다!!!' 하고 명시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상황이 된거지.
자 그래서 이게 어떤 효과를 보였냐고? 간단해. 주권가문으로써는 '사망선고' 받았어.
1910년 한일병합 이후 발행된 1911년판부터 그 이후로 전부 실제로 전주이씨는 고타 1부에서 '제외' 되었어.
1901년부터 1910년판까지 당당히 제1부(Sovereign Houses)의 한 자리를 차지했던 'Empire de Corée(대한제국)' 항목이 통째로 삭제된 거야.
그리고 이왕가의 정보는 일본 황실의 '부록' 부분에 간략하게 소개되는것에 그쳤지.
고타 영향력이 짱짱 쎄다고 여러번 강조했지?
그럼 이제 조선이고 일본이고 하나도 모르는 방구석 외교관도 이거 하나만 보면 알게 되는거야. 전주이씨는 '주장자'가 없으며 '일본 황실'의 일부로 합류했구나 라고.
그래서 실제로 의전이 낮아져.
영친왕부부가 영국 방문했을때를 보면 나와.
영친왕은 일본 외무성이 발행한 일본 외교관 여권을 사용했으며, 모든 의전과 통역은 일본 대사관이 관리했어.
영국 런던에 도착했을 때, 영친왕은 버킹엄 궁전에서 국왕 조지 5세를 알현했는데, 이때 '독립국의 왕세자'가 아니라 '일본 천황의 대리인 혹은 일본 황족' 자격으로 접견했지.
이왕가의 모든 행보가 '일본 황실'의 행보와 동일해진거야.
유럽 엘리트들에게 주권은 '분리 불가능한 인격'에 가까워.
주권을 잃고 타국의 법(일본 황실 전범) 아래로 들어가는 것을 수용한 가문은, 혈통은 남아있을지언정 '국제법적 인격'은 사망한 것으로 간주하는게 냉정한 관습법이야.
이것은 단순히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제국 황실이 국제 사회에서 '망명 주권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모든 법적 틈새를 메워버린 치밀한 외교적 학살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
극도로 굴욕적이고 잔인한데... 이걸 이왕가가 '모범적으로' 모두 수용해버렸으니.. 참...
너무 안 좋은 이야기만 했나? 뭐 어쩌겠어. 역사가 그런데.
근데 우리는 대역갤이잖아? 대역 시나리오를 논해보자구.
대붕이들이 많이 궁금한게 그러면 뭐 국제법적으로 '주권가문'으로써 계속 고타에 남으려면 어케해야하냐? 라는 거잖아? 그걸 하나하나 짚어보자.
유럽 전통에서 왕위 주장자란 "현재 영토(De Facto)는 잃었으나, 법적 권리(De Jure)는 포기하지 않은 군주" 를 뜻해.
이를 인정받기 위한 요건은 지독할 정도로 엄격했으며, 하나라도 어기면 왕위주장자로 인정받기 어려웠지. 조건들을 하나하나 짚어보자. 뭘 해야하는지.
1. 조약의 부인(Denunciation)
국제법상 주권은 본인의 의사에 반해 강제로 빼앗길 수 없는 것이 원칙이지만, 군주가 스스로 서명한 양도 조약은 그 원칙을 무력화할 수 있어.
이게 아까 설명한 금반언(Estoppel) 또는 묵시적 승낙의 논리야. "본인이 주겠다고 사인해놓고 나중에 딴소리하는 것은 법적 보호 대상이 아니다"라는 거지.
실제 사례를 통해 보자.
루이 18세(프랑스) - 나폴레옹 집권기 내내 그는 자신을 '프랑스 국왕'이라 칭하며 공화국과 제국을 불법 점령 상태로 규정해왔어.
그는 조카 루이 17세가 죽은 날부터 자신의 통치 원년으로 계산하는 '법적 허구'를 유지했고, 이것이 훗날 왕정복고의 법적 근거가 될 수 있었지.
근데 이왕가는 어때?
고종과 순종은 조약의 강압성을 호소하긴 했으나, 결과적으로 일본이 부여한 '왕(王)'의 지위를 수용하고 일본 천황에게 사절을 보내 감사 인사를 전했어.
국제법적으로 이는 '조약의 사후 승인'으로 해석되어 주장자로서의 자격을 스스로 폐기한 행위와 동일해.
'처음 조약이 불법이고 아니고는 상관없어지는 단계'에 도달 했다는 거야.
2. 독립적 인격 유지
주장자가 적국(병합 국가)으로부터 단 1원이라도 돈을 받거나 작위를 받는 순간, 그는 주권자가 아닌 '연금을 받는 퇴직 관리'에 불과하게 되어버려.
뭐 용어가 따로 있는데 까먹음;; 바로 실사례로 들어갈게.
하노버 왕가(George V) - 1866년 프로이센에 나라를 뺏긴 하노버 국왕은 프로이센이 제안한 막대한 보상금과 귀족 작위를 단칼에 거절하고 오스트리아로 망명했어.
그는 평생 프로이센 군복을 입지 않았고, 덕분에 《고타 연감》 제1부에서 '과거 통치 가문'으로 죽을 때 까지 남았지.
근데 이왕가는 어땠을까?
일본으로부터 당시 돈으로 연간 150만 엔이라는 천문학적인 '세비'를 받았으며, 또한 일본 육군 군복을 입고 장군 계급을 수용했어.
유럽인들 시선에서 이는 "나는 주권자가 아니라 일본 제국의 고위 공무원이다"라는 자백에 가까운 행동이지.
3. 가문법의 연속성
주권 가문의 증거는 가문 내부의 자율성이야. 혼인, 승계, 작위 수여를 타국 황제가 결정한다면 그 가문은 이미 독립된 인격체가 아닌거야.
간단히 말해서, 적어도 결혼을 결정짓는 주체가 자기 가문이여야 한다는 거지.
로마노프 왕가(러시아) - 혁명 후 망명한 로마노프 가문은 러시아 영토는 잃었으나, 가문 내에서 자체적인 가주 선출과 동등혼 규칙을 고수했어.
그들은 여전히 가문의 법(House Law)에 따라 행동했기에 유럽 왕실 공동체의 일원으로 완벽하게 인정받았고.
이왕가는?
이왕가의 혼인과 승계는 '일본 황실 전범'과 '왕공족 전범'에 의해 일본 천황이 결정한게 팩트야.
4. 국제적 승인 시도
주권은 상호 인정(Recognition)의 산물이야. 다른 군주들이 나를 '폐하(Your Majesty)'라 불러주지 않으면 주권은 소멸하는 것과 동일해.
바티칸(교황청) - 1870년 이탈리아가 교황령을 합병했을 때, 교황은 이탈리아 정부를 인정하지 않고 '바티칸의 죄수'를 자처하며 세계 각국 군주들에게 친서를 '꾸준하게' 보냈어.
각국은 교황의 영토가 없음에도 그를 주권자로 예우하여 사절을 맞교환했지.
이왕가는?
일본의 지배 이후 타국 군주들에게 자신들을 주권자로 인정해달라는 친서를 단 한 차례도 보내지 않았고, 모든 대외 접촉은 일본 외무성을 통해 '일본 황족'의 자격으로 이루어졌었어.
자 냉정하게 너가 깐깐한 고타 편집진이라 생각하고 감정을 이입해봐.
대한제국의 이왕가를 보자.
1. 조약을 부정하지 않았고 (묵시적 승낙)
2. 돈과 작위, 군복을 받았으며 (신하화)
3. 일본의 법을 따랐고 (가문법 소멸)
4. 주권을 인정해달라고 외치지도 않았다. (권리 포기)
이러면 뭐다? 만장일치로 '주권 가문 아님' 을 땅땅 박는거지. 아마 회의시간 5분도 안걸리고 다같이 회식하러 갔을껄??
역으로 '저 조건들을 모두 지키면' 당연하게 작위주장자 대우를 받는거야.
너무 어려운데 불가능한건 아니냐고?
대역갤에서 조롱하기 일상인 니키의 가문인 로마노프는 저것들 모두 철저하게 지켰어.
실제로 대공/대공녀들은 '성적인 수치심을 감수하고' 얇은 옷을 입고 자본가들의 눈요기가 되어주는 모델 역할도 하고, 택시 운전사도 하고, 미국 가서 포드 공장에 취업도 했어.
이럼 뭐다?
유럽 귀족/엘리트 사회 기준으로 돈은 없을 지언정 '명예'가 있다고 판단한거야.
그래서 끝까지 주권자로 대우하고 자기들 사교파티에 꼭 데려왔어.
근데 이게 뭐가 좋냐고? 어떤 이득이 있냐고?
설명해줄게.
가장 큰 이점은 '국가'와 '가문'이 동일시되던 시대에 국가의 멸망을 인정하지 않는 유일한 법적 근거가 '즉시' 된다는 점이야.
영토를 잃었어도 가문이 주권을 주장하고 있으면, 훗날 정세가 바뀌었을 때(예: 일본의 패망) "원래 주인에게 돌려준다"는 논리가 1순위로 작동하는건 당연한 국제질서야.
다른 강대국들이 일본을 견제하고 싶을 때, 이왕가는 아주 훌륭한 '대체 정부' 혹은 정치적 카드가 된다는 거지.
영국이나 미국이 필요에 따라 "우리는 일본의 통치를 인정하지 않고, 망명 중인 이씨 황제를 정당한 군주로 본다"라고 선언하는 순간,
일본의 조선 통치는 국제법상 '불법 점거'로 취급돼.
또한, 타국과의 의전과 교류에서... 신하와 왕인건 (주장자라 해도) 차원이 다른 입장권과 교류시간/기회를 가질 수 있어. 이건 비교할 수도 없을 차이야.
근데 좀 더 냉정히 말하면, 그렇다고 해서 뭐 열강들이 뽕!~!~!~ 하고 갑자기 대한제국 독립을 공표하고 도와주고 그러진 않아.
단점 1번. 돈... 유명한 오토 폰 합스부르크도 한 때 식당에서 끼니 걱정을 했어.
2번 정통성. 만약 어떤 왕자가 이렇게 토템 역할을 하는 순간 그 독립단체는 입헌군주제 이외의 모델을 굴릴수가 없음.
3번 빨갱이. 사실 뭐 까놓고 19세기도 아니고 20세기에는 소련 성립도 있고 모두가 틀니 딲딲 왕정체제는 아니긴 해서....
근데 누가 이런 왕공족 해석 억지 아니냐고 하는데
뭐 억지일 수도 있다고 생각함 ㅇㅇ
근데 뭐 최소한 이런 사이드의 시선도 있다는걸 소개 좀 시켜주고 싶었음...
왜 푸이는 항상 고타 1부에 그대로 떵떵거리며 남았고, 베트남 함응이 황제도 남아서 프랑스 귀족사회랑 잘만(폐위후에도 멀쩡하게) 놀다가 결혼도 프랑스 귀족녀랑 했고,
태국 왕자는 왜 러시아 황제에게 양자 대우받아가며 사관학교 다녔는데
왜 조선-대한제국 왕실/황실 은 한번도 그런거 없었나 에 대한 고찰을 다루는 대역이 나왔음 좋겠음...
그리고 이거 해석이 억지라고 하는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고타가 뭐 별 쓸모 없다거나 여기 안 적혀있다고 무시하는거 아니라는건 진짜 아예 당시 유럽 사회의 구도와 이너서클을 아예 단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 하는 말이라 생각함
당시는 구글이 없었음. 나무위키도 없고. ai도 없음.
내가 왕자입네 하고 소리치는 사람이 있다면 고타를 안 뒤져보면 사기꾼인지 아닌지 어케앎? (물론 그래도 사기는 나왔음)
착각하는데 '개인'이 대우를 해주는것과 '사교계'가 대우를 해주는 것은 분명히 다르며, 의전의 핵심은 '대우 여부'가 아니라 '급(Rank)' 에 있음.
조선에서 왕실 서출녀를 '옹주'라고 부르는걸 보고 와! 서녀도 대우해줬네? 조선은 서얼 차별없다! 랑 하는 것과 동일함.
유럽 귀족 사회는 상대를 '왕족'으로 불러주는 것보다, 그가 '나와 동등한 주권자(Equal)'인지, 아니면 '상전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신하(Subject)'인지를 나누는 데 집착하고 분류함.
고타 연감은 19세기 후반에 드디어 국제질서라는거에 비유럽권 끼워주기 시작하고, 또 비유럽권 왕실에게도 국제질서에 편입되었다는 강력한 신호기도 했음.
냉정하게 고타에 기록되어있지 않으면 외교관이든 귀족이든 좆같이 대해도 '교양 없는 사람이 아닌' 게 무슨 의미인지 모름?
당대 일본/태국/오스만/페르시아 등등 다양한 나라 외교관들이 밥먹고 할게 없어서 자다가 띡 보낸게 아님.
그게 '문명국 입니다' 라고 할 수 있는 증명서 발급 중 하나였기 때문.
외교에서 '환대(Hospitality)'와 '의전(Protocol)'의 차이가 뭔지 모르면 이게 무슨말인지 결코 이해할 수 없을듯.
1887년에 고타가 비유럽 군주권들에게 빗장을 열자마자 앞다투어 온갖 나라가 신청해서 등록된건 왜 그랬겠음.... 그게 유무형의 이득 및 손해를 주니까 그런거임.
외교관들은 밥벌레가 아님.
다음 시리즈로
한국인이 빙의하면 조선 정벌 해볼 유럽 왕자 리스트 뽑아볼까 아니면 유럽 공주 추천할까 아니면 족보 은근슬쩍 유럽 왕실 네트워크 편입하기 전략 써볼까?
3줄 요약.
1. 고타는 존나 중요하다...괜히 다른 나라들은 허용해주자마자 바로 가입한게 아니다.
2. 이왕가는 유럽 사회 기준 진짜 재앙같은 행동들을 했다.
3. 대역에서 외교 한번 제대로 하는거 보고 싶다. 여태껏 외교 제대로 다루는 대역 한번도 못봄.
댓글 영역
시발 저지랄을 했으니 의친왕이 튀어나와도 저의전을 받는게 불가능이란거잖아 ㄷㄷㄷㄷ
근대 원숭이랑 짱개들같은 동양권애들한테 티배깅할때 이런것도 해야하는거구나 하고 대역작가들이 인식하면 좋겠네 ㅎㅎㅎㅎ
ㅇㅎ 19~20세기 외교 규범 흥미롭구만.
진짜 뒤지게 흥미로운 글이었다 앞으로도 이런 글 많이 써주라 안쓰면 너 개똥이임.
보오 보블전쟁후에 프로이센에 합병당한공국 왕같은경우는 사교계에서 왕족으로 인정받았다던데 오스트리아에 망명해서 저것들 지켜서그런가 - dc App
그건 슈탄데스헤어 ㅇㅇ 빈회의에서 나온 개념임
마자요 그런 독일계 가문중에 고타 2부 등재된 가문이 많았음 (결국 고타도 독일에 있는 도시라 ㅋㅋㅋ 지네 독일계 가문 은근슬쩍 올려치기 있었음)
족보 을근슬쩍 왕실네트워크 편입하는 전략을 한번 보여주는게 어떨까 싶음ㅇㅇㅇ
공주는 이미 한번했고 정벌은 대붕이들중 불쾌함느낄사람 많을거니 무난하게 편입을 설명하는게 나을거같음요
ㅇㅋㅋ
https://m.dcinside.com/board/alternative_history/1242270 낮의 다른 누군가는 너무 오바다 하는거 같던데 이건 어떻게 생각함?
시리즈에서 꾸준히 언급했지만 이 시리즈 자체가 [서구유럽 엘리트
@글쓴 대붕이(222.109) 기준으로 분석한거라서.
동양관점은 일부러 아예 안 집어넣었음.
너무 정만 있길래 내가 반 들고왔으니 이걸 본 나보다 더 똑똑한 대붕이들이 합 들고와주지 않을까...
대붕아 이걸 정보탭에 넣어다오.. - dc App
정보글 탭으로 넣었도다 - dc App
근데 외교중심 대역이랍시고 나온 것들이 저걸 반영을 안했네
그 대역들은 외교 공부를 제대로 한거 맞을까 - dc App
쟤가 독자연구한다는 관점은 없는거야
@ㅇㅇ 아.
그렇구만 - dc App
이게 한국어로 된 자료가 잘 없도라...
@글쓴 대붕이(222.109) 잘 없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없는 수준인거 같은데 - dc App
@ㅇㅇ 근데 독자 연구라도 아예 국내 자료가 없으면 해당 연구를 먼저 한 사람의 해석이나 의견 제시가 먼저 힘을 가지는 거임
그런 의미에서 외교중심 대역들은 지나치게 2머전 이후의 외교를 중심으로 19세기의 외교를 덧씌우거나 2머전 이후의 외교를 19세기~1머전 시기의 외교에 투영하는등 "19세기의 유럽식 외교" 에 대해서 공부를 제대로 한게 맞는지 다시 의문이 드네 - dc App
@채여 서구외교사적 관점에서 이걸 다루면... 삐끗하면 자칫 '대한제국 황실'의 책임도 있다는 결론이 나올 수도 있어서 아닐까???
그러고 딱히 주류 사학계가 이 쪽 분야는 그냥 관심없어하는듯?
@채여 머 객관적으로 봐도 이건 미시사긴 하니까 ㅋㅋㅋㅋ.
그리고 내가 다 옳은 것도 아니고.
대신 이거 본 대역 작가들 생겨서 이런거 좀 챙겨주면 조켔음...
니가 한말은 전적으로 동의. 2머전 이후의 외교를 덮어씌우니까 많이 어색함.
@글쓴 대붕이(222.109) 관심이 없다면 관련 연구를 한 사람도 우리나라에선 한명도 없겠네
서구외교사적 관점이 국내 사학계의 연구를 가로막는 원인이기도 하겠고 - dc App
@채여 내가 사학계 사람이 아니라 잘 몰겠음;;; ㅋㅋ;;
근데 궁예질 하면 정말 국내 교수진들이 이걸 하나도 모른다는건 말이 안되고...
그동안 구축해온 '일방적으로 당한 피해자'의 서사에 이런 시스템적 논리는 별 도움 안되기 때문에 패싱한것 같기도함(외부의 기준에서 보면)
아니면 주목받지 못하지만 뒤에서 잘만 연구하는 사람들 있을지도?
@글쓴 대붕이(222.109) 왕공족 연구는 2010년대부터 제대로 연구가 시작됨. 원래 일본이 훨씬 먼저함
그래서 20세기 국가가 외교정책을 결정할 때 저걸 얼마나 고려하는데?
냉정하게 뭐 엄청난 효과 이런건 아니지만, 이해관계가 일치할 때는 시너지가 엄청나지.
까놓고 저 합스부르크도 내내 왕정복고 못했으니..
묵시적 승낙
이거 헤이그 특사때 기회 있지 않았어?
국권피탈이고 뭐고 헤이그 시점에선 아직 "주권 가문"이였잖아?
그러니까 이때 특사 쟤대로 임명해서 파견해서 "이새끼들 지금 늑약 강요했어요! 제발 헬프!" 했으면 판이 달라졌을수도 있던 거였는데...
??: 아 난 책임지기 싫으니까 국새건 어새건 어보건 안찍을거임, 임명장은 알아서 해라~
...시발
환대와 의전의 차이가 머임 - dc App
그리고 쓴글들 좀 모아서 시리즈로 올려줄 수 있음? - dc App
뭐 예포 쏠때 국가원수에겐 21발, 총리와 국회의장들은 19발 쏘는 식으로 의전규정이 있는데,
정부 수뇌부 고위직이니까 이런 의전을 받는거지,
쌩 민간인한테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예포 쏴줄일은 없잖아요?
환대는 푸른피로 상대하지 않고 접대의 관습 레벨 정도로 대접해주겠다는거고,
의전은 진짜로 푸른피로서 대우해주는 행위들 말하는거 아님?
환대하지 않아도 의전을 할 수는 있고, 그 반대도 성립하지.
ex1)1910년에 영국에 빌헬름 2세가 방문했으면 이미 갈등이 심한 상황이었으니 환대하진 않겠지만, 의전은 외국 황제에 준하게 철저하게 대접하겠지
@ㅇㅇ. 아니. 같은 댓글을 몇번 지우고 다시 다는거임 - dc App
@독라중기병 죄송함다... 자꾸 자동완성으로 오타나서 그거 수정하느냐고요;;
이거 진짜 왜이러지...
@ㅇㅇ ㅇㅇㅇㅇ 마자용
재밌게 잘봄. 신선한 시각이었음. 다른 정보글도 부탁함 ㅋㅋ - dc App
개추다
다음글 더가져와!!!!!! - dc App
결론: 군밤이가 왕공족으로 추락하고 일본한테 연금 타먹으며 사는 삶을 거부하지 않고 항의 한번 안한게 제일 큰 문제다
...원인을 군밤이로 찍으면 얼추 맞는거 같은게 기분탓?
이게 농락이냐? 그냥 나라 팔아드신거지
진짜 고종 존나 무능했다...
잘 읽었습니다. 새삼 갓쓴것들과 이왕가는 역사적으로 대대로 욕먹어야 하는 족속이란 생각이 더 강화되네요...
이왕가는 확실하게 개새끼 라는게 여기서 설명되긴 한데...
이 글에선 갓쓴것들이 개새끼라는거 설명 안해주지 않음?
님의 말씀이 맞긴하지만, 연대책임에 대한 측면이 아무래도;;;
물론, 당연히 명예롭게 책임을 다한 사람들은 예욉니다.
국제법적 시선으로 보면
대한제국은 제목처럼 농락이 아니라
이황가 일본황실 입적이네 ㅋㅋ
더 정확힌 군밤의 자폭 쇼쇼쇼!
헤이그 특사 신원보증=> 안함
왕공족 되라는 요구 거부 => 안함
일본정부가 지급하는 연금 거부 => 안함
신사참배 거부 => 안함
이 과정에서 일본정부/천황가 상대로 항의 => 안함
진짜 흥미진진하게 잘 봤음
대붕이는 갤러리에서 권장하는 비회원 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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