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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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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비 대신 대군이 섭정하는 게 서양식같다는 지적이 많던데, 사실 서양도 중세~근세에는 모후 섭정이 보편적이었던 게 근대 들어와서 바뀐 추세가 있다보니(중근세식 전통이 많이 남은 스페인같은 나라는 19세기 후반까지도 모후가 섭정함) 근대식 남녀관이 지대힌 영향을 끼쳤구나 보면...
그치 심지어 빅토리아 여왕 즉위 때만 해도 성년 안 돼서 즉위했으면 공작부인인 어머니가 섭정할 예정이었는데 그렇게 됐으니 급격하게 변했다는 느낌도 있지
전혀. 남녀역할에 대한 관념이 왜 남자 섭정의 등장으로 이어지는지 모르겠네.
...? 이건 뭐 할 말이 없다
@ㅇㅇ(61.72) 19세기 서구 (비)'과학적' 남녀관이 뭐냐고
@ㅇㅇ 글쓴이임. 진심임? 나로서는 이건 매우 기본적인 사항이고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가늠도 안 되는 사안임. 네가 그것도 모르고 '전혀'부터 박았다고는 믿기지 않거니와, 설령 그게 진심이라 하더라도 그런 사람이 내가 시간을 들여(나도 현생이 있음) 설명했을 때 신의있게 들어줄지 믿음이 가지 않는 게 솔직한 심경임. 일단 쓸테니까 신의있게 들어주길 바랄 뿐임.
전근대에도 남녀의 역할관은 있었고 남자는 바깥일, 여자는 안의 일이라는 관념도 있었지만, 흔히 '신분이 성별보다 우선'이라는 도식이 있듯이 절대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었음. 네가 지적했듯이 왕비, 모후 섭정의 사례가 있고, 영주가 출타 중일 때 영주 부인이 영주의 권한을 행사하기도 함. '부부는 일체로서 같은 일을 한다'라는 관념 역시 있었기 때문임(계속
@ㅇㅇ 따라서 중세 길드에서 남성이 사망하면 간혹 그 미망인이 그 남편의 자리를 이어받아서 길드원으로서의 지위를 누리곤 했음.
그러나 근대에 가면 이야기가 달라짐. '신분이 성별보다 우선'이라는 관념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지만, (흔히 '청교도적'이라 불리는 중간계급 주도의 윤리상) 남자와 여자의 역할의 구분이 훨씬 엄격하게 구분되게 됨. 부부가 같은 일에 공동으로 종사한다 (혹은 부인이 남편의 일을 돕는다)라는 관념은 '남편은 공적인 일, 여자는 가정 내부의 일에 관할권을 행사한다'라는 관념으로 대체됨. 그리고 후자는 실질적으로 절대적이지 않음. 남편은 부인에게 지배권을 행사하기 때문임.
@ㅇㅇ 이 윤리관을 뒷받침하는 것이 근대적 과학 이념임.(문화적 인종차별이 근대적 과학 이념을 타고 '과학적' 인종차별로 이행했듯이) 문화적으로는 물론 '과학적'으로 남성은 이성, 용기, 신체적 능력, 지적 능력 등을 갖고 공적 활동에 적합하며 권위를 가진 것으로 여겨진 반면 여성은 그것들이 현격히 결여되고 대신 가정 내 역할에 걸맞는 감정, 세심함, 다정함 등의 능력이 있는 것으로 여겨짐.
이것이 네가 막연히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히 경향성으로 여겨졌는가? 아님. 이것이 반영되어 적지않은 국가에서 여성들은 전근대엔 멀쩡히 있던 재산권이 근대에 와서 법적으로 박탈당함. 아버지 없는 미혼 여성이나 남편이 죽은 미망인만 제한적으로 재산권을 가질 수 있었음.
@ㅇㅇ 이런 문화적, '과학적' 관념을 적극적으로 체화한 일본의 사례를 보자. 천황이 처음부터 근대식 군복을 입지 않았음은 당연하지. 유신 이후 일본인들은 전근대 천황과 공가의 전통적 이미지를 군복식 제복으로 대표되는 서양 근대풍의 권위가 결여되어 있다는 점에서 '연약하다' '권위가 없다', "여성적이다"라고 파악했고 새로운 천황의 이미지를 "남성적"으로 만들기를 갈망했음. 이는 대중에 배포되는 이미지에서 뿐만 아니라 제국의 실제 의전에 적극적으로 반영되었을 뿐만 아니라, 법적으로도 황실전범 제정에 따라 여성천황이 금지됨.(계승 구도상 여성 천황의 즉위 가능성을 논해야 했을 상황이 아님에 유의해야 함) 이에 대해서는 도서관에서 <천황의 초상>이나 <화려한 군주>를 참조하길 바람.(계속)
@ㅇㅇ 이는 '서양의 눈치를 봐서'가 아니라 일본의 의사결정권자들 스스로가 그 이데올로기에 합치되고 또 그걸 이용하길 바라서였음.
물론 빅토리아 여왕의 존재에서 보듯이 이게 결코 이전부터의 전통과 양립하거나 중첩될 수 없는 것은 아니었음. 그러나 빅토리아 스스로가 (실제 행실과 별개로) 남편에게 순종하길 바랐단 건 잘 알고 있겠지. 이건 단순히 빅토리아가 남편을 사랑해서나 막역히 여자가 남성에게 순종해야 한다고 믿어서가 아니라 빅토리아 역시 19세기 근대인이어서임. 빅토리아가 치세 내내 (대중들의 관념보다는 정치에 개입했지만) 정치에 간섭을 자제한 것도 이것과 무관하다고 보기는 어렵겠지.
@ㅇㅇ 유교의 가족법이 모친을 포함한 부모에게의 효를 중시하는 점에서 이런 서구 근대의 남성성 여성성 이데올로기에 합치되기 불리한 면도 있음.
그러나 유교가 애초부터 유럽의 중근세보다 남녀유별이 강하고 여성의 공적 영역에서의 권리를 덜 인정한 점에서(여왕은 물론 여성 작위보유자, 여성 관직 보유자도 드물게 존재했음) 이런 '과학적', 문화적 남녀관과 더 자연스럽게 합치할 포텐셜도 있음.
모후의 수렴청정은 결국 유교의 수신제가치국평천하 관점에서 왕실의 가족 윤리와 국가의 권력이 동일시되는 기틀 위에서 논리적인 거니까, 근대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따라올 가족으로서의 왕실과 국가권력으로서의 왕권의 분리 과정에서 전자보다 후자가 강조될 가능성도 충분하고.
@ㅇㅇ 그런 관점에서 상상해볼 수 있겠다 줄줄이 쓴 건데 전근대 예시 몇 개 띡 던지면서(그나마도 다른 데에서 던졌지 여기선 뭐...) '전혀' 이러는 건 솔직히 매우 불쾌함.
대붕이는 갤러리에서 권장하는 비회원 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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