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 (1646년 ~ 1716년)는 미적분을 누가 먼저 발명했느냐를 놓고서 뉴턴과 다툼을 벌인 인물이다. 그는 뉴턴의 ‘숨은 인력적 속성’이 ‘진정한 철학의 여러 원리들과 어긋날’ 뿐 아니라 ‘무지의 낡은 도피처’로 되돌아가는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뉴턴 옹호자들은 중력은 단지 물질의 근본적인 성질이라고 주장한 데 반해서, 뉴턴 자신은 정말로 중력의 원인을 찾고 싶어했다. 하지만 해답을 찾기 위한 그의 방법을 본다면, 뉴턴은 17세기에 우연히 태어난 ‘근대과학자’가 아님이 드러난다. 뉴턴은 평소답지 않은 겸손한 태도로 자신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재발견했을 뿐이라고 여겼다. 고대인들이 이미 알고 있던 법칙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뉴턴은 프리스카 사피엔티아(prisca sapientia)를 믿었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이 개념은 ‘고대의 지혜’가 오래전부터 존재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타락했다고 여겼다. 뉴턴은 그리스신화, 성경 구절, 그리고 『헤르메티카』를 해석하여, 그 속에 자신의 중력 법칙을 포함한 세계의 숨겨진 구조에 관한 내용이 들어 있음을 밝혀내려고 애썼다. 뉴턴의 생각으로는, 중력이란 신이 이 세계에 직접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관여해서 생긴 결과였다(그리고 고대인들도 같은 생각이었으리라고 뉴턴은 믿었다). 신의 기하학적 청사진을 밝혀냈다고 여긴 케플러처럼 뉴턴도 자신을 (단지 과학적 지식이 아니라) 고대의 지식을 복구하기 위해 선택된 사람이라고 여겼다.
가령, 당대의 모든 사상가들은 인간, 신, 그리고 자연계 사이의 긴밀한 관련성을 확신했으며, 이로써 신학적 진리와 과학적 진리 사이에 상호관련성이 있음을 확신했다. 따라서 당시에 논의된 주제들은 과학과 신학/종교가 뒤섞인 복잡한 성격을 띠었다. 근대 초기의 자연철학을 이해하려면 오늘날의 여러 가지 상식적인 가정과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 첫째, 거의 모든 유럽인, 특히 이 책에서 거론된 모든 과학사상가는 기독교를 믿고 실천하는 사람이었다. 현대적이든 아니든 간에 과학 연구에는 무신론—에둘러 표현하자면 ‘회의론’—이 필요하다는 개념은, 과학 자체를 종교로 삼길 바라는 (대체로 자신들을 그러한 종교적 위계질서에 포함시키는) 이들이 제안한 20세기의 신화다. 둘째, 근대 초기의 경우 기독교 교리는 의견이나 개인적 선택이 아니었다. 당시의 기독교 교리는 자연계의 사실이나 역사적 사실에 맞먹는 위상을 지니고 있었다. 물론 신학적 이론이나 예배 관행의 고차원적인 지점을 놓고서는 교파 간에 분명 이견이 존재했다. 마치 오늘날의 과학자들이 중력의 실재성이나 원자의 존재 또는 과학적 연구의 타당성을 의심하지는 않으면서 아주 미세한 지점을 놓고 서로 논쟁을 벌이듯이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신학이 결코 ‘개인적 믿음’의 지위로 전락한 적은 결코 없었다. 오늘날의 과학과 마찬가지로 당시의 신학은 모두가 동의하는 사실들의 요체이자 존재에 관한 진리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탐구 행위였다. 그렇다 보니 신학적 교의들은 근대 초기 자연철학자들이 연구 자료로 쓴 데이터 집합의 일부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신학적 사상들은 과학 연구와 추론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단지 과학 연구의 바깥에서 얼마간의 ‘영향력’을 미친 정도가 아니라, 신학적 사상은 자연철학자들이 연구하던 세계의 필수적이고 중요한 일부를 차지했다.
Lawrence M. Principe, 『과학혁명』 THE SCIENTIFIC REVOLUTION: AㅇㅇㅇㅇVery Short Introduction, 노태복 번역, ebook
물질문명이란 면에서 가장 결정적인 차이를 낳은 과학혁명은 고전에 대한 회의론과 거리가 억만광년 멀어진 환경에서 태어났음.
뉴턴 포함해서 과학혁명 시대에 이 차이를 만들어내고 결정적으로 기여한 건 또 역설적이게도 고전에 대한 경외심이었음.
과학이 아니라 경제사로 가면, 차이가 벌어진 시기가 더 과거로 가면 갔지 결코 더 미래로 가진 않고.
물론 뉴턴 후 시대에 서양에서 미국혁명 터지고 프랑스혁명 터지긴 했지만, 막말로 프랑스 제국이 민주적이라서 베트남 먹고 일제가 민주적이라서 조선 먹은 건 또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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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은 고전에 나온 말 중에 자기가 한 실험과 정합하지 않는건 안믿었다는거임. 고전 지식이 현대지식과 안맞으면 고대 사람들이 실수했다고 판단하고 바로바로 버려가면서 자신이 해석하는 새 체계를 정립한거지
뉴턴은 그런 순간에도 '사람들의 해석'을 공격했지 '텍스트'를 공격하진 않았음. 가령 성경에 대해 뉴턴은 직접 이렇게 말했음: "For deciding this some bring texts of scripture, but in my opinion misinterpreted, the Scriptures speaking not in the language of Astronomers (as they think) but in that of common people to whom they were written"
https://isaac-newton.org/wp-content/uploads/2013/06/newton-on-accommodationist-hermeneutics.pdf
여기서 77번 주석 및 본문을 보면 됨. 뉴턴의 관점을 요약하자면, 성경이 천문학자의 언어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의 언어로 말하는데, 사람들이 자꾸 잘못 오독한다는 이야기임.
@ㅇㅇ Hypotheses non fingo 라고 하잖음.
뉴턴은 자기가 통제할 수 있는 한에선 현상과 실험에 바탕하지 않은건 가설(현상에 기반하지 않은 명제)에 불과하고 귀납적으로 증명해야한다고 했는데.
그 시기엔 만물의 물리적 최초원인으로 댈 게 없으니까 신학에 기댄거고
서양은 점점 그 믿는 범위가 작아져가잖음. 동양은 19세기에 와서도 공맹의 말에 원천적인 부정은 못함. 갠적 소감이지만 서양은 어찌됐건 자기만의 가정에서 철학이건 학문이건 시작한다면, 동양은 주장에는 거의 늘 직접인용이 붙었고, 예를 들어 인은 00다! 라고 말한 걸 00가 아닌듯? 이라고는 못함. 이러이러해서 00라고 말한 것이지 기존의 이유가 아니다~~ 그러니까 내 생각에 인은 어쩌고다! 라고 하는 식이지 - dc App
그래도 과거제 폐지 때까지 팔고문 못 벗어난 동양이랑 비교하면 뉴턴은 진짜 혁명가가 맞음...
대붕이는 갤러리에서 권장하는 비회원 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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