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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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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대왕비 보면 그냥 중국인들만 그렇게 부른게 아니고 한 예 이런거 본인들도 신경쓴거같은데
종족 정체성이 꽤 유동적이긴 하지만 대충 끼워맞춰 망상해보면
경기도 강원도 함경도=(동)예
남쪽=한, 왜, 기타 남하세력
백제=예+한
고구려=맥
고조선=압록강 고구려가 고조선 문화 기반이라는데 얘네도 맥(?)
신라=맥(?)+한
근데 낙랑군? 대방군? 여기 원주민들은 뭐지 목간비율보면 한족비율작고 대부분 원주민인데
낙랑군이 예인 다스린다는 기록있고
고구려말기쯤 되면 한반도 서북한에서 고구려영토안에 있던 애들 다 정체성 문화 맥되나
예랑 맥이 한에 비해 특별히 공통조상 공유한게 아니라면 삼국지에서 동예족장이 자기가 고구려랑 동종이라한것은
족장이 한말이니 괜히한말은 아닐텐데
그냥 한반도권 문화가 다 비슷해서나 아니면 고고학에 안띄는 고구려랑 중요한 인적교류가 있어서 아니면 둘다 공통 문화 영향 받아서
이러다가 신라 고려 거치며서 한민족으로 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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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먼저 문헌사에 기록된 종족성이란 건 생각보다 그 뿌리가 깊지 않고 가변적인 개념임을 기억해야함. 당장 몇 세대만 지나도 자기들이 어디에서 왔는지도 모르는데 그걸 정확히 어떻게 알겠음? 터키의 투라니즘이나 루마니아 등 동유럽의 로마기원설처럼 필요성에 따라서 조작될 수 있는 게 그런 정체성인데.
또 이런 종족성은 본인들이 강한 동질성을 느껴서 생겨나기보다는 기본적으로 한 집단의 타자화에서 비롯하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타자의 시선을 먼저 고려해야함. 예를 들어 고구려는 '한예'라는 종족을 자신들과 구별되는 집단으로 타자화했지만 사실 '한예'로 분류된 집단들은 자기들끼리는 사실 내부적으로 그렇게 크게 동질감을 느끼는 건 아니었음. 근데 대충 저렇게 퉁쳐지고 공격의 대상이 되면 나름대로 동질성이 생기게 됨.
고구려말기에 평안도랑 황해도는 딱히 고구려주류랑 다른 정체성은 없었겠지 ?
@ㅇㅇ 황해도는 말기까지 고구려의 3경 중 하나가 위치한 지역이어서 적어도 고구려 말기에는 굉장히 강한 고구려의 정체성을 가진 집단이었다고 봐야지. 그래서 이들을 중심으로 고려가 세워지는 거고
근데 고구려가 한과 예를 명확히 타자화한게 맞을까..딱히 누구말처럼 천하관에 포함했다든가 동포로봤다든가 하는 근거도 없지만..
@ㅇㅇ 광개토왕릉비에서만 봐도 한인과 예인을 얼마나 포로로 잡았고 얼마나 이들의 성읍을 빼앗았는지를 자랑하는 맥락에서 언급되고, 무엇보다 이민족에게 쓰는 멸칭을 계속 언급하고 있으니 동질감보다는 타자화한 맥락에 더 가깝다고 봐야겠지. 특히 한예라고 하는 게 명확한 정치적 실체가 아닌데도 한인과 예인이라는 구별하는 명칭을 쓰고 있잖아.
@ㅇㅇ(211.207) 그러고보니 부여는 뭐임 예네는 외교할때도 濊王之印이라고 하고 지명이름에도 예쓰던데
고구려가 대왕비에도 부여에서 왔다고 하긴하는데 막상 관계보면 존나 싸우고
어차피 부여인이 아니라 하늘신이 왕을 낳았다고 봐서 딱히 다른 한국계 종족비해 동족의식은 없었나
부여의 얼굴이라는 책에서는 예군남려랑 서단산문화를 엮던데
@ㅇㅇ 부여도 보통 예로 취급되는 경향이 있어서 보면 중국인들이 대충 북쪽에 있으면 예족, 남쪽에 있으면 한족, 이후에 중국이 특별히 적대시한 고구려 및 고구려에 복속된 종족들은 맥족 이렇게 퉁쳤던 게 아닌가 싶음.
@ㅇㅇ(211.207) 걍 고구려는 그 집단이 예나 한으로 자타칭된 여부와 상관없이 자기들 집단이면 고구려 아니면 한예로 부른건가?
@ㅇㅇ 사실 예나 한으로 퉁쳐지는 이들도 그냥 부여는 부여, 신라 같은 경우에도 신라면 신라, 가야는 가야 이렇게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어쩌다가 외부인이 자기를 예나 한이라 부르면 아 그런갑다 하는 거지 신라의 경우에는 대략 7세기 무렵 이전에는 스스로가 삼한이란 걸 그리 강조하지도 않았던 것으로 보임. 고구려도 마찬가지로 외부인들이 자기들을 맥이라고 부르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었고 일부 묘지명에서는 그 정체성을 받아들이기도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당연히 기본적으로는 고려인, 고구려인이라고 한 게 훨씬 강한 거지.
일단 요하 이동과 한반도의 집단들은 이미 청동기시대 조기부터 매우 밀접한 교류관계에 있었음. 무문토기문화의 확산 과정에서 대규모 주민집단의 이동이 있었고 이 과정에서 각지에 있던 수렵 성향이 강한 선주민들을 동화-흡수하는 과정이 나타났던 것도 고고학적으로 확인됨. 한반도 중서부의 주민들은 압록강-서북한 유역의 문화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도 이미 확인됨. 이 요령과 서북한-한반도 중서부 축은 청동기시대 조기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교류하던 관계망 속에 있어서 요령권의 비파형 동검 등의 위세품 문화 역시 지속적으로 남단으로까지 확산되었음. 기원전 1500년-1200년 경부터 지속적으로 인구가 확산했는데 삼국시대 시점이면 아직 적어도 언어적인 측면에서는 나름 동질성을 느낄 수 있었을 거라 개인적으로 생각함.
이후에도 점토대토기의 확산 과정이라던가, 단결-크로우노프카 문화의 확산이라던가, 연나라 계통 철기문화의 전파 등 북쪽에서 나타나는 문화적 파급이 계속해서 있었기 때문에 나름대로 문화적으로도 동질적인 요소가 상당부분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에 적어도 완전히 다른 세상과 같은 낙랑군 등 한대 이후 중국문화에 비해서는 비교적 동질감을 느꼈을 거라 생각함. 왜냐하면 고고학적으로 봐도 이 당시 낙랑군의 문화는 정말로 신세계 문화라고 생각해도 될만큼 토착 한반도 사회에서 와전히 이질적인 요소였고, 이들보다 좀 더 낙후된 상태에 있던 토착 주민 집단들 사이에서는 비교적 중국인들에 비하면 자기들은 좀 다르다는 인식을 할 수밖에는 없었겠지.
@ㅇㅇ(211.207) 낙랑군 영역 속해있던 토착민들 문화랑 정체성은 대충어떰
@ㅇㅇ(211.207) 낙랑군이 나중에 고구려중심지되니 더궁금
@ㅇㅇ 솔직히 이건 북한에 있다보니 고고자료가 많이 부족해서 뭐라 명확히 대답할 수 있는 건 아닌데 적어도 요령의 전기 고조선과는 꽤 오랫동안 독자적인 문화를 이루고 있었다가 초기철기시대 전후로 좀 동질화된 감이 좀 많긴 함. 낙랑군 설치 이후에도 토착계의 청동기 제작이 계속해서 이루어지는 등 독자성이 비교적 강하게 유지되다가 점차 낙랑문화에 동화되기도 하고, 또 일부, 특히 동해안에서는 낙랑군 예하의 단단대령 이서 '예' 집단이 수시로 분리독립해서 진압해서 동부교위 관할로 만들기도 하고 그랬음. 대충 보면 이 예라는 집단 자체가 원래는 중국인과 대비되는 낙랑의 피지배층이라는 인식이 더 강했던 것 같기도 하고
근데 문제는 다만, 그렇게 중국이 대충 동쪽에 있는 집단을 동이라고 싸잡는 경향이 있었을지라도 그 동이라는 정체성이란 건 결국 중국에 대비해서, 그 당시 동방에서 중국과 비중국을 가르는 의미였던 측면에 불과했었던 경향도 강했고, 또 결정적으로 이들 사이에서도 중국에 비해서는 서로 비슷하다고 느꼈을지언정 그 이상의 딱히 동류의식 같은 건 거의 잘 나오진 않음. 중국 군현이 축출된 이후에는 고구려가 남방을 한/예로 타자화해서 인식하는 종족관념이 생기거나, 마찬가지로 백제가 고구려를 '박국' '박작'이라 부르는 둥 여전히 타자화한 인식이 더 강했었던 것으로 보임.
근데 이 과정에서 서로 다시 문화적으로 뒤섞이고 특히 변경에서의 종족적 경계가 뒤엉킨 까닭이었는지 6세기 부터는 중국에서 이들을 다 퉁쳐서 '삼한'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나타남. 이게 과거에 있었던 삼한을 삼국에 잘못 투영한 중국 측의 역사적 오해에 따른 것인지, 아니면 고구려가 장기간 한강 이북 지역을 장악한 결과로 마한이라는 인식을 고구려에서 흡수했기 때문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어쨌든 이 과정에서 삼국이 모두 삼한이라는 하나의 종족적 정체성으로 묶이기 시작하고, 이게 특히 통일전쟁 시기 전후 신라의 엘리트층에서 강하게 내면화했던 것 같음. 그 과정에서 삼한이라는 정체성이 정립된 것 같고.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런식으로 종족적 정체성은 역사적으로 계속 변화했던 관념이란 것이고 이런 인식이 고고학적 정체성과 좀 대충 일치할 수도 있긴 한데 꼭 반드시 그렇게 일치하는 것도 아니란 말임. 특히 종족적 정체성의 '기원'을 따지자면 앞서 언급한 대로 외부인의 타자화한 인식과 그 인식의 내면화의 과정에서 이해하는 게 차라리 더 빠르지 고고학적, 인류학적 맥락에서 얼마나 기원이 비슷하느냐를 따지는 게 크게 의미있는 작업이라 생각되지는 않음. 사실 당대인들도 자기들의 과거 역사를 엄밀하게 인식하고 있었던 게 아니기 때문에 특정 시점에서의 종족적 정체성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그다지 좋은 것은 아님.
다만 몇가지 짚고 넘어가자면
먼저 그 당대에 한반도 안에 '왜인'이라는 집단이 명확하게 종족집단으로서 존재했던 적은 없음. 계속 '한반도에서 일본인의 조상이 넘어갔다'는 개념을 오해해서 한반도 안에 계속 야요이인이 있었다거나 왜인이 있었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고고학적으로도 야요이문화는 일본 내에서 탄생한 거지 한반도의 야요이인이 넘어간 게 아님. 한반도에 왜계 유물도 특정한 종족적 집단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을만큼 많지 않음. 한반도에서 주민들이 넘어갔다 해도 일본 열도 내에서의 자체 변용 및 일본의 토착민들과의 상호작용이 일본의 정체성 형성에 중요한 요소였음을 빼먹으면 안 됨.
지금 밑에 다른 글에서 나오는 가야 지역 등지에서 나타나는 특징적인 유전적 요소는 이미 한반도 신석기시대부터 있었던 지역적 특징이고, 특히 남해안 지역이 청동기시대 농경민 유입 이후에도 이러한 선주민의 토착 요소가 꽤 긴 시기까지 잔존했기 때문이거나 혹은 역사시대 일부 교류의 결과로 사후적으로 일본인이 들어온 것에 가깝지 고고학적으로 보았을 때 이 지역을 '왜계'로 규정하는 건 전혀 맞지 않음. 비단 고고학적으로도 그럴 뿐만 아니라 역사적 문헌에서도 이 지역을 왜로 지칭하는 경우는 이덕일 같은 인간이 문헌을 잘못 해석한 경우밖에 없음. 왜와 가라(한)은 그 당시 중국의 문헌에서도, 일본 측의 문헌에서도 언제나 바다를 경계로 나뉘고 있음이 반복해서 언급됨.
삼국지에 남쪽에 왜 접했다는거 보고썼는데 바다 남쪽이었군
그리고 고조선의 경우, 역사적으로는 위지 동이전 등에서는 '예'에서 준왕 전승이 기록돼 있는 등 일단 고조선을 '예'로 취급한 경향이 강함. 물론 본문에서도 언급됐지만 실제로는 고조선은 공간적 위치를 고구려와 더 밀접하게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고고학적으로는 전혀 맞지 않는 인식이긴 하지만 아마도 이 당시에는 고조선의 중심지가 변화했다는 명확한 인식이 부재했기 때문에 대충 퉁쳐진 인식이었던 것으로 보임. 아니면 낙랑군 등 고조선의 후기 중심지가 위치했던 지역의 토착민들의 정체성이 예였고, 이와 대비되어 압록강 유역에서 새롭게 부상한 집단인 고구려를 특별히 구별하는 인식에서 나왔을지도 모르고 말이지. 특히 한반도 계통의 여러 집단 중에 중국인들이 특히나 증오한 게 고구려였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름.
그래서 실제로 예나 맥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생각해보면 계속 앞뒤가 안 맞는 게 적지 않은데 예인이 고구려를 동종이라 말했다거나 하는 인식도 그런 류로 이해하면 됨. 어쨌건 이런 종족적 정체성이란 건 실제 역사를 그대로 반영하는 게 아니고 정치적 목적이나 역사적 오해나 여타의 이유로 얼마든지 가변적이기 때문에 그런 거.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신라인들은 초창기부터 끝까지 자기들을 일관되게 한이라고 인식했지 맥이라고 인식한 적은 당연히 없음. 특히 한이라는 집단 자체가 특히 낙랑군을 중심으로한 중국인들이 남방의 교역 대상에 대한 개략적인 인식을 가지고 형성된 개념인 거지 이게 명확한 어떤 정치적-종족적 실체였다고 오해하면 안 됨. 당장 마한권역만 해도 한강을 경계로 해서 그 이북과 그 이남의 문화양상은 꽤 다른데 그걸 그냥 역사적 맥락에서는 대충 마한으로 퉁쳐지고 있음. 이건 그냥 그 기록의 주체였던 중국인들이 특히 무역질서의 맥락으로 이 교역대상들을 분류한 것이 지금까지 기록에 남았기 때문임. 그러니까 목지국이란 나라가 그 예하(?)의 다른 나라와 교역을 하고 우리는 목지국하고만 교역을 하겠다 뭐 이런 방식인 거지.
이처럼 한 내지 삼한이란 개념자체도 뭔가 그들 내부적으로 다 명확하게 동질성이 있다기보다는 그냥 대충 남쪽에 있는 집단을 퉁쳐서 인식한 것을 남쪽 사라믈이 특히 이런 낙랑군과의 교역 과정이나 고구려 남진 과정 등에서 내면화한 것에 가까워서 딱히 고조선으로 흔히 이야기되는 초기철기시대 전후의 요령계 주민들의 문화적 영향을 엄청나게 크게 인식하고 있었다고 보기는 어려움.
@ㅇㅇ(211.207) 6부가 조선계라는 말때문에
@ㅇㅇ 그것도 솔직히 너무 늦은 시점에 나오는 기록이고, 특히 그 기록이 나온 삼국유사에서는 이미 고조선을 중심으로 한 정통론적 역사인식이 정립된 상태라 그냥 편집자들이 억지로 삼국의 기원을 고조선에 갖다 붙이는 식으로 이야기했을 가능성도 있어서 좀 크게 의미를 부여할만한 기록은 아니라고 생각함. 이미 삼국유사 왕력에만 봐도 추모를 단군의 아들이라 기록하는 등 좀 삼국의 모든 역사를 고조선을 중심으로 부회하는 경향이 강해서 당대인의 인식이 분명히 나타나지 않는 이상 좀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함.
근데 원고구려인들은 고고문화적으로는 다른 고조선 관련지역이랑 별차이없는거맞음?
@ㅇㅇ 압록강 유역의 고구려와 고조선이 시기가 좀 다르기 때문에, 이미 고조선이 한반도 내부로 밀려 내려간 이후에 잔존 지역에서 고조선이 나오기 때문에 바로 동일하지는 않지만 압록강 유역의 그 잔존 집단이 처음에는 고조선과 유사한 문화권에 있다가 차츰 특징적인 고구려 문화로 발전하는 연속적인 양상 자체는 고고학적으로 드러나고 있다고 알고 있음.
@ㅇㅇ(211.207) 고구려가 기자신도 섬긴거보면 나중에 나오는 단군조선은 아니라도 역사적으로 당대 조선이라고 불리던 집단하고 동질감 있던느낌(?)
@ㅇㅇ(211.207) 신라가 고고학적으로 남하흔적 있단 소리봤는데 이건 다른 삼한지역에도 다있는 전반적인 남하흐름임?
@ㅇㅇ 그러니까 신라 성립 이전, 초기철기시대 영남지역으로의 점토대토기문화-세형동검문화의 확산 자체가 호서지역에서 온 것임. 이미 호서지역에서 토착화한 세형동검이 영남 지역까지 간 거라 당연히 다 공유함.
@ㅇㅇ(211.207) 호서지역이라니까 중국정사에 신라왕이 백제인이라는 소리 생각나네,, 딱히 관련없어보이지만
싡라가 삼국중 가장 기록 많이 남았을거고 맘대로 주작치기 뭐했을텐데 적어도 후기 신라인 관점도 반영하지 않을까 삼국사기자체에는 선인왕검 얘기말고 단군조선 얘기도 거의 없고
@ㅇㅇ(211.207) 근데 신라인들이 초창기부터 자기 삼한으로 본거맞나 그 고구려백제신라 삼한일통말고
@ㅇㅇ 3세기 말 쯤에 신라가 진한왕이라는 이름으로 서진에 조공한 바 있음.
@ㅇㅇ 아 내가 햇갈렸다 삼국유사에 언급된 건 통전에서 인용해서 '조선의 유민들이 흩어져 72국이 되었다'고 적혀 있는데 정작 통전에는 그런 내용이 없어서 이게 일연의 가필이나 수정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로 한 맥락이었는데
직접적으로 진한 6부의 조선 유민 운운은 삼국사기에 나오는 내용이네. 물론 이 역시 출전이 정확히 어디에서 나온 내용인지는 잘 모르겠음. 삼국사기가 저술된 시점에는 아직 고조선 중심주의가 확립된 시기는 아닌데 말이지. 적어도 중국 사료에서는 준왕 남래라던가 위략의 역계경 상의 진한 이주 기사 정도 말고는 어디에서 인용해서 적은 건지 잘 모르겠네
@ㅇㅇ(211.207) 걍 진한이든 신라든 중국유민에서 왔다든가 고구려 유민에서 왔다든가 대륙이나 북쪽에서 남하관련 썰이 많이 나오던데 그냥 자기들이 남하한집단이라는 관념자체는 오래된거 아닐까
@ㅇㅇ(211.207) 조공얘기는 진서에 "[서진] 무제 태강 원년(280)에 그 왕이 사신을 보내 방물을 바쳤다. [태강] 2년(281)에 다시 와서 조공하였고 [태강] 7년(286)에 또 왔다" 맞음?
@ㅇㅇ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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