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그림 속의 가족엔 그 시대가 들어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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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가족을 그리다
박영택 지음
바다출판사
288쪽, 1만3800원

장욱진, 이중섭, 박수근. 한국의 대표적인 화가들이다. 이들에게는 또다른 공통점이 있다. 가족을 즐겨 그렸다. 그 가족은 요즘 CF에 나오는 그 ‘단란한’ 가족도, 국제결혼· 이혼 등으로 재구성되고 해체되는 그런 가족도 아니다. 전쟁으로 상처받은 이들이었다. 시대의 격랑을 관통하며 극심한 가난을 겪고, 가족과 이별한 아픔이 이들 그림에 붓자국보다 더 강한 흔적을 남겼다. 그림 속의 가족은 화가의 가족만이 아니라 같은 시대를 겪은 ‘우리 가족’의 초상이기도 했다.

미술평론가인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가족을 이야기한다. 전통 회화에서부터 근대기,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산업화 과정을 지나 현대까지 가족의 개념과 이미지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추적한다.

‘일심동체’의 가족을 그린 최석운 작 ‘돼지꿈을 꾸자!’(2003년)의 일부. 다소 위태롭고 누추하지만 꿈꾸며 나아가는 가족의 모습이다. [바다출판사 제공

많고 많은 소재 중에 왜 가족일까. 그는 “가족을 다룬 이미지에 한 사회의 모든 것이 응축돼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사람이 산다는 것은 가족 안에서 산다는 뜻”이라며 가족을 소재로 한 한국 근현대 미술을 잘 들여다보면 전통과 현대가 현기증나게 교차하고, 큰 변화를 체험해온 시대의 표정이 적나라하게 보인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한국 전통회화 속에 반영된 가족그림부터 들춘다. 조선시대에는 가족보다는 왕이나 사대부의 초상, 전적으로 남자의 단독 초상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림은 단순한 초상화를 넘어서 ‘아버지’ 중심적, ‘남자’ 중심적인 유교 사상을 정직하게 증언한 셈이다.

풍속화를 그린 김홍도(1713~1791), 신윤복의 아버지 신한평(1735~1809), 구한말 초상화가인 채용신(1850~1941)은 약속이나 한 듯이 모두 젖가슴을 드러내놓고 아이를 안은 아낙네 모습을 그렸다.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어머니’ 모습이야말로 한국인에게 모정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형상이자, 가족 그림의 한 전형이었다.

저자는 근대기의 ‘가족 사진’에도 주목했다. 부모님과 형제자매들이 한 자리에서 모여 찍은 가족사진이 “은밀하지만 강력한 한 가족의 통합 기능”을 적극 수행해왔다는 설명이다. 또 근현대 그림 속에 자주 등장하는 ‘아기보는 소녀’의 이미지에도 시선을 주는 그는 어릴 때부터 힘든 가사일과 동생을 업고 키우는 일에 내몰린 소녀들에겐 “아련하고 서글픈, 추억을 자극하는 감정이미지”가 담겨있다고 풀이했다.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근현대 미술작가와 작품을 자연스럽게 만나게 된다. 언급된 작가만 70여 명이고, 작품은 100점을 훌쩍 넘는다. 그런데도 놀라울 정도로 쉽고 친근하게 읽힌다. 미술사 지식을 과시하는 기색 없이 가족의 변천사와 한국 미술사라는 두 줄기의 이야기를 단단히 부여잡고 섬세하고도 뚝심있게 이야기를 끌어간 덕분이다. 저자는 “가족문제를 다루는 것은 일종의 근원탐구”라며 제법 묵지근한 화두를 ‘숙제’처럼 남겨 놓았다.

이은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