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ㅇ(61.101) 덧붙여서 태조 시기 여진 정책을 더 깊이 숙고하려면 태조 시절에는 (박정민 등의 논문에도 나오듯)명이라는 슈퍼 파워가 개입을 아주 적극적으로 안 했다는 점 + (조선 건국세력의 전제개혁 재평가 논문에서 말하듯)태조 정권은 재정이 없어서 선택지가 별로 없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거라 봄
근데 대역물 기본은 영토확장 + 사민정책 긍정인데 세종의 방향성 자체를 부정하는 건 누워서 침뱉기 꼬라지 아님? 북방으로 진출해도 여진족들이 '일가실각 데샤앗' 하고 쫒겨나는 수준 + 사민한다고 하면 '나라에서 공짜로 땅을 준다니 럭키비키잖아?' 하는 무한 긍정 마인드 탑재되는 소설이 아니라서 그런거지 확장한 영토에 인구심는다는 거 자체가 틀린거 같지는 않은데
02.26 01:32:10
SPIT
대역이 아니라 일반인식에 반론을 내미는 자료잖아 - dc App
02.26 01:43:26
대붕이3(175.203)
@SPIT 여기는 '역갤'이 아니라 '대역갤'인데? 영양가 없는 땅을 왜 먹냐 + 왜 백성들을 고통스럽게 하면서 사민하냐 이러면 대부분의 대역을 부정하는 꼴이고.
'세종의 여진정책은 패권주의였고 이는 아들 세조한테까지 충실하게 계승됨. 대신 세조는 이만주 잡았지'
흑흑 세조대왕님 아빠가 싼 똥을 치운 효자인데 왜 항상 아빠 정책을 망쳤다고 욕을 먹는가
02.26 02:38:37
ㅇㅇ
세조의 대표 업적인 경국대전은 세조가 7대왕이라서 가능했던 거고, 반대로 세조가 욕먹은 것도 7대왕인 그의 치세 말기부터 슬슬 드러난 조선이란 체제 자체의 한계를 세조 개인의 탓으로 돌리면서 빚어진 건데 임금도 시대의 흐름안에 있는 존재라는 걸 역덕들도 많이들 무시하지. x진갤처럼 악의적으로 호도하고 다니는 놈들도 많고
02.26 02:45:34
ㅇㅇ(219.240)
@ㅇㅇ 모갤은 세조 싫어하진 않을걸, 오히려 세조 관련으로는 여기서 세조 옹호파랑 맞는부분도 많다고 생각하지만 타갤이랑 논쟁될만한 사족은 거기까지
02.26 02:47:40
ㅇㅇ
@ㅇㅇ(219.240) 모갤은 7대왕이라서 가능했던 일들을 세조가 잘 나서 해낸거고 앞에 왕은 거품이라 못했다고 논지를 펴니 문제인 거
02.26 02:50:00
ㅇㅇ(219.240)
@ㅇㅇ 사족은 거기까지 라고 했는데ㅋㅋㅋ 그 위모갤은 태정태세문 신앙 과도하다면서 학을 때는 갤이라 말이 좀 과격하게 나오는 감은 있지 그게 거슬렸나 보네.
02.26 03:04:56
ㅇㅇ
조선판 동방식민운동인데. 잘 안된거임? - dc App
02.26 03:01:30
ㅇㅇ
잘 안 됐음. 6진 지역은 영조때 함경도에 교제창이 설치되고 연안 지역이 개발되면서 (니탕개의 난 때 방어를 힘들게 한 원인인)교통로도 개선되고 한결 살만한 땅이됨. 물론 단순히 교제창을 만들어서가 아니라 조선 후기 인구 펌핑이 뒷받침되면서 자연스레 개발로 이어진거지
02.26 03:06:30
ㅇㅇ(219.240)
경제연산에서도 짚고 넘어갔잖음, 이게 그냥 이주 동인을 제공하면서 올라간게 아니라 강제 사변이라서 지지부진했다고.
02.26 03:18:35
ㅇㅇ
잘 안됫다기 보단 그냥 원래 대부분 개척이 초기 들어간 애들은 개빡고생 하고 뒤에 들어간 놈들이 이익 챙겨먹는 구조가 보편적이란거 생각해 보면 걍 평범한 개척일상인듯? 초기부터 후기까지 쭉 이어진 개척인거지 뭐
02.26 06:47:11
ㅇㅇ
@ㅇㅇ(219.240) 사실 경제연산 시점인 연산군~중종 시대는 이미 인구 900만 넘고 인구 30~40% 가 토지 부족으로 노비 되던 시점이라 과잉인구 방출할 여지가 있는 것도 요인인듯. 경제연산 본편은 굳이 세종, 세조 시절이랑 비교할 이유가 없어서 언급 안한 부분이고
02.26 06:50:47
대붕이4(211.253)
@ㅇㅇ 인구 900만 가지고 토지부족은 그 뭐... 개발딸이 덜했다는 생각임. 내가 경제연산을 정말정말정말 혐오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인구가 넘네 뭐네 하는 그런 주장은 좀 싫어해...
02.26 09:09:45
대붕이5(211.226)
@ㅇㅇ 900만이 인구 과잉이면 추정인구 1700만 이상인 조선후기는 어떻게 살았냐;; 노비 40%도 솔까 과장이 심하고
02.26 09:33:48
ㅇㅇ
@대붕이4(211.253) 실제로 부족했으니까 뻑하면 기근으로 사람 죽어나가고 실록에도 '우리나라는 토지가 좁고 척박해서' 운운이 나오지. 당시 기술력 한계도 생각해야지 그냥 무작정 개발딸이랍시고 미래에서 화학비료라도 가져와야하나
02.26 10:25:44
ㅇㅇ
@대붕이5(211.226) 과장이 아니라 정말로 30~40%가 정설이고 단성호적 같은 걸 근거로 노비 비율이 60% 대라고 추정하는 정도는 되어야 과장이 심한건데.
02.26 10:31:53
대붕이4(211.253)
@ㅇㅇ 같은 조선이 최종적으로 개발 한계에 도달한 추정치가 1600~1700만인데 900만으로 아무튼 모자람 이러면 동의를 받기 쉽겠냐.
02.26 10:38:01
ㅇㅇ
@대붕이4(211.253) 목재 부족해져서 사방이 민둥산에 이상기후 발생하니 경신대기근급 난리도 터지고 건물도 작아지는 상황은 개발딸 고점이 아니라 인구 과잉 같은데
02.26 10:41:14
ㅇㅇ
@대붕이4(211.253) 고려는 12세기에 인구 300만으로도 유망 농민 증가하고 사회 불안 심각해지면서 결국 무신정변까지 이어짐. 인구가 얼마냐에 상관없이 그 시대의 생산력이 인구를 못 따라잡으면 압력이 생기는 거
@ㅇㅇ 멜서스 이론 신봉자인거 같은데 무신정변은 과도한 인구 어쩌고하고는 별 관련 없지 않음? 인구가 많아서 무신하고 문신들의 갈등이 발생한건 아니잖음
02.26 13:41:44
ㅇㅇ
@대붕이6(210.179) 요새 단순히 문무갈등으로 무신정변 발생했다고 안 함. 무신대우가 썩창이었다는 전제부터 어느 정도 재고가 필요함. 11세기 안정기 거치며 인구는 증가 + 12세기에 닥쳐온 기후 위기 + 영토 확장 실패 악순환 속에서 수조권 중첩으로 인해서 고급 관료와 하급 관료, 중앙과 지방,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전부 고독(蠱毒) 마냥 서로 착취해야 될 상황에서 터진 거임
댓글 영역
우리가 하면 개척이고 남이 하면 침략인게 이 바닥 아니겠습니까
꽤나 비판적이고 새로운 시각이네 정보 탭 가도 좋을 것 같음 - dc App
이게 재밌는게 이영x의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에 대응하면서 나온 기획임
새삼 여진족 커넥션 말아쳐먹고 여진족상대로 줘털린 주제에 즈그 외가만 조진 방원이 아들이라는게 느껴지는군
난 그 여진족 커넥션의 실체도 궁금함. 조선이 딱히 여진족 상대로 스탠스가 달라지는지 모르겠던데
@ㅇㅇ 여진족 커넥션도 좀이 아니라 대놓고 의심스럽긴함 단종실록에 적힌 흑흑 태왕각하...는 걍 프로파간다 수준이고...뭐 성계탕이 여진족 애들이랑 커넥션 있었다는건 알겠는데 그걸 증빙해줄게 딱히 없으니 걍 이새끼 또 주작친거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들긴함
@ㅇㅇ(61.101) 여진족들한테 사관이 없어서 조선측 기록에만 의존하면서 생긴 착시 현상 + 이성계가 동북면에서 날렸으니 당연히 커넥션이 깊을거라는 인상 비평일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ㅇㅇ 그럴 가능성도 적지않게나마 있는데- 일단 성계탕이 두만-압록의 여진족들과 커넥션이 있었다는건 사실이라고 생각함. 결국 중요한건 그거의 깊이를 따져보는게 관건이겠지만.
@ㅇㅇ(61.101) 본문에 언급된 박정민, 이규철 등은 이성계가 함길도 가서 주도한 조사의의 난 때도 여진족들은 딱히 관여안했다고 보더라
@ㅇㅇ 이규철, 조선초기의 對外征伐과 對明意識
@ㅇㅇ 박정민, 조선시대 여진인 내조 연구
@ㅇㅇ(61.101) 덧붙여서 태조 시기 여진 정책을 더 깊이 숙고하려면 태조 시절에는 (박정민 등의 논문에도 나오듯)명이라는 슈퍼 파워가 개입을 아주 적극적으로 안 했다는 점 + (조선 건국세력의 전제개혁 재평가 논문에서 말하듯)태조 정권은 재정이 없어서 선택지가 별로 없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거라 봄
@ㅇㅇ 재정이 없는 이유를 왠지 알것같은데 기분탓이겠지...
@ㅇㅇ(61.101) 소순규, <여말선초 전제개혁의 역사적 성격에 대한 재검토 - ‘사전개혁’ 에 대한 비판적 관점에서>. 그냥 조준이 주도한 고려 말 사전개혁 실체가 우리가 흔히 알던 거랑은 다름. 소순규 선생은 정작 태종이 왕조를 반석에 올렸다고 보더라
@ㅇㅇ 그거 읽어봤는데 논문자체가 미완인걸로 기억함. 본인이 추가적으로 논문써서 보충한다했는데 그거 나왔는지 모루겠네
같은 저자가 쓴 <조선 초기 경제사 연구와 그 역사상에 대한 비판적 검토> 이것도 있는데 안 읽었으면 읽어보면 좋음
@ㅇㅇ 이게 그거야? 넌 매우 스마트한놈이다...
@ㅇㅇ(61.101) 저거는 세종 시대 재평가 일환으로 15세기 연구하는 경제사 담론의 문제를 지적하는거. 위의 논문과 유사한 문제의식이 보이더라고
하하 광개토대왕과 세종대왕은 부동산 투기로 영토 넓혔응께
전가사변 중독자 재석이를 까야
범죄자 식민은 ㄹㅇ 해당 지역 인식 씹창내고 안 좋은 것만 많은듯
근데 대역물 기본은 영토확장 + 사민정책 긍정인데 세종의 방향성 자체를 부정하는 건 누워서 침뱉기 꼬라지 아님? 북방으로 진출해도 여진족들이 '일가실각 데샤앗' 하고 쫒겨나는 수준 + 사민한다고 하면 '나라에서 공짜로 땅을 준다니 럭키비키잖아?' 하는 무한 긍정 마인드 탑재되는 소설이 아니라서 그런거지 확장한 영토에 인구심는다는 거 자체가 틀린거 같지는 않은데
대역이 아니라 일반인식에 반론을 내미는 자료잖아 - dc App
@SPIT 여기는 '역갤'이 아니라 '대역갤'인데? 영양가 없는 땅을 왜 먹냐 + 왜 백성들을 고통스럽게 하면서 사민하냐 이러면 대부분의 대역을 부정하는 꼴이고.
@대붕이3(175.203) ㄱㅇㄷ?? - dc App
@대붕이3(175.203) 슬플정도의 지능...
@대붕이3(175.203) 요즘은 오히려 단순히 땅준다고 가는 소설들이 소수파아닌가
세종이 명군은 맞아도 행적 보면 성군까지는 애매함
근데 뭐 비슷하게 성군이라 불리는 왕들 보면 다 명암은 존재함 - dc App
@ㅇㅇ 유독 성역화되어있는건 팩트니까
'세종의 여진정책은 패권주의였고 이는 아들 세조한테까지 충실하게 계승됨. 대신 세조는 이만주 잡았지'
흑흑 세조대왕님 아빠가 싼 똥을 치운 효자인데 왜 항상 아빠 정책을 망쳤다고 욕을 먹는가
세조의 대표 업적인 경국대전은 세조가 7대왕이라서 가능했던 거고, 반대로 세조가 욕먹은 것도 7대왕인 그의 치세 말기부터 슬슬 드러난 조선이란 체제 자체의 한계를 세조 개인의 탓으로 돌리면서 빚어진 건데 임금도 시대의 흐름안에 있는 존재라는 걸 역덕들도 많이들 무시하지. x진갤처럼 악의적으로 호도하고 다니는 놈들도 많고
@ㅇㅇ 모갤은 세조 싫어하진 않을걸, 오히려 세조 관련으로는 여기서 세조 옹호파랑 맞는부분도 많다고 생각하지만 타갤이랑 논쟁될만한 사족은 거기까지
@ㅇㅇ(219.240) 모갤은 7대왕이라서 가능했던 일들을 세조가 잘 나서 해낸거고 앞에 왕은 거품이라 못했다고 논지를 펴니 문제인 거
@ㅇㅇ 사족은 거기까지 라고 했는데ㅋㅋㅋ 그 위모갤은 태정태세문 신앙 과도하다면서 학을 때는 갤이라 말이 좀 과격하게 나오는 감은 있지 그게 거슬렸나 보네.
조선판 동방식민운동인데. 잘 안된거임? - dc App
잘 안 됐음. 6진 지역은 영조때 함경도에 교제창이 설치되고 연안 지역이 개발되면서 (니탕개의 난 때 방어를 힘들게 한 원인인)교통로도 개선되고 한결 살만한 땅이됨. 물론 단순히 교제창을 만들어서가 아니라 조선 후기 인구 펌핑이 뒷받침되면서 자연스레 개발로 이어진거지
경제연산에서도 짚고 넘어갔잖음, 이게 그냥 이주 동인을 제공하면서 올라간게 아니라 강제 사변이라서 지지부진했다고.
잘 안됫다기 보단 그냥 원래 대부분 개척이 초기 들어간 애들은 개빡고생 하고 뒤에 들어간 놈들이 이익 챙겨먹는 구조가 보편적이란거 생각해 보면 걍 평범한 개척일상인듯? 초기부터 후기까지 쭉 이어진 개척인거지 뭐
@ㅇㅇ(219.240) 사실 경제연산 시점인 연산군~중종 시대는 이미 인구 900만 넘고 인구 30~40% 가 토지 부족으로 노비 되던 시점이라 과잉인구 방출할 여지가 있는 것도 요인인듯. 경제연산 본편은 굳이 세종, 세조 시절이랑 비교할 이유가 없어서 언급 안한 부분이고
@ㅇㅇ 인구 900만 가지고 토지부족은 그 뭐... 개발딸이 덜했다는 생각임. 내가 경제연산을 정말정말정말 혐오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인구가 넘네 뭐네 하는 그런 주장은 좀 싫어해...
@ㅇㅇ 900만이 인구 과잉이면 추정인구 1700만 이상인 조선후기는 어떻게 살았냐;; 노비 40%도 솔까 과장이 심하고
@대붕이4(211.253) 실제로 부족했으니까 뻑하면 기근으로 사람 죽어나가고 실록에도 '우리나라는 토지가 좁고 척박해서' 운운이 나오지. 당시 기술력 한계도 생각해야지 그냥 무작정 개발딸이랍시고 미래에서 화학비료라도 가져와야하나
@대붕이5(211.226) 과장이 아니라 정말로 30~40%가 정설이고 단성호적 같은 걸 근거로 노비 비율이 60% 대라고 추정하는 정도는 되어야 과장이 심한건데.
@ㅇㅇ 같은 조선이 최종적으로 개발 한계에 도달한 추정치가 1600~1700만인데 900만으로 아무튼 모자람 이러면 동의를 받기 쉽겠냐.
@대붕이4(211.253) 목재 부족해져서 사방이 민둥산에 이상기후 발생하니 경신대기근급 난리도 터지고 건물도 작아지는 상황은 개발딸 고점이 아니라 인구 과잉 같은데
@대붕이4(211.253) 고려는 12세기에 인구 300만으로도 유망 농민 증가하고 사회 불안 심각해지면서 결국 무신정변까지 이어짐. 인구가 얼마냐에 상관없이 그 시대의 생산력이 인구를 못 따라잡으면 압력이 생기는 거
@ㅇㅇ 경신대기근이 무슨 과도한 개발탓임;; 그냥 전 지구가 소빙하기 들어선건데
@ㅇㅇ 멜서스 이론 신봉자인거 같은데 무신정변은 과도한 인구 어쩌고하고는 별 관련 없지 않음? 인구가 많아서 무신하고 문신들의 갈등이 발생한건 아니잖음
@대붕이6(210.179) 요새 단순히 문무갈등으로 무신정변 발생했다고 안 함. 무신대우가 썩창이었다는 전제부터 어느 정도 재고가 필요함. 11세기 안정기 거치며 인구는 증가 + 12세기에 닥쳐온 기후 위기 + 영토 확장 실패 악순환 속에서 수조권 중첩으로 인해서 고급 관료와 하급 관료, 중앙과 지방,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전부 고독(蠱毒) 마냥 서로 착취해야 될 상황에서 터진 거임
근데 태조때 북진이라는 표현이 맞나? 그때는 걍 지배권 아니엇음?
그럼 4군6진은 굳이 따지자면 세종의 업적이 아니라 이성계랑 이방원 대부터 이어져온 사업인거네?
이럴수가 그럼 내가 지금까지 해온 국사 공부는 도대체
대붕이는 갤러리에서 권장하는 비회원 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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