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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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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4번의 100년 전 조약가지고 진짜 독일이랑 싸울 생각이냐? 고 했던 게 독일 반응이 아니고 영국 국내 반응이었음?
국내 전체 여론을 대표하는건 아니지만 참전 당시 영국 의회에서 나온 반응으로 알고 있음
세르비아 군부는 프란츠 페르디난트보다도 파시치를 더 쏴죽이고 싶었을테니ㅋㅋㅋ
글고 오헝이 파시치 지방 유세타이밍 노려서 최후통첩 전달하기도 했음. 일부러 반응 늦게하라고
@해적사냥 ㅇㅇ 글치. 오헝이 전쟁 꺼렸다 어쩌고도 헝가리 야그고 헝가리 적당히 속이려고 했던 과정때문에 그런거지 제국과 제국군은 무슨 수를 쓰건 꼬라박으려고 작정하고 있었다고 봐야하고.
@대붕이1(218.48) 헝가리는 생각보다 쉽게 타협함. 암살 며칠안가 전쟁에 동의함. 암살~최후통첩까지 시간이 오래걸렸던 이유는 걍 그때 오헝군 대다수가 추수 돕는다고 고향에 휴가가있어서 7월 25일인까지 총동원령이 아예 불가능해서 그랬던거. 최후통첩하고 48시간 안에 개전할 생각이었는데 25일까지 총동원령 못내리니 최후통첩도 지연되었던거지
딴건 잘 몰라도 영국은 벨기에안쳐도 참전했을거같긴함 지구온라인에서 수백년간 레이드 공대장해먹은애라 - dc App
브누아 슈뉘에 따르면 영국 내각에선 8월 2일, 시간상으론 벨기에에 최후통첩이 전달되기 전에 프랑스를 지원할 목적으로 참전을 결의한 상태였음
즉 벨기에 안 쳐도 프랑스를 치면 영국은 곧 참전했을 거라는 말
프랑스가 우리만이라도 전쟁 안하는거 가능하쉴?
이건 왜 안받아들인걸까... - dc App
근데 프랑스가 전쟁피로도 MAX찍은 2머전도 아니고 1머전이면 보불전쟁 복수주의로 가득찼을텐데 독일군이 그거 믿고 병력 빼면 기습선전포고하려는 기만책 아님? - dc App
3공의 독일 복수주의는 좌우 안 가렸으니까
@ㅇㅇ 보면 독일이 제안한게 아니라 프랑스가 독일에게 한거 아님? - dc App
그 당시 독일 작계가 너무 빡빡해서(소위 시간표 전쟁) 독일군 전체가 서부전선으로 한번 갔다가 동부전선으로 갔어야 했다(고 몰트케는 인식하고 있었음). 일단 서부전선으로 가긴 갔으니 동부전선으로 이동하는 군대 뒤가 가렵지 않게 요새를 내놔라 이 얘기인데 프랑스가 이걸 받겠냐고.
@독라중기병 이미 푸엥카레랑 러시아는 그 전에 회담으로 얘기 마쳐서 안 될 걸? 이미 프랑스도 러시아랑 비슷하게 동원버튼 눌렀던 걸로 기억함
@해적사냥 팔병신이 멈춰!! 협상으로 쇼부보기로 했다! 했는데 기차시간표 꼬인다고 전쟁한 놈들답네... - dc App
@해적사냥 쏘가리는 커녕 갓 입대한 훈련병도 이거 통수치려는거 아님??? 라고 생각할듯 - dc App
@ㅇㅇ 통수치려는거 맞잖아... - dc App
@독라중기병 ㄴㄴ 프랑스 보불전쟁 복수주의가 강했던건 1890년 정도까지임. 딱 까놓고 말해 1914년이면 보불전쟁 발발 40년 뒤인데 우리나라 90년대 생각해보셈. 청장년세대한텐 자기 태어나기 전 얘기라고. 거기에 정치인들이 너무 복수 운운하며 우려먹다보니까 만성화되어서 질린 감도 있음. 1900년대쯤 되어서는 국력차 확실히 인식한 나머지 독일 상대로는 복수심보다 두려움이 더 강했음. 그래서 요새선 줄줄 깐거고
@독라중기병 정확히는 러불협상이 '독일'대상 방어 전쟁임.
그래서 독일이 참전 안하면, 프랑스는 러시아-오스트리아 전쟁에 끌려갈 이유가 없음 << 이거 같은데
@독라중기병 사실 (몰트케는 인식하고 있었음)이라고 쓴게, 그당시 철도/보급 다루고 있던 그뢰너는 (전후에) 병력 돌리는거 가능했다고 말했거든. 이게 실제로 가능했는지, 아니면 전후에 몰트케 비토분위기 타고 말한건지는 2대전에 독일군 문서보관고 폭격맞고 증발하는 바람에 알기 힘들지만
@ㅇㅇ 아하. 프랑스가 독일에게 우린 전쟁하지말고 오스트리아하고 러시아가 싸우게 두죠? 한거였나보네 - dc App
@독라중기병 애초에 프랑스는 극단주의 세력 빼면 알자스-로렌 문제에서조차 되돌려 받으면 좋겠지만 그걸 이유로 전쟁 벌이면 안 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었음
@대붕이2(122.35) 아니. 이새끼들 전쟁의지 왜이래.
내가 아는 파리따이면 보르도로, 보르도 따이면 알제리로 가서 항전할 애국주의는 어디간거야.
그건 전쟁하면서 반전주의자 평화주의자 총살하면서 프로파간다 돌려서 만든건가? - dc App
@ㅇㅇ 푸앵카레와 니키가 회담에서 무슨 말을 주고받았는지는 아무도 모르고 추정만 할 뿐임. 다만 회담 이후 푸앵카레는 프랑스 돌아간다고 5일간 바다에 떠있었고 그동안 외부 소식을 받지 못함(오헝이 바로 이 틈을 노리고 최후통첩 시점을 조절한거임). 5일 후 육지에 내리고서야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거 파악하고선 울며 총동원령 내림. 사전 회담에서 총동원령 합의가 있었는지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음
@독라중기병 레옹 강베타가 1875년에 기고한 사설에 나온 '늘 생각하되 말하지는 마라.' 라는 문장이 프랑스 3공 수립 이후부터 주류 세력의 알자스-로렌에 대한 태도를 대변함
@해적사냥 크리스토퍼 클라크의 7월 위기에 관한 레퍼런스 보면 프랑스가 러시아와 동맹에 관한 확인을 이미 했다고 나오던데
@해적사냥 독일이 오스트리아 헝가리에게 백지수표를 줬듯, 프랑스도 러시아에게 백지수표를 줬다고 나옴
@ㅇㅇ 그니까 그 백지수표 얘기 나온게 오헝이 세르비아한테 최후통첩 날리기 직전의 러불 정상회담에서 주지 않았겠느냐~ 이건데 그 회담 내용이 남아있지가 않고 다 추측임. 갠적으로는 푸앵카레가 내각+의회와의 협의도 없이 독단적으로 백지수표를 약속할만한 힘이 있었다고 보이지 않음
@대붕이2(122.35) 80, 90년대에는 줄었다가 푸앵카레 시절에 다시 복수주의가 주류로 돌아왔음
오죽하면 보수주의자들 조차도 수구꼴통이라고 할 정도였으니까
@ㅇㅇ 어디까지나 푸앵카레 개인이 강했던거고 프랑스 입장서 1914년은 전쟁하기 그리 좋은 타이밍도 아녔음. 클라크는 1913년 러시아군 Great Program 들면서 러시아군 전력이 확충되었다 얘기하던데 그거 통과된게 1913년인거지 1914년 8월 시점서는 아직 1차 예산집행도 못했다고. 몇년만 기다리면 러시아쪽에서 80만 추가되는데 1914년 시점서 전쟁 왜함?
@해적사냥 러시아가 오헝에게 질 걸 내부적으로 알았는데도 세르비아에 백지수표를 줬다는 건, 푸앵카레가 강경하게 나갔을 거라는 추측밖에 되지 않음.
당시 프랑스 대사였던 모리스의 회고록에도 프랑스는 러시아와 강경대응 할 것이라고 적혀있고
@해적사냥 아오 내가 병신이었네.
클라크 의견을 들고 클라크가 비판하는 본문을 반박? 했네 ㅋㅋㅋ
@해적사냥 정확하게는 당사자들 말고는 아무도 모르지.
네 의견도 추측이고 내 의견도 추측일 뿐이니까
@ㅇㅇ ? 아니 러시아가 오헝한테 질 걸 내부적으로 알았다는건 1908년 얘기임. 수흐몰리노프 개혁으로 전력 회복한 1914년 입장서는 충분히 가능한 얘기고, 뭣보다 오헝이 1908년에 러시아 자존심을 너무 밟아놔서 러시아 민족주의가 대폭 불붙었다니까.
14년도의 러시아는 세르비아한테 백지수표 끊어주는거 외에 선택지가 없었음 : 이거는 러시아 기준으로 세상을 봐야 하는 그야말로 쉴드 그 자체구만
데프프픗 오마에의 위신을 생각하면 다른 선택지가 없는 데치~ 아오 루스참피국 ㅋㅋㅋ
저거 말고도 2차 발칸전쟁으로 불가리아가 완전히 미쳐버리는 바람에 세르비아까지 버리면 러시아가 발칸에서 완전히 축출되는 판국이라서 누구라도 러시아는 세르비아 못 잃는다고 개전할게 뻔하단 예측이 지배적이긴 했음
@ㅇㅇ(221.168) 근데 위신때메 다른 선택지 없음 이건 오헝도 마찬가지라서... 오헝이 사라예보 이후 전쟁을 택한게 '죽는게 두려워 사형집행을 택했다'고 까지 평가받으니 ㅇㅇ 영혼의 소울메이트인 러시아처럼 오헝의 행동원리도 많은 부분에 있어 위신때문이었음 - dc App
유럽이 그레이트 워를 피할 길은 없었다가 결론이네
대붕이는 갤러리에서 권장하는 비회원 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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