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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공부 망상 - 엄기호, 하지현 완독

개쳐귀여운샛별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6.02.08 20:06:00
조회 234 추천 5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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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읽은 책마다 감상문 대충 쓰려고 했더만 귀찮아서 안 되노 


이거 읽기 전에 읽은 책들을 다 무시하고  이거부터 대충 써보자 써보자 썹

귀찮



아무튼 




대학에서 직접 청년을 만나며 공부와 교육의 문제를 체감한 사회학자 엄기호, 고통받는 현대인의 심리를 가장 가까이서 관찰한 정신과 전문의 하지현이 『공부 중독』(2015)에 이어 10년 만에 새로운 대담집 『공부 망상: 공부는 어떻게 우리의 믿음을 배신했는가』를 출간한다.

두 저자는 10년 전 대담에서 삶의 모든 단계를 유예시키는 프리 패스인 ‘공부’라는 성공 방정식이 더는 사회적으로 유효하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다. 사회 구성원이 공부에 중독되어 가용한 모든 자원을 쏟아붓고 끝없는 시험과 라이선스 취득의 루프에 들어갔던 2015년, 적어도 우리는 한국 사회의 공부 방식이 심각하게 문제적임을 인지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한국은 공부에 중독되어 있으며 이에 더불어 사회 곳곳에 퍼진 것은 피해의식과 분노다. 공부만 잘하면 무엇이든 쟁취할 수 있다는 능력주의의 약속이 허물어진 지는 오래지만 여전히 우리는 그나마 ‘공정한’ 이 방식에 매달리며 각자의 피해 서사를 쓰고 있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한들 부모의 축적 자산을 상속받는 이들을 넘어설 수 없는 청년들도,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경제/문화/사회 자본을 토대로 사회적 성공을 이룬 엘리트들도, 계급 사다리의 최상부를 차지하고 있는 초엘리트들도 마찬가지로 지금 자신의 자리와 주어지는 사회적/경제적 보상에 진정으로 만족하는 사람은 몇 없다. 이 피해의식이 ‘공부하면 다 가질 수 있다’는 여전한 만능감과 충돌하는 지금, 『공부 망상』의 두 저자는 한국 사회의 공부가 만든 유능한 무능력자, 진보주의자 부모의 가족 이기주의적인 교육과 양육, 청년 세대의 극단주의와 극우화, 정치와 교육에 대한 논의를 폭넓게 아우르며 이제는 거의 모든 이에게 의심 대상이 된 ‘공부의 기쁨’을 어떻게 되찾을 것인가를 절실히 묻는다.






라는 내용의 책이다 


대담집임. 


사회학자 엄기호, 정신과 전문의 하지현 쌤이 서로 공부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데, 뭐 오또케 하면 공부를 잘하지? 이런 내용이 아니라 


센징이들 정신 상태 분석이라고 보면 된다


그치만 이제 대담집 형태라서 엄밀히 따져보기 시작하면 모든 주장들이 좀 피상적이고 인상 비평에 지나지 않은. 


근데 또 갓 나온 따끈따근한 책이라 동시대를 다루고 있으니 아 뭐 맞는 소리노~ 하고 공감이 가는. (여기에 공감 못 하는 사람들이 보면 부들부들 바들바들 요들요들 떨 것 같은 책이라 평점이 벌써 씹창난 모양이다)

 

이런 책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맛이 떨어진다만 2025 12에 갓 나와 뜨거운 상태이니 그럭저럭 맛있게 먹었다


아니 사실 알고 있었지만 잊고 있었던 걸 다시 되새기게 해주어서 꽤 뜻 깊구나.. 




다 읽고 보니, 


그래서 대안이 뭐냐? 라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뭐 일단 정답을 제대로 말하기 전에 문제부터 지적하고 가야 올바른 답을 찾아낼 수 있지 않겠노? 


이 책에서도 지적하는 게 그런 지점이고. 


효율성만을 위한 효율성이라는 게 말이 안 되는 소리이고, 무수히 좆망한 기업들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결국 그것은 가장 비효율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논리적 귀결을 모르는 좆간들이 노무 많은 듯하다. 


그러니 가끔은? 아니 수시로 우리가 지금 어떤 상태인가를 되돌아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정신과 전문의와 사회학자의 대답짐이라 그런 작업을 하기에 적절하다. 


샛별이 취향에도 맞았고. 




그나저나 대담집이라는 글의 형태가 오모로시하구나. 


이승종 철학자가 2인칭적 대화... 뭐 이런 이야기를 하시던데 그게 떠오른다. 


근데 그런 대화는 서로 스파크가 튀어야 하는데, 이건 서로의 마음이 너무 잘 맞아서 누가 누구인지 잘 구별이 안 갔던게 좀 아쉬웠다. 


정신과 전문의와 사회학자. 두 영역은 분명 다를 텐데 이렇게 비슷한 관점의 말이 나오는 걸 보면 센징 사회의 정신성에서 드러나는 문제들이 너무나 명확하고 또 그만큼 깊다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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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책 읽으며 메모한 것이다 


씨발 종이책 읽을 때는 일일이 적어야 해서 정말 중요한 구절이다 아니면 메모 하기 좆 귀찮은디 밀리로 읽을 때는 딸깍딸깍 할 수 있어서 참 좋구나 



***


>>>








반면 중산층 이상의 계층에게 한국의 능력주의는 실패한 약속이다. 의사와 변호사를 포함하여 많은 전문직은 자신들이 들인 노력에 비해 주어지는 보상은 적다고 여긴다. 경제적 보상을 비롯하여 노동 조건이나 사회적 존중과 인식 등 모든 면에서 박탈감을 느낀다. 오히려 능력주의를 제한하는 수많은 규제와 ‘평등’ 조치들이 한국 사회를 통제하고 있다며 불만을 터트린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능력주의의 수혜자이지만 정작 이들은 자신을 능력주의의 실패에 따른 피해자라고 인식한다. 따라서 이들에게 퍼져 있는 것도 피해 서사다.



그런데 지금은 사회 어디를 보나 ‘피해’에 대한 서사가 대세를 이루고 있어요. 이렇게까지 준비되었고 이 정도까지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타인의 부조리로 인해 피해를 받고 있다는 생각이 확산되어 있어요.



무작정 자기 계발에 열중하던 시대와 비교하자면 이제는 구조적 모순을 깨달았달까요? 



자기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된 겁니다. 개인이 아무리 잘해봤자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걸요.




자신이 다 준비가 되었는데도 세상 혹은 타인들 때문에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다는 분노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나를 알아주지 못하는 세상에 대한, 나를 제대로 대접하지 못하는 타인들을 향한 피해의식이 만능감과 합쳐져서 분노와 증오가 만들어지고 있어요. 소위 ‘착실하게’ 공부를 많이 한 직종과 사람들에게서 이런 경향이 더 강하게 나타나는 게 묘하지요.



최소한 10년 전까지 중산층과 하위층에게 공부는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거나 획득하는 유효한,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어요. 자산 없이 근로 소득으로만 돈을 버는 중산층에게 공부는 부모의 지위를 자식에게 물려줄 길이었고, 하위층에게는 중산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가장 공정한 성공 방정식이었어요. 그때 우리는 공부가 한국 사회에서 계층 간 경쟁을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었어요. 한편 상류층에게는 일종의 트로피가 필요했어요. 막대한 자본을 투자해서 학력까지 얻으면 더 만족스러웠던 겁니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공부에 대해서만은 이견이 없었어요.



투자 대비 효율이 확연히 떨어지는데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이 이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걸 느끼면서도 습관적으로 공부에 목매다는 것은 공부에 중독되었기 때문이지 않겠냐고요




아이들이 출발선에 서는 시기가 앞당겨지고 있어요. 같은 속도로 달린다면 조금이라도 더 일찍 시작할수록 결승선에 먼저 도착한다는 간단한 논리가 작동한달까요. 



다른 한편으로는 해봤자 소용이 없다는 패배주의가 확산되고 있어요. 지금 2, 30대가 열심히 노력해서 대기업에 입사하거나 전문직이 되어 근로 소득에서 비교적 우위를 점한다 해도, 부모 세대의 축적 자산을 물려받는 이들을 넘어서기 어렵다는 것이 통계로 증명되고 있어요. 이를 가리켜 ‘세습 자본주의(hereditary capitalism)’라고도 하더군요.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속계급사회(inheritocracy)의 청년들은 ‘해서 뭐 하나’ 같은 열패감에 사로잡혀 있어요.




과거에는 하위층이 공부를 통해 위로 올라갈 수도 있었어요. 학력 자본이 경제 자본으로 호환되고, 문화 자본도 될 수 있었지요. 



한국에서는 하위층보다 중산층이 더 보수화되는 경향이 있고 사회에 반발심이 커지고 있어요.* 



지금은 예전만큼 보상을 받을 가능성이 확연히 떨어져 있다 보니 중산층을 중심으로 피해의식이 굉장히 많이 확산되었어요. 공부에 어마어마한 자본을 투여했는데, 기대한 아웃풋이 나오지 않고 오히려 줄어드는 것에 분노하지요. 지금 가지고 있는 것마저도 언제 뺏길지 모른다고, 이미 뺏겼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여전히 공부는 ‘능력’ 있고 더 많은 성과를 낸 사람에게 사회적 사다리를 올라가거나 문화 자본을 획득하는 도구일 뿐만 아니라, 만능감을 보존하는 유용한 수단이에요. 한편에서는 피해의식이 확산되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 공부는 여전히 만능감을 느끼게 해줍니다. 이 만능감과 피해의식이 결합해 엄청난 상승 작용이 일어나고 있어요. 



자신은 굉장히 만능한 존재인데 다른 한편에서는 끝없이 빼앗기고 있고, 언제 빼앗길지 모르는 피해자가 되고 있다고 생각하지요.



10년 전의 패러다임이 ‘우리의 배움은 계속 되어야 한다’였다면 지금은 ‘나는 나대로 한다’가 되어버렸달까요.




자기 자신을 가시화하지 않으면 마치 존재가 사라지는 것 같으니까요. 



규모를 이루면 나아가 일종의 세계를 만들 수 있어요. 이 말인즉 그 안에서 자급자족이 가능해진다는 의미예요. 시장이 형성되는 것이지요. 그때부터는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습니다. 그 안에서 충분히 살아갈 수 있게 되거든요.



제도 교육과 공교육의 역할은 평균을 높이는 일이에요. 교육 과정을 착실하게 밟는다고 해서 천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이 경멸이 보편 교육에서의 공부가 천재를 만드는 일이라고 착각하는 데서 만들어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해도 해도 안 되는데 날 때부터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 포기하고 싶겠지요. 



우리는 보상을 계량화할 수 있는 돈으로만 보고 있어요. 정량화·객관화된 금전적 보상만이 가치 있고 다른 걸 좇는 사람을 가리켜 현실로부터 도피한다고 생각하고요. 




첫째로는 우리는 자기 자리에 충만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 ‘여기’ 있을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매우 강해요. 그 자리에서 더 나은 사람이 되려는 것이 아니라 자리 자체가 자신과 안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정성을 다해 일하는 모습을 보기는 힘들지요.



정규 교육 과정에서 일찌감치 떨어져 나와 지적 교양과 사회적 상식 수준이 확연히 낮아진 사람들이에요. 저는 ‘외로운 늑대’에 비유하곤 해요. 약간의 우울이 깔려 있고 거친 성정을 가졌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고립된 채 외로워하고 있지요. 학교를 일찍 그만둔 데다 가정에서도 사회화의 경험을 하지 못해서 감정 표현을 어려워하고 관계 맺기에도 서툴어요. 어쩌면 사회적 능력이 무엇보다 더 중요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요.



여기서 후자의 그룹, 사회화를 충분히 경험하지 못한 채 또래 집단과 끝없이 경쟁만 하며 자란 사람들이 이제 중장년층이 되어 사회적 지위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공부를 통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기술을 습득했고 그 결과 상당한 경제적, 사회적 보상을 얻었어요. 하지만 공감 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연대의 필요성을 잘 느끼지 못하고, 실패에 대한 내성이 약합니다. 정




다른 사회적 활동 없이 공부 머리만 키운 사람들은 자기가 한 공부로 세상을 바꿀 수 있고, 또 정의롭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공부는 만능한 도구, 더 정확히는 전능한 도구로 받아들여지고 있어요.



자신은 전문가로서 정답을 알고 있고 당신은 비전문가이니 정답을 모른다는 겁니다.



아무리 규모가 큰 집단 지성이 달라붙는다고 해도 전문 지식을 넘어설 수 없는 영역이 있습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시민적 통제를 너무 싫어하고 무시합니다. 저는 시민적 통제를 무시하는 전문 지식의 바탕에 ‘우리만 제대로 알고, 우리만 토론할 수 있다’는 특권 의식이 깔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유래된 것이 ‘민중은 개11돼지’라는 인식이에요. 민중이 주체가 아니라 그저 시혜의 대상이기만 하다는 의식이 담긴 말이에요.



학생들이 자기 성향에 따라 그중 하나를 선택하고, 이후에 그 계열에서 공부를 계속하면서 성향이 강화되고 그걸로 자기 자신을 규정하게 되니까, 학교 이후의 삶에도 이런 프레임이 가치관과 생각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려워요. 



한국의 전문가들은 시민적 통제를 너무 싫어하고 무시합니다. 저는 시민적 통제를 무시하는 전문 지식의 바탕에 ‘우리만 제대로 알고, 우리만 토론할 수 있다’는 특권 의식이 깔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유래된 것이 ‘민중은 개11돼지’라는 인식이에요. 민중이 주체가 아니라 그저 시혜의 대상이기만 하다는 의식이 담긴 말이에요.




명백한 답을 찾으려는 사고방식이 너무나 오랜 시간 동안 한국 사회에서 주도권을 얻어왔어요. 확실하고 반론 없는 정답을 원하는 사고를 어릴 때부터 체계화해서 모두가 정답이라고 인정하는 선택을 하려고 해요



0과 1의 세계의 공부가 무언가 중요한 것을 빠트린 공허하고 얕은 사고라는 걸 본능적으로 느끼는 거예요. 



유튜브가 순식간에 정리한 정보를 스낵처럼 소비하면서 인문학도 한다는 지적 포만감만 느껴요. 



결국 의미와 맥락에 대한 성찰이 없는 얕은 지식만 쌓이고 0이거나 1인 정답지만 남습니다.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자꾸 일종의 해킹으로 바라보는 겁니다. 문제의 약점을 파악해서 최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일종의 꼼수를 찾는 게 공부라고 생각하고 그걸 ‘안다’고 착각하는 양상이 보여요.



발화자의 말에 귀 기울이기보다 발화자가 어느 편에 서 있는지만 보고 판단을 쉽게 내리는 편향이 생길 수 있어요. 



단일한 정답 찾기, 극단적인 효율성의 추구, 고도화 같은 한국 사회의 공부 방식이 유능한 무능력자들을 양산해내고 있어요.



모호한 과정에 머무르면서 실패하고 좌절하는 것 자체가 실은 경험 축적의 시간이라는 걸 이해하기 어려워졌어요. 



‘최적화된 삶’을 살아가는 거예요. 고도화해서 최적화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런 삶은 확실한 정답이 존재한다는 것을 가정할 때만 가능합니다.




한 분야를 오랜 시간 공부하고, 또 업으로 삼아 일을 하면 불가피하게 업의 특성이 한 사람의 정체성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공부를 가치 지향적으로 배운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가치와 기술이 별개라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기술 안에는 이미 가치가 배태되어 있어요.



정치가 전문 직역이 되면 정치인의 대다수를 법조인 출신이 차지하게 됩니다.



정치에 인문과 자연, 예술계를 포괄한 다양한 직종이 모이는 것이 아니라, 특정 성향의 특정 직종이 많이 모이는 편향이 두드러지고 있어요. 



초기에는 보안을 강화하는 정도겠지만 정도가 심각해지면 개인은 무장을 하기 시작합니다. 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무장하는 것에서 나아가 법을 넘어서서 무장하게 되면, 폭력의 통제로 작동하는 근대 시스템 전체가 붕괴하게 될 겁니다. 이것이 더 큰 공포를 불러오고 사람들은 더 강력한 공권력을 요청하게 되겠지요.




자신이 부모 세대와는 다르다고 생각하지요. 부모 세대는 억압적이었지만 자신들은 자유롭고 민주적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어요. 시점(視點)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본다면, 이들은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아이들을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어요. 이러한 시점은 그들의 부모 세대보다 훨씬 더 강화되었어요.



사회 정치 시스템에 거는 이상과 괴리가 크면 멘털이 이상해져요. 스스로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더욱이요. 



이럴 때 완전히 다른 쪽으로 전향하는 사람도 있고, 어느 한쪽을 부정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스스로 진보 지식인이라고 생각하는 86세대 중에 가족 이기주의적인 성향을 가진 부모가 많아요. 자신이 어릴 적에 누리지 못한 문화적 향유를 아이가 누리도록 투자하는데, 이것은 아이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기 지위를 유지하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가족을 자신의 자아와 동일시하는 겁니다. 『하루키, 하야오를 만나러 가다』6를 보면 일본도 마찬가지예요. 



확대가족이 사라지고 핵가족이 똘똘 뭉치게 되면서 가족중심주의가 더욱더 강화되고 있어요. 



자기 안에 있는 ‘자신의 자아’가 바람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걸 납득할 수 없는 거예요




방법론적 옳음뿐만 아니라 도덕적 옳음까지 포함하는 확신이에요. 저는 이게 더 무섭다고 생각합니다.



자아는 비대해질 대로 비대해졌는데 스트레스 감내력은 허약해진 비대칭 발달이 일어나고 맙니다. 자기가 대단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환상을 가진 채 성인이 되어가고 있고, 자기는 ‘여기’에 있을 사람이 아니라는 불만이 있으니 어떤 성취에도 좀처럼 만족하지 못하지요. 내면에 분노만 남은 경우도 허다합니다.




세상을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고,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걸 부인하고, 감정에 치우쳐 과민하게 반응하며 자기애의 갑옷을 두르고 허세 담긴 희망을 말하나 그 근거는 빈약하고 실천은 없습니다. 




여기서 ‘나’의 실체는 자기 자신으로서의 자아가 아니라, 가족이나 직역 등의 어떤 집단 정체성입니다. 권력화된 집단이나 이익 집단의 관점에서 자기 자신을 항상 바라보는 것이지요.




여기서 ‘나’의 실체는 자기 자신으로서의 자아가 아니라, 가족이나 직역 등의 어떤 집단 정체성입니다. 권력화된 집단이나 이익 집단의 관점에서 자기 자신을 항상 바라보는 것이지요.



가끔 소위 상위권 대학의 학생들이 대학과 자신의 정체성을 강력하게 동일시하면서 다른 집단에 배타적이고 차별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을 볼 때가 있어요. 이전에는 비수도권 분교나 타 대학에 대한 우월 의식과 차별이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은밀하게 작동했으나 이제는 노골적으로 드러내더군요. 소위 말하는 ‘입결(입시 결과)’을 내세우면서 자신과 그들이 결코 같은 취급을 받을 수 없다고 하면서요.



가족’이 더 잘살게 만들고 싶었다면, 이제는 거기에 더해서 자신의 ‘직역’, 즉 자신의 사회적 정체성을 규정하는 집단이 또 하나의 가족 자아를 형성하게 되면서 ‘우리’와 ‘우리 아님’을 가르는 배타성이 굉장히 강해지고 있어요. 



가족’이라는 단어가 지금 사회과학에서 쓰는 보편적인 개념으로 말하자면 ‘부족’이에요. 현대 사회의 ‘나’는 ‘부족주의화된 나’라고 할 수 있어요.




갈수록 이들에게서 사회 전체에 대한 윤리의식이 희미해지는 경향이 보여요. 직역 내부의 논리를 강화하는 데만 신경을 쓰다 보니 이것이 사회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고려하지 않는 것이지요. 공감 능력도 선택적으로 작동한다고 말하잖아요. 




부족주의가 가장 경계하는 것이 역지사지예요. 우리가 타자에게 일단 한번 감정이입을 하고 그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면 타자를 마냥 타자화할 수 없게 됩니다.




부족주의는 이러한 감정이입을 매우 위험하게 봐요. 바깥과 타자를 무조건 적대시하고 경계하고 배제해야 하는데, 내부에서 역지사지하는 인간이 등장함으로 인해 경계가 무너지니까요. 따라서 부족주의에서는 외부의 타자만큼이나, 역지사지하자고 하는 내부의 사람들을 위험시하고 적발하여 처단하려고 합니다. 이들이 동조자 혹은 간첩이며 내부에서부터 부족을 붕괴시킨다고 말하지요. 이번 의정 사태에서도 똑같이 작용했어요.



공감은 그저 남에게 감정이입만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는 감정이입을 하자마자 그 느낌이 부분적이고 불완전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타자와 완전히 남이 될 수 없는 ‘나’를 인식하게 됩니다. 그러면 이때부터는 ‘나’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남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를 갖게 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공감은 남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자신도 돌아보게 해요. 이를 통해 나 자신과 세계에 대한 앎이 더 넓고 깊어집니다. 이것이 공부의 본질인 ‘읽기’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에요. 부족주의화된 자아에서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 과정이지요.



역사적으로 다른 사회에서는 부족이 계급, 종교, 인종, 지역 등의 경계에서 만들어졌는데 한국에서는 직역의 경계를 타고 서열화되면서 만들어지고 있어요. 직역이 부족화되면서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가 ‘직역의 신분화’예요. 그 증거 중 하나가 세습입니다. 의료계, 법조계뿐만이 아니라 예술계도, 대기업도 세습을 통해서 신분제로서의 부족주의를 완성하고 있어요.



한데 지금은 부족 안에서 부족의 공부를 하는 걸 ‘공부’라고 합니다. 우리가 계속 대화를 나누었던 것처럼 ‘전체’라고 하는 것은 세계에 대한 관심이고, 공부는 세계관을 만들어가는 과정인데, 우리는 이제 세계관이 없어요. 오로지 자아관만 있는 겁니다. 그리고 이 자아는 순수하게 자신을 가리키는 ‘자아’가 아니라 직역을 포함하여 부족화된 나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혹자는 한국의 개인주의를 ‘개인 없는 개인주의’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특히 한국 사회는 끝없이 발전을 거듭하면서 다른 한쪽으로는 언제 망할지 모른다는 위협이 항상 산재해 있었지요.



전문가만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지식을 어렵게 만들어서 배타적 권리를 행사하고, 길드의 벽을 세우고, 또 그걸 세습시켜요. 그렇기 때문에 부족 간 영역 이동이 매우 어려워졌지만, 자기 자식은 그 사다리를 조금 더 쉽게 탈 수 있어요.



부족화의 또 한 가지 문제는 개인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개인으로만 살아가기에는 이 세계에서 자신이 너무 나약하다고 느끼는 거예요. 사회가 올바른 방식으로 진화하면 개별성을 인정하고 각자 삶의 스타일을 존중할 수 있을 텐데, 이제는 개인 자체가 너무 나약해졌어요. 불안을 견딜 수 없으니 부족에 순응하면서 자아를 지키는 양상이 보입니다. 하물며 자신이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조차도 직역의 당파성, 파벌성을 지키기 위해 개인을 희생시키거나 개인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면이 보이기도 해요.




단순히 많이 아는 사람을 전문가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자기 직역 밖은 내 영역이 아니라고 확실히 선을 그을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자기 직역에서 일어날 수 있는 거의 모든 실수를 경험한 사람이 전문가예요. 그래야만 자기 영역을 확실히 규정해 그 속으로 깊이 들어갈 수 있고, 아는 것에서 나아가 아는 것을 바탕으로 실천할 수 있어요. 또,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모든 경우와 우연을 겪었기에 암묵지가 작동할 수 있어요. 왜인지는 설명할 수 없으나 이것이 맞다는 것을 아는 게 전문가의 경지예요.




자신의 관(觀), 관점에 기반해서 글을 써야 하는데 대개 학생들에게는 관이 없어요. 양쪽을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양쪽 입장을 모두 드러내는 것이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제도나 믿음으로서의 종교가 아니라 영성으로서의 종교는 인간의 성장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것을 신이라고 부르건 본질이라고 부르건 간에 종교는 끊임없이 어떤 소실점을 세우고 세상과 나, 그리고 앎을 돌아보게 해요. 그를 통해 한계를 자각하게 하는 것이 영성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아닐까 해요.



이 초월적인 상위 의식을 통해 우리는 파편화되고 분절화된 앎들을 통합할 수 있어요. 초월적인 의식이 없으면 자신의 앎이 파편화되고 분절적이며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분절된 앎들 중 어느 것이 더 우월하다는 황당한 위계 의식을 갖게 됩니다. 



세상 위에 초월과 불가해라는 큰 세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며 살았기 때문에 겸손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 위를 인정하지 않으니 자기 영역에서 자기만큼 알면 최고가 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내가 세상의 중심이 되어야 하지요. 그러지 못하면 견디지 못해요. 초라해지는 것, 하찮은 존재로 여겨지는 것, 주변화되는 것, 이 모든 것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실제 세계에서 나의 존재는 보잘것없습니다. 잘난 사람들이라고 다르지 않아요. 얼마나 공부를 잘했건, 얼마나 많은 성과를 냈건, 지금 받는 보상이나 대우가 그에 걸맞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다들 패배감을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자존감이 바닥을 칩니다. 자의식은 높은데 자존감은 바닥인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



반면 진리를 향한 추구는 끝이 없어요. 우리는 그 끝없는 과정에 동참함으로서 위대해질 수 있습니다. 만능감에서 해방되어 겸손하면서 동시에 위대해질 가능성이 열리는 거예요. 이런 점에서 진리를 향한 끝없는 과정에 동참하는 위대한 실험을 교육이라고 할 수 있어요. 교육이 위대한 이유입니다.



또한 인간이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깨달음은 무기력이나 자기 자신에 대한 실망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연민을 갖게 합니다. 연민은 자의식 과잉이나 회의주의에서 벗어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요. 연민은 타자화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공통성에 대한 자각입니다. 연약하고, 깨지기 쉽고, 보잘것없는 이 존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 것을 보며 느끼는 기특함과 고마운 마음이 포괄되었다고 봐야 해요. 이 연민하는 마음이 있기에 우리는 과잉된 자의식에서 벗어나 다른 이와 함께하려는 마음, 연대하는 마음을 낼 수 있어요.




게임 캐릭터를 힐러, 전사, 마법사, 탱커로 키우듯이 자기 아이도 한 가지 능력이 엄청나게 뛰어나거나 또는 육각형이 모두 꽉 찬 인재가 되기를 바라는 거예요.



저희 학교 교수진이 만화와 소설의 캐릭터들을 중심으로 담론집을 하나 만들었어요. 주제가 ‘성장과 레벨 업 사이의 서사’예요. 게임이 삶을 이해하는 원형적 경험이 되면서 인간의 성장을 곧 레벨 업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졌어요. 그런데 레벨 업과 성장은 성격상 많이 다릅니다. 설명하려면 많은 것이 필요하겠지만, 직관적으로 생각해보면 되겠습니다. 성장에 내면적 성장이 포함된다면 레벨 업은 객관적으로 측정 가능한 전투력이나 평판 등을 비롯한 외면적 성장이 더 중요해요. 그리고 그것을 외형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이템입니다. 무기와 갑옷, 신발과 투구 그리고 특별한 코스튬 등의 도구들을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레벨 업이에요.



이처럼 교육에서는 돌아보는 것이 핵심입니다. 한번 해봤다 정도가 아니라 해본 것을 돌아보고 곱씹으며 언어화하는 것이 성장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 돌아봄을 통해 인간의 체험은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교육철학자 존 듀이의 이론에 따르면 체험이 어떤 것을 한번 해봄(trying)이라고 한다면 해본 것을 통해 무엇을 겪고, 그 겪음(undergoing)의 과정을 곱씹으며 이유와 의미, 가치를 발견하여 말할 수 있게 되면 그건 비로소 경험이 됩니다. 이런 점에서 체험을 경험으로 전환하는 과정이 바로 배움의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이 깨달음을 통해 주인공이 자기 자신과 주변 사람, 그리고 세계에 대한 인식과 태도, 방법이 달라집니다. 외적으로 전투력이 레벨 업 되는 것과 별개로 이런 내적 성장이 포함되어야 성장이라고 할 수 있어요. 



남성향 웹소설의 특징 중 하나가 주인공이 트라우마를 겪지 않거나 혹은 트라우마에 집중하지 않는다고 해요. 생각해보면 만화 〈드래곤볼〉이나 〈원피스〉도 주인공이 트라우마가 없거나 트라우마 극복이 이야기의 중심이 아니에요. 이야기의 초점은 지속적으로 전투력을 상승시키는 데 있어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많은 사람이 레벨 업에 혀를 차면서 “요즘 애들 큰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어요. 사실 한국의 교육은 성장을 추구한 적이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한국의 교육이야말로 레벨 업이었어요. 



공부 외 시간의 대부분을 게임을 하거나 웹소설을 보면서 자란 청년들에게 실패는 절대 존재할 수 없고,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하루라도 빨리 레벨 업을 해서 마지막 판에 도달해 만렙을 찍는 게 우선이니까요. 게다가 레벨 업의 세계에서 실패는 존재하지도 기록되지도 않아요. 그러니 내 성장 발달에 도움이 안 되는 실패가 가치 없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어요. 하면 할수록 데미지만 입고 시간이 아까운 거예요. “이런 건 뭐 하러 해?”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지요.



성공과 충만함은 축하의 대상이지 복기의 대상이 되지 않으니까요.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실패할 수도 있는 사람임을, 그리고 실패가 나쁜 게 아님을 알아야 해요.



사실 삶의 서사가 잘 꿰인 구조를 갖출 수 있다는 말 자체가 환상이에요. 아시다시피 삶은 그렇게 기획된 대로 연속적으로 흘러가지 않아요. 늘 우리는 주어지는 대로, 닥치는 대로 살아요. 그냥 사는 경우도 많고요. 그래서 삶은 대부분 파편화되어 있습니다. 각각의 에피소드로 파편화되어 있지, 하나의 내러티브로 잘 꿰여 있지 않아요.


    이런 점에서 삶의 내러티브는 사후 성찰을 통해 만들어진다고 볼 수 있어요. 그래서 인간이 서사적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복기를 통한 성찰이 필요합니다. 




성찰을 통해 상실과 실패가 그저 손실이 아니라 의미 있는 것이 되어 삶에 통합될 수 있어요. 의미가 서사를 만드는 셈입니다. 



레벨 업에 성공하는 것이 중요하지, 실패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것은 정신 승리에 불과해요. 저는 이런 양상이 웹소설을 보거나 게임을 하는 세대에게서만 나타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학교가 학원처럼 운영되면 우리의 교육과 공부의 과정이 레벨 업에 최적화되는 형태로 진화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보면 우리가 앞서 이야기했던, 유능하지만 무척이나 무능력한 ‘터널 비전(tunnel vision)’을 가진 사람들이 양산될 수밖에 없어요. 


그냥 다른 할 게 없어서 가장 익숙하고 편한 곳에 머무르고 있는 겁니다. 자기 방 밖은 위험하고 힘이 들고 노력도 해야 하고, 실패할 확률이 높고, 실제로도 몸과 마음이 아프니까요.




근대적인 의미에서 학교의 가장 큰 목표는 개인을 만드는 동시에 시민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가 함께 이루어져야 해요. 학교 교육의 중요한 역할은 개인에게 자아 실현의 욕망을 불어넣고, 자아를 실현할 직업을 찾게 하는 것이었어요.




이제는 누구도 이런 의미에서 행복해지기를 바라지 않는 것 같아요. 흔히 쓰는 표현대로 한다면 이제 우리는 ‘안온하게’ 살고 싶어 해요. 



직업과 자아 실현이 분리되었고 직업 활동은 돈을 버는 일로 전락했어요. 직업은 도구일 뿐이고 개인은 직업을 통해 돈을 벌어서 여가 시간을 재미있게 보내기를 바라지요. 



소명 의식, 직업 윤리 같은 게 통하지 않고 완전히 도구화되었어요. 그렇다면 이제 개인의 삶은 어디에 있을까요? 소비하는 삶에 있어요.




이 때문에 지금 이 세상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유일한 집단이 ‘오타쿠’들이라는 말까지 생겨나고 있어요.




워크와 라이프를 별개로 생각해요. 그러다 보니 제로섬 게임이 되어서 일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손해 보는 삶을 살고 있다는 단순한 산수를 하게 됩니다. 내 라이프가 갉아먹히고 있다고 느끼지요.




그런데 이제 수업은 상품이라는 의식만 남아 있습니다. 상품을 잘 만들어서 팔고 돈을 번다는 인식만 남아 있어요. 




한국 사람들에게서는 이런 표정을 볼 수 없다고요. 자신이 ‘여기’ 있을 사람이 아니고, 이 돈 받고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것에 절망을 느낀다는 거예요.



한국 사람들에게서는 이런 표정을 볼 수 없다고요. 자신이 ‘여기’ 있을 사람이 아니고, 이 돈 받고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것에 절망을 느낀다는 거예요.



아이들은 재능이라는 단어를 굉장히 강력하게 생각해요.



경쟁에서 우위에 선 사람이 보이는 주된 감정이 불안이라면, 열세에 있는 사람은 주로 열패감에서 비롯된 분노를 가지고 있어요. 심각한 경쟁 세계에 있다 보면 한 번의 실패를 곧 존재의 붕괴로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물론 전혀 근거 없는 생각은 아니지만, 인생이라는 긴 경주에서 보면 모든 실패가 반드시 치명적인 건 아니에요. 그런데 자신을 실패자로 규정하면 다시 시도할 용기조차 잃어버릴 수 있어요. 



부모에게 일방적인 사랑을 받고 자라난 아이는 타인이 자신에게 관심이 없거나, 자신을 싫어할 수 있다는 것을 잘 받아들이지 못해요. 학교나 학원에서 만나는 친구들도 가족처럼 자기를 사랑해주기를 은연중에 바랍니다.


    하지만 인간관계가 어떻게 다 그럴 수 있겠어요? 작은 다툼이나 갈등에 큰 상처를 받고 바로 관계를 ‘손절’해버려요. 




부모에게 일방적인 사랑을 받고 자라난 아이는 타인이 자신에게 관심이 없거나, 자신을 싫어할 수 있다는 것을 잘 받아들이지 못해요. 학교나 학원에서 만나는 친구들도 가족처럼 자기를 사랑해주기를 은연중에 바랍니다.


    하지만 인간관계가 어떻게 다 그럴 수 있겠어요? 작은 다툼이나 갈등에 큰 상처를 받고 바로 관계를 ‘손절’해버려요. 




자기가 규정하는 예술에 반하는, 그것보다 더 깊은 이야기가 나오면 일단 부정하고 봅니다. 자신의 믿음을 위협하고 깨버리려 하는 데 저항하는 겁니다.



공부가 깊어질수록 이단의 성격을 띌 수밖에 없어요. 



영성수련가인 조영훈 선생은 공부가 밑도 끝도 없어서 위대하다고 합니다. 필멸자인 ‘나’는 위대해질 수 없지만, 밑도 끝도 없는 공부의 과정에 동참하면서 그 위대함을 나눠 받을 수 있는 존재라고요. 





정답만을 원하는 0과 1의 사고, 능력주의와 깊고 좁은 전문성에 대한 추구에서 비롯된 세상 전반에 대한 얕은 이해가 이른바 ‘유능한 무능력자’들을 양산한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모여서 각자의 성을 쌓으면서 자기들만의 리그를 만들고 있다. 



우리 사회의 공부 문제는 중독에서 벗어나 ‘망상’의 수준으로 발전했다. ‘내가 문제가 있구나, 그러니 벗어나야지’라는 개인적인 조절의 문제라기보다 ‘도저히 흔들 수 없는 굳은 믿음’의 형태로 사회 곳곳에 깊숙하게 침투해 있는 현상이 눈에 띄게 보였다. 



종교가 힘을 잃은 한국 사회에서 공부가 가치관의 거대한 한 기둥이 된 것이다. 어릴 때 가진 종교가 성인기 가치관의 중심이 되듯, 공부는 한국 사회 중심축이 된 세대의 사고관에도 단단히 뿌리를 내렸다.



성장은 기본적으로 고통을 수반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성장하기 위해서 상실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해요. 그래서 기쁨, 내지는 행복이 고통과 결합되어 찾아온다고 말하지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선 난쟁이는 거인보다 더 멀리 본다”는 근대의 가장 중요한 원칙을 함축한 문장입니다.







***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사람들이 떠오르지 않노?

모 겉절이들과 저속노화... 아니 저속노예 교수님과 그를 가스라이팅한 트위치 유저가.... 그 외에도 존나 많고

돈1까스가 먹고 싶군.


아님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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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공부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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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쳐귀여운샛별이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08 20:13:16
  • 책은도끼다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캬
    02.08 20:28:02
  • ㅇㅇ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좀 넓게보면 공부(학습)와 성장은 개인의 세계관에서 거의 전부를 차지하는데, 개인의 경험은 한계가 있어 터널 비전처럼 보일 수 있겠네.
    공부를 숭배할수록, 사회로 스케일을 한 단계 높였을 때 그게 허상으로 보여. 우주적 시점에서 개인이 모래알 같은 것과 비슷한 건가.
    그렇다고 개인에게 학습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고, 개인의 경험과 사회의 작동 방식을 동일시하는게 (>공부하면 사회적 권력과 보상이 주어진다) 공부 숭배의 허점인거 같구나.
    흥미롭게 잘 읽었음 - dc App

    02.09 21: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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