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생각해봐도 정치, 행정, 경제, 제도 등을 모두 포괄한 전방위적 근대화만이 근본적 해결책이었단 생각이 듬.
각종 전란을 겪으면서 중앙군을 만들려는데, 비대한 상비군을 계속 유지하려다보니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고 결국 조선 재정 자체가 어그러짐.
막대한 예산으로 안해 민생난이 심화되고 중앙정부 재정난이 늘어나니, 중앙정부로의 조세 귀속과 감세를 했는데.
결과적으로 그 탓에 지방정부 재정이 파탄나고, 그 결손을 매꾸겠다고 수탈이 늘어남.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신분 상관없이 세금 적용하는 제도를 고안했는데, 그것 역시 사실상 인두세라 불합리한 방식이고.
그나마 지방 인구가 좀 되면 이걸 충당 가능한데, 맬서스 트랩에 갖쳐서 인구 성장이 지체되고 전염병과 가뭄이 돌자 인구가 급감해서 지방 민력이 고갈됨.
전근대식 관리 등용과 임명 체계상 한계로 인해 부정부패와 일부 계파의 정부 독점, 전횡이 강화됨.
이 와중에 서양 세력 등이 대두되자 각종 국방 육성을 하는데, 다층적 산업구조가 없는 상태서 무작정 최종 공산품을 만들려고 하니 어줍잖게 모방하는 상황만 발생함.
고질적인 세금과 재정 구조를 극복 못한 상태서 군비증강을 하니, 포수 3만명 육성하는데 호조 1년 예산이 소요됨.
면포를 화폐 대용으로 사용했는데, 서양산 옥양목이 들어오면서 면포 값이 추락하고, 그 결과 각 가구 소득원이 대거 폭발했고, 국가 재정과 세수가 반토막남.
예산 마련을 위해 늘 하던 대로 새 화폐 발행으로 주조차익 마련하려 했는데, 당대인들이 이해 못한 매커니즘으로 결국 경제가 파탄남.
체계적인 공업/보급 체계가 없으니 결국 보급품과 무기들의 종류/품질이 다 중구난방이 됨.
이 와중에 일본, 청나라와 개항으로 일본에 쌀이 대량 방출되면서 맬서스트랩이 폭발하고.
청나라 상인이 내륙 진출하면서 전통적인 국내 상업계가 망하기 시작.
결국 수도 물가는 올라가고 민생고는 심해지는데, 지방-수도 간 물류망은 점점 한계에 치닫고, 이게 한성 배속된 중앙군 재정 문제, 부정부패랑 얽혀서 군란 발생.
신식무기를 도입하고 신식군을 육성하는데 역시 기존 재정으론 유지에 허덕임.
전근대 시스템상 중앙에서 세금을 모으고, 그걸 다시 각지로 배분하기보단, 그냥 근처 지방에서 걷은 세금을 근처 군영에서 사용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고 중간에 세는 돈이 없어서 그렇게 했는데.
이런 세금 제도로 신식군, 기계 선박 운영비를 근처 지역에 다 몰빵해버리다보니, 결국 해당 지역 민심이 이반되고 반란 발생.
결국 이러한 문제들 보면, 이건 뭐 세종, 정조와 정약용이 등판해서 영끌한다 해도 힘듬.
단순히 해결책 하나만으론 힘들고. 그렇다고 전근대직 지식체계 안에서 해결을 모색해봐도 궁여지책 느낌이고.
근대화 시에도 그냥 얽힌 다른 부분들 없이, 일부 부문만 근대화 하는 걸론 유지가 힘들단 느낌을 받는데.
이렇게 보면 조선 후기와 구한말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단순히 당대인의 사고방식을 넘어서서 전방위적 근대화를 해야만 근본적 해결이 가능한 것 같음.
솔직히 세종도 고종으로 환생해서 이런 거 보면, 걍 근대화가 답이다 생각했을 듯.
농업혁명과 물류 시스템 정비, 서양식 의료 기술 도입.
근대식 세금 제도와 조세 급납화, 중앙은행 도입, 경제 관료 육성.
광산 개발을 통한 외화와 예산 확보.
관리 등용 체계와 행정제도 개혁.
근대식 형법과 민법 등을 만들고, 사법권을 독립시키기.
의무교육 도입을 통해 근대적 국민 형성.
상공업 진흥과 각종 다층적 산단 조성.
군수산업, 근대식 군제 개혁, 징병제 시행.
지방의회, 또는 중앙의회 도입으로 지방 유력층을 체제에 포섭시키고, 부정부패를 감시할 체계 확립하며, 그에 대한 대가로 근대화에 방해되는 기득권의 이권 환수.
결국 조선 후기, 구한말의 모순과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할수록 근대화가 필연으로 느껴졌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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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는 말인데 청일의 간섭과 반개화세력의 반발을 모두 이겨내고 근대화를 추진할 역량이 조선 중앙에 있었는지 몰겟음
일본도 반개화세력 다 짓밟아가며 근대화함. 애초에 조선 후기는 근대화도 안 한 중앙군이 지방군 전부 ㅈ바르던 시기임. 그게 임오군란으로 증발한 게 크지. 심지어 그 임오군란조차도 당장 위정척사 세력 10년 가까이 위축시키는 효과 가져옴. - dc App
반개화세력 반발 이건 조선 특성상 중앙만 먹으면 어려운 건 아니고, 청일 간섭은 시기만 20년 더 빨랐으면 됐을 듯. 1880년대니까 청일 간섭이러는 거지, 1860년대면 청나라는 외부 간섭 여력 없고, 일본은 근대화 시작 전임. - dc App
@ㅇㅇ 그래서 반개화세력 날라간 임오군란 직후가 기회였다고 봄
근대화도 안 한 중앙군이 지방군 다 때려잡아서 반발 억누름 < 이거 하나만으로도 전근대 중에는 최상급 중앙집권이라 조금만 더 여유 있었으면 좋았는데
결국 재정군사 국가를 찍어야할 만큼의 압력이 있었냐 없었냐 차이네. 막대한 중앙군 수요 -> 재정충당을 위한 다양한 계층의 포섭과 타협 시도 -> 이후 군수를 위한 다양한 산업구조와 물류 형성 -> 이를 수행하기 위한 관방학(행정학)
법가 대승리 동아시아가 아닌 이상 자생적으론 불가능 아닐까 싶음 - dc App
명청교체기가 달라져서 영토확장과 전쟁이 조선 후기에도 빈번하거나.
서양과 미리 접촉을 해서 빠르면 200년, 늦어도 20년 더 빨리 개항해서 근대화에 대해 알게 되거나.
했어야 할 듯. - dc App
하여간 재정군사국가 찍을 만큼 전쟁압력이 강하면서도, 국가가 전쟁 한방에 망하진 않을 정도의 적당한 압력을 꾸준히 오랫동안 받아야만 근대에 도달하는게 아닐까 싶음. 전세계에서 서유럽만, 더 작게는 영국만이 자생적으로 도달한 길이니까. - dc App
지배계층이 체재각혁이 필요하다는 공통인식이 필요한데 이게 쉽지않지...
대붕이는 갤러리에서 권장하는 비회원 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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