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군사 쪽으로 상당히 일머리 좋은 사람이었다는 점
세조가 1464년에 '삼갑전' 이라는 훈련을 만드는데, 이게 상당히 실전적이었음
27명을 1대로 설정, 1대는 3통으로 나눈 뒤 서로 싸우게 하는 건데, 무기는 작은 방패와 창을 부여함
이때 창은 진짜 날이 달린 창이 아니라 장대 끝에 물감 묻힌 천 같은 걸 매단 건데, 훈련이 끝나면 옷 위에 물감이 얼마나 묻었느냐에 따라서 점수를 계산함
첨에는 방패랑 창만 가지고 하다가 나중에는 촉 없는 화살로 싸우기도 하고, 기습을 하는 등
모의전이 반복되니까 차츰 장교들이 점점 더 실전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줌
봉석주(奉石柱)와 권지(權摯)를 좌상 대장(左廂大將)·우상 대장(右廂大將)으로 삼고, 거평정(居平正) 이복(李復)과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 양성지(梁誠之)와 행 상호군(行上護軍) 송처관(宋處寬)을 위장(衛將)으로 삼았으나, 양성지·송처관이 모두 유약(儒弱)하고 느려서 무재(武才)가 없으니, 그 장수(將帥)가 된 자가 그들을 조롱하였다.
임영 대군(臨瀛大君) 이구(李璆)·영의정(領議政) 신숙주(申叔舟)·인산군(仁山君) 홍윤성(洪允成)도 어가(御駕)를 수종(隨從)하였다.
좌상(左廂)·우상(右廂)이 먼저 남산(南山)을 몰이하고 어가가 사장(射場)에 이르러 월산군(月山君) 이정(李婷)과 자을산군(者乙山君) 【 금상(今上)437) 의 휘(諱)이다.】 으로 하여금 여우를 쏘게 하고, 권지·봉석주를 불러서 능히 몰이하지 못한 것을 힐책하고, 드디어 칠덕정(七德亭)에 이르러 또 한종손(韓終孫)을 중상 대장(中廂大將)으로 삼아서 삼갑전(三甲戰)438) 을 하였다.
중상(中廂)에서 좌상(左廂)을 쫓았고, 좌상(左廂)에서 우상(右廂)을 쫓아서 우전(羽箭)·목창(木槍)으로써 서로 쏘거나 찌르자, 삼상(三廂)이 모두 능히 군율(軍律)을 세우지 못하였고, 임금이 친히 지휘를 내렸으나, 또 능히 하지 못하니, 모두 갓[笠]을 벗게 하였다. 임금이 전지(傳旨)하기를,
"너희들이 모두 공신(功臣)이니, 내가 등용(登用)하고자 하였는데, 지금 싸우는 것을 보니, 모두 쓸 수 없는 사람이다."
하고, 김질(金礩)을 좌상 대장(左廂大將)으로 삼고, 정식(鄭軾)을 우상 대장(右廂大將)으로 삼고, 홍윤성(洪允成)을 중상 대장(中廂大將)으로 삼아 서로 쫓게 하였다.
홍윤성이 김질을 찌르고자 하여 몰래 예장(銳將)439) 어유소(魚有沼) 등을 보내어 좌상(左廂)의 진중(陣中)을 뒤지니, 김질이 이를 알고 대장기(大將旗)를 버리고 변복(變服)하여 졸병(卒兵)의 대오(隊伍) 가운데 숨었는데, 어유소 등이 깨닫고 뒤쫓았다.
홍윤성 등이 즉시 말을 달려서 쫓으니, 김질이 진중(陣中)을 떠나서 도망하였다.
홍윤성이 뒤쫓아 언덕 아래에 이르러 주창(朱槍)으로 그 등[背]을 맞히었다.
임금이 바라보고 크게 웃으면서 홍윤성과 김질을 불러 홍윤성으로 하여금 술을 올리게 하고, 안마(鞍馬)를 내려 주었다. 임금이 여러 장수를 불러서 말하기를,
"이것이 바로 싸움이다. 저 봉석주(奉石柱) 등은 어린아이 장난 같았다."
하였다.
- 세조실록 세조 10년 8월 8일
근데 삼갑전은 세조 이후로 실행되지 않음
이런 실전적인 훈련을 해서 그런지 여진 정벌에서도 수만 명 보내서 백 명도 못 죽이고 허탕친 성종 때와는 달리
세조는 이만주를 참살하거나(이거 운빨이라고들 하는데 솔직히 운빨도 준비된 사람만 잡을 수 있는거임 개인적으로 그런식으로 평가하는거 공감하지 않음) 신숙주가 대승을 거두는 등 상당한 결과를 보여준 편
자고로 만따먹을 좋아하는 대붕이라면 '실전적인 훈련' 잘한 세조 빨아야하는거 아닐까??
역시 세조는 대왕이 맞다 세조대왕 천세천세 천천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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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술식 불판깔기 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그렇다면 나는 "그래서 땅덩어리 한 조각이라도 늘렸어?" 를 시전하겠다
그건 인제 세조한테 빙의한 대붕이가 해결해야지
딱 세조 때까지가 조선이 버틸 수 있는 한계라 그거 가지고 성종한테 뭐라하긴 좀 그럼. 애초에 군축 시작한 건 어린 성종이 아니라 원상들이 합의해서 주도한 사안이기도 했고. 7대 임금이 아니라 9대 임금이었으면 세조건 누구건 무리라서
세종, 문종이 군서 편찬은 세조한테 맡겼던 것 보면 뭐
홍윤성이 저래서 싸고 돌았구나. 계유정난 같은 소규모 전투 또 발생하면 얘가 옆에 있어야겠네
실행되지 않은건 물감에 품이 많이 들어서 그런가? - dc App
성종 즉위하자마자 군축 풀 드라이브로 밟아서 그럼. 성종 잘못은 아니고 태종 때부터 세조때까지 일관되게 군비 증강 드라이브 밟다보니 이시애의 난 때 이미 과부화 걸린 상태였음. 조선 체제의 한계
그치만.... 땅 한뺨도 못 넓힌 주제에 묘호가 세조인게 킹받거든요? - dc App
오 - dc App
땅 못 넓혔죠? 자 쓰래기죠
세조가 총통위 폐지했다고 일각에서 비판하는 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최근에는 세조의 총통위 폐지가 조선의 화약무기 개량 및 보급의 약화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고 보고 있음
세조 집권 전부터 이미 화약무기 상태가 개판 오분전이었고 세조는 총통위 폐지 이후에도 신형 총통을 개발하거나 총통의 양과 질이 뒤떨어진다고 호소하는 군영에게 총통을 보급하는 등의 행동을 보임
그렇군여 감사합니다.
오히려 세조 대에는 총통을 계속 지방에 보급했고 기존에는 국가에서만 제조 가능했던 염초를 민간에서도 만들 수 있게 규제를 풀어버리는 등 화약무기 보급에도 신경 쓰는 면모를 보임 이거때매 총통위 폐지는 오히려 총통이 일반화되면서 굳이 총통 하나를 관리하기 위한 부서의 필요성이 줄어들어서 폐지할 수 있었다고 보는 시각도 있음
@ㅇㅇ 물론 빛나는 발전을 거듭하던 세종~문종 대마냥 엄청난 발전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세종~문종 대의 화약무기가 0에서 10까지 키워낸 거라면 세조 때에는 10에서 13~15 정도까지 키워냈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거임
죽왕에서도 이거랑 비슷한 설명이 있었던 걸로 암
대붕이는 갤러리에서 권장하는 비회원 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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