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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 갤러리 소개
독서 마이너 갤러리입니다. 독서와 관련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곳입니다.
퀸리스(alicesynthesisthirty)
7000RPM(dicaoen) Nightfall(fluquor) 포크너붐은온다(kwak5210) AB_ANTIQVO(dollar58…) 책은도끼다(sungyue)
2016-05-04
독서 마이너 갤러리입니다. 독서와 관련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곳입니다.
퀸리스(alicesynthesisthirty)
7000RPM(dicaoen) Nightfall(fluquor) 포크너붐은온다(kwak5210) AB_ANTIQVO(dollar58…) 책은도끼다(sungyue)
2016-05-04
…아르한겔스크… 일주일간의 기다림. 주 관리국이 관할 구역 내 유배지를 결정해야 한다. 마침내 행선지가 발표되었다. 대로를 따라 500베르스타가 넘는 거리를 걸어야 하며, 족히 두 달은 걸리는 여정이다. 이른 아침 호송대가 우리 무리를 인계받는다. 우리 유형수는 다섯 명이다. '정치범' 셋, 농민 운동가 한 명, 그리고 '무신분자' 한 명. 호송병도 다섯이다. 조장인 이반 셀레즈뇨프는 키가 작고 곰보 자국이 있으며 귀가 크고 뻔뻔스러우면서도 왠지 모르게 우울한 눈을 가졌다. 그가 명부를 보며 우리를 호명한다. 책상에는 중년의 대머리 중위인 호송대장이 졸린 듯 앉아 있다. 의례적인 질문이 이어진다.
"이름, 성, 어디로 가나, 관급 반코트 있나?"
"있습니다."
"발렌키(펠트 장화) 있나?"
"있습니다."
"포르탼키(발싸개) 있나?"
"있습니다."
"벙어리장갑 있나?"
"있습니다."
"지나가, 몸수색."
셀레즈뇨프는 우리와 호송병들에게 심술궂고 거칠게 소리친다. "빨리빨리 움직여, 여기가 무슨 안방 아랫목인 줄 아나, 지체하지 말고… 너, 이놈 주머니 뒤져 봐, 배낭 풀어 보고, 외투 털어 보고, 발렌키 안도 살펴…"
그는 장교에게 잘 보이려 애쓰며 자신이 엄격하고 직무에 충실하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 그는 호송병들에게 옷 주름까지 만져보라고 요구하고 돈을 찾지만, 우리보다는 중위의 눈치를 살피는 데 더 급급하다. 순종과 복종이 배어 있는 얼굴을 한 호송병들은 우리의 빈약한 살림살이를 바닥에 마구 흩뜨리고, 주머니를 뒤집어 마호르카(싸구려 담배) 가루를 꼼꼼히 털어내고, 옷을 벗게 한다. 그들은 셀레즈뇨프의 어조에 장단을 맞추면서도 조심스럽게 장교의 눈치를 살핀다.
인계 절차가 끝나고 자루와 보따리가 묶여 썰매에 실린다. 썰매는 세 대다. 한 대는 호송병용, 다른 한 대는 우리 짐, 세 번째는 나를 위한 것이다. 나는 '특권층'이니까. 감옥 문이 마지막으로 삐걱거리며 열리고, 무리는 길을 나선다.
…드디어 탁 트인 세상이다… 수개월 간의 감옥 생활 끝에 눈부신 설원이 눈앞에 펼쳐졌을 때, 이 첫 감격과 행복감에 비견할 만한 매혹이 또 있을까! 얼마 전에 눈보라가 쳤던 모양이다. 처녀설이 가까이에서 깊고 두터운 언덕을 이루며 쌓여있다. 그것들은 얼어붙은 기이한 괴물들 같다. 여기는 거대한 태고적 짐승의 등뼈가, 저기는 길게 뻗은 뱀, 여기는 거북이가 등을 구부리고 있으며, 저기서는 희끗희끗한 털이 난 뭉툭한 머리가 순박하게 쑥 나와 있다. 여기엔 거대한 털북숭이 발 하나가 보이고, 저기엔 흰 새의 거대한 날개가 펼쳐져 있다. 그 너머로 눈 언덕들은 끝없는 들판으로 이어진다. 낮게 뜬 붉은 태양 빛에 눈은 반짝이고, 일렁이고, 빛나고, 타오르고, 번쩍이며 천상의 무지개색으로 영롱하게 빛난다. 눈이 시리다. 눈(雪)이 눈(目)을 때리고 찌른다. 눈에서는 활기찬 신선함이 풍겨오고, 야생적이고 축축하며 거의 잡힐 듯 말 듯 한 순결한 냄새가 희미하게 난다. 비단 같은 표면을 손으로 만지고 부드럽게 쓰다듬고 싶다. 곳곳에 검은 덤불이 보이고, 굽은 자작나무들이 외롭게, 버려진 듯, 마치 마법에 걸린 듯 서 있다. 멀리 거칠거칠한 녹색을 띤 무거운 숲이 보인다. 하늘 끝은 분홍빛 안개 속에서 눈의 끝과 거의 하나로 섞이지만, 그래도 희미한 선이 그 사이에 고귀하고 자유로운 경계를 긋고 있다. 아, 얼마나 자유로운가! 하늘도 자유롭고, 슬픔 없는 후한 저 먼 곳도 자유롭고, 눈송이 하나하나, 짐승의 발자국, 새들의 비상, 우리 모두가, 그리고 나도, 나 또한 자유롭다! 모든 것이 그 무엇에도 구속받지 않는 삶의 엄숙하고 자유로운 긍정을 말하고 있다.
차가운 공기는 오존으로 가득 차 가볍다. 마치 깨지기 쉬운 수정으로 이루어진 것 같다. 나는 취해서,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썰매 뒤를 비틀거리며 따라간다. 처음으로 얼굴의 병적인 부기와 피부의 처짐을 느낀다. 추위가 살을 에는 듯하다. 마치 모든 것을 망원경을 통해 보고 있는 것만 같다. 길도, 들판도, 나무들도 떨리고, 유난히 선명하며, 모든 사물이 푸르스름한 테두리로 둘러싸인 것 같다… 어떻게 그 음침한 지하 감옥에서 악취를 맡으며 살 수 있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얼마나 끔찍한 악몽이었던가!
은방울 소리가 귓가에 단조롭게 울린다. 빈혈 때문이다. 길은 두 개의 차분한 띠를 이루며 앞을 향해 뻗어 있다. 햇살을 받아 버터를 바른 듯 노랗다. 하얀 침묵의 지혜로운 단순함이 마음을 진정시키면서도 북돋운다. 달려보고 싶다. 뭔가 엉뚱한 짓이라도 하고 싶다. 저 키 큰 호송병을 눈더미 속으로 밀어버리고 뒹굴거나 눈뭉치를 던지고 싶다. 눈싸움! 고향 마을에서의 눈싸움! 첫눈이 오고 날이 풀리면 나는 마을 아이들과 지칠 때까지 눈싸움을 했다. 그러다 날이 추워지면 유모 아그라페나가 소똥과 지푸라기를 섞어 물을 뿌렸고, 그러면 매끄럽고 잘 미끄러지는 멋진 얼음 썰매가 되었다! 그때는 모든 사물이 얼마나 가깝고 친근했으며, 가장 단순한 것들 속에 얼마나 많은 기쁨이 숨어 있었던가!… 비눗방울도 그랬지… 하늘이 조금 흐려지고 눈이 파르스름해지더니 솜털 같은 눈송이가 내린다. 개중 하나가 속눈썹에 걸린다. 차가움과 가벼운 순수함이 느껴진다. 나 자신도 더 깨끗하고 선량해진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사실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 꽤 좋은 사람이고, 남들과는 다르다. 나는 이미 많은 것을 겪었다. 감옥에 두 번이나 갔고, 이제 미지의 유배지로 가고 있다. 나는 직업 혁명가이고, 지역 조직을 맡았었다. 이바노프 대령이 편지를 가로채지 못한 것도 자랑할 만하다. 그는 똑똑하고 돈도 있고 요원도 있고 경찰도 있지만,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나는 그렇게 쉽게 잡힐 사람이 아니다. 나는 지독하게 솜씨가 좋고, 어쩌면 잡을 수 없는 존재니까. 용기, 교활함, 결단력, 이것이 나의 자질이다. 그래, 나는 혁명계의 유격대원 같다. 어디서나 나를 찾고 쫓지만, 나는 적들의 눈앞에서 대담하고 믿기 힘든 위업을 달성한다. 오늘은 창살을 톱으로 자르고 탈출하고, 내일은 극장에 나타나 태연하게 오페라를 끝까지 감상하고, 브라우닝 권총을 쏜다… 누구에게?… 교도소장에게라도. 숨는다… 감옥 밑으로 땅굴을 판다. 구출한다… 누구를?… 내 아내 슈라를… 우리는 이탈리아로 떠난다… 슈라의 머리카락에선 건초 냄새가 난다. 휴식을 취하고 우리는 다시 지하 조직으로 돌아온다… 울창한 원시림에 숨어 반란군을 지휘한다… 지주들에게서 약탈한 것을 가난한 농민들에게 나눠준다… 당국은 공포에 떤다… 우리의 위업에 대한 명성이 전 세계에 울려 퍼진다… 그리고…
하지만 그때 나는 방금 눈더미에서 뒹굴고 싶었던 그 호송병을 발견한다. 그는 소총을 어깨에 대충 걸치고 건들건들 걷고 있다. 옆구리에는 군도가 우스꽝스럽게 달랑거린다. 그는 마호르카 연기를 내뿜으며 끙끙대더니, 나에게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뭔가 단조로운 노래를 흥얼거린다. 나는 기분이 상한다. 그렇다. 내가 좀 몽상에 잠겨 내가 잡을 수 없는 존재라느니 하며 소위 도를 넘은 건 맞다. 삶은 언제나 몽상과는 다르게 펼쳐진다. 지금 나는 헌병들에게 체포되었지만, 내가 체포되어 확실한 죽음과 고문이 기다릴지도 모르는 이송길을 가고 있다면, 호송병은 어쨌든 나를 제대로 감시하고 경계해야지, 아마 장전도 안 돼 있을 총을 질질 끌며 노래나 불러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촌놈들, 무식쟁이들, 오블로모프주의… 그건 그렇고 썰매에 좀 앉을까… 뭐라 해도 신분상의 특권은 감옥에서도 의미가 있는 법이니까.
조장인 셀레즈뇨프가 나와 함께 썰매에 앉는다. 그의 얼굴은 추위 때문에 양귀비꽃처럼 붉게 피어올랐다. 그는 만족스러운 듯 주인 행세를 하며 길게 늘어선 일행을 둘러본다. 썰매 날이 삐걱거리고 말들이 머리를 흔든다. 말들에게서 푸르스름한 김이 피어오르며 쌉쌀하고 기분 좋은 말 땀 냄새가 난다. 나는 허우적대고 넘어질 뻔하며 마부용 털가죽 외투를 입는다. 시큼하면서 건강한 냄새가 나고, 양가죽의 온기가 몸에 착 감기며 옷깃에 성에가 낀다.
"동향 양반, 담배 한 대 피우겠습니까?"
셀레즈뇨프가 둔한 손놀림으로 싸구려 담배 갑을 꺼낸다. 나는 그가 감옥에서 우리에게 소리치던 것을 떠올리며 주저했지만, 담배가 몹시 고팠다.
"받아요, 받으라고. 마을에 도착하면 사면 되니까."
나는 담배를 받는다.
"그런데 몸수색할 때 우리 담배는 왜 쏟아버린 거요?"
셀레즈뇨프는 재빨리 성냥불을 붙여주며 튼튼한 치아를 드러내고 웃는다. 그는 선심 쓰듯 훈계조로 설명한다.
"임무니까요. 규정대로 해야 합니다. 윗선에서 요구하거든요. 직접 보셨잖아요, 호송대장이 직접 출발을 지켜보고 있었던 거. 우리 군인 일이라는 게, 요구하는 게 많아요, 우리한테 요구하는 게 많단 말입니다. 당신들과 함께 가는데, 누구에게는 별거 아닐지 몰라도 우리는 모든 게 정상이어야 한다는 걱정이 있어요. 좋게, 조용히, 그리고 완전히 인텔리답게 목적지까지 가야 하니까요. 당신 썰매에 동지 한 명 더 태워도 되겠습니까?"
그는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쩌렁쩌렁하게 부른다.
"네표도프, 여기 정치범 양반 한 명 태우고 자네도 앉아."
키가 큰 네표도프, 내가 눈밭에서 뒹굴고 싶어 했던 바로 그자가 방한모를 두른 채 썰매 끝에 앉는다. 그와 함께 왜소한 멘셰비키 클리모비치가 엉거주춤 썰매로 기어오른다.
셀레즈뇨프가 계속 떠들어댄다.
"아니, 우린 꼭 정확하게 도착해야 해. 자네, 네표도프, 일행 잘 감시해. 하느님 맙소사,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우린 끝장이야. 군사재판이라는 게, 이 사람아, 봐주는 법이 없어요, 없어, 안 봐준다니까."
네표도프가 입이 방한모에 가려져 웅얼거리듯 대답한다.
"내 말이 그 말이야, 장난질 없이 가야 한다고. 장난치다가는 나중에 땅을 치고 후회할 테니까."
그들 대화의 의미는 내게 수수께끼 같다. 생각 끝에 결론 내린다. 호송병들은 유형수 중 누군가 도중에 도망칠까 봐 두려워하는구나. 나는 셀레즈뇨프를 적대적으로 쳐다본다.
"걱정 마세요, 안 도망갑니다. 도중에 도망가 봤자 득 될 게 없으니까."
"그 점에 대해서는 우리도 안심하고 있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생각 안 해요." 셀레즈뇨프가 말한다. "도중에 도망가 봤자 득 될 게 없다는 거, 그건 맞는 말씀입니다."
"그럼 뭐가 문제요? 뭘 걱정하는 겁니까?"
셀레즈뇨프는 붉은 수염에서 고드름을 털어내고 손으로 발렌키를 탁1탁 친다.
"살다 보면 별별 일이 다 있잖습니까. 일이 뜻대로 안 풀리기도 하고. 무엇보다 우리는 꼬박 두 달을 가야 합니다. 엄격하게 처신해야죠. 하느님 맙소사, 어쨌든 심각한 일 없이 기어서라도 도착해야지."
네표도프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동의한다.
"그거 없이는 안 되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처신해야 해, 완전히 인텔리답게."
대화는 여전히 내게 모호하고 이해가 안 간다. 그래도 나는 호송병들이 유형수들의 도주를 두려워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북국의 낮이 서서히 저물어 간다. 눈은 더욱 파래지더니 움푹 파인 곳은 검보라색이 되었다. 추위가 품속으로 파고들고 무릎을 옥죄어 온다. 때때로 우리 중 누군가가 몸을 풀고 몸을 녹이고 장갑 낀 손뼉을 치기 위해 번갈아 썰매에서 내린다. 관자놀이가 쑤신다. 흐릿하고 뿔이 푸른 달이 나타난다. 구름 사이로 희미한 레몬색 얼룩처럼 번진다. 마을은 멀었나? 구간이 길다. 말없이 끝없는 평원으로 둘러싸인 머나먼 길이 외롭고 반쯤 잊힌 러시아 민요를 떠올리게 하며 뻗어 있다… 황혼… 눈… 세상은 깊고 평온한 침묵 속에 누워 있다. 이제 나는 온 존재로 내가 다시 자유로워질 것임을 믿는다. 삶은 축복이어라… 졸음이 쏟아진다. 꿈속에서 내가 크고 맑은 목소리로 말하는 것 같은데 금세 잊어버린다. 왠지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오는 듯하더니 점점 멀어지고 이내 잠잠해진다… 7개월 만에 처음 꾸는 기분 좋은 꿈이다…
…마을에 도착한 것은 늦은 밤이었다. 이송소 오두막은 오랫동안 불을 때지 않았다. 칠하지 않은 널빤지 칸막이로 두 공간이 나뉘어 있는데, 한쪽은 유형수용, 다른 한쪽은 호송대용이었다. 눈에 백태가 낀 노파가 장작 한 묶음을 가져와 우리를 쳐다보지도 않고 바닥에 홱 던지고는 아무 말 없이 나갔다.
곧 커다란 러시아식 벽난로가 푸른 불꽃을 일렁이며 은혜로운 열기를 뿜어냈다. 벤치에 앉아 발싸개를 풀던 셀레즈뇨프가 교활하게 윙크하며 유형수들을 쳐다보고 말했다.
"정치범 나리들을 밤에 가둬야 하나, 말아야 하나?… 에이, 될 대로 되라지, 그냥 문 잠그지 말고 편히들 쉬쇼. 죄는 내 영혼으로 짊어질 테니." 잠시 침묵하더니 조심스럽고 권위적인 태도로 호송병들에게 명령했다. "명령이다, 제군들, 마을로 이탈하지 마라. 복무 수칙을 완벽하게 이행하도록. 어기는 놈은 순서 무시하고 당번 근무다, 알았나?"
병사들은 애매한 눈빛을 교환했다. 윗입술이 찢어진 들창코에 주근깨투성이인 키타예프가 구석 상석에서 중얼거렸다.
"그때 가서 보죠. 하던 대로. 우리가 뭐 처음 갑니까."
셀레즈뇨프가 벤치에서 벌떡 일어나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치며,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분노로 소리쳤다.
"'하던 대로' 같은 소리 하고 있네. '하던 대로'라니," 그가 흉내를 냈다. "너 군 교도소에는 안 가봤지? 등에 다이아몬드 에이스 박힌 죄수복 입고 안 걸어봤지?"
키타예프가 고집스럽고 차분하게 대답했다.
"몇 번을 다녔어도 아무 일 없었수다. 죄수 부대 안 가고 도착할 거요."
"도착하고말고." 호송병들이 자신 있게 거들었다. "기어서라도 가지… 다리 한 짝 있건 없건… 어쩌면 누가 훈장을 받을지도 모르지." 누군가 반쯤은 농담조로, 반쯤은 수수께끼처럼 덧붙였다.
지지를 얻지 못하자 셀레즈뇨프는 기세가 꺾여 힘없이 다시 벤치에 주저앉았다. 바닥에 거창하게 코를 풀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설득력 없는 욕설을 내뱉었다.
"바보들, 완전 바보들이야. 임무 얘기를 하는데 머릿속엔 온통… 저런 것만 들었으니. 하지만 난 절대 용납 못 해."
호송병들은 셀레즈뇨프에게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여전히 무슨 일인지 이해하지 못한 채, 어쨌든 조장이 뭔가 양보했다는 것을 눈치챘다.
셀레즈뇨프는 삐친 표정으로 주머니에서 거울을 꺼내 한참 동안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눈을 부라리고, 수염을 펴서 말아 올리고, 다리를 넓게 벌리고 볼을 부풀려 보기도 했다. 거울을 탁자 옆으로 치워놓고는 기름때 절고 해진 안경집을 꺼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안경알은 평범한 유리였다. 셀레즈뇨프는 '완전한 인텔리다움'을 갖추기 위해 안경을 썼다. 병영에서는 감히 꺼내지 못하고, 시내 외출이나 이송 임무 중에만 멋을 부리며 썼다. 그는 지금 안경을 소중하고 조심스럽게 손으로 돌려보고, 써 보고, 코를 찡그리며 오두막과 참석자들을 멍청하고 거만한 눈으로 둘러보았다. 마치 기묘한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야만인이나 어린아이 같았다.
주전자에 끓는 물을 채워 유형수 구역으로 갔다. 내 옆 평상에는 멘셰비키 클리모비치가 자리를 잡았다. 그는 병약하고 마르고 구부정했으며 눈이 침침했고, 가슴은 함몰되었으며 한쪽 어깨가 다른 쪽보다 높았고, 끈 달린 코안경은 항상 콧등에 삐딱하게 걸쳐 있었다. 수염 대신 헝클어진 덤불 같은 털이 자라 있었는데 그는 항상 그것을 만지작거렸다. 클리모비치의 머리, 팔, 다리는 끈이 풀린 인형처럼 달랑거렸다. 그는 논쟁에서 집요하고 독설적이었다. 정치 논쟁은 클리모비치에게 거부할 수 없는 자극제였다. 평소에는 주변 일에 무관심하고 말도 없다가도 귀에 논쟁거리가 잡히면, 즉시 귀를 쫑긋 세우고 활기를 띠며 신경질적으로 코안경을 고쳐 쓰고는 늦을세라 팔다리를 촐싹거리며 논쟁이 벌어지는 곳으로 달려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힘없지만 삐걱거리고 날카로운 그의 목소리가 다른 목소리들을 덮어버리곤 했다. "마르크스는 주장하기를… 플레하노프는 부정하는데… 레닌의 무정부주의적 블랑키주의는 결국…" 그러고 나면 으레 그렇듯 모험주의, 정치적 협잡, 한심한 아류, 당신은 왜곡하고 있다, 책 좀 읽어라, 무식이 논거가 될 순 없다, 완전한 백치 등등의 말이 이어졌다. 논쟁하는 동안 클리모비치는 더 말라가고 키가 줄어드는 것 같았으며 눈은 독기로 번들거렸다. 논쟁은 주로 인신공격, 고함, 싸움, 중재로 끝났다. 이송 중임에도 클리모비치는 잦은 몸수색을 피해 멘셰비키 중앙 기관지 몇 호를 용케 보관하고 있었다. 그는 빵을 조금 뜯어 먹고 멍하니 머그잔의 차를 홀짝이며 얇은 종이를 부스럭거리다가, 눈에 띄게 기뻐하며 말했다.
"이견이 심화되고 있소. 우리가 당신들 볼셰비키와 갈라서는 쟁점을 벌써 여덟 가지나 셌소."
그는 손가락을 꼽으며 그 쟁점들을 속사포처럼 나열했다. 내게는 클리모비치가 우리 운동 전체를 조망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지 오래이며,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를 망각한 것처럼 보였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일곱, 여덟 가지 항목이다. 그것들이 누구에게 무엇을 위해 유익한지와는 상관없이 그 자체로 중요하고 필요했다. 삶 전체가 이 여덟 개, 열 개, 열다섯 개 항목에 맞춰져야만 했다. 그가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에는 독선적인 편협함이 있었다.
나는 마지못해 클리모비치와 논쟁을 시작했다. 클리모비치는 불법 조직은 시대에 뒤떨어졌으며 지금은 무엇보다 '합법적 가능성을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하 조직은 이제 노동조합, 노동자 클럽, 상조회 등에서의 공개 활동을 보조하는 역할로만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논쟁은 쿠추코프에 의해 갑자기 중단되었다.
"상상해 보십시오." 그가 유형수 구역으로 들어오며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제게 불행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끓는 물에 끔찍하게 데었어요."
그는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자세히 설명했다. 그루지야인 쿠추코프 역시 사회민2주당원이었지만 '야생(무소속)'이었다. 키가 크고 검은 곱슬머리인 그는 터무니없이 크고 우울한 매부리코를 가졌는데, 코끝에는 거의 항상 정체불명의 탁한 방울이 맺혀 있었다. 쿠추코프에게는 체호프 소설의 예피호도프처럼 끊임없이 '불행'이 닥쳤다. 배가 아프거나, 컵이 깨지거나, 허리띠를 잃어버리거나, 손을 찧거나, 발가락이 동상에 걸리거나 했다. 그는 습관처럼 "상상해 보십시오, 제게 얼마나 불행한 일이 일어났는지"라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불행'의 세부 사항을 지극히 기꺼운 태도로, 심지어 기쁨에 찬 듯, 어쨌든 매우 활기찬 모습으로 설명했는데, 이는 그의 코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사람 좋고 사교적이며 동지를 도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클리모비치는 쿠추코프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신문에 코를 박으며 경멸과 짜증이 섞인 투로 투덜거렸다.
"쿠추코프 동지, 당신은 언제나 뜬금없이 대화에 끼어드는군요."
쿠추코프는 당황하여 눈을 깜박거리더니 화해를 청하듯 말했다.
"용서하십시오."
탁자에는 머리가 크고 순한, 스물다섯 살쯤 된 사모예드인 세묜이 무심하게 앉아 있었다. 기름진 검은 머리카락은 부러울 정도로 억세게 뻗쳐 있었고, 얼굴도 기름기와 건강함으로 번들거렸다. 그는 여권 없이 사로프로 성지순례를 떠났다가 볼로그다에서 '신분 증명 불가'로 체포되었다. 그에게 말을 걸면 그는 애매한 미소를 지으며 단답형으로 대답했다. 왠지 그는 우리를 피해 구석으로 가서 몸을 웅크리고 고개를 숙인 채 빠르고 잘게 성호를 그으며 몰래 기도하려 애썼다. 아마도 이반 노그테프가 그를 자주 조롱했기 때문일 것이다. 노그테프는 처음엔 자신을 농민 운동가라고 소개했지만, 나중에 그의 말에서 드러난 바로는 마을 공동체의 판결로 불화와 싸움질로 추방당한 것이었다. 그는 밭과 텃밭을 빼앗겼다고 주장하며 형과 마을 신부를 주적으로 여겼다. 그는 힘줄이 툭툭 불거져 있었지만, 털이 거의 없는 고자 같은 얼굴은 늙어 보였고 깊고 긴 주름이 패어 있었다. 눈은 자주 녹색 불꽃을 뿜으며 광포해졌다. 그는 우리 정치범들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우리가 서로를 감싸주는 것을 보았기에 아마도 만만한 사모예드인에게 화풀이하는 것을 선호했던 것 같다.
"이 멍청한 놈아," 평상에 누운 그가 세묜을 욕했다. "성인들 곁으로 가고 싶었나 보지. 얼간이! 넌 좀 더 당해봐야 해. 나라면 널 빈대 소굴에 2년은 처박아 뒀을 텐데… 뭘 그따위 눈깔로 쳐다봐, 이 멍청한 놈아?"
세묜은 고개를 숙이고 평소처럼 달덩이 같은 미소를 지으며 깊고 매끄럽게 딸꾹질을 시작했다.
긴 이동과 익숙지 않은 신선한 공기에 지친 우리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호송병 방에서는 요란한 코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방 문은 잠기지 않았고, 네표도프가 보초를 섰지만 그도 곧 잠들었다. 밤은 길다. 북국의 깊고 위협적이며 텁수룩한 밤. 꿈은 평온하고 망각을 가져다준다.
아침에 셀레즈뇨프는 마을의 아는 의료 보조원에게 가서 쿠추코프 명의로 진단서를 받아왔다. 쿠추코프가 도중에 병이 나서 걸을 수 없으니 썰매가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우리는 네 대의 썰매에 넉넉하게 나눠 탔다. 10시가 되었지만 동쪽 하늘은 희미하게 붉어질 뿐이었다. 해는 천천히, 흐릿하고 졸리고 불만스러운 듯 떠올랐다. 마치 주인된 눈으로 땅 위에 모든 것이 제대로 있는지 확인하려는 듯이. 그리고 다시 눈, 눈더미, 오존 가득한 공기, 바람, 숲, 덤불, 길, 썰매의 삐걱거림, 말들의 콧김, 하늘, 기이하게 서로 겹쳐 쌓인 구름들… '저 하늘에는 섬들이 있고, 그곳엔 황금 해안이 있네.' 셀레즈뇨프는 오는 내내 명랑하고 친절하고 부산했다. 그는 한자리에 가만히 있지 못하고 이 썰매 저 썰매로 옮겨 다니며 뭔가에 골몰해 있었다.
경로상의 세 번째 정거장에서는 하루 쉬게 되어 있었다. 아침에 차를 마신 후 나는 셀레즈뇨프의 허락을 받아 마을 산책을 나갔다. 마을은 긴 거리 하나로 뻗어 있었다. 목조 주택들은 튼튼했고, 창문은 지면에서 높이 뚫려 있었으며 곳곳이 러시아식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정원도 울타리도 없고, 우리네 같은 타작마당이나 짚단, 건초더미도 보이지 않았다. 가축과 건초는 지하실에 있는데, 북국에서는 그것이 타작마당과 축사를 대신한다. 거리는 인적이 거의 없었다. 추위에 붉게 상기된 풍만한 처녀가 장난기 가득하고 도발적인 눈빛으로 지나갔고, 노파가 힘겹게 걸어가다 멈춰 서서 손바닥을 이마에 대고 눈물 고인 적대적인 시선으로 이방인을 쳐다보았다. 지루함에 미쳐버린 듯한 비루먹은 개가 짖으며 발 밑으로 달려들더니 이내 겁을 먹고 옆으로 도망쳤다… 거대한 발렌키를 신고 귀까지 모자를 눌러쓴 꼬마가 썰매를 끌고 언덕으로 올라갔다. "아저씨, 아저씨…" 말을 맺지 못하고 썰매에 앉아 아래로 날아 내려갔다. 간간이 뒤뜰에서 아낙네들이 집안일로 분주했다. 모든 것이 단순하고 이해하기 쉽고 영원하며 예전부터 그래 왔듯, 우리에게서 시작된 것이 아니니 우리에게서 끝나지도 않을 것이다. 러시아에는 이런 마을이 수만 개나 되고, 수백만 명의 사람이 대대로 단조롭고 이름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이반은 표트르를 낳고, 표트르는 이반을 낳는다. 정해진 때가 되면 새로운 이반과 표트르들이 이반과 표트르를 묘지로 데려가고, 모든 것은 예전과 다름없이 붉은 얼굴의 짓궂은 처녀가 거리를 지나고, 노파가 어디론가 힘겹게 걷고, 꼬마는 썰매를 타고, 노을이 피고, 미지의 먼 곳이 손짓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살아가고, 나름대로 삶에 만족하며, 방랑하지 않고, 문을 두드리는 운명적인 소리나 종 소리를 기다리지 않으며, 감옥과 독방에 갇혀 죽음을 기다리지 않고, 플라톤도 뉴턴도 마르크스도 알려고 하지 않는다. 즉,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진리가 있는 것이다. 수백, 수천 명이 아니라 러시아, 중국, 호주의 수억 명의 사람들이 이 진리로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그들의 진리야말로 유일하고 진정한 진리이며, 나의 다른 진리는 소수에게만 필요한 제한된 진리일지 모른다… 하지만 내 방식대로 살지 않는 수억 명의 사람들에게 반드시 그들만의 진리가 있어야 하며, 그들의 삶이 나름대로 의미 있고 정당하다고 누가 말했는가? 삶은 낭비적이다. 얼굴도 없고 강력하며 파괴할 수 없고 전능하며 맹목적인 본능 속에서 삶은 미치도록, 악마적으로 낭비적이다. 수백 대의 표트르와 이반들이 목적도 의미도 없이 살아가고, 어둠과 비천함과 광신 속에 굳어버린들 삶에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저 억제할 수 없는 자연의 힘인 삶의 의지를 실행하기만 하면 그뿐이다. 삶에게는 세기, 천년, 민족, 나라들을 어둠의 무한함 속에 공짜로 내어주고, 수백만 존재를 공짜로 낳아 그들이 왜인지도 모른 채, 무엇 때문인지도 모르게 땅을 기름진 거름으로 비옥하게 하고 경작하게 하는 일 따위는 아무 일 아니다. 아마 바로 이 순간에도 수백만의 세계가 산산조각이 나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리라… 자연의 의지를 행하라, 그리고 인간이 반항하지 않고 지루해하지 않고 고통스러워하지 않도록 삶은 인간에게 하찮은 기쁨, 저속하고 초라한 환상을 부여한다. 사람들은 끈질기게 그것을 붙잡는다. 그렇지 않으면 어둠, 무의미, 절망, 전도서뿐이기에… 하지만 그래도 반항해야 한다. 전도서에 맞서, 모호함과 무의미에 맞서, 존재의 정처 없음과 고독함에 맞서. 인간에게는 반항이 필요하다. 인간은 반항하는 존재이며 부조리를 참지 못한다. 그러나 잔인하고 무의미하며 낭비적인 힘에 맞서는 이 전 세계적인 봉기의 모든 짐을 짊어지고, 선악을 알게 하는 십자가의 길을 감히 걷는 자들에게는 얼마나 힘든 일인가!
마을은 미동도 없이 누워 있었다. 마치 땅에 박혀 있거나 땅에서 솟아난 것 같았다. 문과 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창문들은 차갑고 적대적으로 반짝였다. 그렇다, 나는 혼자다. 나는 여기서 이방인이다.
…저녁에 셀레즈뇨프는 힘겹게 안경을 코에 걸치고 병사 나스튜힌에게 우리 감시를 맡기며 엄격하게, 하지만 뭔가 말끝을 흐리며 말했다.
"일행 잘 지켜봐. 우린 한 시간 정도 아는 사람 집에 좀 앉았다 올게. 밤에는 돌아온다."
그는 나머지 호송병들과 함께 나갔다.
나스튜힌은 한 시간 정도 맹렬하고 우울하게 몸을 긁고, 어두운 창밖을 내다보고, 씩씩거리며 침을 뱉더니 옷을 입기 시작했다.
"나 없이 좀 계쇼. 동향 사람한테 좀 다녀와야겠소. 여기서 멀지 않으니."
우리만 남았다. 밤새 호송병 중 누구도 이송소 오두막에 나타나지 않았다. 날이 밝아왔다. 떠날 시간이 되었다. 갈 길이 먼데 호송병은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우리는 한 시간 반 더 기다리다가, 못 참고 마을을 뒤지러 나갔다. 한참을 헤매며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군인들을 못 봤느냐고 물었지만, 보지 못했다는 대답뿐이었다. 마을 끝까지 가서 푸석푸석하고 구멍 숭숭 뚫린 코를 가진 아낙네를 불러 세웠다.
'군인들'에 대해 묻자 아낙네는 사투리를 심하게 쓰며 대답했다.
"만나지는 못했수. 근데 갸들이 마리야슈카네 아니면 어디 있겠어. 갸네 집에 있겠지, 딴 데 갈 데가 없어. 저기 끝에 오른쪽에 있는 오두막, 거기로 가보슈."
모서리가 내려앉고 지붕이 비뚤어져 흘러내릴 듯한 오두막은 이웃집들보다 훨씬 초라해 보였다. 우리는 문을 두드렸다.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한참 동안 문고리를 덜그럭거리고 주먹과 발로 치고 창문을 두드려야 했다. 네표도프가 문을 열었다. 그는 잠이 덜 깬 흐리멍덩한 눈으로 우리를 쳐다보더니 아무 말 없이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다. 어둑하고 널찍한 방 안 벤치에는 우리 호송병들이 미친 듯이 코를 골며 널브러져 있었다. 탁자에는 빈 보드카 병, 청어 찌꺼기가 담긴 접시, 썩은 달걀과 생선 기름 냄새가 진동하는 대구 남은 것이 놓여 있었다. 이 냄새들에 술 냄새와 발 땀 냄새가 섞여 있었다. 충격적인 혼합 악취에 쿠추코프의 코는 즉시 축축해지고 부풀어 올라 진홍색이 되었다. 셀레즈뇨프는 침대 커튼 뒤에서 발견했다. 그의 옆에는 둥글고 맨들맨들한 뒤꿈치를 내놓은 반라의 여자가 누워 있었다. 보아하니 그녀가 마리야슈카인 듯했다. 셀레즈뇨프는 팔다리를 대자로 뻗고 등을 대고 자고 있었는데, 마치 놀라움 속에 무언가를 기억해 내려 애쓰는 것 같았다. 우리는 힘들게 그를 깨웠다.
"셀레즈뇨프," 내가 말했다. "갈 시간입니다. 아직 여행 증명서도 안 끊었는데 벌써 정오가 다 돼 가요."
셀레즈뇨프는 몇 초 동안 완전히 넋이 나간 눈으로 꼼짝 않고 우리를 바라보더니, 벌떡 일어나 앉아 발가락이 휘어지고 발톱이 퍼렇게 죽은 맨발을 응시하고는 옆구리와 뒤통수를 맹렬히 긁어댔다. 그러고는 갑자기 엄청난 지휘 본능이 발동했다.
옆에 누워 있던 여자를 곁눈질하며 그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
"마리야슈, 일어나, 손님 오셨어… 어이, 기상," 그가 충혈된 눈을 굴리며 호송병들에게 소리쳤다. "냉큼 일어나, 이 귀 큰 악마들아. 군말 말고. 죄수 나리들이 데리러 오셨잖아. 네표도프, 키타예프, 나스튜힌, 판크라토프, 출발해야 해!"
호송병들이 꿈틀거리고 고개를 들더니 옷을 입기 시작했다. 셀레즈뇨프는 훈계를 계속했다.
"니들 촌놈들은 보드카나 퍼마시고 아랫목에서 몸이나 긁을 줄 알지, 황제 폐하의 군무를 빈틈없이 수행해야 한다는 건 모르는구나, 이 빌어먹을 말썽꾼들아, 내 영혼에 짐만 되는 놈들. 내가 어제 뭐라 그랬냐? 군 규정에 대해 말했잖아. 근데 이놈들은 쇠귀에 경 읽기야. 저놈들 좀 보쇼," 그가 우리를 증인 삼아 계속 떠들어댔다. "출발도 하기 전에 벌써 절제가 안 되니… 네표도프, 단숨에 이송소로 달려가서 가방에 있는 서류 챙겨서 말 준비해. 니들 같은 악마들이랑 가면 일정은 고사하고 1년 안에도 못 가겠다."
네표도프가 서둘러 옷을 입고 나갔다. 셀레즈뇨프는 탁자로 성큼 다가가 눈으로 병들을 훑다가 해장술을 찾지 못하자 나스튜힌에게 달려들었다.
"등신 같은 놈! 내가 왜 너를 보초 세웠는데? 당장 술집으로 튀어가라고 세워둔 줄 아냐? 넌 죄수 나리들을 감시하고 질서를 지켜야지, 뻔뻔한 낯짝 하곤. 누가 너더러 여기 오랬어? 너한테 군령이 내려졌는데 넌 거기에 침을 뱉었어. 내가 오냐오냐할 줄 알았냐? 아냐, 이 친구야, 군대에서는 오냐오냐 안 해. 보초 안 서고 총 팽개치면 머리 쓰다듬어 주는 줄 아냐? 총은 말이야, 성스러운 물건이야. 네 눈알보다 더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이 빌어먹을 바보야!"
침대에서 마리야슈카가 일어났다. 둥글고 예쁘장한 얼굴에 가슴이 풍만한 젊은 아낙네였다.
"당신 왜 개처럼 아무한테나 덤벼들어? 짖으려거든 마당 나가서 짖어. 여긴 내 집이야."
셀레즈뇨프는 기가 죽어 화해를 청하듯 말했다.
"아니, 마리야슈, 남의 일에 끼어들지 마. 그보다 일어나서 크바스나 좀 가져다줘. 아니, 100그램(보드카)이 낫지, 머리가 핑핑 도네."
마리야슈카는 재빠르고 솜씨 좋게 옷과 머리를 정돈하고 발렌키를 신고 크바스를 가져왔다. 셀레즈뇨프는 벌컥벌컥 마시고는 국자를 탁자에 내려놓고 젖은 수염을 펴며 나와 쿠추코프에게 윙크했다. 지난밤의 파트너를 눈짓으로 가리키며 교활하게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크바스 좀 안 드시나, 아주 좋은데… 내가 뭘 걱정하느냐면, 완전히 인텔리답게, 지적으로 그리고 좋게 되길 바라는 것뿐입니다, 그겁니다."
마리야슈카는 쿠추코프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코 한번 대단하네, 어디서 저런 게 자랐대? 태어나서 처음 봐."
쿠추코프가 당황해서 미소 지었다.
"상상해 보십시오, 이런 불행이…"
마리야슈카는 그에게 바짝 다가앉아 팔짱을 끼고 쿠추코프의 눈을 오랫동안 주의 깊게 들여다보더니, 뻔뻔하고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그런 코 가진 남자랑은 한 번도 안 자 봤네, 정말이야."
셀레즈뇨프가 엄격한 체하며 나섰다.
"어허, 너무 그러지 마. 규정에 안 맞아. 이분들은 관급 물품 같은 거야. 목적지까지 온전하게 모셔야 한다고."
"내 거 닳는 것도 아닌데 뭐. 나야말로 당신들 같은 놈팡이들이랑 있으니 관급 물건 다 됐지." 그녀는 능숙하게 탁자의 그릇을 치우고 부스러기를 쓸어내고는 구멍이 송송 뚫린 부드러운 샨기(빵)와 대구를 우리 쪽으로 밀어주었다.
“차린 건 없지만 드셔… 사모바르 올릴까?”
차와 음식은 사양했다. 출발할 시간이었다.
마리야슈카는 문설주에 기대어 명랑하고 거리낌 없는 시선으로 우리를 훑어보았다. 배웅하며 쿠추코프의 등을 찰싹 때렸다.
"총각, 하룻밤 자고 가! 돈 안 받을게. 코가 아주 길어서 맘에 들어."
쿠추코프가 정중하게 대답했다.
"상상해 보십시오, 그런 불행은 안 됩니다."
우리는 오후 1시쯤 마을을 떠났다. 숙취 때문에 호송병들은 뚱하니 침묵했지만, 추위 속에 나오자 기운을 차렸다. 셀레즈뇨프가 내 옆에 앉더니 평소처럼 장황하게 떠들기 시작했다.
"거참, 이 사람들하고 뭘 하겠습니까! 도무지 대책이 없어요. 점호라도 있으면 영락없이 재판감이요. 솔직히 말해서 군인이 아니라 노상강도들이지. 조금만 풀어주면 아주 난리를 치고, 엉뚱한 짓이나 벌이고. 아뇨, 엄하게 다잡아야 해요… 아주 꽉 잡을 겁니다. 우정은 우정이고 임무는 임무 아니겠습니까, 내 말이 맞죠?"
나는 맞는 말이긴 하지만 셀레즈뇨프 당신도 부하들에게 뒤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 말입니까?" 그가 놀라움과 분개 섞인 어조로 대답했다. "내가요? 아니, 저놈들만 마을을 쏘다니게 놔둘 수 있습니까? 절대 안 되죠. 죄수들보다 저것들을 더 감시해야 한다고요. 혼자 내버려 두면, 아주… 의장대 행진을 벌여서 하늘의 별들도 다 숨어버릴 거요, 아주 잠깐 사이에 말이죠. 아침은 고사하고 사흘째 되는 날에도 못 찾을 걸. 내가 쟤들과 어울리는 걸 보고 그러시나 본데, 난 오로지 질서를 위해서 그러는 거요. 물론 가끔 한잔하고 노는 거야 어쩔 수 없지만, 저것들은 반드시 감독이 필요해요. 저 무식한 무모함으로는 벨제붑처럼 모든 걸 때려 부술 수 있거든. 난 속을 훤히 들여다보지. 내가 쟤들하고 소금을 100푸드는 먹었을 거요. 난 장기 복무자고 러일전쟁 훈장까지 있으니까."
이송소에는 한참 늦게 도착했다. 셀레즈뇨프는 열심히 지시를 내리고 주인에게 바닥을 쓸고 난로를 더 뜨겁게 때라고 요구했지만, 점심을 먹고 나서는 생각에 잠겨 오랫동안 벤치에 앉아 있었다. 안경을 벗었다 썼다 하고 독한 담배를 줄줄이 피워대더니, 마침내 허공에 대고 선언했다.
"이장한테 가서 내일 쓸 썰매 얘기 좀 하고 와야겠어. 제군들, 꼼짝 말고 있어, 금방 올 테니까."
그가 나가자 나스튜힌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장한테 간다더니 서류도 안 챙겨 갔네."
"무슨 썰매가 필요한지 뻔하지." 네표도프가 맞장구쳤다.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좀 덥네, 난로를 왜 이렇게 때서, 마을 산책이나 좀 할까?" 나스튜힌이 머뭇거리며 제안했다.
키타예프가 냉큼 대답했다.
"가서 좀 어슬렁거리다 오자, 밤도 긴데."
그들은 옷을 입고 나갔다. 보초를 서던 네표도프는 한참 동안 의미 없이 소총을 만지작거리고, 귀청이 떨어지게 한숨을 쉬고, 딸꾹질하고, 뺨의 여드름을 피가 나도록 긁어대더니, 창백하고 마른 얼굴에 목이 하도 가늘어 군복 깃 안에 턱까지 쑥 들어가는 병사 판크라토프에게 다가갔다.
"판크라토프, 너 여기 좀 있어. 동향 사람 좀 봐야겠어. 둘이 앉아 있어 봐야 소총 말고 볼 게 뭐 있냐."
판크라토프는 대답하지 않았다. 네표도프가 나갔다. 그가 나가고 십 분쯤 지나자 판크라토프가 말없이 옷을 입더니 우리 방을 들여다보았다.
"저기, 나리들, 여기 앉아서 관급 물건 좀 봐주쇼. 다들 나갔는데 나 혼자 뭘 합니까?"
그는 서두르지 않고, 심지어 마지못해 하는 듯 옷을 입었다.
서너 시간이 지났지만 호송병 중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다. 우리가 잠자리에 들려는데 창밖에서 소란이 들리더니 문이 벌컥 열리고 셀레즈뇨프가 들이닥쳤다. 그 뒤로 다른 호송병들이 따랐다. 모두 취해 있었다. 셀레즈뇨프는 꼴이 말이 아니었다. 모자는 뒤통수로 넘어갔고, 외투 단추는 풀려 있었으며, 허리띠는 어디선가 잃어버린 모양이었다. 그는 고개를 앞으로 숙이고 발을 쿵쿵거리며 걸었고, 흐리멍덩한 반쯤 미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복종해," 우리를 보자 그는 시뻘건 손가락을 쫙 펴며 고함을 질렀다. "복종하라고, 줄 두 개 달린 하사관에게! 군말 없이, 존경심과… 뇌가 흔들릴 정도로 복종해. 웨-웨 아무도 내 말을 안 들어, 웨-웨 내 명령을 이행 안 해, 내가 완전히… 인텔리한… 장기 복무자인데?.. 이건 뭐야? 무슨 근거로? 난 질서를 원해, 모든 게 군 규정과… 황제 폐하에 대한 선서에 따라 진행되기를… 죄수들 전부 자물쇠로 잠그고, 보초 세우고, 계엄령을 선포한다, 요새에 틀어박혀, 딴소리 말고!.. 어… 내가 뭐라고 했지?"
그는 탁자로 성큼 다가가 팔을 휘둘렀다. 컵, 주인네 접시, 주전자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날아갔다.
네표도프가 달려가 셀레즈뇨프의 팔을 잡았다. 그의 얼굴도 술기운으로 얼룩덜룩했다.
"지랄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 그릇은 왜 깨? 고참이라고 우리한테 이래도 되는 줄 알아! 너도 혼좀 나봐야 해. 지겨워 죽겠어, 이 술주정뱅이 헛소리꾼! 왜 우릴 가만 안 놔두고 못살게 구는 거야? 확 묶어버리고 낯짝을 갈겨줄 테다!"
셀레즈뇨프는 놀란 눈으로 네표도프를 보더니 갑자기 야수처럼 돌변했다. 분노로 떨리는 목소리로 침을 튀기며 개처럼 번득이는 송곳니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렸다.
"뭐라고, 내 낯짝을, 줄 달린 상관의 얼굴을! 얘 체포해! 반란을 일으키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마! 두고봐!"
그는 소총이 세워진 구석으로 달려들었고, 네표도프도 뒤따라 달려들었다. 구석에서 그들은 씩씩대고 으르렁거리며 서로 엉겨 붙었다.
갑자기 키타예프가 겁에 질려 소리쳤다.
"조심해, 총 잡았어! 쏘겠다!"
엉겨 붙은 호송병들 때문에 우리는 셀레즈뇨프가 어떻게 소총을 잡게 되었는지 보지 못했지만, 그는 이미 개머리판을 꽉 쥐고 총을 비스듬히 겨눈 채 미친 듯이 주위를 둘러보며 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목에 핏대가 솟아 있었다. 그는 헐떡이며 쉰 목소리로 속삭였다.
"오지 마, 쏜다! 다 쏴 죽일 거야!.. 병신을 만들 테다!"
호송병들은 현관으로 도망쳤다. 우리는 유형수 방으로 뛰어들어가 문을 닫았다. 세묜은 평상 밑으로 기어 들어갔다. 나, 쿠추코프, 클리모비치는 구석에 웅크렸다. 내 무릎이 잘게 떨렸다.
"아무도 무사하지 못할 거다," 문밖에서 셀레즈뇨프가 날뛰었다. "싹 쓸어버리겠어. 적들을 쳐부수고 러시아를 구하자!"
탕 하고 총소리가 울렸다. 쿠추코프의 눈이 달걀흰자 두 개처럼 변했다. 아마 우리 모두의 눈이 그랬으리라. 정적이 흘렀다. 그 정적을 셀레즈뇨프의 비명이 갈랐다.
"아이고오! 죽었다, 친구들, 나 죽어!.. 잡아 줘!.. 내 제삿날이 왔네… 살려 줘!"
우리는 문을 박차고 나갔다. 셀레즈뇨프가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그 옆에 소총이 널브러져 있었다. 방 안에는 우리와 그 말고 아무도 없었다. 쿠추코프가 소총을 집어 들었고, 나머지는 셀레즈뇨프에게 달려들었다. 그는 계속 고함을 질렀다. 우리는 그를 바닥에서 일으켜 벤치에 눕혔다. 호송병들이 뛰어 들어왔다. 바닥에도 셀레즈뇨프 몸에도 피 한 방울 보이지 않았다.
"나 죽네!" 셀레즈뇨프는 머리를 감싸 쥐고 발을 버둥거리며 울부짖었다. "친구들, 나 끝장났어."
"아무도 당신 안 쐈어." 사람들이 그를 달랬다. "당신이 실수로 쏜 거야, 그게 다라고."
네표도프가 셀레즈뇨프 앞으로 비집고 들어가 진지하고 사무적으로 그의 얼굴을 주먹으로 치고는 엄하게 으름장을 놓았다.
"한 마디만 더 해봐, 피떡이 되게 패줄 테니까, 알아들어?"
셀레즈뇨프는 조용해졌다. 한동안 천장을 멍하니 응시하더니 몸을 일으켜 거의 멀쩡한 목소리로 물었다.
"근데 관급 탄환은 누가 책임지나? 난 관급 탄환 책임 못 져."
탄환은 엄격한 계산 하에 지급되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일은 어떻게든 수습될 거라고 설득하자 그는 다시 취기가 오르기 시작했고, 밖으로 끌려나갔다. 나는 빨리 술을 깨게 하려면 셀레즈뇨프의 귀를 눈으로 문지르라고 조언했다.
"아주 제대로 문질러 주지." 네표도프와 나스튜힌이 살기 어린 목소리로 동시에 말했다.
정말로 셀레즈뇨프가 오두막으로 돌아왔을 때 그의 귀는 검푸른 보라색이 되어 퉁퉁 부어올랐고, 귓불은 물이 찬 것 같았다. 탁자에 앉은 그는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셀레즈뇨프가 귀를 너무 세게 문질러서 우는 줄 알았지만, 착각이었다. 조장은 알 없는 부러진 안경테를 손에 쥐고 있었다. 소동 중에 안경이 깨진 것이다. 셀레즈뇨프의 볼을 타고 굵은 술 취한 눈물이 흘러내렸고, 그는 주먹으로 눈물을 닦으며 코를 훌쩍였다. 이 모든 게 얼마나 진심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셀레즈뇨프는 '완전히 인텔리답게' 약간의 '연기'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의 어조에는 다소 응석이 섞여 있었다.
"난 안경 없인 안 돼," 그가 징징거렸다. "줄 두 개 달고 무기한 복무하느라 눈이 섬세해졌단 말이야. 저 무식한 놈들은 눈을 보호해야 한다는 걸 몰라. 누구는 붕어눈깔이지만 누구는 꿰뚫어 보는 섬세함이 있다고. 난 눈 때문에 약도 먹고 의사한테도 갔는데, 저것들은 그런 개념이 없어. 난 눈 때문에 훈장도 받았다고. 안경 없이 내가 어딜 가? 나으리께서 출발할 때 당부하셨지. '셀레즈뇨프, 두 눈 부릅뜨고 봐라.'라고. 근데 안경도 없고 유리 바퀴가 테에서 튀어나가 철사만 남았는데 내가 어떻게 두 눈 부릅뜨고 보나…"
그는 고개를 젓고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중얼거렸다. 쿠추코프에게 여분의 코안경이 있었는데, 그가 그것을 셀레즈뇨프에게 주겠다고 했다. 셀레즈뇨프는 그에게 뽀뽀하려고 달려들며 말할 수 없이 감격한 상태가 되었는데, 내가 보기엔 그 또한 다분히 작위적이었다.
"여보게!.. 평생 기억하리다. 이게 진짜 배운 사람이지. 끈 달린 코안경이라니, 쓰기도 겁나네. 한마디로 완전한 인텔리다움이야. 이제 난… 말만 해, 셀레즈뇨프, 하면… 모든 게 준비 끝이야!"
그는 조심스럽게 코안경을 썼다. 알이 눈에 맞을 리 없었지만, 그는 감탄하며 말했다.
"딱 맞네, 빌어먹을… 진짜 무슨 의사나 정치범 나리들처럼, 빈틈도 없이… 횃대 위의 닭처럼 딱 앉아서… 떨어지지도 않아… 사람이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는 거야, 응?"
네표도프가 독설적으로 조언했다.
"귀에다 끼는 게 더 잘 어울리겠는데."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셀레즈뇨프의 늘어난 귀는 무쇠 같은 색을 띠고 있었다. 코안경을 쓰고 귀가 퉁퉁 부어 검게 변한 그는 정말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셀레즈뇨프와 호송병들은 곧 잠들었지만, 유형수들은 오랫동안 진정할 수 없었다.
"상상해 보십시오, 얼마나 불행한 일인지." 쿠추코프가 말했다. "저들이 술 취해서 우릴 다 쏴 죽일 수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도 동의했다.
클리모비치는 이불을 끌어당기며 이 기회를 틈타 '무정부주의적 블랑키주의자들'의 오류를 지적했다.
"이게 바로 민주 독재의 기반이오. 러시아 촌놈들, 대범한 천성들. '깊은 숲속에서 도리깨질 안 해봤소', '팔이여 휘둘러라, 어깨여 으쓱대라' 등등, 결국은 돼지우리 같은 짓들이오."
노그테프가 평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나리, 농민들은 건드리지 마쇼. 당신은 당신이고, 농사꾼들은 농사꾼들이니까. 사는 게 힘들면 별짓을 다 하게 되는 법이오.”
"그러니까, 셀레즈뇨프가 사는 게 힘들어서 오늘 우릴 다 쏴 죽일 뻔했단 말이오?"
"셀레즈뇨프 얘기가 아니오. 셀레즈뇨프는 무리에서 이탈한 놈이고, 난 농민들 얘기를 하는 거요."
아침에 셀레즈뇨프는 부은 얼굴, 파란 귀, 눈 밑에 처진 살, 떨리는 손으로 일어났다. 정신을 차린 그는 다시 평소의 지도력을 되찾으려 했다. 모든 일을 '좋게', '정확하게' 해야 한다며, 해이해지면 죄짓는 건 순식간이라는 둥 말을 꺼냈다. 나는 셀레즈뇨프에게 어제의 행동을 상기시켰다. 셀레즈뇨프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다시 길고 두서없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살다 보면 별일 다 있는 거 아니냐, 지난 일 들추지 마라, 사소한 허물 탓하지 마라, 군인 신분에 이송 중에 좀 노는 것 말고 어디서 놀겠냐 등등. 군 규정대로 행동하지 않는 다른 호송병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려 했다. 말 안 듣고 어디서 술 처마실 궁리만 하는 놈들이라고.
나는 셀레즈뇨프에게 말했다.
"어쨌든 셀레즈뇨프, 어제 당신은 우릴 다 쏴 죽일 뻔했습니다. 그래선 안 됩니다. 이런 추태는 끝내야 합니다."
"무조건 끝내야죠." 셀레즈뇨프가 동의했다. "내가 하는 말이 바로 그거요. 농담할 일이 아니지. 두 달 전쯤 바로 이 지역에서 죄수 무리를 이송하는데, 호송병들이 과음하고 여자 문제로 싸움이 붙어 총질하다가, 술김에 동료 하나를 쏴 죽이고 죄수 다리도 맞혀서 재판에 넘어갔다니까. 아니, 여기선 엄격하게 처신해야 해, 여기선…"
셀레즈뇨프의 말은 중단되었다. 그가 들려준 사건은 유형수 누구에게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쿠추코프가 나섰다.
"당신들이 재판받지 않고 우리 모두 무사하려면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네표도프가 단호하게 제안했다.
"이송소에서는 소총을 어디 깊숙이 숨겨둬야 해."
호송병들이 네표도프의 제안을 기꺼이 지지했다.
"맞는 말이야, 도착하면 소총을 자물쇠로 잠가야 해."
"그리고 열쇠는 우리 쪽에 두면 안 돼."
"우리 놈들이 열쇠 가지면 절대 안 되지."
셀레즈뇨프가 기분 나빠했다.
"이상한 소리 하네. 그럼 열쇠를 누가 보관하는데?"
외투 단추를 달던 키타예프가 고개를 들었다.
"주인 여자한테 맡기죠 뭐."
"주인 여자는 안 돼" 네표도프가 반대했다. "주인 여자들이 누군지 어떻게 알아. 우리 쪽도 안 되고. 정치범 중 한 분에게 열쇠를 맡겨야겠어. 당신에게 맡기리다." 그가 나를 보며 결정했다.
"맞는 말이야… 그래… 그게 제일 낫겠어." 나머지가 네표도프에게 흔쾌히 동의했다.
셀레즈뇨프는 당혹감을 감추려 국자 속의 크바스를 후후 불어대고 벤치에서 엉덩이를 들썩이며 웅얼거렸고, 위엄을 차려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마침내 그도 포기했다.
"뭐, 그게 정말 더 낫겠군. 당신들은 완전히 인텔리다우니까 질서를 지킬 수 있을 거고, 여차저차해서…"
기분이 좋아진 그는 지휘관 같은 어조로 명령했다.
"이송소 오두막에서는 소총을 군말 없이 보론스키 동지 나리에게 반납하기로 결정한다. 소총은 자물쇠로 잠그고, 열쇠는 군 복무의 엄격함을 다해 보관하며 아무에게도 주지 말 것. 관급 물품을 다루는 것이며 소총은 군인에게 성스러운 물건이니까…"
내가 셀레즈뇨프의 말을 끊었다.
"셀레즈뇨프, 당신에게도 소총이나 열쇠는 주지 않을 겁니다."
셀레즈뇨프는 억울하지만 자신 없고 무안하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려 했다.
"아니, 그건 좀 그렇네. 어쨌든 난 호송대 조장인데."
"귀가 뜯긴 조장이지." 병사 중 하나가 끼어들었다.
모두가 셀레즈뇨프의 귀를 쳐다보며 서로 눈짓을 했고, 킬킬거리는 웃음이 터졌다. 셀레즈뇨프는 무심결에 손을 왼쪽 귀로 가져가 만져보며 제자리에 있는지 확인하는 듯하더니, 코안경을 꺼내 콧날에 걸치며 뜬금없이 중얼거렸다.
"벼룩처럼 튀네. 스프링이 우리 국산이 아닌가 봐."
"군도는 어떡합니까?" 쿠추코프가 물었다. "군도도 압수해야 합니다. 불행한 일이 생길 수 있어요."
쿠추코프의 제안에 호송병들은 무겁게 침묵했다.
"군도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습니다." 쿠추코프가 계속 설득했다.
"죽이고말고, 반토막을 낼 수 있지." 판크라토프가 엄청나게 크고 기름때 묻은 깃 위로 가늘고 마른 목을 빼며 감탄하듯 동의했다.
"군도도 압수하겠습니다, 동지들." 호송병들이 망설이는 것을 보고 내가 단호하게 선언했다.
"엄청나게 튀네, 국산 스프링이 아니야." 셀레즈뇨프가 땀을 흘리며 다시 한번 중얼거렸다.
그렇게 쿠데타가 일어났고 새로운 질서가 확립되었다. 마을이나 촌락에 도착해 이송소 오두막에 짐을 풀자마자 나는 주인 남자나 여자를 불러 벽장이 어디냐고 물었고, 병사들은 소총과 군도를 반납했으며, 나는 그것들을 벽장에 넣고 잠갔다. 무기는 우리가 이동할 때만 지급되었다. 셀레즈뇨프는 만족해하며, 이제 모든 것이 '정확하게', '좋게', '인텔리답게' 되었으며, 자신이 제때 지시를 잘 내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진정한 질서는 잡히지 않았다. 소총과 군도를 맡기면서 호송병들은 마치 어깨에서 모든 책임을 내려놓은 듯 홀가분해하는 것 같았다. 이송소 오두막에 도착하기만 하면 그들은 점심을 먹고 쉬며 차를 마시자마자, 돔나니 나듀하니 만카니 하는 여자들이나 친구, 동향 사람들에 대해 수군거리기 시작했고, 서로 윙크하고 거칠지만 악의 없이 농담하고 욕설을 주고받다가 옷을 입고 나가서는 때로는 밤새 돌아오지 않았다.
보초 근무는 잊힌 지 오래였고, 우리가 체포된 자들이고 그들이 호송병이라는 사실도 기억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으며, 심지어 셀레즈뇨프조차 지시하고 장광설을 늘어놓는 데 싫증을 냈다. 아침마다 우리는 종종 마을을 뒤져 호송병들을 찾아다녔다. 우리는 그들의 엉성한 행정 업무를 장악해서 통행증을 처리하고 마부나 이송소 주인들과 협상하고 병사들 간의 싸움을 중재했다. 밖에서 보면 그들이 우리를 호송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그들을 호송하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술판을 벌이는 호송병들에게 노그테프도 합류했다. 우리는 따로 떨어져 지냈다. 하지만 호송병들은 보드카를 가져와 우리에게도 기꺼이 그리고 후하게 권했다. 은혜로운 불길이 혈관을 타고 흐르면 즐겁고 어지러운 흥분이 덮쳐왔고, 감각은 평소의 이성적 통제에서 벗어났다. 어딘가에서 아주 오래전에 잃어버린 듯한, 아이 같고 즉흥적인 새로운 감각이 떠올랐다. 마치 우리가 다른 자아를 얻어 삶의 원초적인 근원에 다시 닿는 것 같았다. 꿈 없는 깊고 묵직한 잠이 찾아왔다. 아침에 깨어나면 나른하고 맥이 풀려 평상에서 일어나기가 싫었다. 쿠추코프는 또다시 불행이 닥쳤다고 주장하며 머리가 제자리에 붙어 있는지 의심스러운 듯 머리를 감싸 쥐고 눈에 연기가 낀 것 같다고 말했다. 호송병들의 술 접대를 거의 받지 않던 클리모비치는 비난하듯 신문과 책장을 부스럭거렸고, 노그테프는 뚱하니 침묵했으며, 세묜은 알 수 없는 멍한 미소를 지었다.
가끔 우리는 호송병들에게 정치 교육을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호송병들은 예의 바르게, 얼핏 보기엔 경청하는 듯 들으며 맞장구치고 동의하고 공감 어린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았지, 이내 대화를 더 일상적인 주제로 돌리려 애썼다. "물론입죠", "당연하죠", "알다마다요", "원래 그런 거죠"라고 말하며 한숨을 쉬고는, 곧바로 동료에게 말을 걸었다. "세료가, 가서 메밀 좀 사 오지 그래, 다 떨어졌어." 혹은 "생선국 끓이게 마을 가서 싱싱한 청어 좀 찾아봐, 요새 많이 잡힌다더라." 셀레즈뇨프는 교활하게 눈을 가늘게 뜨거나 순진하고 멍청한 표정을 지으며, 가식적인 놀라움으로 되뇌었다. "맙소사, 사람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 건지, 한마디로 정치란…" 그는 더 분명하게 표현하기도 했다. "당신들 말이 맞아요. 하지만 우리 머리로는 알 바 아니지. 정치는 아주 심각한 일이라 뭐가 뭔지 따져봐야죠. 군인에게는 안 맞아요."
이런 대화가 있고 나면 나는 클리모비치와 격렬하게 논쟁했다. 그는 볼셰비키들이 인민주의적 환상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주 집을 불태우는 건 당신네 노동 농민들이 잘하지만, 진정한 정치 투쟁에는 무능하오."
나는 클리모비치에게 입헌민1주당과 연합하라고 비꼬았고, 그는 짐짓 태연하게 동의했다.
쿠추코프는 우리를 중재하려 애썼다.
"이해하십시오, 한편으로는 의심할 여지 없는 무지함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시다시피, 이 사람들은 호감이 가고 단순하지 않습니까…"
…언제부터인가 우리 유형수들은 호송병들 사이에서 이해할 수 없는 불안감을 감지했다. 그들은 저녁에 이송소에 머무는 일이 잦아졌고, 쉽게 짜증을 내고 서로 다투었으며, 뭔가 숨기고 구석에서 소근거렸다. 우리가 다가가면 입을 다물며 조심스럽고 죄지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곧 모든 것이 밝혀졌다.
하루는 셀레즈뇨프가 우리 방으로 들어와 한참 동안 횡설수설하더니, 건강은 어떤지, 처자식이나 친척은 있는지, 어느 주, 어느 군, 어느 면 출신인지 묻다가 마침내 쭈뼛거리며 말했다.
"저, 동지들, 앞으로 어떻게 가야 하나? 우리 끝장난 거 같은데. 그러니까," 그가 정정했다. "끝장은 아니지만… 아주 난처한 상황이 됐어요. 내가 그 벨제붑 같은 놈들한테 말했지, 정확하게 처신해야 한다고. 근데 알다시피 말 안 듣는 놈들이라, 결국 사고를 쳤어요. 다 마셔버리고 다 탕진했습니다."
===
알렉산드르 보론스키 <산 물과 죽은 물을 찾아서> 2권 2장
자연과 사람을 섬세하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관찰하다가 태연하게 미친 소리 해대는 게 매력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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