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동네에 산다는 것 말고는 사실 그 친구나 그집 사정에 대해서는 아는게 많이 없었습니다. 좀 더 지나고나서 알게 된 건 그 친구가 엄마와 단 둘이 살았고, 아주 약간 인지기능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정도.
그 아이는 5학년 여학생치고도 키가 많이 작았는데 바람이 심하게 불면 혹여 자신이 날아갈까봐 바닥에 납작 엎드려 울었죠. 또한 5학년이었음에도 신발의 좌우를 가끔 헷갈려하는 모습과 걸핏하면 눈물부터 흘려대던 얼굴.
그런 점들로 인해 초6인 제가 보기엔 약간 칠칠치 못한 아이였습니다. 언젠가 한번 구운 고구마를 나눠준 뒤로 그 친구는 하교할때 가끔 저나 동생을 따라왔습니다.
제 남동생은 저와 한살차이밖에 안났지만 운동신경이 좋아 달리기나 육상 같은 대회에 자주 뽑혀갔는데, 그런날은 동생의 우유를 챙겨서 저에게 가져가라며 주던 친구였습니다.
그 아이의 어머니를 뵌적은 몇번 안됩니다. 가끔씩 그 친구는 꽃이 흐드러지게 핀 동네외곽 담벼락 아래에서 발견되곤했습니다. 애가 집에 오지 않는다는 이야기에 주변을 돌아다니다 발견한 장소도 바로 그 꽃향기 가득하던 담벼락 아래였죠.
제가 그 장소에서 처음 그 친구를 보았을 때도 그 아이는 꽃마다 코를 대고 향기를 맡아대는 중이었습니다. 좀 더 뒤에 그 친구를 발견한 그녀의 어머니, 그러니까 아주머니는 화들짝 놀라 달려가 등을 한대 옴팡지게 후려치셨지만 이내 눈물이 그렁그렁해지셔서는 그 친구를 꽉 끌어안아주셨더랬죠.
그 장면이 제가 그 친구와 그 친구 어머니에 대해 남아있는 가장 인상적인 기억입니다. 작디작은 5학년짜리 아이를 마치 온전히 다시 품안에 넣으려고 종이를 구기듯 꼬옥 안아든 그 모습이. 저에게는 그랬습니다.
좀 더 뒤에 단둘이 산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나서 그 기억의 색채가 더 진해진 것도 같습니다만, 그 날의 장면은 어쨌든 지금의 저에게도 또렷하게 남아있습니다.
가끔씩 이유없이 눈물짓던 그 친구는 그 날도 평소처럼 바람을 막아주는 담벼락 아래에서 꽃향기를 맡고 있었을 겁니다. 담벼락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오래된데다, 바람을 막아줄만큼 단단하지 못했다는 것을 우리는 몰랐습니다. 그러니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담벼락 아래를 자신만의 장소로 삼은것은 그 아이의 잘못이 아닌것이죠.
사실 바람에 무너진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친구가 꾸벅꾸벅졸다가 담벼락에 몸을 기대었을수도요. 다만 전해들은 이야기로는 그저 담벼락이 무너져 아이 위로 쏟아졌다는 것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초6학년생인 내가 보기에도 작았던 그 친구의 몸 하나를 제대로 지탱해주지 못한 담벼락에게는.. 지금도 다소 서운한 마음입니다.
사고가 발생한 날. 여기저기서 웅성대는 소리와 시끄러운 엠뷸런스 소리가 제 주위, 아니 온 동네를 불길한 기운으로 감싸 안았습니다. 굳이 누가 이야기해주지 않았음에도, 불운한 일이 발생했음을 직감할 수 있었죠.
그리고 불운의 당사자가 그 아이였다는 사실을 알게되는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치않았습니다. 작은 동네의 불행한 사건은 그 무엇보다 빠르게 퍼져나갔으니까요.
장례식을 어떻게 하는것인지 제 또래친구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른들은 우리들이 그 장례식에 직접 참여하는것을 원치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단체로 장례식장까지 데려갔지만, 영정사진을 보고 절을 하는 등의 절차에는 참여시키지 않았거든요. 단지 우리는 밥먹는 곳에서 떨어져 별 말 없이 앉아있을 뿐이었죠. 통곡 소리같은 것은 안들렸습니다.
하지만 까불기위해 태어난 것 같던 친구들도 입을 닫아 걸만한 분위기였음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겁니다.
그 날을 제가 너무도 명확히 기억하는 이유는 그 친구 어머니의 한서린 말 몇마디 때문이었습니다. 우는 소리도 안나던 그곳에서 슬픔 가득한 아주머니의 애끓는 목소리가 제 귓전을 때렸거든요.
그래서 유물론자, 무신론자인 저는 절대로 '명복을 빕니다' 같은 말을 입에 올리지 않습니다.
제가 이런 소릴 해도 제가 무신론자인지 모르는 사람은 별 생각 없이 넘어가겠지만 아는 사람이 들으면 '고인의 영혼이 저승에서 복 받기를 빈다고? 네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고 있네'라고 생각할 테고, 저 스스로도 듣기에만 그럴듯하고 스스로 믿지도 않는 소리를 하는 건 누구에게도 예의가 아닌 거 같아서...
오래된 기억이시겠지만 그만큼 강한 잔상으로 남아있었나 봅니다,,,읽어 내려가면서 눈물이 핑 돌아버렸네요,,,그리고 저도 님의 글과 생각을 읽은 뒤로 많은 것들을 돌아보게 됩니다 내가 한 행동이 상대에겐 사려깊지 못한 행동들이 될 수 도 있음을... 무튼 글 너무 잘 읽었습니다.
[댓글수정]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순간이고...이건 참사인데...서운함을 느꼈다..이건 정말 소름돋는 표현입니다.마치 무안참사를 보면서 방호벽에 서운했다라는 느낌이라면 표현이 참 이상하죠. '서운하다'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거나 마음에 차지 않아 아쉽고 섭섭한 감정을 뜻합니다.어휘의의미를 정확하게 인지하시고 쓰시는게 좋을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