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런던 망명파는 소련군에 의한 폴란드 해방이라는 현실에 직면하여 반쏘정책을 수정하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강화한다. 이러한 표현의 하나가 1944년 2월 18일자로 망명정부가 승인한 '폭풍'작전이다. 소련군의 진출과 독일군의 후퇴에 즈음하여 독일군이 괴멸상태에 있을 때는 전국에서 일제히 국내군을 봉기시키고, 만약 독일군이 조직적으로 후퇴하는 경우에는 독일군의 후방을 교란시킨다는 것이다(이 후자가 '폭풍'작전의 원래 계획이었으며, 소련군의 전진을 방해할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이 작전의 "주요한 정치적 전제는 소련군에게 망명정부가 폴란드에서 권력을 장악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시위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해 국내군 내부에 비밀조직이 1944년 4월부터 조직되기 시작한다. 그러나 7월 하순, 소련군이 비스와 강 동쪽에 진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군 사령부는 일제봉기와 '폭풍'작전을 구별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보고, 7월 30일 이틀 후의 바르샤바에서의 봉기를 결정하고, 지령을 내린다.


이렇게 해서 비극적인 바르샤바봉기(8월 1일-10월 2일)가 시작된다. 이것은 소련군과도, 인민군을 포함한 여타 바르샤바의 군사조직과도 사전에 아무런 협의도 없이 그대로 시작된다. 소련군은 1944년 여름의 백러시아작전에서 크게 힘을 소모하여 바르샤바공략에 착수하기에는 보급과 준비가 필요한 상태였다. 그러나 나치스 점령군의 폴란드인 말살정책이 강화되고 있는 상황 아래서 빈약한 장비밖에* 갖지 못한 국내군부대 일부에서 시작된 봉기는 반소적, 반인민적 정치목적을 명확히 하면서도, 광범위한 주민대중이 점령군과의 무장투쟁에 참가하고 있는 사실에 주목하여 자신들도 봉기에 적극 참가한다. 그리고 인민세력을 통일시키고, 절망적인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노력한다. 소련군과 폴란드 제 1군은 급히 봉기단 지원작전을 전개하고, 봉기단 본부와 연락을 취한다. 병기와 물자도 공수한다.* 그러나 국내군 사령부는 소련군 및 폴란드 제 1군과의 공동작전을 거부한다. 사령부의 명령을 거부한 일부의 소부대만이 바르샤바로부터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10월 2일 마침내 국내군 사령관 코모로프스키는 항복문서에 조인한다.


바르샤바봉기는 군사적으로는 반독일적 성격을 가지고, 정치적으로는 반쏘, 반공주의적 의도를 가지면서 대중적으로 전개된 투쟁이었다. 그것은 "폴란드인민의 불굴의 용기와 자유를 사랑하는 정신, 그리고 애국주의의 증거"가 되었다. 그러나 20만 명의 주민이 독일군에게 살해당했고, 바르샤바는 죽음의 거리로 변했다.


바르샤바봉기의 패배는 런던 망명파의 정치적 위신을 크게 실추시키고, 그들의 내부모순을 격화시킨다. 10월 몰로또프 쏘련외상과의 회담에서 미·영·소 간의 커즌선 합의에 대해 처칠로부터 "협박에 가까운 설득"을 강요받는다. 임시정부 수상의 지위를 약속받고 런던으로 돌아온 미코와이치크는 각료회의에서 대소양보안을 부결당하고, 이윽고 11월 24일 수상을 사임한다. 농민당은 망명정부로부터 탈퇴한다. 대신 망명정부 수상에는 우익 사회민주주의자 아르치셰프스키가 취임한다.


망명파의 동부국경문제에 관한 고집은 대독전 종료 후, 쏘련에 대해 미·영이 새로운 전쟁을 도발하는 것과 똑같은 경우이다.


바르샤바봉기의 패배와 미코와이치크의 사임은 런던 망명파 정책의 완전한 파산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망명파는 해방후에 국내에서 권력을 탈취하기 위해 반공주의와 반인민적 정책을 한층 강화한다. 그들은 1944년 1월 이전의 국내대표부를 국민통일평의회로 개편하고, 강령을 발표한다(3월). 7월에는 국내각료회의를 설치하고, '부흥기의 사회적·정치적 지시'를 결정한다. 이처럼 내외에 권력탈취의 의도를 공언하면서 그것의 정당성을 그럴듯하게 꾸미기 위해 노력한다.


- 시바타 마사요시, <동유럽 인민 민주주의 혁명사 1>, 소나무, 1990, 92-93쪽.


* 7월말 현재, 바르샤바방위 독일군은 중앙군단 제9군과 나치스친위대 4만 명이었다. 이에 대해 바르샤바관할구 국내군의 장비는 중·경 박격포 16문, 대전차포 2문, 대전차총 29종, 경·중 기관총 47정, 경기관총 145정, 화염방사기 30대, 기병총 2689정, 대전차폭탄 406개, 수류탄 약 44,000개, 탄약 2-3일분이었다.


* 소련 공군에 의한 공수는 9월 4일부터 10월 1일까지 2343회에 걸쳐 이루어지며, 박격포 156문, 대전차총 505정, 자동총과 보병총 2667정, 수류탄 4178정, 포탄 300만발, 식량 113톤, 약품 500kg을 투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