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화가 프랑코 마냐니(Franco Magnani)
이탈리아 산골짜기 작은 마을인 폰티토(Pontito)에서 태어난 그는 고향에 대한 감정이 각별했다.
그에게는 아픈 기억이 있었다.
바로 고향 폰티토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군에 의해 처참히 파괴되는 과정을 목격한 것. 전쟁 이후 마을은 생기를 잃었고, 이웃 주민들은 하나 둘 씩 생계를 찾아 마을을 떠나게 된다.
마냐니 역시도 전쟁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향을 떠나게 되었다. 이탈리아 도시를 떠돌며 여러가지 직종을 거친 그는 기회의 땅인 미국으로 이주해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하게 된다.
마냐니가 화가로 전직한 건 이 무렵.
평범한 요리사로 살던 1960년대 중반, 그는 심한 열병을 앓고 갑자기 전에 없던 환각을 경험하게 된다. 고향 폰티토의 풍경이 마치 홀로그램처럼 생생하게 눈앞에 떠오른 것이다.
그 광경은 너무나 선명해서 마치 당장 눈앞에서 창문으로 들여다보듯 했다. 수십 년전에 떠난 고향의 좁은 골목길 하나하나, 이웃들의 모습 하나하나, 건물과 탑, 계단과 논밭에 이르기까지 있는 그대로 정밀하게 나타난 것이다.
영상은 물론 사진조차 제대로 남아 있지 않았던 60년대,
고향을 보지 못한 지도 십 수년 째.
그것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었다. 눈을 감아도, 심지어 다른 곳을 보고 있어도 폰티토의 골목길, 건물의 벽돌 한 장, 이웃의 표정까지 4D 영상처럼 그를 따라다닌 것이다. 이 강렬한 환각은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날 수 없었다. 마치 눈앞에 아로이 새겨진 듯 마냐니의 눈앞에 영원히 따라다녔다. 단순히 고향에 대한 그리움 이상의 강렬하고 거대한 감정.
마냐니는 고향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엄청난 압박감을 느끼게 된다. 미술을 체계적으로 배운 적이 없었던 그는 독학으로 그림을 익혀 머릿속에 담긴 고향 폰티토의 광경을 그리기 시작한다.
잠을 자도, 눈을 감아도 보이는 폰티토 마을의 골목길들.
마냐니의 증상은 신경과학적으로 진단이 되었는데,
측두엽 간질(Temporal Lobe Epilepsy)인 것으로 진단된다고 한다.
측두엽은 기억과 감정을 처리하는 핵심 부위인데 이 부위에 문제가 생기면서 강렬한 환각과 환청을 겪게 된다고 한다.
(측두엽)
마냐니의 경우 이 증상이 초기억 증후군을 발현시켰는데, 이 때문에 뇌에서 특정 스위치가 켜진 것처럼 잊고 싶어도 잊히지 못하도록 기억과 이미지가 계속해서 나타났다. 한동안 잊고 살았던 어린 시절 고향 폰티토의 모든 시각 정보가 측두엽 간질의 영향으로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온 것
마냐니가 그린 그림의 놀라운 점이 샌프란시스코 박물관의 대조작업으로 밝혀지는데, 그림과 실제 사진을 겹쳤을 때 벽돌 개수, 금이 간 모양까지 일치한 것이다.
그야말로 어린 시절 기억에 남은 고향의 모든 모습이 있는 그대로 재현된 것. 사진으로조차 남지 않은 세세한 모습 하나하나마저 정확하게 그려진 것이다.
유명세를 얻은 마냐니는 공식적으로 초청을 받아 수십 년만에 그리운 고향을 방문하게 된다. 나름대로 성스러운 의미를 갖고 있었던 지 그는 이탈리아에 와서 교황청에 먼저가서 교황 성하께 인사를 올리고 폰티토 입구에선 십자가를 들고 걸어서 올라간다는 계획을 세워둔 차였다.
근데 도착하자마자 그 동네 시장이랑 힘 좀 있는 사람들이 다 나타나서 자기동네 스타랍시고 고급 승용차에 태워다 냅다 폰티토까지 데려갔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이 사람이 그린 그림 중 마음에 드는 작품들.
인간의 손길이 닿을 수 없는 우주에 고향의 편린 하나하나를 간직해 두려는 듯한 그림들. 우주 공간에 영원히 보존된 폰티토의 모습.
어쩌면 전쟁도 시간의 흐름도 닿을 수 없는 영원하고 안전한 대피소를 만들고 싶었던 그의 무의식이 반영된 결과물이 아닐까 싶네.
어린 시절 전쟁으로 무너지는 고향을 보면서 어머니에게 '내가 다시 고향을 만들어 줄게요'라고 약속한 적이 있었다고 함. 이렇게라도 그 고향을 영원히 보존하고 싶었던 듯
(입체 모형으로 만든 작품들)
'올리버 색스'라는 유명 뇌신경과학자가 쓴 <<화성의 인류학자>>에 수록된 얘기고, 프랑코 마냐니는 아흔을 넘겨 장수했고, 작년에 별세하셨다고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