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유시민 옹과 같은 나이로, 1980년대 중반 미국에 유학와 지금까지 거주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대한민국이 겪어온 군사정권 말기와 민주화 이후의 정치 체제를 일상의 차원에서 직접 체험하지는 못했고, 비교적 거리를 둔 위치에서 한국 사회와 정치를 관측해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한국 사회의 민주화와 진보적 가치를 일관되게 응원해 왔습니다. 다만 그것은 특정 정당이나 인물을 지지하는 차원이 아니라, 권위주의를 넘어 개인의 존엄과 공동체의 책임이 함께 작동하는 사회에 대한 기대에 가까웠습니다. 동시에 물리적 거리로 인해 한국 사회 내부에서 축적된 분노와 박탈감, 세대별·성별로 다르게 체감된 불안을 온전히 공유하지 못했다는 한계 또한 분명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지금 쓰는 글에는 그러한 관측자의 시선과 개인적 문제의식이 담겨 있습니다. 그 목적은 특정 세대나 성별을 비난하기 위함이 아니라, 최근 몇 년간 반복적으로 확인되는 20대 남성의 정치적 급변 현상을 하나의 구조적 신호로 이해해 보고자 하는 데 있습니다.
대선 결과가 보여준 분명한 신호
2022년 대통령 선거 출구조사 결과는 한국 정치사에서 매우 이례적인 장면을 보여주었습니다. 같은 20대 유권자 집단임에도 불구하고, 20대 남성은 보수 후보에게 압도적으로 표를 몰아주었고, 20대 여성은 정반대의 선택을 했습니다.
이러한 성별 분기는 정책 선호의 차이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이는 정치 인식 구조 자체가 성별에 따라 갈라졌음을 보여주는 명확한 신호입니다. 일시적 유행이나 온라인 담론의 결과라기보다는, 누적된 경험과 심리가 정치적 선택으로 표출된 결과에 가깝습니다.
보수화가 아닌 극우화
전통적인 보수주의는 헌정 질서의 존중, 국가 공동체에 대한 충성, 점진적 변화를 전제로 합니다. 그러나 최근 일부 20대 남성 집단에서 나타나는 정치 태도는 이러한 보수주의의 틀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습니다. 제도와 사법 판단에 대한 불신, 선거 결과에 대한 선택적 수용, “우리 편이면 무엇이든 정당화된다”는 태도. 이것들은 정책 중심의 보수라기보다는 정체성 중심의 극우 정치에 더 가깝습니다. 옳고 그름의 판단보다 ‘누가 우리 편인가’가 먼저 작동하는 정치 심리입니다.
정의는 사라지지 않았다. 개인화되었을 뿐이다
이 집단이 정의를 거부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정의를 보편적·공동체적 가치가 아니라 개인 중심의 ‘공정’으로 축소하여 이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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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불리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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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특혜를 받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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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피해자인가
이들에겐 이러한 질문이 판단의 출발점이 됩니다. 이는 도덕적 타락이라기보다, 각자도생 사회에서 학습된 생존 윤리에 가깝습니다. 공동체가 보호하지 않는 상황에서 개인은 자신의 생존 감각을 기준으로 정의를 재구성할 수밖에 없습니다.
각자도생은 성별에 따라 다르게 체험된다
같은 사회 조건 속에서도 각자도생은 남성과 여성에게 전혀 다르게 경험됩니다. 20대 남성에게 각자도생은 지위 경쟁, 탈락의 공포, 실패를 개인 책임으로 돌리는 구조로 체감됩니다. 이 과정에서 위계 회복과 강한 권위를 약속하는 정치가 심리적 보상을 제공합니다.
반면 20대 여성에게 각자도생은 안전의 위협, 반복되는 차별 경험, 구조적 불이익으로 인식됩니다. 그 결과 보호와 제도 개입, 권리와 연대를 강조하는 정치 언어에 더 쉽게 반응하게 됩니다.
이 차이는 가치관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 감각의 차이입니다.
정치화된 종교와 In-group mentality의 결합
극우 집회에서 관찰되는 외국 국기 사용, 혐오 선동, 무조건적 편 가르기는 우연이 아닙니다. 정치화된 대형 종교 집단을 중심으로 ‘선과 악’, ‘우리 편과 적’이라는 단순한 세계관이 강화되고 있습니다.
이 구조 속에서 국익, 헌법, 민주적 절차보다 우리 편을 지키는 것이 최우선 가치로 자리 잡습니다. 이는 신앙의 문제가 아니라 정체성 정치의 문제입니다.
문제의 본질은 개인이 아니라 구조
이 현상을 무지나 혐오, 특정 성별의 문제로 환원하는 순간, 논의는 막히게 됩니다. 지금 나타나는 극우화 현상은 각자도생 구조가 개인에게 모든 위험을 전가해 온 결과입니다. 이것은 일탈이 아니라 경고 신호입니다.
해결책은 설득이 아니라 정의의 방향을 다시 세우는 일
극우 성향에 대한 비판이나 계몽, 설득은 대부분 실패합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이미 해당 집단에게 ‘적의 언어’로 인식되기 때문입니다. 이 지점에서 심리학자 김태형의 분석은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그는 능력주의(meritocracy)와 공정 담론, 각종 정의론의 이면에 생존 불안과 경쟁 강박이 자리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정의란 결국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외침의 다른 이름이다.”
지금 20대 남성들이 집착하는 공정 역시 왜곡된 도덕이라기보다, 사람답게 살기 위한 절박한 시도의 결과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정의가 개인 단위로 파편화되면서 ‘우리 편 대 적’이라는 극단적 정체성 정치로 흘러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김태형이 말하듯, 필요한 것은 ‘정의로운 개인’을 더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로운 공동체’를 회복하는 일입니다. 즉, 해결책은 다음과 같은 조건 변화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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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해도 전부를 잃지 않는 사회적 안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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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과 정치 성향을 가리지 않고 작동하는 공적 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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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에서 밀려나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유지되는 구조
이러한 조건이 마련될 때에만, 개인화된 공정은 다시 공동체적 정의로 확장될 수 있습니다.
내 개인적인 결론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볼 때, ‘대동세상’을 화두로 내세우며 정치 전면에 등장한 이재명 대통령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 보입니다. 대동세상이라는 말은 단순한 정치 구호가 아니라, 각자도생 사회에서 파편화된 정의를 다시 공동체의 언어로 묶어내겠다는 선언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우파와 좌파의 대립,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대립이라는 익숙한 정치 구도로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이는 특정 진영의 승패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더 이상 개인에게만 생존을 떠넘길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신호입니다. 다시 말해, 지금 필요한 정치는 진영 간 설득이나 경쟁이 아니라 집단적 정의를 확립하겠다는 분명한 기치를 내거는 일과 맥을 같이합니다.
이 점에서 미국 정치가 보여준 경험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트럼프와 MAGA 현상은 극우화의 원인이 아니라 증세이듯 한국 사회에서 나타나는 20대 남성의 극우화 역시 특정 인물이나 담론이 만들어낸 결과라기보다, 이미 누적되어 있던 생존 불안과 경쟁 강박이 정치적으로 표출된 징후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합니다. 증세를 제거한다고 병이 사라지지 않듯, 현상만 비난해서는 문제의 근본에 접근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굳이 극단적인 정체성에 기대지 않아도 사람답게 살 수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조건, 실패해도 완전히 배제되지 않고 경쟁에서 밀려나도 존엄이 유지되는 사회를 실제로 보여주는 것이 그 출발점입니다. 이것은 선언이나 수사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명확한 방향 설정과 정치적 결단, 그리고 상당한 힘의 투입을 요구합니다.
바로 그런 점에서 현 정부에 사회적 기대와 정치적 동력을 모아줄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특정 인물이나 정당에 대한 무조건적 지지가 아니라, 정의가 다시 공동체의 언어로 작동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말자는 요청에 가깝습니다.
20대 남성의 극우화는 설득으로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회가 정의의 방향을 다시 세우는 데 성공한다면, 그 흐름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누가 옳은지를 가르는 정치가 아니라, 누구도 혼자 버티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실제로 만들어 보이는 정치입니다.
/Vollago
그리고 투표 한방에 모든걸 변하는 구조를 바꿀수 있을까요?
답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사회 인지에 대해 진보는 사회적 구조 문제로 인식하나 보수 즉 현 극우를 포함하는 보수는 개인의 문제로 인식합니다. 즉 보수(가짜 보수지만)들의 인식을 진보적 해석과 대안은 논리적 판단과 무관하게 그들에게는 받아들일수 없어요.
시스템이 얼마나 중요한지 인식을 못하니 그럴수 밖에요. 윗 분들 글에 "노동소득과 자산의 양극화를 막을 방법이 있을까요?" 란글을 보며 이 부분이 젊은 세대에서 가장 큰 박탈감일텐데 이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나?
"경쟁에서 밀려나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유지되는 구조" 이 부분이 해결되야 전체적인 해결이 가능 하다 생각합니다.
사회 저변에 인식 변화 - 교육의 변화 - 언론의 정상화 - SNS 의 문제해결(??) 이런 부분에서 실마리를 찾지 않는 한 어려워 보이긴 합니다.
보수(극우 포함)에 대한 대안이라면서 실제로는 보수의 인지에 대한 시작과 고찰이 완전히 진보적 관점에서 접근하는데 어떻게 보수들의 대안이 될수 있죠. 그건 진보들의 정신적 승리에 불과해요.
보수는 공정의 가치 즉 국가적 시스템을 완결히 구축하고 그 근간에 계약과 법에 기초하고 이것이 시장의 원리이기 때문에 무오하다는 관점을 갖고 있죠.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문제는 무오의 사회 구조에서 적응하지 못한 개인의 문제로 인지합니다.
이것은 제 주장이 아니고 서양의 근대 철학의 시초 루소에 기반한 현대 서양에 이르는 기초 관념입니다. 그런데 사회적 현상을 파편을 선별적 취사로 글을 작성하고 이를 사회적 구조와 연결시키는 게시글은 진보적 가치에서 조잡하고 보수에게 어떠한 설득도 얻지 못합니다.
아마도 개시글 원작자나 댓글러 분도 취지로 볼때 보수적 사회 인지에 동의하시지 않을테니 제 댓글이 충격이라 할 정도로 보수들의 관념을 제 의견인양 동일시하고 계시니 어떠한 논의도 되지 않을 것 같은데 무슨 대안을 찾는지...........
그냥 각자의 생각에서 사시면 되요.
다만 제 글은 “극우 성향 개인을 설득하자”는 글이 아니라, 그 전제 자체가 이미 실패했다는 데서 출발합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 인식 교정이 아니라, 그런 인식이 반복적으로 재생산되는 조건을 문제 삼았습니다.
극우 집단이 구조적 설명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구조 분석이 무의미하다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왜 설득이 작동하지 않는지를 설명해 주는 배경이라고 봅니다.
사회는 언제나 개인 인식에 동의받은 뒤에만 제도가 바뀐 적이 없습니다. 최저임금, 복지, 민주화 모두 ‘개인 책임’ 담론이 강하던 시기에 구조 개입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제 글은 극우를 이해시키려는 시도가 아니라, 극우화가 더 이상 확장되지 않게 만드는 사회적 조건을 어떻게 재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 제기입니다. “그들은 안 듣는다”는 진단에서 멈추면 설명은 되지만, 정치적 답은 남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20대는 아예 없고, 앞으로도 없지
싶습니다. 기실 신규 채용 계획
자체가 없습니다.
대신 감원은 계속 중입니다.
사람이 돈이 있어야 여유도 있는데,
직업이나 없고, 있어도 힘들고 불안한
일이니 사고가 극단으로 흐르는
것 같습니다.
거기다 AI를 넘은 피지컬 AI가
오고있죠.
말씀대로 교육을 포함한
사회 시스템의 문제라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 어떻게 될까요?
5년 안에 사회 개혁이 가능할까요?
양산형 AI 로봇에 박수보다 충격과 한숨부터 나오는 이유입니다.
말씀대로 지금 청년들은 어쩌면 정치적으로 '극단화'되고 있다기보다, 사회 진입 단계에서부터 조용히 '증발'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채용은 막히고 감원이 일상이 된 구조 속에서, 그들에게 필요한 건 이제 '성실함'이 아니라 '운'과 처절한 '생존 본능'이 되어버렸으니까요.
이런 불안은 비단 청년들만의 몫이 아닙니다. 제가 몸담았던 언어 교육 현장에서도 그 기류를 뼈저리게 느낍니다. 평생을 바쳐 지식과 경륜을 쌓아 올린 교수님들의 눈빛에서조차, 저는 단순한 걱정을 넘어선 깊은 ‘두려움’을 보았습니다. 그토록 견고해 보이던 전문가들조차 흔들리는 판국에, 벼랑 끝에 선 이들에게 여유와 관용을 기대하는 건 어쩌면 우리 기성세대의 지나친 욕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피지컬 AI를 보고 박수보다 한숨이 먼저 나오신다는 말씀에도 깊이 공감합니다. 그 기술이 약속하는 풍요보다 “그래서 내 자리는 어디에 남는가”라는 질문이 가슴을 먼저 찌르기 때문이겠지요.
5년 내 사회 개혁이 가능할지 물으셨는데, 솔직히 낙관하기 어렵습니다. 지금의 구조는 스스로 빗장을 풀기보다, 외부의 충격이 가해져야만 겨우 방향을 트는 거대한 관성에 갇혀 있는 듯합니다.
결국 이 문제는 청년의 태도 탓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다음 세대에게 “안심해라, 여기에 네가 앉을 의자가 있다”라고 말해줄 수 있느냐의 문제 같습니다. 그 확신을 주지 못한다면, 눈부신 기술 발전조차 그들에게는 진보가 아닌 공포로만 남을 것 같아 마음이 무겁습니다.
일환으로 젠더갈등 해소가 저는 시작지점이라 봅니다.
모든 사람은 돈과 권력을 좋아하고 그 주위에 파리떼처럼 모이게 되어있습니다.
아무리 과거에 위대한 역사를 이룩했다고 해도 결국 독재로 가게 되어 있는게 필연적이죠.
독일처럼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교육하지 못하면 민주주의도 끝나는거죠.
제가 본 바로는 그냥 온라인에 찌들어서 그런것이 큽니다.
역사나 인문학 교육 없이 게임과 온라인 SNS에 잠식당하죠.
사회구조적인 해결은 어렵고 오래 걸려도
오히려 이건 더 즉각적인 개선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재밌고 좋은 컨텐츠를 만들어서 교육을 좀 합시다.
10년전 이이제이처럼.
상대적으로 인문 사회 교육의 영향을 덜 받았다고도 하고요.
그러나 그러한 콘텐츠에 쉽게 스며드는 것은 비단 그들 집단 전체가 불공정성과 개인주의에 빠져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사이비가 누구한테 쉽게 먹혀 들어가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거기에다 이 집단의 믿음은 개인의 유능함과 위선적이지 않음을 표방합니다. 불안함을 해소할 구멍을 주면서도 궁극적 원인을 내재적 문제와 PC 탓으로 돌립니다. 그러한 믿음 속에 나는 정말 중립적이고도 생산적인 사람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불안함을 좀먹고 자라는 괴물이 그런 결과를 낳습니다.
결국 불안함이 없어지고 굴절된 인식이 약간이나마 돌아와서 집단 전체가 특정 가치를 추구하는 상황이 해소되고 타인을 이해할 만한 심리적 마진을 집단이 가지게 된다면 이 문제는 언젠가는 해소될 수도 있을거라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렉스 마리나 님의 글은 우리가 한 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20대 남성 속 외로운 민주당원의 소회였습니다.
중간에 종교언급하셨는데, 이런 관점에서 종교가 극우와 쉽게 결합하여 '정치화된종교'로 자리잡는것은
어떻게 설명가능할까요?
극우 정치가 종교와 쉽게 결합하는 이유는 이 지점인 거 같습니다. 복잡한 구조 문제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우리는 옳고 저들은 타락했다”는 단순하면서도 명확한 도덕 프레임을 즉시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 과정에서 정치가 종교의 언어를 빌리기도 하고, 종교가 정치적 적대를 신앙의 문제로 재구성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문제는 종교의 존재가 아니라, 불안한 사회 조건 속에서 종교가 정치적 정체성으로 동원되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사회적 안전망이 비교적 안정된 사회일수록 종교의 정치화는 약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정치화된 종교는 극우의 원인이라기보다, 각자도생 사회가 만들어낸 심리적 공백을 메우는 과정에서 나타난 결합 양상에 가깝다고 봅니다. 이 점에서도 해법은 종교 비판보다는, 사람들이 종교적 적대에 기대지 않아도 되는 사회적 조건을 회복하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종교적 규합은 두가지로 나뉠수 있는데, 사회와 거리를 두고 종교커뮤니티 내부의 가치에 몰입하는 경우와,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종교커뮤니티의 동질의식을 더 강화하는 방식으로 나뉩니다.
어떤 특정종교의 성향이라기 보다 불교에도 소승불교와 대승불교로 나뉘는것도 속세와의 연관이냐 내재에 몰입하느냐로 나뉘는 차이가 있죠. 사이비 기독교만 보더라도 철저히 외부세계와 단절하고 폐쇄된 공동체 안에서 주교에 대한 복종을 통해 소속감을 느끼는 양상이나, 역으로 사회문제에 대한 적극적 참여와 해석으로 내부적 규합을 더 강화(외부의 적과 투쟁상대 설정)하는 양상으로 나뉠수 있듯이요.
극우기독교는 이런 경우 후자에 속하는데, 종교의 형식을 빌어 일정의 동질의식을 확보하고 이 동질집단의 적을 설정하며 공동체를 더 강화해나가는 방식을 쓴다고 보입니다.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한 세상사와 불안한 미지수는 이런 양식을 통해 좀더 단순화되고 안정감을 느낄수 있으며, 외부의 적을 설정함으로서 내면의 불만과 불안의 해법이 결국 적을 소멸하는데 있다는 목적의식을 이끌어냄으로 인생의 주도적 역할과 가치가 부여되는 식인거죠.
때문에 일상에서 내 인생에 주도권과 미래설계를 할수 있는 상황에선 이런 종교적 해석에 매몰되지 않습니다. 도저히 설명안되고 감당못할 상황에서 사람은 방어기재가 발동해 회피해 방안으로 숨어들거나, 상황을 최대한 단순화해 해석하려는 기재가 발동하게 되는 수순이 되는거죠
위에서 말한 사회단절과 폐쇄된 공동체로의 매몰은 개인으로 치면 히키코모리 화되는 것으로 볼수있고
기독극우의 상황을 단순화하고 외부의 적을 설정하는 양상을 개인으로 치면, 손쉽게 부모에게 내 인생의 책임을 돌리는등의, 내면의 문제를 외부로 원인과 책임을 돌리는 기재라고 할수있습니다. 페미나 여혐도 같은 기재라 할수있죠.
비단 종교만의 문제라기 보다, 개인이 동질집단을 어떤 방식으로 찾느냐의 문제입니다.
동질집단은 종교가 될수도, 성별,세대가 될수도 인종이 될수도 있는거죠
말로 설득이 아니라 효능감을 체감하게 해야한다!
개인적으로는 20대를 극우라고 단정짓는한, 20대를 포용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AI의 도움을 일부 받은 글이건 순수 사람이 작성한 글이건 글의 논리가 맞고 새로운 영감을 준다면 좋은 글입니다.
다만 관측자라 하셨지만 20대를 극우로 규정하셨고, 이해의 대상인듯 접근했다가, 문제적 집단으로 바뀝니다.
이런 형태이다 보니 결론부에서 본문의 기조와 달리 갑자기 대통령 이야기로 껑충 뛴 결말이 나온거고요.
제 눈에 그러한 논리적 오류들이 보였다고 말씀드렸을뿐, '이 글은 나쁜글이야!" 라고 한적은 없습니다. 오히려 제 지적에 추후 글이 좀 더 보완어 더 좋은 글이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대댓주신분이 오히려 '니 댓은 나쁜댓이야!' 라고 규정하신것 같은데요?
되가는게 아니라 4050 노동자들도 점차 극우화 되가는게 미국은 불체자 추방해 달라고 트럼프
찍었고 유럽은 반난민 반이민 정치가 주류입니다.
우리나라도 점차 4050 지방 노동자들 중심으로 극우화 조짐을 보이는게 외국인 노동자 때문에
임금이 오르지 않고 노조가 와해된다면서 국내 노동자들도 진보를 버리고 경쟁자인 외국인 노동자
추방을 요구하는 분위기가 점차 거세지고 있습니다.
우리세대들이 젊어서는 진보가 세계적인 흐름이였기 때문에 진보적 사고를 가지고 있는 상황이고
시대가 변하면서 이제 전세계적으로 극우화 보수화가 대세가 되가는 상황으로 보입니다.
한국 역시 세대 상관없이 극우화가 진행되는게 외국인 노동자가 본격적으로 증가해서 어느 순간
미국 유럽처럼 4050 노동자 계층 밥그릇을 깨버리면 1030에 이어서 4050도 진보를 버리고
극우성향으로 변하면서 전세대에 걸쳐서 보수 극우화 될겁니다.
거짓뉴스를 확대 재생산 하여 돈을버는 유튜버등과 그것을 이용하여 권력을 잡으려는 정치인들이 훨씬 심각한 문제라고 보네요.
저만해도 지난 대선때 고령이신 어머니 핸드폰에 연락처만 등록된 사람이(예전 보험담당자로 보임) 카톡등 메신져로 극우들의 가짜뉴스 영상 링크를 보내서 알고리즘으로 연관 영상이 계속 뜨게 만들어서 마치 요즘 핫이슈인걸로 착각하게 만들더군요
정치 저관여층은 이런 극우들의 가짜뉴스나 선동하는 뉴스를 많이 보다 보면 속아넘어갈수 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종편도 TV조선이나 채널A, MBN 등 보수쪽에 편향된 방송사가 더 많고요
그래서 자극적인 뉴스나 가짜뉴스에 심취해서 확증편향될 확률이 높고 저는 이게 가장 문제라고 봅니다.
권력자이든, 재력가이든, 사회적 소수자이든 잘못을 저지르면 필벌이 따라야 한다는 거죠.
진정한 공정이 무엇인지도 모르죠.
약육강식이 공정하다고 믿으니까요.
어와둥둥, 교조라뇨. 좀 더 직설적으로 말씀드리자면 푸른민주희망님 처럼 말씀하시는 걸 저희 또래 애들이 들으면 갖고 있던 부정적 인식이 더 강화될 거 같은데요?
20여년간 지켜본 결과 한번 고정된 편향은 숨길지언정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독일의 유명한 물리학자도 이런 말을 했습니다. 편향은 설득이 아니라 죽어 없어져야 대체된다구요.
이처럼 한번 고정된 편향은 바뀌지 않습니다. 회유, 협박도 소용없습니다.
저는 그 대책이 단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고립전략입니다.
아직 생각이 무르익지 않은 10대를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해주는것이 더 효과적 대응전략이 될 수 있습니다.
유행에 민감한 한국사회는 특히 자신들이 고립되었다고 느끼면 자기들보다 어린 세대를 무지성으로 따라합니다.
심지어 그 따라하는 과정에서 편향이 희석되거나 바뀌는 경우도 종종 있지요.
그러니 40대로 접어든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기성세대들은 따뜻하게 포용하고 보살펴주며 지지해주어야 합니다.
지금의 청년세대가 아니라 유년세대들을요...
버린다가 정말 버린다로 생각하시는건 아니겠죠?
극우는 교화가 불가능하며, 그 끝은 폭력과 전쟁 뿐입니다.
역사적으로 극우가 정신을 차리거나 교화된 적은 없습니다.
그래서 극우는 공권력의 힘과 공동체의 압박을 통해 박멸해야 합니다.
극우 대표 집단인 20대 남성에 대한 온정적인 시선 또는 같은 '남성'으로서의 연대감은 극우를 더 키우는 비료가 될 뿐입니다. 손절할 땐 확실히 손절해야 하고, 회초리를 들 땐 제대로 휘둘러야죠.
극우적 가치관을 가진 이들을 교화하는데 신경 쓰는 것보다, 극우가 더 확산되지 않도록, 공동체 일원들이 극우에 물들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을 살아갈 세대가 지금보다 나은 세상에서 희망을 안고 살 수 있도록 많은 고민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됩니다.
간결한 표현과 잘 정돈된 논조의 글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20대 남자들의 극우 현상은 만들어 준 것도 있다고 봅니다.
저도 이제 환갑에 들어섰지만 처음 여성차별금지는 줄기차게 응원 했어요. 학생인권까지도. 하지만 그 과정과 결과는 실패라고 봅니다
여성차별금지. 딱 여기까지입니다 이것을 위해 노력 했어야 했는데 어찌하다보니 여성우대만 만들어 줘 버렸죠. 차별은 남자에게도 있었거던요 군가산점 부터 시작 여대..등등
여성 차별을 없애면서 남자에 대한 차별까지 같이 나아가야 했고 궁극적으로 남녀차별금지가 완성 되어야 했는데...결과적으로 남성 차별만 더 심각해진 그러니 그들이 민주당의 반대편에 서는 것은 어쩔수 없는 결과물이라 봅니다.
지금은 뭘해도 반은 되돌리기 힘들겁니다. 이 반의반은 종교, 나머지 반은 정치와 연계 바뀌지 않겠죠 그럼 되돌릴수 있는 반과 다음 세대를 올바르게 만들 수 있는건 이재명이 그 길을 보여줬다고 봅니다.
남자 차별에 대한 부분과 여성 차별과 같이 나아가야 한다고 봅니다.
학생인권도 마찬가지죠.
학생의 인권을 주면서 확실하게 책임까지 주어져야 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정신 없는 학부모에 대한 선을 만들어 줬어야 하는데 진보교육감들이 너무 학생인권에만 집중, 혹시나 불미함으로 학생인권이 없어질까봐 교사인권이나 다른 부분은 눈감아 버린 결과물이 현재라고 봅니다.
그런데 가장 큰 빌런이 튀어나왔네요
AI.
그럼에도 극우를 막을 방법은 많은 다수가 맞다고 생각하는 상식에 기인한 정책와 정치 사회를 만들어가는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잼이 그러더군요 좌파도 우파도 아닌 상식파라고...
결국 마음의 빈곤, 내재된 불안이 과도한 탈정치화, AI의 대두, 상대적 박탈감 등의 여러가지 문제가 맞물려 증폭되어 마음의 문을 반쯤 닫아버리고 집단 내에서 동질성을 확인하기 위한 밈 또는 소재로 쓰이는 지경에 다다르고 그것이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이유는 전 세계적인 사회적, 경제적 상황 외에 본문에서 언급하신 남녀가 상황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그 관점의 차이 때문이라고 느꼈습니다.
20대 남성 내에 중도 또는 진보 성향의 친구들의 비중이 점점 줄어들고 집단이 극우로 달려가는 상황에서 제 나름대로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이렇게 좋은 분석글을 볼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여기에 올라오는 수많은 제언들 중에 세대 고립론도 적지 않게 힘을 얻는 것을 보며 물론 저도 가끔 그런 생각이 왈칵 치솟기는 하지만 그게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근본적으로 굴절된 인식을 돌려야 한다고 생각해왔는데 글을 보며 위로를 받았고 댓글들을 보며 가슴 한켠 씁쓸함이 피어오르는 것은 어쩔수 없네요 =(
'정의가 다시 공동체의 언어로 작동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말자는 요청'
저는 사실 이러한 이유로 이번에 이재명 대통령을 뽑았습니다. 어쩌면 이번이 우리가 다가오는 시대를 맞아 정의와 공동체에 대해 그 정의와 가치를 재정립하고 통합의 시대로 나아갈 준비를 할 수 있는 마지막 시기라고 생각해서 뽑았습니다. 저도 그렇고 앞으로 이 시대를 더 살아나갈 사람들이 부디 그걸 잊지 않고 가슴 속에 간직하여 굴절되고 갈라진 우리가 다시 서로를 품을 수 있다는 그런 좋은 선례를 남겼으면 좋겠습니다.
추운 겨울입니다만 사람들 사람들의 미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답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