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3지도를 보면 독일소국 중 마이닝겐이라고 하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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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색이 작센마이닝겐)
원래 판도는 이거
(안 본 눈 삽니다)
오늘은 이 소국의 역사와 예술에 대해 알아보자.
원래 작센지역은 베틴가문이 통치하던게 아니였는데,
원래 다스리던 가문의 대가 끊기자,
프리드리히 1세가 작센 선제후국 자리를
가지고, 베틴가문이 작센을 다스리기 시작한다.
(베틴가문의 문장)
(작센OO들의 깃발이 어디서 왔는지 보인다)
프리드리히 1세의 아들들은
베틴 가문의 영지들을 공동통치하게 된다.
(그래도 장남인 프리드리히 2세는 선제후직을 물려받는다)
그러다 사이가 틀어져 작센형제전쟁으로
한 판 뜨고 영토가 쪼개진다.
프리드리히 2세가 죽고 상속자 에른스트가
선제후직 및 쪼개진 영토를 다시
병합하여 베틴가문의 영토가 하나가 된다.
(사진은 작센의 에른스트)
하지만, 동생 알브레히트도 머리가 커지자,
영토를 요구하게 된다.
(사진은 작센의 알브레히트) (탐욕스럽게 생겼다)
그렇게 다시 한 번 베틴가문의 영지가 나눠진다...
(이때 안 쪼개지고 유지됐으면 작센이 독일통일 했을지도?)
빨간색이 에른스트,
노란색이 알브레히트의 땅
(빨,노는 공동통치구역)
이 에른스트계가 쪼개지고, 쪼개져서
작센마이닝겐이 튀어나오게 된다. (1675년)
이렇게 나온 초대 마이닝겐 공작이
베른하르트 1세가 되시겠다.
(베른하르트 1세)
이 양반은 공작이 되자 궁정을 세웠지만,
뭔가 허전했는지 1690년 마이닝겐 궁정악단을
설립하게 된다. (Meininger Hofkapelle)
이 악단은 초기에 (우리가 아는)
제바스티안 바흐의 먼 친척 중 한 명인
루트비히 바흐가 지휘하게 된다.
(별명으로 마이닝겐의 바흐가 있다)
이 악단은 18세기 내내
성장하며 나름 이름을 알린다.
그리고, 19세기
베른하르트 2세가
마이닝겐의 공작 직위에 오른다.
(베른하르트 2세)
(이 양반이 서른 중반이 될 때쯤 빅토의 시작시점이다.)
이 양반은 '베른하르트'의 이름
어디 안 가는지 예술에 엄청난 투자를 한다.
마이닝겐 악단도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크게 성장한다.
(이 양반은 악단에 오페라 같은 걸 요구했지만,
지휘자들이 교향악에 초점을 두게 한다.)
(이는 나중에 높으신분들이
원하는 오페라보다는
음악가들이 선보이는 교향악을
할 수 있다는이미지를 주게 된다)
또, 마이닝겐 극장을 하나 지어
악단 외에도 예술 선보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
(원래 극장은 커튼을 칠 수 있는 큰 무대만 있으면
무대 위에서 온갖 예술들을 보여주는 곳이다)
(마술공연을 생각해보자)
(마이닝겐 극장, 1908)
하지만, 이 양반 국제정세는 못 읽는지
보오전쟁에서 오스트리아 편을 든다.
패색이 짙어지자,
이 양반은 반강제적으로 물러나고
아들에게 공작위를 물려준다.
그게 바로 게오르크 2세 되신다.
(게오르크 2세)
이 양반도 아버지를 따라 (탈모)
예술에 전폭적인 투자를 한다.
이 양반이 재위시절엔 악단이
이름 들었을 법한 양반들과 협업하게 되는데,
이 시기 지휘자 블뤼허가
Allgemeiner Deutscher Musikverein(독일음악협회)을
위한 축제를 프란츠 리스트와 함께 열었으며,
(이 협회는 '신독일풍'의 음악을 선두하게 된다.
그 중 한 명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또, 리하르트 바그너의 요청으로
첫 바이로이트 축제 때
음악을 연주하였다고 서술되어있다.
(프란츠 리스트)
(리하르트 바그너)
블뤼허도 대단한 지휘자였지만,
그 다음 지휘자 뷜로는
리스트의 가르침을 받았으며,
최초의 전문 지휘자가 되는 사람이다.
뷜로가 악단을 이끌자,
오케스트라 연습에 표준을 세워
(마이닝겐 오케스트라 훈련법)
오케스트라 연주가 한층 더 발전되었다.
그가 독일의 도시들을 방문해 연주를 들려주자,
음악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신선한 연주에 충격을 먹었다고 한다.
그는 그렇게 마이닝겐 악단을 이끌다가,
베를린에 초청받고 떠난다.
(뷜로가 베를린에 가서 이끈 악단이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베를린 악단은 독일 최고의 악단이 된다)
(한스 폰 뷜로)
뷜로 이후에도 훌륭한 지휘자가
이 악단을 이끌고, 독일 전역을 돌아다니며
연주를 선보였다.
이게 끝이 아니다.
게오르크 2세는
연극에도 관심을 가졌는데,
그가 아내 엘렌 프란츠와
연출가 크로네크와 함께 세운
극단의 이름이 마이닝겐 극단이다.
(마이닝겐 극단)
이 극단은 사실주의 연극으로
이름을 날렸고, 역시 독일 전역을 돌아다니며
연극을 선보였다. 이 정도로는 명성이 부족했는지,
러시아(!)까지 가서 연극을 선보이게 된다.
훗날 연출의 거장이 되는 스타니슬랍스키는
러시아까지 연극하러 온 이 극단을 보고
이런 서술을 한다.
(다음은 스타니슬랍스키의 자서전)
배우의 연기는 그닥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의 자서전에도 연출이 모든 것을 할 순 없다고
서술되어있다.
연출가 크로네크는
공과 사를 엄청 구분하는 스타일였는지,
연극에 사소한 오류가 있어도 배우들을 몰아세웠다.
하지만, 이런 군기가 극단이 굴러가는 이유기도 하였다.
이 극단은 1890년 막을 내린다.
하지만, 그들이 남긴 유산은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그것도 대한민국 떡툰에서 말이다
(이게 핵심)
(오타는 AI돌려서 그렇다)
이로써 마이닝겐의 역사와 예술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런 재밌는 문화를 부흥시킬 수 있도록
빅토에 소국들을 위한 문화 DLC를 나오길 빌어보자.
궁금한 점이나 틀린 점은 댓글로 달길 바란다.
댓글 영역
문화적 영향력, 고고학, 박물관 등등 빅토시기에 매우 매우 중요한 요소들이 안 나오긴 했지
Morgenröte 라는 모드 있긴 함. 거기서 뽕 채우면 됨
근첩같은 취소선은 좀 어케해봐
이거 보고 모르겐뢰테 켰다
취소선 드립 너무 뭣같아서 그냥 내림
좋은 글이긴한데 취소선은 안하는게 나은듯
떡툰은 뭐야 시발ㅋㅋㅋㅋㅋ
아 핵심이라고 ㅋㅋ
떡툰 제목 다오.
동아리
데뎃 닝겐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