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플레이 신호가 떨어진 대한민국 프로야구는 올해로 출범 40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배출된 프로야구 스타 중 롯데 자이언츠 투수 최동원이 가장 돋보인다.
1958년 5월 24일 부산에서 태어난 최동원은 경남고 2학년이던 1975년 전국우수고교초청대회에서 경북고를 상대로 노히트노런을 기록하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1976년 청룡기대회에서 군산상고(현 군산상일고)를 상대로 1경기 최다 삼진 20개를 뽑았고 4경기 연속 완투승을 일궜다. 송진가루를 툭툭 던진 뒤 신발끈 겉 양말 안경 모자챙을 차례로 만지는 최동원 특유의 투구 전 루틴 동작에 팬들은 열광했다. 1981년 실업야구 롯데에 입단해 최우수선수(MVP)를 비롯해 다승왕과 신인상을 휩쓴 그는 1984년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 구단에서 27승(13패) 6세이브 223탈삼진으로 정규시즌 MVP에 오르는 맹활약을 펼쳤다. 이어 삼성 라이온즈와 맞붙은 한국시리즈에서 최동원은 불세출의 기록을 남기며 진가를 발휘했다.
그는 7전 4승제 한국시리즈에서 40이닝 4승(1패)을 홀로 감당하면서 롯데 자이언츠의 창단 첫 우승을 이끌었다. 선발과 불펜, 세이브 전담은 물론 패전 처리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분업화한 프로야구 투수 운용 시스템을 따져본다면 프로야구가 존재하는 한 깨지지 않을 대기록이다.
최동원은 타율 10할의 ‘4번 타자’였다. 1984년 8월 16일 MBC 청룡을 상대로 1사 만루 상황에서 4번 타자 김용철이 부상 당해 투수 최동원이 방망이를 들어야 했다. 청룡 투수 유종겸은 앞 타자를 고의사구로 보냈다. 최동원은 보란 듯이 우익수 키를 넘기는 2루타를 터뜨렸다. 프로 무대 유일한 타석에서 결승타를 날린 것이다.
최동원은 자신만만하고 오만하기까지 한 이미지가 도드라진다. 그라운드에선 금테 안경을 쓱 만지고 보일 듯 말듯 한 미소와 함께 강속구를 포수 미트에 꽂아 넣었다. 때론 아주 느린 속도의 ‘아리랑 볼’로 타자의 헛 스윙을 유도하는 ‘농락 투구’도 했다. 야구장 밖에서는 다정다감했다. 팬들의 열화와 같은 사인 요청에 일일이 응했고, 쏟아지는 팬레터에는 한 장도 빼놓지 않고 사인 엽서를 전할 정도였다.
그의 등 번호 11번은 2011년 롯데 자이언츠에서 영구 결번됐다. 오늘은 2011년 9월 14일 향년 53세에 지병이던 대장암 악화로 세상을 등진 고 최동원의 11주기다. ‘배짱과 낭만’이 밴 승부사의 역투가 그리운 날이다.
강춘진 수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