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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의 몽골식 이름으로 한 때 히트쳤던 비진부,
머역갤 여러분께 썩은 물이 다 되어버린 이성계 떡밥으로 다시 인사 오지게 박습니다.
이번에는 종교적, 기복적 부분으로 보는 이성계입니다 ㅎㅎ
솔직히 이번 글은 너무 급히 준비해서 자료도 없습니다.
무속과 풍수, 불교철학을 야매로 배운 몸이니 만큼,
아무쪼록 글이 부족한 점이 있어도 너무 뼈는 때리지 말아주시고(ㅠㅠ)
이쁘게 봐주셨으면 합니다. 그럼 시작해보겠습니다.
1932년 금강산 월출봉에서 발굴된 사리장엄구가 있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핵심인물은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입니다.
학계에서는 '사리를 담은 이 은제 도금 소탑기'(이하 '소탑')의 명문에 등장하는 인물을 셋으로 봅니다.
이성계,
부인 강씨,
그리고 -학계에서 여진족 또는 사리소탑 장인으로 비정하는- 勿其氏
저는 소탑과 물기씨의 뜻을 조금은 다르게 해석합니다.
일단 소탑에는 미륵신앙과 밀교의 주술성, -밀교보다 무속에 가까운-현세기복의 특징이 있습니다.
현세는 거짓되고 뒤틀렸다는 말세철학이 기반된 내세와 구원의 미륵불을 믿는데
무속적 현세기복이 들어 있습니다.
모순이지요?
이 모순에 소탑을 만든 이성계와 부인 강씨의 목적이 숨어 있다고 보입니다.
목적을 서술하기 전에 소탑에는 다른 유물과 다른 특징들이 있습니다.
1. 제작자가 국적을 기술하지 않았다.
이성계쯤 되는 위치면 자신이 봉안하는 소탑에 '고려국 (중략)
수문하시중 이성계'라고 하는 게 맥락이 맞는데
고려국이라는 국명이 빠졌습니다.
2. 명문 서두나 중간에 있어야 하는 기복적 내용이 빠져있다.
이 정도면 명문 서두나 중간에 기복적인 내용이 들어야 맞습니다.
복을 비는 명문이면 말이지요.
3. 자신의 공로를 주로 서술했다.
미륵하생을 기원하는 밀교식 소탑에 명문을 새겨
새겨진 내용으로 복을 비는 입장인데, 귀중한 은과 금을
써서 자신의 공로를 적으려고 했습니다.
이상한 것이지요?
4. 이 소탑을 담는 외기들에 새겨진 이름 중 고려에 충성한 사람이 없다.
흠... 더 서술할 필요도 없는 내용이죠.
저는 이러한 요소들을 통해 이야기를 만들고자 합니다.
이성계는 1년 전부터 사서의 기록보다 더 대놓고 -조선의 개국이 아닌-왕위찬탈에
욕심이 있었다고 보입니다. 이러한 부분은 어디서 보이느냐?
이 소탑이 발견된 곳이 태조왕건이 금강산에서 모든 보살들의 우두머리라는
법기보살(=담무갈보살)을 친견했다는 금강산 절고개의 바로 너머의 월출봉 지역인
것이지요. 즉, 이 부분에서 이성계는 태조왕건을 넘어서겠다는 마음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철학에는 현세가 잘못 되었다는 미륵신앙이 들어감으로서
현 왕씨에 대한 감정을 은연 중에 드러냅니다. 증오나 원망이 아닌 무언가가 느껴집니다.
그리고 밀교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사리가 세상의 어떤 것보다
주술적 힘이 강력하다고 믿었습니다. 이성계가 자신과 아내만 이름을
새기는 명문란, 그것도 미륵불이 새겨진 소탑의 부분에 부처님의 사리를
넣은 곳에 명문을 적는데, 봉안하는 이유가 없다?
저는 '勿其氏'가 이 명문의 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무엇보다 확실한 목적으로 읽혔습니다
'(부처님) 그 성씨는 (이제) 안 됩니다'
첫째, 물기라는 성씨는 여진이나 만주 쪽 기록에서 찾아지지 않습니다.
둘째, 종교적인 명문에 자신이 속한 국가를 새기지 않고 忠과 命을 논했습니다
(그는 국적이 한 번 바뀌었기에 忠을 논하기에 부적절하지만
불교에서 도교, 또는 회회교로 바꾼 적은 없습니다. 종교적 忠 또한 忠이지요.)
원문의 내용을 학계의 시각에 맞춰 해석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충성을 떨쳐 어지러움을 멈추고('奮忠定難')
나라를 구해서 재상이 되고('匡復燮理')
왕명을 보좌한 공신('佐命功臣')
'벽상삼한''삼중대광''수문하시중''이성계'와
(그의 아내인)'삼한국대''부인 강씨',
(여진족 또는 소탑의 장인인)물기씨('勿其氏')
이제 물기씨에 대한 제 해석이 맞다는 전제 하에
명문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신앙심에 따라 난을 평정하여
나라를 구하고 재상으로 힘써 일했고
사직을 보좌한 공신이 된 이성계와
그 부인 강씨입니다.
'그 씨(≒왕씨)는 안 됩니다'
어떤가요? 앞부분이 조금 무리수가 있다고 하지만
마지막 부분은 발원의 목적이 명확히 있다고
보이지 않으시는지요?
원래 기복에서 좋은 것은 집 안과 기도문의 앞이나 중간에,
남이 나빠져서 자신에게 좋게 되는 것은 집 밖과 기도문의
말미에 넣는다고 합니다.
그 관점에서 저는 勿其氏를 왕씨의 멸망을 비는 것을 넘어
왕씨 멸망의 허락을 부처님께 구하는 명문으로 보았습니다.
부처님이 허락한 왕씨의 왕조를 뒤엎는 속세의 신도,
전주 이씨 성계의 마음인 것이지요
(사실 이 때 쯤이면 부처님도 왕씨 멸망은 못 막는다 생각됩니다)
이성계는 태조왕건의 기도터인 절고개 너머에 발원하여 고려 왕씨를 넘어서겠다는 진심,
소탑에 새겨진 미륵을 통해 세상을 말세로 본 미륵신앙의 미륵하생관,
월출봉의 담무갈보살 신앙과 소탑의 형태로 엿볼 수 있는 사리불사*에서의 티베트밀교적 주술성,
명문을 통해 엿볼 수 있는 현세구복적 무속 성향
이러한 점들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도록 배려하여 은근히 보입니다.
저는 이걸 아는 사람만 알아보게 하는 폐쇄적인 프레스(press) 코드라고 부르고 싶네요
* 부처님, 사찰, 경전, 승려들을 위해 하는 것을 불사라고 부릅니다.
부처님의 사리에 관련된 불사는 '사리불사'라고 부릅니다.
이성계의 진심은 이미 역성(易姓)에 기울었다고 가정했을 때
그의 심리는 어떤 상태였을까 논하자면,
저는 '인내의 한계'라고 생각됩니다.
奮忠, 燮理에서 奮과 燮은 불태움과 연결되지요
불태웠다는 부분에서 전쟁터에서 인생을 보낸
'전쟁에 뛰어난 노정객'의 마음이 엿보입니다.
匡復, 左命에서는 사직을 지켜냈던 이성계의 노고가 읽힙니다
내가 이렇게 노력을 했는데, 자신을 계속 절벽으로 몰아서
너무나 괴롭고 힘들었기에 지쳤다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성계 은제 도금 사리소탑과 사리기, 사리장엄구는
성취를 앞에둔 자의 여유, 인생의 회고, 과거와 현재에 대한 씁쓸함,
(고려 왕실은 부처님이 만들었다는 관점이 당연한 고려시대에
불교를 믿는 사람으로서)부처님에게 허락을 구하는 마음,
현세구복, 내세기복이 모두 섞인 유물로 보입니다.
여러분은 저 사리소탑의 명문이 어떻게 읽혀지시나요?
PS.
이 사리불사에 참여한 사람들은 아마도 사서의 기록보다
이성계 일가, 그것도 이성계 1인과 경처 강씨에게 훨씬 가까운
사이였으리라 생각됩니다. 종교적 도반에 가까운 존재였겠지요.
그들은 이성계의 무의식?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 속마음? 같은 건
모르고 싱글벙글 기복적 불사(佛事)에 참여했겠군요
댓글 영역
성계옹 떡밥은 언제든지 현역이 아니겠습니까
ㅎㅎ 감사합니다
흥미롭넹
무속적으로 한문을 쓴 글을 쓰고 불에 태우는 비방법이 옛날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한 비방법에 쓰는 글은 최대한 단조롭게 쓰고 비방을 하는 쪽이
비방을 위해 종이를 태울 때 세부적인 내용을 조용히 되뇌였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 비방법이 저러한 기도에 영향을 주었거나
저러한 기도가 이 비방법에 영향을 주었을 것 같습니다.
위화도 회군 전에 이미 나라 갈아엎겠다는 생각한게 아닐까요? - dc App
대붕이는 갤러리에서 권장하는 비회원 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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