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후 2시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468호 법정. 이른바 '담배소송'을 심리한 민사 13부의 재판장 조경란(47.사진) 부장판사는 원고들의 패소를 선고하는 판결문을 읽어 내려갔다. 7년4개월을 끌며 관심과 논란을 불렀던 국내 첫 담배소송 1심 재판에 일단락을 짓는 순간이었다.
담배소송은 1999년 폐암 환자 김모씨와 가족 등 36명이 "흡연 때문에 폐암에 걸렸다"며 KT&G(옛 담배인삼공사)와 국가를 상대로 모두 4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이다. 소송을 낸 암환자 7명 중 4명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
조 부장판사는 재판이 끝난 뒤 기자와 만나 "제 아버지도 하루 한 갑 이상의 담배를 피우던 골초이셨는데 폐암으로 돌아가셨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그러나 "재판 과정에서 (여러 가지 연구자료 등을 검토한 결과) 과도한 흡연과 폐암과는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찾을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법관은 개인의 감정이나 개인의 양심이 아닌 법률의 양심에 따라 판결한다는 원칙에 따라 선고했다"고 말했다.
비흡연자인 그는 "재판을 진행하며 담배의 유해성을 더 많이 알게 됐다"면서도 "금연에 성공하는 사람도 있으므로 담배의 중독성은 개인 의지로 선택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남편(변호사)도 흡연자라고 소개한 뒤 "남편도 담배를 끊기 바란다. 그러나 의지로 끊기를 바라지 금연보조제 등을 사 줄 생각은 없다"고 덧붙였다. 조 부장판사는 2004년 12월부터 이 사건을 맡아왔다. 다음은 일문일답.
-흡연과 폐암 발병 사이의 역학적 인과관계는 인정했는데.
"역학은 집단을 대상으로 연구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흡연이 폐암의 원인이 된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러나 원고들이 암에 걸린 원인이 오로지 흡연 때문이라는 개별적 인과관계를 입증하기에는 부족했다."
-미국에서 흡연자들이 이긴 경우가 많다.
"미국은 담배의 유해성 연구가 오래전부터 진행돼 왔고, 담배회사들이 유해성을 알면서 고의로 은폐한 사실이 폭로된 뒤 전환점을 맞았다. 우리나라에선 과거 담배 유해성 연구가 활발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유해성을 고의로 은폐했다고 볼 수 없다. 또 76년부터 담뱃갑에 유해성 경고문구가 들어갔는데 이는 다른 외국에 비해 이른 편이다. 89년엔 폐암 유발 경고를 구체적으로 적시하기도 했다. 담배회사가 소비자에게 더 경고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보기 힘들었다."
-원고 측 변호인은 담배가 마약과 같은 중독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흡연의 시작은 개인이 선택하는 것이다. 원고들은 50년대 말부터 60년대 사이 흡연을 시작했다. 당시에는 '미성년자 끽연 금지법'이 있었다. 원고들 대부분은 흡연 시작 당시 미성년자로 불법 흡연을 한 셈이다."
-부친은 어떻게 돌아가셨나.
"지방 공무원이었던 부친은 제가 27세 초임판사이던 87년 64세의 나이에 폐암으로 운명하셨다. 당시에는 담배의 유해성이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재판 중 에피소드는.
"지난해엔 재판부의 배석판사 2명과 예비판사 1명 가운데 2명이 흡연자였다. 재판 과정에서 판사들은 일반인보다 담배의 유해성을 많이 알게 됐다. 하지만 모두 담배를 끊지는 않겠다는 말을 했다. '나도 간접흡연을 많이 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초등학생 딸이 아빠에게 '담배 피우지 마세요'라는 말을 종종 하지만 유해성을 알고 말하는 것 같지는 않다."
민동기 기자
◆조경란 부장판사=전남 목포 출신으로 목포 정명여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24회 사법시험에 합격(1982년)한 뒤 85년 판사로 임관됐다. 서울가정법원 판사, 수원지법 부장판사 등을 거쳐 2004년 2월부터 서울중앙지법에서 부장판사로 근무하고 있다.
<판결요지>
-흡연과 폐암 발병 사이에 역학적 관련성이 인정된다
-그러나 흡연자들의 발병과 흡연 사이의 개별적 인과관계는 인정할 수 없다
-흡연은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