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두 국가론, 무엇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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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동족관계, 동질관계 아니다’―‘두 국가론’을 내세우기 시작한 북한

2023년 12월 26일부터 30일까지 진행된 북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 전원회의에서 국무위원장이자 당 총비서인 김정은은 남북관계에 대해 이전과는 사뭇 다른 발언을 하였다.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두 개 제도에 기초한 우리의 조국통일로선과 극명하게 상반되는 ‘흡수통일’, ‘체제통일’을 국책으로 정한 대한민국 것들과는 그 언제 가도 통일이 성사될 수 없다는 것”, “북남관계는 더이상 동족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 전쟁중에 있는 두 교전국관계로 완전히 고착되였다”라는 발언으로(경향신문, 「김정은 “대한민국 것들과 언제 가도 통일 성사될 수 없어”」, 2023.12.31.), 이른바 ‘두 국가론’이었다.

같은 날, 김정은은 “북남 교류협력의 상징으로 존재하던 경의선의 우리측 구간을 회복 불가한 수준으로 물리적으로 완전히 끊어놓는 것을 비롯하여 접경지역의 모든 북남 련계 조건들을 철저히 분리시키기 위한 단계별 조치들을 엄격히 실시”하라고 지시했다. 이후 북한에서는 통일과 관련한 정책이나 기관, 상징물들을 없애는 일련의 과정들이 진행되었다. 북한은 통일전선부를 ‘로동당 중앙위 대적지도국(10국)’으로 변경하였고, 2024년 1월 12일에는 6.15공동선언 실천 북측위원회,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북측본부, 민족화해협의회, 단군민족통일협의회 등을 정리한다고 밝혔다. 1월 15일에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0차 회의 시정연설에서도 김정은은 “지난 80년간의 남북관계사에 종지부를 찍고 한반도에 병존하는 두 개 국가를 인정한 기초 위에서 …… 대남정책을 새롭게 법화하였다”며 앞선 중앙위원회 때와 비슷한 발언을 했으며, “대한민국은 화해와 통일의 상대이며 동족이라는 현실모순적인 기성 개념을 완전히 지워버리고 철저한 타국으로, 가장 적대적인 국가로 규제한 이상 독립적인 사회주의국가로서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주권행사영역을 합법적으로 정확히 규정”하라고 지시했다(통일연구원,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0차 회의 분석과 함의: 대남정책 전환과 예산·경제정책을 중심으로」, 2024.01.16.). 이 날 북한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민족경제협력국, 금강산국제관광국의 폐지를 결정했다. 1월 23일에는 미국의 NK뉴스가 북한이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을 철거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2월 7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30차 회의에서는 남북간 경제협력 관련 법안들과 합의서들의 폐지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정령이 채택되었으며, 3월 12일에는 6.15공동선언 실천 해외측위원회도 해산을 결정하였다. 심지어는 북한이 아예 헌법을 개정하여 ‘평화통일’이나 ‘민족대단결’과 같은 표현을 삭제하고 남북을 ‘적대적 두 국가’로 명문화한 뒤 영토 조항을 신설할 것으로 예측된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다만 북한이 10월 7일 최고인민회의 회의에서 헌법 일부를 개정했다고 밝혔는데, 통일이나 민족과 관련한 내용을 실제로 삭제했는지의 여부는 공포되지 않았다. 북한이 이와 관련한 헌법조항 개정을 정말로 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확인이 되지 않지만, 10월 9일에 조선인민군 총참모부가 남측과 연결되는 도로와 철도를 끊고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요새화 공사를 진행한다고 하면서 “우리 공화국의 ‘주권행사 영역’과 ‘대한민국 영토’를 철저히 분리시키기 위한 실질적인 군사적 조치를 취한다는 것을 공포한다”고 발표한 것을 볼 때, 두 국가론을 이야기하며 통일과 관련한 정책 및 담론을 지우려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두 국가론’은 민족적 관점을 사실상 포기하는 것이다.

북한의 두 국가론은 한 마디로 북한이 이전까지 견지해 오던 민족적 관점을 사실상 포기하는 것이다. 북한은 이제까지 한반도의 분단이 미 제국주의와 친미수구냉전세력의 이해관계에 의한 것이었음을, 그렇기에 외세를 배격하고 한반도 통일을 자주적으로 이뤄야 한다는 것을 내세우면서 대의명분을 획득하고 체제의 정당성을 확립해 왔다. 이전 지도자들인 김일성과 김정일도 이 점을 통치의 근간으로 삼으면서 북한 민중들을 결속시켜 왔다. 북한 헌법 서문에서부터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께서는 나라의 통일을 민족지상의 과업으로 내세우시고 그 실현을 위하여 온갖 로고와 심혈을 다 바치시였다”라고 명시되어 있을 정도이다(주간경향, 「선대 부정하는 김정은 ‘두 국가론’…개헌 둘러싼 북한의 침묵 왜」, 2024.10.12.). 김정일의 유서라고 알려진 이른바 ‘10월 유훈’도 “조국을 통일하는 문제는 우리 가문의 종국적 목표이다.”, “전쟁을 통한 통일은 아무 의미가 없다. 전쟁을 하는 경우 우리는 남보다 몇 백 년 떨어지게 된다. 우리가 이겨도 결국은 후대들을 위해 아무것도 남겨주는 것이 없음을 명심하고 수령님의 유훈대로 어떻게 하나 평화적으로 통일해야 한다.”라면서 평화통일을 강조하고 있다(유코리아뉴스, 「김정일 유서 전문」, 2012.11.23.). 남북한을 동족관계가 아니라고 하는 두 국가론은 북한이 기존 입장을 완전히 뒤집는 것으로 민족적 관점을 내버린 것이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한반도에서 민족적 관점은 여전히 중요한 진보적 성격을 갖고 있다. 과거 일제강점기 조선에서는 일본 제국주의로부터의 독립, 즉 민족해방이 중요한 진보적 과제였다. 그러나 19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된 후 미국의 제국주의적 이해관계로 인해 한반도가 분단되었고, 남과 북에 서로 다른 정부가 세워졌다. 심지어 같은 민족 간 전쟁까지 일어났으며, 1953년 이래 종전도 아닌 휴전상태가 70년 넘게 이어져 왔다. 따라서 한반도에서 민족해방 과제는 분단국가 형성으로 불완전하게 실현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반도에서는 제국주의의 간섭에서 벗어나 자주성을 확보하는 것과 ‘자주적이고 통일된 민족단위의 국가를 형성하는 문제’가 여전히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민족문제이며, 민족문제가 상대적인 진보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남북이 적대적인 관계로 이미 고착화되어 각각의 나라로 가야 한다는 두 국가론은 한반도 통일이라는 민족문제 해결에 배치되는 입장이다.

역사적으로 두 국가론은 분단체제 속에서 반동적 입장이었다. 한반도에서 두 국가론은 미국의 제국주의적 이해관계와, 그에 빌붙어 살아남고 권력을 얻으려 한 친일·반공세력의 이해관계에 입각한 논리로 나타났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주장하고 실행한 이승만이다. 이승만은 1946년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되자 “남방만이라도 임시정부 혹은 위원회 같은 것을 조직하여 38 이북에서 소련이 철퇴하도록 세계 공론에 호소”해야 한다는 ‘정읍 발언’을 하였고, 친일 지주계급이 주도하는 한민당과의 연대를 강화하면서 남한 단독선거를 추진한 끝에 1948년에 단독정부를 수립하여 집권했다. 이런 점에서 북한이 두 국가론을 채택한 것은 역사를 망각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과거 동독의 경우를 참조할 수 있는데, 동독은 체제를 지키기 위해 자신들은 서독과 다른 국가, 다른 민족이 되었다며 ‘2국가 2민족론’을 주장한 바 있다. 이는 1958년부터 동독의 생활수준이 서독을 넘어서지 못했고 이후에도 점점 격차가 심해지면서 1971년 6월에 호네커정권이 내놓은 수세적 대응이었다.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였다가 분단된 한반도와는 달리 독일은 2차대전 전범국에 대한 전후처리 과정에서 분단된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독일 역시 통일을 추구해나가는 과정에 있었다. 하지만 2국가 2민족론은 이러한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었다. 동독 정부는 헌법 개정, 공공기관 및 공식 문서상에서 ‘독일’이나 ‘통일’과 같은 표현 삭제, 각종 프로파간다 등을 통해 2국가 2민족론을 설파했지만, 그 효과는 동독 민중들의 서독 방송 시청이나 서독 물품 구매 등 일상생활에서의 교류로 상쇄·역전되기도 했다(통일연구원, 「동독의 2국가 2민족론의 전개 과정과 배경」, 2024.05.30.). 무엇보다 이런 시도는 동독의 체제를 지켜주지 못하였다.

북한은 왜 두 국가론을 택했는가?

북한이 두 국가론을 택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비록 북한 체제의 특성상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대략적으로나마 몇 가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기존의 북미관계·남북관계 노선이 난관에 봉착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은 미국과 직접 담판하여 북미관계를 정상화하고 체제 안전을 보장받으려 하였다. 이러한 시도는 2018년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어느 정도 진전되는 듯 보였으나, 트럼프는 미국의 이전 정권들과 마찬가지로 북한에 대한 선(先)비핵화 입장을 고수하였고, 결국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은 결렬되었다. 이후에 들어선 바이든 정부도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와 비슷하게 북미관계 정상화를 위한 어떠한 것도 하지 않았다. 결국 북한은 미국의 잘못된 태도로 인해 체제 안전 보장과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폐기에 있어서 아무 성과도 보지 못하는 상태가 지속되었다. 남북관계에 있어서도 문재인정권 시기 정상회담까지 했음에도 획기적인 변화가 없었으며, 그 뒤의 윤석열정권은 9.19 남북 군사합의의 효력을 정지하는 등 노골적인 대북 적대정책으로 일관했기에 남북관계는 오히려 퇴행되었다. 이렇게 북한은 기존의 북미관계·남북관계 노선이 성과를 내지 못하자 이를 재검토하고 대외전략을 수정하려 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 과정에서 마치 목욕물 버리려다 아이까지 버리는 식으로, 통일이라는 근본적인 지향과 과제까지 부정하고 방기하는 방향으로 과도하게 나아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 북한의 내부 상황이 두 국가론 채택에 영향을 미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접근 가능한 자료의 한계상 자세하게 파악하기는 어려우나, 여러 자료를 통해 보면 경제적 어려움이 존재하며 이로 인해 김정은정권이 어느 정도의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예로 2021년 1월 5일 제8차 조선노동당 당대회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사업총화보고’는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에 대해 “국가경제의 장성목표들이 심히 미진되고 인민생활 향상에서 뚜렷한 진전을 달성하지 못한 결과”였고, “과학적인 타산과 근거에 기초하여 똑똑히 세워지지 못하였으며 과학기술이 실지 나라의 경제사업을 견인하는 역할을 하지 못하였으며 불합리한 경제사업체계와 질서를 정비 보강하기 위한 사업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았다고 평가하였다(통일뉴스, 「김정은, “남북관계 활성화 여부는 남측 당국에 달려있다”」, 2021.01,09.). 올해 초인 1월에는 중국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 2천여 명이 임금체불에 항의하며 파업투쟁을 벌인 일도 있었다(남북경협뉴스, 「지린성 북한 해외노동자 2000명 집단파업, 주민 통제력 상실 징후?」, 2024.04.06.). 1월 23~24일에 열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에서는 김정은이 지방 경제에 대해 “초보적인 생필품조차 원만히 제공하지 못하는 매우 심각한 상태”라고 지적하였다. 또한 김정은은 2월 28일 평안남도 성천군 공업공장 건설 착공식에서 연설 중에 “지방의 전면적 진흥을 안아오기 위한 우리 당 10년 목표의 위대한 투쟁이 마침내 개시됐다”고 하면서도 “솔직히 이제야 이것을 시작하는가 하는 자괴감으로 송구스럽기도 하다”며 북한 민중들의 삶의 문제에 대한 사과라고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한국일보, 「김정은 “자괴심으로 송구스럽다”…北 주민에 이례적 사과, 이유는?」, 2024.02.29.). 이렇게 북한 민중들의 열악한 삶의 질이 개선되지 않자 김정은정권은 내부적으로 불만이 누적될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이며, 어떻게든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초조함에 내부의 불만을 ‘외부의 적’으로 돌리고 결속력을 강화할 방편으로 두 국가론을 내세웠을 가능성이 있다.

이를 볼 때, 북한은 역사적 과제 속에서 구체적인 행보를 찾는 것이 아닌, 체제 보존이라는 협소한 인식에서 두 국가론을 택했다고 할 수 있다.

민족적 관점이 사라진 북한의 두 국가론을 비판하지 않는 태도는 잘못된 것이다.

두 국가론은 남북한의 대결구도를 강화하며, 제국주의로부터 벗어나 자주적이고 통일된 국가를 형성하는 과제를 방기하여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통일을 어렵게 한다. 이는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긴장과 갈등을 이용하려는 미 제국주의와 남한의 수구세력에게 이로울 뿐이다. 두 국가론으로 가면서 북한은 대외관계 기조를 변화시키고 있는데, 체제 보장을 미국과의 직접적인 협상보다는 미국과 대립하고 있는 러시아와의 관계 강화에서 찾으려고 하고 있다. 예컨대 북러 간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을 맺고 그 연장선상에서 우크라이나 파병설까지 나오고 있다. 만약 북한의 파병이 현실이라면, 이것은 제국주의 세력간 대리전 양상으로 전개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북한이 교전 당사국으로 참여하는 것이 되어 국제정세 및 한반도 정세의 긴장을 매우 고조시키는 요인이 될 것이다.

따라서 남한의 진보세력은 미 제국주의에 맞서 투쟁하는 동시에 북한의 두 국가론에 대해서도 비판해야 한다. 하지만 남한의 통일운동에서는 이에 대해 비판하기보다 북한의 두 국가론을 인정하고 그에 따라 행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례로 북한이 범민련 북측본부를 정리한다고 발표한 뒤 범민련 남측본부는 약 한 달 만인 2월 17일에 해산총회를 열고 조직을 해산했다. 이 날 범민련 남측본부는 해산 이유의 첫 번째로 “남북관계가 전면 파탄을 넘어 통일이 불가능한 상태일 뿐만 아니라 적대적인 두 개의 교전국가 관계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라는 점을 들어, 사실상 북한의 두 국가론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였다(통일뉴스,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의 해산 이유와 진로」, 2024.02.17.). 6.15공동선언 실천 남측위원회도 김정은의 1월 시정연설 직후인 1월 31일에 총회를 통해 ‘운동방향과 조직의 변화를 확인하고’ 상반기 내에 새로운 연대조직을 내기로 한 뒤(통일뉴스, 「6.15공동선언실천 해외측위원회 해산」, 2024.03.15.) 6월 15일에 조직 전환 총회를 열어 ‘자주통일평화연대’로 조직명을 변경하였다. 북한이 민족적 관점을 버린 것에 대해 비판하지 않고 수용하는 소극적 태도를 취한 것이다.

마치며

요컨대 북한의 두 국가론은, 미 제국주의로부터의 자주성 확보 및 통일된 민족단위의 국가를 형성하는 민족문제가 여전히 상대적인 진보성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민족적 관점을 포기하는 것이고, 한반도 통일이라는 민족문제 해결에 배치되는 입장이다. 한반도에서 ‘두 국가’ 주장은 역사적으로 반동적 입장이었다. 과거 동독에서도 두 국가론과 대동소이한 주장이 있었으나 이는 서독과의 관계에서 수세적인 입장이 표현된 것으로 이것으로 체제를 유지할 수 없었다. 이러한 두 국가론은 기존 북한의 북미관계·남북관계 노선이 난관에 봉착하고, 북한 체제의 경제적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나온 협소한 주장이다. 남한의 진보세력은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해 미 제국주의에 맞서 투쟁하는 동시에, 북한의 두 국가론에 대해서도 비판해야 할 것이다.

패스트푸드 업계의 노동자. 맑스 저작과 자본론 학습을 통해 사회주의를 배웠다. 사람을 '노동자 대 고객'이나 '상사 대 부하'의 관계로 만나는 것을 매우 싫어하며, 각자의 자유로운 발전만으로도 모두가 유익해지고 발전할 수 있게끔 되는 사회를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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