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설명] 12.3 친위쿠데타 이후 윤석열정권 퇴진투쟁에는 청년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사회주의자』에서는 이런 청년들로부터 투쟁에 나서게 된 동기, 투쟁 과정에서 들었던 고민과 함께 앞으로 어떤 투쟁이 만들어졌으면 하는지, 청년들이 자신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필요할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자 청년 릴레이 인터뷰를 기획하였다. 첫 번째 인터뷰에는 20대 청년 김설아 동지께서 응해주셨다. 인터뷰는 4월 20일 『사회주의자』 사무실에서 진행되었다.
① “자본주의는 그대로 두고 내가 받고 있는 억압만 해결할 수 있다는 건 착각이다”―김설아 동지 인터뷰
② “자본주의는 얘기하지 않은 채 평등만 얘기하는 건 민중들의 분노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 것”―이석훈 동지 인터뷰
Q1.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김설아: 안녕하세요. 저는 가정폭력을 계기로 집을 나와 혼자 살고 있는 20대의 후기 청소년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 김설아라고 합니다. 청소년기본법 상 만 24세까지는 후기 청소년인데요. 이때까지가 청소년으로서의 복지나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학교 밖 청소년 같이 청소년으로서 활동하고 지원도 받을 수 있죠. 돌이켜보면 학교에 다닐 때 두발규정이나 교칙, 복장 같은 것에 대해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문제제기를 해왔고, 또 왜 공부가 중요하다면서 수능에 필요한 공부만 하는 건지 문제제기하면서 싸워왔던 게 제 청소년기였는데, 그렇게 싸우는 삶이 아직 끝나지 않고 있어서 제가 아직 청소년인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Q2. 동지께서는 윤석열의 12.3 친위쿠데타 이후 매우 적극적으로 투쟁에 나서며 활동해오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집회에 나오고 적극적으로 활동하시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또래 청년들이 거리에 나왔던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여쭙고자 합니다.
김설아: 사실 저는 이 비상계엄이 없었어도 12월경부터 사회운동에 나설 계획이었어요. 2023년 초 즈음부터 그간 제가 앓고 있던 정신질환이 서서히 회복, 완화되는 게 느껴졌어요. 글도 조금씩 더 읽을 수 있고,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도 덜 힘들고 했어요. 그래서 2024년에는 ‘내가 어디까지 괜찮은가’ 테스트하면서 활동 수위를 조금씩 올려왔어요. 짧은 시간에 노동을 이어갈 수 있는지, 제 시간에 일어날 수 있는지, 누군가와 연락을 하고 소통을 하고 약속을 하는 것에 있어서 충분히 책임질 수 있는지를 테스트해 온 거죠. 그러다 11월까지 수능공부를 하고, 제가 일을 하던 곳에서의 사업도 11월에 마감이 되어서, ‘이 정도 수준의 활동은 충분히 할 수 있겠다’, ‘이제 사회운동을 시작해도 남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 수준까지 왔구나’ 싶어서 2024년 12월부터는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에 연대할 생각이었어요. 그러던 중에 12월 초에 비상계엄이 터지게 되면서 ‘먼저 우리나라 해방운동부터 해야겠구나’ 싶은 생각에 거리에 나오게 됐어요.
또래 청년들의 경우 그전까지는 거리에 나올 만한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다가 나와 같은 생각과 고민을 갖고 행동할 수 있다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실제로 보았고, 그렇기 때문에 광장에 나올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나와 비슷한 또래의, 나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청년들이 폭발적으로 거리에 나왔기 때문에, 저도 여기에서 동력을 얻어 계속 나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말하자면 정의나 옳음에 대해 나름의 가치관은 가지고 있으나 행동으로 옮길 계기가 없던 청년들이 많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Q3. 적극적으로 집회에 참석하고 활동을 하시는 과정에서 겪었던 인상적인 일이 있다면 무엇이었는지 이야기 나눠봤으면 합니다.
김설아: 12월 3일 이후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경험은 주변으로부터 지지와 도움을 받는 경험이었어요. 이전에 학교에서든 어디서든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맞서 싸우는 경우 혼자 싸우거나, 나를 지지해주는 세력이나 사람들이 없어서 많이 힘들었어요. 주변에서 ‘너 왜 자꾸 그렇게 튀려고 하냐, 그냥 넘어가면 안 되냐’고 말하곤 했는데, 이번에는 제 말이 정당하다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많아서 심적으로 위안이 많이 되었어요. 예를 들어 작년 12월 7일에 국회에서 (윤석열) 탄핵소추안 가결 투표에 국민의힘 의원들이 단체로 불참했을 때, 지역 국민의힘 의원 사무실 앞에서 팻말을 들고 1인 시위를 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주변에 지나가는 분들 중 상당수가 응원과 지지를 보내주셨어요. “춥지 않냐”고 묻거나, “거기 앉아있으면 엉덩이 시리다”면서 깔고 앉을 것도 가져다주는 식으로요. 이렇게 길거리에서 아무나 나를 지지해주는 경험이 신기했어요.
그리고 또 그간 집회나 사회운동에 잘 참여하지 않던 분들이 ‘내가 뭔가 할 수 있는 게 없을까’하면서 자기가 아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참여하는 것이 인상 깊었어요. 예컨대 난방버스라는 게 예전에 락 페스티벌이나 아이돌 콘서트 때 추운 사람들 들어가 쉬라고 단체로 대절했던 것에서 유래한 걸로 아는데, 이런 난방버스를 대절해서 투쟁 현장에 보낸다든가 하는 식으로요.
그리고 저는 설 연휴 때 금속노조 거통고지회 농성장에서 진행한 무지개 조선소 일정에 결합을 했었어요. 설 연휴에 시간도 많다보니, 한 이틀 정도 빼고는 다 갔었는데 이미 제가 나갔을 때부터 그곳에는 평등수칙이란 게 있고, 프로그램 시작 전에 그걸 제창하는 문화가 있더라고요. 사실 ‘평등에 대한 규칙’이라는 게 말로만 존재하기가 쉽고, 평등을 지향한다는 사람들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는데, 예를 들어 누군가의 성별을 함부로 짐작해 부른다거나 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얘기가 나오고, 이런 논의 자체가 활발히 이루어지면서 서로 자신이 하는 차별을 인정하고 고치며 공동체가 되어가는 과정이 인상 깊었어요. 그런 노력들 덕분에 ‘이곳은 내가 있어도 되는 곳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Q4. 민중들, 청년들이 대거 퇴진투쟁에 나서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윤석열의 내란 시도일 것입니다. 그리고 민중들, 청년들은 투쟁을 통해 윤석열의 파면을 이끌어 냈습니다. 그렇지만 윤석열이 파면되었다고 내란상황이 다 끝나는 건 아닙니다. 파면은 전반적인 내란 진압 투쟁의 일부일 것입니다. 그간 내란 진압 투쟁 과정에서 느꼈던 고민 지점, 그리고 앞으로 내란 진압을 위해 어떻게 투쟁하실 것인지에 대한 동지의 생각을 듣고자 합니다.
김설아: 사실 12월, 1월쯤 비상행동에서 열리는 집회들을 보면 ‘다들 수고는 많이 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지지부진하지’라는 생각을 하곤 했어요. 일례로 비상행동은 윤석열 체포를 압박하는 투쟁에 미온적이었던 것 같아요. 이후에도 여러 상황들에 대해 미지근한 태도를 보인 경우가 있었어요. 이런 것들이 쌓여서 윤석열 체포가 늦어지고 파면도 4월까지 밀리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얼마 전 문형배가 기자회견에서 ‘파면선고를 만장일치로 이끌기 위해 많은 대화를 했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는 걸 봤는데, 만일 우리가 윤석열을 당장 체포해야 하고, 당장 끌어내려야 한다는 식으로 좀 더 적극적으로 집회를 해나갔으면 ‘만장일치 파면’을 이끌어내는 것도 훨씬 쉽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비상행동이 (윤석열이 석방된 직후) 단식투쟁을 했던 것도 적절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단식이 결과적으로 사람들의 기운을 빼고 ‘이거 너무 길어지는 것 아니야’하는 공포심을 키운 것 같아요. 윤석열이 석방됐으면 단식을 할 게 아니라 윤석열이 있는 곳(관저 앞)에 가서 싸웠어야 했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윤석열의 구속을 취소한) 지귀연 등에 대한 문제제기도 충분히 되지 않은 것 같아요. 정말 지귀연을 탄핵시킬 방법이 있는지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데, 비상행동에서 이에 대한 내용을 알려나가는 노력을 많이 하지 않은 것 같아요. 당장 윤석열 형사재판은 어쩌다 시험 잘 봐서 판사가 된 사람이 할 게 아니라 민중의 뜻을 따를 수 있는 사람이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것 같아요. 또 윤석열이 파면됐으니 오히려 거리낄 게 없으니까 더 강하게 (내란 진압에 대한) 투쟁을 해나가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확장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지귀연에 대해 공격하는 투쟁이 필요하고, 윤석열과 검찰의 네트워크를 밝히고, 검찰이 내란공범으로서 윤석열의 수사를 맡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는 것, 내란 수사 기간 동안 내란 동조자들이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없도록 그들의 권한을 정지시키는 투쟁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Q5. 민중들, 청년들이 투쟁에 나서게 된 이유에는 윤석열에 대한 분노만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동안 민중들, 특히 청년들의 삶이 계속해서 악화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점 역시 청년들이 거리로 나오게 만드는 동력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와 관련해 동지께서는 평소 자신의 삶 속에서 어떤 답답함이나 고민이 있었는지 이야기 나눠봤으면 합니다.
김설아: 가장 큰 답답함은 여성가족부 문제였어요. 청소년으로서, 빈곤 취약계층으로서 겪는 문제를 관장하는 부처가 여성가족부인데, 윤석열 이후로 여성가족부를 통해 제가 받을 수 있는 복지정책 관련 예산들이 많이 축소됐어요. 가령 학교 밖 청소년 지원센터의 검정고시 공부 지원, 교재 값 지원 예산, 자격증 공부나 취업 진로에 대한 학습 관련 예산이 모두 줄고, 담당 부처 인원도 줄어들었어요. 담당자에게 ‘올해는 이런 사업 없냐’고 물어보면 ‘여성가족부 없어지지 않는 게 어디냐’는 답변이 나올 정도였어요. 윤석열이 파면된 후라 하더라도 제 청소년기가 다시 돌아와서 제가 다시 청소년 때 못 받았던 복지를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이게 너무 화가 났어요.
저는 사람들이 기존의 삶의 문제가 심각했기 때문에 거리에 나오는 동력이 됐다는 말에 대해서, ‘문제가 많이 심각해져도 사람들이 안 나왔을 수도 있지 않나’라고 생각했다가도 ‘이렇게까지 심각하지 않았다면 사람들이 이만큼 나오지는 않았겠지’라고 다시 생각을 해요. 일단 사람들에게 자기 집을 가질 수 있다는 희망이 없죠. 그리고 사람들이 취업이 되어도 내가 거기서 계속 일을 할 수 있다고 기대할 수 있지도 않고요. 트랜스젠더들의 경우에는 30, 40대 이후 자기 삶의 계획을 가진 사람이 많이 없어요. 제 주변에 저와 비슷한 환경에 놓인 트랜스젠더 중에서는 저 나이대(40대)까지 살아있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안정적인 직장이라는 게 모든 청년에게 어려운 문제지만, 트랜스젠더들의 경우에는 대학에 따라 법적 성별은 여성인데 남성의 모습이라 대학 다닌 것에 대해 숨겨야 할 경우가 있어요. 만일 직장을 다니고 있다가 수술을 할 돈이 모여 수술을 하고 나타나면, 직장동료들을 볼 수 없으니 경력이 단절되기도 하고요. 그래서 새로운 곳에 일하러 갔게 되면 지난 과거를 다 없는 셈 치고 묻어야 하거든요. 사실 저도 지금 대학 입시 공부를 하면서 성별정정소송을 같이 하고 있어요. 만일 대학에 합격해도 성별정정이 되지 않으면 가지 않을 생각이에요. 경제적인 문제도 있지만 이력서에 대학 다닌 것을 못 쓰게 될 수도 있는 것이 스트레스였어요. ‘내가 대학생일 때의 일을 왜 숨겨야 하지?’라는 고민이 되는 것이죠.
Q6. 청년들이 자신들이 처한 삶의 문제를 광장에서 표출시키고, 이것을 투쟁으로 만드는 일이 앞으로 중요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와 관련해 어떤 투쟁이 만들어졌으면 하는지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김설아: 위 답변과 연동해서 답변드리는데, 저는 차별금지법이라는 게 정말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이 법이 발효된다고 당장 많은 것이 바뀌는 것은 아니니까요. 이렇게 정말 ‘시작’에 불과할 뿐인 차별금지법이 지금 제정조차 되지 않고 있는 것 자체가 어려움을 나타낸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강력히 요구하고,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그걸 바탕으로 투쟁들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성들, 성소수자들, 장애인들이 일터에서 받는 차별들이 많아요.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는 전제 하에서 직장에서 페미니스트임을 지목당하거나 성소수자임이 드러나서 발생하는 경력단절이나 불이익 등 차별이 있는데, 이런 차별들을 사회적인 차원에서 책임지고 구제할 것을 요구하는 투쟁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 사업장 내에서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들을 몇 퍼센트 이상 채용하라는 것을 요구할 필요도 있어 보이고요.
Q7. 현재까지는 자기 삶의 문제 해결을 내건 투쟁, 혹은 민중들, 청년들이 직접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리가 많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민중들, 청년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사람들을 많이 모아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 동지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김설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개인적으로 하고 있는 노력에 대해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 일상과 투쟁이 구분되는 것을 지우고 싶다는 생각에서 저는 일상 속에서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해요. 사실 정치적인 얘기를 잘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지금 다 인생이 너무 힘든 거잖아요. 그럼에도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터부시되는 것이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정치 얘기하는 것을 터부시하지 않고 자유롭게 말할 수 있으면,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더 늘어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만 민중들, 청년들이 직접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리를 어떻게 만들고, 사람들을 어떻게 모아나갈지 구체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은 명확한 답을 찾지는 못하고 있어요.
Q8. 일각에서는 이번 윤석열의 내란을 계기로 ‘극우세력이 득세하고 있다’거나 ‘20대 남성들이 극우화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동지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김설아: 일단 ‘극우가 득세하고 있다’는 말에 대해서는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라고 간단하게 말하고 싶고, 득세라는 말을 잘못 사용하고 있는 것 같아요. 특정 극우들이 심각한 난동을 부리고 있는 건 맞지만, 만일 그들이 득세를 하고 있다면 지지를 얻든 권력을 갖든 그들의 행동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든 해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전혀 득세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없다고 생각해요.
‘20대 남성들이 극우화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잘 되고 있지 않다고 봐요. 극우화가 되고 있다면 이준석 같은 사람들이 잘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는 않죠. ‘20대 남성 전반이 이전보다 우경화됐나’하면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사실 페미니스트들이 겪었던 일을 보면 저런 20대 남성들이 처음인 것처럼 보진 않을 거에요. 원래 그런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과대 대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중요한 것은 이들이 뭐라고 떠들든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인데, 오히려 그들의 목소리가 정말 크다고 생각하면서 신경 쓰는 것이 제일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요.
Q9. 마지막으로 이 인터뷰가 『사회주의자』 잡지에서 진행하는 것이기에 질문 드리는데, 청년들의 삶의 문제의 원인은 대체로 자본주의에 있고, 향후 미래사회의 대안상에 대한 논의에서도 자본주의에 대한 문제제기가 중요해질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앞으로 청년들의 투쟁이 반자본주의, 사회주의운동과 어떻게 결합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견을 듣고자 합니다.
김설아: 자본주의는 그대로 두고도 내가 받고 있는 억압만 해결할 수 있다는 착각이 있는 것 같아요. 이것이 심지어 싸우는 사람들조차 여전히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이유라고 생각해요. 여성이 임금을 덜 받고 덜 중요한 자리에 있는 경우가 많은 것에 대해서 ‘여성이 더 돈이 많아야 된다’, ‘여성이 더 영향력이 있는 자리에 올라야 된다’라는 식으로 해결하려는 거죠. 또 어떤 사람들은 자본주의가 문제라고 생각하면서도 ‘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고 생각해서 자본주의를 건드리지 않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아니면 정말 내 문제를 자본주의와 연관해 보는 인식이 부족한 경우도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도 ‘이건 다 자본주의 문제다’라 하면, 많은 사람들이 ‘이게 뭔 소리지’라고 말하거든요. 그래서 내가 겪는 문제가 자본주의 때문이라는 것을 사람들한테 보편적으로 인식시킬 수 있는 것이 일단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이게 다 자본주의의 문제였구나’라고 깨닫는데 사실 시간이 얼마 안 걸릴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 주변만 해도) 돈 많은 사람들이 아니고, 내가 가난한 거랑 내가 성소수자인 거랑 별개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기도 하고요.
‘문제는 자본주의다’라고 말하는 게 그 운동의 본질을 해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본질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여성문제 얘기하는데 사회주의 같은 게 왜 끼어드냐, 우리에겐 우리 문제가 더 중요하다’라고 할 게 아니라, 여성문제도 자본주의 문제라고 사람들이 다 인식하고 그러한 방향성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러면 이제 다 반자본주의를 외치는 동료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Q10. 끝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 못 다한 말씀이 있으시면 해주시길 바랍니다.
김설아: 이번 광장 투쟁 이후에 이런 인터뷰 자리도 많고,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사람들이 왜 한강진, 남태령에 나왔는지 분석하려는 시도들이 되게 많은데요. 그런 내용들이 좀 왜곡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많이 들어요. 가령 ‘20대 남성들이 극우화되고 있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처럼 이 현상에 대해서 잘못 결론을 내리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죠. 광장에 나오고 싶어도 지역에 산다든가 일을 해야 해서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축소되질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어요. 광장에 나온 사람들의 목소리가 왜곡되지 않고, 광장에 여러 사정으로 나오지 못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축소되지 않았으면 해요. 그래서 이런 기록의 자리가 중요한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