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의 개(犬)
거제도의 개(犬)
  • 거제통영오늘신문
  • 승인 2014.06.17 10:08
  • 댓글 0

1). 강아지(狗兒) / 정황(丁熿) 1556년 고현동.
정황선생은 거제도의 여느 집과 마찬가지로 개를 키웠다. 거제 개는 주인에게 충직하고 때론 바보스럽기까지 했다고 전한다. 왜구의 침략이 잦았던 거제도는 해안방위의 절대적 필요성에 의해 수군 경계를 맡은 군견(軍犬, 水軍犬)이 일찍부터 필요했는데 영리한 거제개가 이를 도맡았다. 또한 거제도는 고려시대부터 목장지였다. 소나 말의 몰이꾼의 역할과 함께 이를 지키는 임무는 거제개가 맡았다 전한다. 다음 한시는 몇 천리 떨어진 고향집에 가서 안부편지를 전해주고 온 육기(陸機)의 애견(愛犬) ‘황이(黃耳)‘를 떠올리면서 집 떠나 돌아오지 않는 개를 정황 선생은 기다린다.
狗兒畜已見生兒 강아지를 길러 새끼가 태어났는데
主是知從犬是知 주인을 따를 것을 알았고 개도 알았다.
不願韓盧逐狡塊 한로가 흙덩이를 쫓기를 원하지 않았었지.
只憐黃耳報書遲 다만 어여쁜 황이의 답장이 더딜 뿐.

[주1] 한로(韓盧) : 전국시대 韓나라에서 산출되는 좋은 검은색 사냥개. 한로축괴 사자교인(韓盧逐塊 獅子咬人)란 "사람이 돌을 던지면 개는 돌을 쫓아가지만, 사자는 돌을 던진 사람을 문다" 는 말이다.
[주2] 견토지쟁(犬兔之爭) : 개가 토끼를 쫓아 산을 돌고 돌다가 둘이다 지쳐 죽었으므로 농부가 주워 갔다는 말. 제3자가 이익을 봄. 漁夫之利, 蚌鷸之爭, 鷸蚌之爭.
[주3] 황이(黃耳) : 진(晋) 육기(陸機)의 애견(愛犬) 이름. 대통[竹筩]에 넣은 주인의 편지를 목에 걸고 몇 천리를 뛰어 육기의 고향 오도(吳都)에 전하고, 답장을 받아 가지고 낙양(洛陽)으로 돌아오곤 하였다 한다.

◯ 고려시대 학자 이제현(李齊賢)은 익재난고 구잠(狗箴)편에서 개(犬)를 이렇게 묘사했다. “꼬리로는 아첨을 부리고 혀(舌)로는 핥아 빤다. 싸우거나 장난치지 말라, 울타리 망가진다”[而尾之媚 而舌之䑛 毋鬪毋戲 惟藩之毁]. 이제현(李齊賢)의 제자 이색(李穡)선생은 말 타고 사냥하러 가는 사냥개의 모습을 보고, 7언 절구 한편의 한시를 전한다. “평산에 눈 그치고 사방이 온통 새하얀 빛, 사냥개 끌고 몇 사람이 말을 타고 오는구나. 어디에서 새벽부터 교활한 토끼를 쫓으려나.. 많이 잡기 내기하며 얼근히 취해서 돌아오리.”[平山雪霽白皚皚 牽狗時看數騎來 何處凌晨逐狡兔 競誇多獲半酣廻]

2). 풍구를 떠올리며(憶豊狗) / 정황(丁熿) 고현동 1550년대.
自歸豊狗我心同 스스로 풍구가 내 마음과 같이 돌아온다면
豊狗爾今侍我公 풍구 너를 이제 받들어 모시리라.
我公憐爾非憐爾 우리 공이 너를 가련히 여기는지 아닌지..
歸自孤臣碧海東 돌아가고픈 푸른 바다 동쪽의 외로운 신하.

▲ 사진은 삽살개
◯ 털이 풍성한 삽살개의 일종인 풍구(豊狗)는 옛 거제도 일대에 살았던 토종개인데, 이 외에도 날씬하고 털이 별로 없는 사냥개도 있었다한다. 예로부터 거제에서 전해오는 말, “삽사리가 귀신을 쫓는다” 그 만큼 영리하고 사나웠다고 전합니다. 지금은 사라진 거제 개이지만 약 460년 전의 정황선생도 외로운 귀양살이 10년째, 집 떠나간 풍구를 몹시도 그리워한다.

◯ 하지홍 교수의 ‘거제개 이야기‘에 따르면, “1971년 거제대교가 놓이기 전까지만 해도 순수 혈통이 상당히 유지되어 왔다는 거제개는, 우수한 사냥개로서 사냥꾼들 사이에서 꽤 알려 졌었다고 한다. 다른 사냥개들과는 달리 가축과 야생 짐승에 대한 분별력이 뛰어 날 뿐만 아니라 평소에는 온순하지만 사냥에 나설 때는 목표물을 끝까지 추적하는 지구력이 뛰어나며 민첩성과 용맹성도 진돗개나 풍산개에 뒤지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외지 개와의 교잡에 의해 거의 잡종화가 되었다고 하는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둔덕, 남부면 일부 지역에 옛 모습을 지닌 거제개가 극소수 남아 있었다고 한다. 1992년과 1993년에 걸쳐 몇몇 거제 현지인들에 의해 거제견 보존 육성회가 결성되어 거제견 탐색 작업이 추진된 바 있으나 지속적인 보존 사업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중도 포기하였는데 심히 안타까운 일이다.“라고 언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