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디자이너로서 산다는 것
실내건축을 공부할때의 나는, 이른 인생 2막을 열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성공하겠다거나,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선택했던 업과 삶은 아니었다.
그것에 보다 가까웠던 것은 오히려 나의 전업(前業)이었으니까.
내가 기대했던 것은, 나의 부족한 성정과는 어쩌면 조금 어긋나 있었던,
치열하고 냉정한 비즈니스의 세계를 떠나서,
보다 정직하고, 보다 직관적이고, 보다 따뜻한 삶을 살고 싶다는 것이었다.
어리석게도,
나는 건축과 실내건축업계는 그런 것들이 가능할 줄 알았다.
나만 정직하고 바르면, 그 진심을 알아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 일을 시작했다.
내가 평소에 자주하는 말이 있다.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아도 된다. 배은망덕하지만 않으면 충분하다."
정말이다. 나는 내가 크든 작든, 누군가에게 무엇을 베풀었든지간에,
그에 대해 그 상대가 부채의식을 갖는다거나 고맙거나 송구스러워서
어쩔줄 몰라하는 것을 바라지도 않거니와,
언젠가 꼭 갚겠다. 꼭 기억하겠다. 너무 고맙다. 같은 말들 조차도-
사실 전혀 기대하지않고, 전혀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제발-
배은망덕한 태도와 행동, 언행만이라도 좀 조심해달라는 생각만은 있는데-
요즘은 정말 어처구니 없게도,
이게 그렇게 어렵나? 내가 과한 것을 바라나? 싶을 정도로.
최근 3년간 너무 연속적으로, 연달아서 이런 일들을 당해오고 있다.
그것도 내가 내 의지로 시작해온 이 "업"에서 말이다.
최근 한달간에도 무수히 많은 일들이 있었고,
내가 선택한 이 길과 업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갖게 했다.
지난 8월 2일은 내 생일이었고, 8월 4일은 와이프 생일이었다.
하지만 8월 3일 이후로, 나는 내 가족들을 거의 보지 못하고
한달 이상을 살아내며,
우리를 믿고 계약한 클라이언트와 프로젝트를 위해서,
최선의 노력과 헌신을 했다.
우리의 결과물이 나빴던 적은 단 한번도 없다.
계약과 금전문제를 나와 우리가 일으켰던 적도 단 한번도 없었다.
다만,
우리가 제안했던 최선의 제안과 판단을 너무 단편적 생각해 거절하거나,
우리가 우려하고 조심해야한다고 말했던 리스크들을 크게 신경쓰지 않거나,
그래서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들이 대다수였다.
적법과 정석, 필수적인 요소들에 대한 시공이 포함된
명확하고 합리적인 견적을 산출해 내밀어도,
근거도 없이 수백 수천을 깎아 내민 다른 업체의 견적에 밀려나거나 했다.
스레드를 보고있다보면,
좋은 클라이언트를 만나 신뢰관계를 쌓고 프로젝트 마무리까지
행복하게 끝났다는 경우들을 보고 있자면,
혹시 나에게 문제가 있는게 아닌가? 반문하게 될 정도다.
내가 너무,
목에 칼이 들어오는 한이 있더라도
안되는건 안된다고 말을 하는 스타일인걸까.
억울하다.
나는 융통성없는 사람이 아니다. 유연하고 늘 대안을 찾으려 애쓰고 있다.
우리 PLASTIC이란 이름의 A는 "대안"을 뜻하는 Alternative다.
다만 최근에만 해도..
철근 콘크리트 기둥에서 철근 몇줄을 끊어 잘라 기둥 사이즈를 줄이자는 말에,
절대 안된다고 말했다. 대안이 있을 수 없다고 말했을 뿐이다.
기존에 시공되어있는 단열재를 삭제하고, 거기에 타이트하게
가구를 만들어 매립하자는 말에 안된다고, 단열재는 삭제할 수 없다고
말했을 뿐이었다.
누전이 감지되어 위험한 분전반을,
전기 비전문가는 만지지 말라고 했을 뿐이었다.
우리가 관여했던 상업공간들은 현재 모두 성업중이다.
매출도 상당히 높다.
인테리어만 잘한다고 해서 매출이 오르지 않는다.
사업의 방향성에 맞게 끔, 그 기획과 계획, 컨텐츠의 퀄리티,
브랜딩에 맞게끔, 공간이 따라갔기 때문에 그 모든것이 시너지가 나면서
좋은 결과가 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다 해야할 때가 많았고,
실제로 그렇게 해왔던 모든 가게들이 불경기에도 매출만은 불패였다.
우리가 2021년부터 기획한대로 진행해온 공간들 중에,
아직까지 폐업한 상공간은 없다.
고맙다는 말도 듣지 않는 건 아니다.
그런데 점점 보람이 사라진다.
이번 현장에서 내가 모두 내려놓고 싶었던 순간은,
근래에 자주 써 올렸었던 최작가와의 일들 때문이 아니었다.
내부 주방 시공에 있어서,
상판 "세라믹" 시공을 하러온 팀이 자재를 들고 들어와 가공을 하고 있는데,
그들의 트럭에 실려있던 다른 현장의 "인조 대리석" 자재를
발견한 클라이언트가,
"이태리 자재라더니 왜 메이드인 코리아라고 써있는거야! 사기치는건 아니지?"
라는 말을 했을 때였다. 물론 화내면서 했던 말은 아니었지만,
이 업계는 어떻게 된 것이.. 불신이 대체 얼마나 팽배하면,
클라이언트가 계약서도 믿지 않고 전문가도 믿질 않는다.
사기라니....
모서리 졸리작업을 하고있던 작업자들에게
그 즉시로 작업을 중단하게 시키고,
"죄송합니다만 세라믹 상판 뒤집어 주세요. 어서요."
라고 말씀드리며,
상판을 뒤집어 "MADE IN ITALY"를 확인시켜드리고나서,
웃는 얼굴로 또 대응한다.
이런게,
너무 많이 쌓였다.
어찌해야할지를 모르겠다.
이 글을 어떻게 끝맺음 해야할지 모를 정도로
마음이 꽉 막히고 답답하다.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