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뒤에서 온다.
진짜 위험한 것은 등 뒤에 붙어서 온다. 그걸 조심해야 돼, 라고 할머니는 말했다. 눈앞에서 알랑거리는 것들은 손으로 몇 대 쳐주면 날아가고 밥 꾹꾹 눌러 담아 몇 끼 잘 차려 먹여주면 승천하는데, 등 뒤에서 오는 것들은 아니라고.
원빈은 할머니 집에서 살았다. 할머니가 그를 먹이고 그를 입혔다. 오래된 복도식 아파트였다. 방 두 개짜리 아파트에는 방 한 칸을 꽉 채운 책들이 있었다. 잘못 만지면 바스라질 것만 같은 고서적들이었다. 원빈은 그 방을 책방이라고 불렀다. 책방 문을 열면 책 냄새가 났다. 창문이 있던 자리까지 책장이 모두 차지한 방에는 할아버지의 영정사진이 걸려 있었다. 원빈은 본 적 없는 얼굴이었다. 고개를 젖혀 높은 곳에 걸려 있는 사진을 바라보면 원빈과 닮은 구석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눈? 눈이 좀 닮았나. 종종 원빈은 책방으로 들어가 할아버지의 얼굴을 관찰했다. 아주 큰 교통사고였다고 했다. 그건 원빈이 태어나기도 한참 전의 이야기였다.
오래된 텔레비전은 가끔 소리가 지직거렸다. 거실에는 자그마한 식탁 하나와 오래된 텔레비전 하나가 놓여 있었다. 원빈은 집에 오면 늘 텔레비전을 틀어 두었다. 6시 뉴스가 끝나면 예능 방송을 방영했고 9시 뉴스가 끝나면 정치 시사 프로그램을 했다. 언젠가부터 할머니는 밖에 나가지 못했다. 삼십 분만 걸어도 피곤해했고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에도 픽픽 잠이 들었다. 병원에서도 딱히 병명을 잡아내진 못했다. 고기를 먹으면 게워 냈고 죽을 끓이면 뱉어 냈다. 노인의 증상은 빠르게 악화되었고 몇 달이 지난 후에는 정신이 오락가락했다. 가끔은 어제를 살았고 가끔은 내일을 살았다. 그나마 텔레비전을 틀어 두었을 때 제일 정신이 맑아 보였다. 그래서 원빈은 내내 집에 텔레비전을 켜 두었다. 앵커의 목소리를 들으며 밥을 먹었고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잠에 들었다.
진짜 위험한 귀신은 등 뒤에 붙어서 온다. 정신이 오락가락한 와중에도 할머니는 자주 그렇게 말했다. 대답을 들을 때까지 집요하게 중얼거렸다. 절대 앞에서 오지 않는다고. 등 뒤에 붙어서 온다고. 원빈아, 우리 아기. 할머니는 늘 원빈을 그렇게 불렀다.
“아가, 늘 기억해야 한다.”
“…….”
“뭐가 보이면 꼭 모른 척을 해야 해.”
그때 박원빈은 뭐라 대답했던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 네, 한 마디로 마무리했던 기억이 있었다. 박원빈은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도 고등학생이었다. 적당히 대답하고 넘겨야 하는 것을 구별할 줄은 아는 나이라는 뜻이었다. 귀신. 인터넷 국어사전은 귀신을 ‘사람이 죽은 뒤에 남는다는 넋’으로 칭했다. 그것은 형체를 잃고 남아 있는 무언가를 칭하는 용어였다. 형체가 없으니 떠돌아다니기도 하고 어딘가에 붙어 있기도 하고 그러는 것이다. 그러니까 굳이 따지자면……. 빛의 파장과 굴절에 따라 생기는 신기루 같은 것이다. 아프고 나서부터 할머니는 병적으로 귀신을 기피했고 따라서 원빈도 그 집에서는 귀신의 기역조차 입에 담지 않았다. 컨저링이나 애나벨, 어차피 그런 영화엔 관심도 없었다.
할머니는 원빈이 열아홉 살이 되는 해에 죽었다. 9시뉴스 앵커가 마무리 멘트를 읊고 있을 때 조용히 돌아가셨다. 원빈은 그때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하필 주번인 날이었다. 박원빈의 가족은 할머니뿐이었고 유일한 가족의 마지막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은 꽤 많은 의미를 내포했다. 장례가 시작되던 날 원빈은 학교를 자퇴했다. 자퇴 유예 기간을 주겠다는 교장의 앞에서 상복을 꺼내 갈아입었다. 원빈을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던 교장은 그 자리에서 승인 도장을 찍어 주었다.
할머니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 있다.
“야.”
“…….”
“사람이 씨발, 상도덕이 있으면 상복 입고 있는 데까지 기어와서 지랄하진 말아야지.”
“…….”
“사람이 아니라서 모르나?”
박원빈은 귀신을 본다.
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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