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26일 첫 커밍아웃부터
2025년 8월 12일 엄마에게 정정 허락을 받기까지

총 1,752일 간의 기록이야

엄마와의 대화 진전의 아카이브이자, 엄마에게 커밍아웃을 준비하거나 근시일에 한 사람들에게 참고도 될 겸 기록해봤어


2020년

10월 26일, 첫 커밍아웃
정체성 문제로 서울의 한 정신과를 찾았던 날, 엄마에게 영수증을 들키는 바람에 의도치 않은 젓 커밍아웃을 했어. 반응은 '네가 왜 그런지 전혀 모르겠다'며 매우 부정적이었고 가족과의 연이 끊길 거라는 말에 무서워서 대화를 중단했어.


2021년

1월 31일, 두 번째 대화
가정용 제모기를 산 후 며칠 동안 정신이 흔들리다 두 번째 커밍을 시도했어. 이때 엄마는 내가 코로나 때문에 바쁘지 않고 집에 처박혀 살았기 때문에 잡생각이 많아졌다고 말했고, 나도 그러길 바랐어.

7월 12일, 진단서와 가족 와해 위기
F640 진단서를 들고 엄마에게 간 날, 엄마는 '이기적이다', '정신병이다' 등등의 날선 말들을 쏟아내며 그 생각을 멈추지 않으면 연을 끊겠다고 했고, 나는 또 물러설 수밖에 없었어.

9월 17일, 호르몬 치료 시작


2022년

2월 20일, 기숙사 생활 재개

5월 14일, 가족과의 만남
가족이 내려온다는 소식을 듣고 성적+정체성 문제로 정신이 심약해졌어. 다행히 가족을 만나서 별 일은 없었지만 아직 큰 산이 남았다는 생각에 착잡했어.

6월 20일, 제모에서 또 시작된 갈등
엄마에게 수염 레이저 제모를 하고 싶다는 말에 엄마의 의심이 시작됐고, 네 번째 커밍을 시도했어. 엄마랑 꽤 길게 이야기했는데, 엄마는 네가 상상하는 여자의 삶과 실제는 다르다며 내 생각을 부정했어.

6월 22일, 호출과 휴전
전날 새벽부터 이 문제로 통화를 계속하다가 결국 엄마가 날 본가로 불렀고, 24일까지 길고 긴 대화가 이어졌어. 이때 난 정체성 문제는 유보할 테니 자기관리하게 해 달라고 했고, 머리를 기르고 레이저 제모를 시작했어.

7월 25일, 정밍아웃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고 말했고, 엄마랑 대화하던 도중 다시 이야기가 나왔어. 이때 나는 엄마의 계속되는 의심이 두려워 일단 이야기를 미루자고 했어.

8월 12일, 멘붕과 치료 허락
엄마가 단약을 종용하고 3일 뒤 내가 결국 멘탈이 무너졌고, 그런 나를 보고 엄마도 후회됐는지 정신과 치료를 허락했어. 처음으로 엄마에게 내 정신에 대해 인정받은 날이었어.


2023년

7월 17일, 군 문제
여름학기가 끝나고 본가로 올라와 미래 계획을 말하다가 군대 문제가 나왔어. 난 재검을 받을 계획이었지만 가족은 현역 복무의 가능성을 말했고, 다시 커밍을 시도할까 했지만 두려워 포기했어.

12윌 29일, 첫 자해와 상처
학기가 끝나고 본가로 올라온 후 엄마로부터 머리를 잘라라, 이상하다 등의 말들을 듣고, 호르몬을 하냐는 의심도 받았어. 이때 엄마의 여러 말들에 상처를 많이 받아서 자해도 했었고, 이때부터 슬슬 엄마와의 유대감을 덜어내기 시작했어.


2024년

1월 26일, 가족 해외여행
생애 두번째 가족해외여행을 떠났어. 중간중간 여자로 자주 오해받고 그때마다 가족이 남자라고 정정했지만, 내심 기분이 좋았고 그렇게 여행을 이어갔는데…

2월 3일, 국제미아 사건
숙소에서 엄마가 내 호르몬 사실을 눈치채고 폭발했어. 계속할거면 연 끊으라는 말과 함께 나를 피렌체 카페에 놔두고(!!) 나머지 가족만 데리고 공항까지 갔어. 어찌저찌 쫓아간 후 한국에 돌아올 때까지 좌불안석의 극치였어. 이때 엄마는 아빠에게도 내 정체성을 아웃팅했어. 돌아온 후 계속된 추궁에 내가 백기를 들었고, 그렇게 호르몬을 중단한다는 약속을 받고 다시 학교로 내려갔어.

6월 23일, 전쟁… 그리고 휴전
더 이상 못 참던 내가 처음으로 엄마에게 공격적인 카톡을 보냈고, 또 마음 약한 내가 결국 다시 물러섰어. 담화일은 7월 11일로 잡았어.

7월 11일, 다시 쳇바퀴
엄마는 내 생각이 시작된 계기를 알고 싶어했고, 그게 (본인 기준) 납득이 안 된다면서 내 생각을 계속 부정했어. 결국 또 내가 다시 생각해 보겠다며 대화를 유보했어.

8월 31일, 대학교 졸업

11월 23일, 취업 고백
첫 직장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선물과 함께 알렸어. 엄마는 매우 기뻐했지만 내 정체성 문제가 그대로라면 다 부질없다는 생각에 내 속은 타들어갔어.


2025년

1월 5일, 아빠와의 쳇바퀴
아빠에게 다시 이 문제륻 꺼냈어. 아빠랑 나는 양립 불가능한 이야기만 한 채 헤어졌고, 이게 정상화 사건 전까지 아빠랑 한 마지막 정체성 관련 대화였어.

1월 10일, 개명신고 완료

1월 24일, 개명과 정체성, 음모론
내 개명 사실이 가족에게 알려졌고, 가족은 나를 즉시 본가로 호출했어. 이때부터 슬슬 엄마는 부정선거와 이재명, 퀴어 관련 낭설 등 음모론에 빠져들기 시작했고, 난 진지하게 절연을 고민하기 시작했어.

2월 11일, 졸업식 불참과 또 전쟁
졸업식에 불참하고 싶다는 나를 향해 다시 정체성 문제를 꺼내들고, 대화는 여전히 쳇바퀴였어. 졸업식은 가기로 했지만 이 문제는 또 한 차례 엄마와의 관계를 썩혀갔어.

2월 15일, 수도권으로 이사

2월 25일, 절연 전쟁
본가로 가지 않고 이사했다는 사실을 엄마에게 알리고, 마지막 전쟁이 시작됐어. 나도 절대 물러서지 않았고, 극단적 언어들이 4시간 동안 미친 듯이 오간 끝에 나온 답은 절연이었어.

2월 26일, 계속되는 전전와 멘붕
하지만 절연 선언 반나절도 되기 전부터 내 전화부터 시작해서 이전 집주인, 공인중개사, 친구까지 전화가 쏟아졌고, 극심한 공포감에 난 초본발급 제한을 결심헜어.

2월 27일, 정상화 사건
끝내 전화를 받지 않자 가족이 집을 찾아왔어. 내 발급제한보다 그쪽 발급이 빨랐어. 엄마는 울면서 너 하고싶은 거 하게 해주겠다며 나를 쫓아왔고, 집으로 와서 룸메와 함께 3명이서 대화한 끝에 내 호르몬 치료를 인정하겠다고 했어. 이날 룸메와 승리의 맥주를 들이켰어.

3월 8일, 전쟁 종료 후 첫 대면
처음으로 정상화된 가족과 짧게 만났어. 이날 가족은 수술만큼은 미뤄달라고 했고, 나는 대신 비수술 정정에 대해 언급했어.

4월 5일, 정치의 정상화
이날 가족과 다시 만나서 대화했고, 여전히 어려워하는 눈치였지만 최소한 나를 인정하려는 모습은 보였어. 마지막으로 엄마가 지지하던 부정선거 음모론자 대학생이 알고 보니 성폭행범이었다는 사실을 엄마가 전해듣고 정치의 정상화가 되어버렸어.

5월 15일, 다시 아빠와의 갈등
아빠가 내 이름이 꼴보기 싫다며 전화를 걸어왔고, 그 말에 난 대화가 된 게 아니었냐며 절망했어. 이 뒤로 아빠랑의 연락을 끊었어.

6월 17일, 비수술 정정 설득
룸메와 함께 엄마랑 셋이서 만나서 비수술 정정에 대해 설득했어. 여전히 엄마는 많이 어려워했어.

6월 27일, 성장환경 함께 완성하기
엄마랑 두 차례 만나서 내 과거사와 정체성 문제에 대한 타임라인을 완전히 정리했어. 이렇게 5년간 찢어져 있었던 내 기억과 엄마의 내 기억이 드디어 정리됐어.

8월 10일, 사자대면, 그리고 다시 설득
나와 룸메, 각자의 엄마 이렇게 4명이 만나 정정에 대해 엄마를 다시 설득했어. 엄마는 여전히 어려워하는 눈치였지만 우리들의 말을 조금씩 수용하기 시작했어.

8월 12일, 엄마에게 정정 허락을 받다
기억 정리가 완전히 끝나고 둘이서 다시 만났어. 난 엄마에게 정정이 안될 시 내가 높은 확률로 겪을 부작용을 어필했고, 비로소 내 입장을 이해한 엄마는 아빠의 허락이 있다면 정정을 해도 좋다고 했어.

8월 13일, 다시 아빠와의 연락
엄마와 대화한 이후 아빠랑 연락할 실마리가 생겼고, 그렇게 3달 만에 다시 아빠와 통화했어. 아빠는 아직 힘들어보였지만 최소한 정상화 이전과는 달랐고,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너무 반가웠어.


이날부로 2020년 10월 26일 이후부터 조금씩 희미해져 가 사라질 뻔한 '가족'이라는 단어에 있는 사랑이 다시 느껴지기 시작했어.

5년 동안 정말 지난한 대화였고 많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적어도 지금만큼은 행복한 가능세계가 와서 다행이야.

타임라인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