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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장르 중 하나인 나폴리탄 괴담에 대해 다루는 갤러리입니다.
흰개(dcwhitedog)
블루워터(bluewate…) Rosefield_0313(subject0…) ㅇㅇ(clean738…) winter567(soccer28…) 이혁영(injury21…)
2021-03-02
괴담 장르 중 하나인 나폴리탄 괴담에 대해 다루는 갤러리입니다.
흰개(dcwhitedog)
블루워터(bluewate…) Rosefield_0313(subject0…) ㅇㅇ(clean738…) winter567(soccer28…) 이혁영(injury21…)
2021-03-02
"아이가 생겼어, 오빠."
저번 주 여자친구 '연화'가 했던 말을 생각하면 기분이 둥실둥실 떠오르다가도 심장이 턱 죄어오는 것 같다. 피임을 제대로 했다고 생각했는데 언제 실수했는지 모르겠지만, 결혼 이야기가 오간다고 해서 느슨해진 내 잘못이다. 더 미안한 게 있다면 내 빈곤한 주머니 사정도 빼놓을 수 없다. 카페에서 주문한 커피엔 입도 못 댄 체 죄인처럼 안절부절하고 있는 내게 여자친구가 미소를 지으며 먼저 물었다.
"이렇게 된 거 내 집에 들어와서 같이 살지 않을래?"
그녀에게는 몇 년 전쯤 산 작은 소형 아파트가 있었다. 지어진 지 30년도 넘은 복도식 아파트. 원래는 내년쯤 이 아파트를 팔고 둘이 모은 돈을 합쳐 덜 낡은 곳으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요즘 이런 구식 아파트는 빨리 팔리지 않는다고 했다.
"괜찮겠어?"
"당연히 매일 볼 수 있으니 좋지."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듯 웃었다. 그 뒤로는 짐을 싸고 이사 날짜를 정하는 게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몇 번 와 보긴 했지만 여기서 살게 될지는 몰랐네."
"왠지 나는 그럴 것 같았는데."
"진짜?"
"하하, 방은 미리 치워 놨어."
용달에서 옷가지와 매트리스를 옮기는 것은 금방이었다. 낙안아파트는 두 동으로 이루어진, 다 합쳐도 100세대가 안 되는 작은 곳이다. 낡은 엘리베이터와 여기저기 갈라진 페인트, 건물 곳곳에는 오랜 세월의 흔적이 여실했다. 반면에 연화의 집 내부는 벽지도 문도 모두 깔끔한 화이트 톤에, 원목 가구들로 아늑하게 꾸며져 있었다. 그녀가 문가에 기대 서서 짐을 풀고 있는 나를 바라보고 있으니 새삼 같이 살게 되었다는 실감이 들었다.
"좀 좁지?"
"충분해."
자주 밤에 잠이 깨는 데다 잠버릇이 안 좋다는 이유로 그녀는 안쪽의 침실을 계속 쓰고 나는 복도를 접하고 있는 작은 방에서 자기로 했다. 나는 정리를 하다 말고 연화에게 다가가 조심스레 그녀를 껴안았다.
"고마워."
"뭐가?"
"그냥 이것저것 다."
"구체적으로 좀 말해주면 안 돼?"
그녀의 투정 섞인 말투에 얼른 말을 이었다.
"난 계속 혼자 살 줄 알았어. 나 집안 형편도 그렇고...너 만나서 진짜 감사하다고 생각해. 나중에 결혼식 꼭 제대로 하자. 내가 더 열심히 모을게. 그리고 또..."
"너무 몰아서 얘기하는 거 아니야?"
연화가 깔깔 웃으며 내게서 떨어졌다. 그 웃음소리는 1년 전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와 똑같았다. 지인의 지인을 건너 소개로 만나게 된 그녀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대화가 잘 통했다. 가까워지니 내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금방이었다. 둘 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신 데다 가까운 다른 가족도 없다는 공통점을 찾자 우리의 관계는 급속히 발전했다. 서로를 의지하며 나아가다가 인생의 다음 단계로 함께 나아가게 된 것이 감개무량했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그녀를 따라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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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간 살면서 가장 인상깊었던 점은 이웃의 친절함이었다. 부담스러울 정도의 친근한 태도 때문에 처음에는 어색했다.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옆집 가족과 윗집, 아랫집 주민을 다 한 번씩 만나 인사를 나눴다. 그들은 하나같이 상냥한 얼굴로 내게 몇 마디 좋은 말을 건넸다. 모두 예의를 지키겠다는 듯이 사적으로 민감한 질문은 하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옆집에 사는 영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주머니는 연화와 특별히 가까워 보였다.
“아휴, 아직 티도 안 나네.”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 복도에서 마주친 아주머니가 스스럼없이 그녀의 납작한 배에 손을 가져다 대는데도 연화는 담담히 대답했다.
“이제 두 달 되어 가는데요, 뭐.”
“그래, 몸 관리 잘 해야 해.”
아주머니가 천천히 그녀의 배를 쓰다듬기 시작하자 도리어 내가 약간 불편해졌다. 연화는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잠깐의 침묵이 지나고, 손을 뗀 아주머니는 마치 보물을 바라보는 것처럼 연화의 배를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중요하지, 복덩이인데…”
활짝 웃은 아주머니가 돌아선 뒤에야 우리는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저 분도 너랑 같은 봉사모임 회원이셔? 그 아파트 사람끼리 한다는 거.”
“응.”
“되게 친한가 보네.”
“좋은 분이야.”
신발을 벗고 들어서면서 연화는 이 곳의 좋은 점에 대해 끊임없이 종알거렸다. 사람들이 모두 좋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층간 소음이 없고 수돗물이 깨끗하다…주민들에 대해서는 아직 확신할 수 없었지만 나머지 부분은 반박할 수 없었다. 가을이 되면서 아침 저녁으로 쌀쌀해졌지만 보일러를 틀지 않아도 집 안에는 온기가 돌았다. 저녁이 되면 조용했고, 오래된 아파트 특유의 녹물도 없었다.
“알았어, 알았어. 내가 여길 왜 샀냐고 또 물어볼까봐 그러는 거지?”
“오빠가 자꾸 재건축 이야기를 하니까 그렇지.”
“안 할거 같다며?”
“응, 사시는 분들이 별로 그러고 싶어하지 않더라.”
역도 멀고 입지도 애매하지만, 그래도 서울 변두리인데 재건축 이야기가 안 나올 수 있나? 꽤 특이한 경우라고 여겼지만 속으로만 생각했다. 얹혀 사는 입장에서 뭐라고 말을 얹기도 그랬다. 나는 화제를 이어 나가는 대신 재빨리 장 본 걸 정리하고 저녁을 차렸다. 둘 다 자취를 오래 했기에 간단한 요리는 금방 만들 수 있다.
“밥 다 됐어.”
“와, 맛있어 보인다.”
“많이 먹어.”
저녁 내내 도란도란 수다를 떨면서 한 집에 있다는 기분은 참 좋았다. 회사에서 있었던 시시콜콜한 일들을 떠드는 나를 바라보던 연화가 문득 물었다.
“오빠, 우리 태명 짓는 거 어때?”
“태명? 생각해 둔 게 있어?”
“음…오빠 이름은 문경이고 내 이름은 연화니까, 달님이나 꽃님이가 어떤가 해서.”
“너무 여자애 이름 같은데. 근데 애초에 그런 식으로 짓는 게 맞나?”
“어차피 태어나면 새로 지어야 하는데 예쁘고 귀여운 이름이 좋잖아.”
그 뒤로도 한참 이야기를 했지만 결국 태명은 정하지 못했다. 그녀가 진지하게 고르고 있었기에, 나도 시간을 내서 좀 더 고민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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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의 입덧이 시작되었다. 힘들어하면서도 성실히 회사 출근을 하고 있는 그녀가 안쓰러워서 내가 집안일을 더 맡았다. 그녀는 평소에 아무렇지 않던 냄새나 음식도 역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집안 청소를 하는 토요일, 나는 그녀를 거실에 앉혀 놓고 정기적으로 하는 집안 청소를 시작했다. 연화는 소파에 무릎을 껴안고 앉은 채로 내 움직임을 따라 시선을 도르륵 굴렸다.
“고마워, 오빠.”
“이거 가지고 뭘.”
나는 창고 겸 옷방으로 쓰고 있는 연화의 침실 맞은편 방에 청소기를 가지고 들어갔다. 지금까지는 항상 그녀가 청소하던 방이었다. 별 생각 없이 청소기를 돌리다 보니, 구석에 놓여있는 작은 항아리가 눈에 들어왔다. 흰색 행거와 서랍장 옆에 갑자기 시커먼 전통 옹기가 있으니 이질적이었다.
몸을 수그리고 살펴보니 항아리는 두 뼘 높이 정도 되는 크기에 얇은 한지로 입구가 덮여 있었다. 청소기를 내려놓고 양 손으로 들어올려 기울이자, 쏴아 하고 작은 알갱이들이 구르는 소리가 났다. 살짝 비쳐 보이는 걸 보니 쌀이 들어있는 모양이었다. 꽉 차 있지는 않았지만 생각보다 무거웠다.
밥 지을 쌀을 여기다가 보관하는 건가? 내가 항아리를 내려놓자,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뭐 해?”
돌아보니 연화의 표정이 좋지 않아서 얼른 대답했다.
“아, 쌀을 왜 여기 두나 싶어서.”
“…”
그녀는 내 말이 이상한 내용인 것처럼 고개를 갸웃했다가, 마치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이 말했다.
“옛날에는 엄마가 집에 꼭 이런 걸 두셨거든. 미신이지만.”
“그럴 수도 있지.”
돌아가신 부모님 이야기가 이렇게 나올 줄이야. 연화의 무표정한 얼굴에 나는 쩔쩔맸다. 왜 기분이 상했는지는 정확히 몰랐지만 굳이 따지고 싶지는 않았다. 같이 살지만 모든 물건에 마음대로 손 댈 수 있다는 뜻은 아니라는 거겠지. 원래 이 시기에는 기분이 왔다갔다한다는 말도 있고…나는 청소를 다 끝내고 나서도 내내 그녀의 눈치를 살피다가, 며칠 새 잊고 있었던 복권 용지를 꺼내들었다.
“이거 봐. 저번 주에 산 건데 당첨된 거야.”
“로또네? 계속 샀어도 다 허탕이었잖아.”
“어. 근데 이번에 4등이 됐더라고. 신기하지? 나 진짜 평생 5천원도 받아본 적 없거든.”
“잘 됐다.”
“이거 바꿔오면서 간식이라도 사 올게.”
마침내 연화가 옅은 미소를 짓고 나서야 안심이 된 나는 얼른 집을 나섰다. 그녀가 좋아하는 과자나 디저트 종류는 이미 다 꿰고 있었다. 근처를 돌면서 바리바리 간식거리를 사니 돌아오는 길에는 해가 기울고 있었다.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기에 발걸음을 서둘렀다. 아파트 복도에 작은 꼬맹이가 문 앞에 쪼그려 앉아 있는 게 보였다.
본 적이 있는 녀석이다. 지나쳐 가기도 전에, 그 꼬맹이가 내게 말을 걸었다.
“옆 집 누나랑 같이 사는 형이에요?”
“어…너 영인 아주머니 아들이구나.”
저번에 만날 때 늦둥이라고 소개시켜 준 적이 있어서 기억났다. 몇 살이더라, 초등학교에 아직 안 들어갔다고 했나?
“누나한테 곧 아기 생기죠?”
“그렇지?”
“좋겠다.”
당돌하게 말을 걸었던 꼬맹이는 이내 부럽다는 표정이 되었다. 자세히 보니 꽤 귀여워서 주머니에 남아 있는 현금 중 천 원짜리를 탈탈 털었다. 과자 사 먹으라고 용돈을 건네주면서 나는 장난스럽게 물었다.
“왜, 너도 동생 가지고 싶니?”
“나도 동생 아기 있었는데.”
꼬맹이가 고개를 숙이고 작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없어졌어요.”
“응?”
이 집은 외동이라고 들었는데. 만약 동생이 아파서 먼저 하늘나라로 떠났다면 슬픈 일이다. 이런 식으로 듣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내용 같아서 뭐라고 대답해야 되나 고민하는 사이 꼬맹이가 덧붙였다.
“근데 엄마아빠는 안 울고 그냥…”
“그냥?”
“우리집에 좋은 일들이 생길 거라고 했어요.”
무슨 뜻인지 미처 생각해 보기도 전에, 옆집 현관문이 벌컥 열렸다. 영인 아주머니가 웃는 낯으로 아들의 어깨를 잡아서 끌어당겼다.
“어머, 우리 애가 귀찮게 굴었네요.”
얼떨떨하게 인사를 건네자 아주머니가 입으로 손을 가리고 곤란한 기색으로 말했다.
“애가 낯도 안 가리고 호기심이 많아서요.”
“괜찮습니다.”
아주머니는 내가 꼬맹이에게 준 천원짜리 몇 장을 내려다보더니 순식간에 그것을 도로 빼앗아 내 손에 쥐여줬다. 그리고는 금세 울상으로 변한 꼬맹이를 집 안으로 밀어넣으면서 눈웃음지었다.
“고맙지만 이런 건 안 줘도 돼요.”
문이 쾅 닫혔다. 한동안 나는 그 앞에서 꼬깃꼬깃한 지폐를 쥐고 망연히 서 있었다. 옆집 아주머니는 여전히 친절한 태도로 대했지만, 순간 그 웃는 눈빛이 마치 잘 만들어진 것처럼 보였다.
나는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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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편치 않아서인지 밤에는 잠을 설쳤다. 꿈도 괴상한 꿈을 꿨다. 우리 아이를 잃어버렸는데, 연화가 아무렇지도 않게 나에게 뭘 찾냐고 묻는 꿈이었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깨어나서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4시. 일어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땀을 많이 흘려서 그런지 목이 말랐다. 개꿈에 신경쓰지 말고 물이나 한 잔 마셔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부엌으로 살금살금 나와 컵을 찾았다.
으드득
그 때 내 귀에 순간 기이한 소리가 들렸다.
잘못 들었나 싶어서 멈춰 서자, 소리가 이어졌다.
으득, 우드득
이게 무슨 소리지?
설마 아직 꿈인가 싶어서 내 팔을 꼬집어 보니 아프기만 했다. 귀를 기울이자 그 소리는 연화의 침실 맞은편 방 안에서 나는 것 같았다. 방 문이 손가락 한 마디 정도 열려 있었지만 불을 켜 놓지 않아서 안이 보이지는 않았다. 누가 침입한 건 아니겠지? 새어 들어오는 달빛에 의지해 시야가 어둠에 적응하는 동안, 나는 소리 나지 않게 조심해서 몇 걸음 앞으로 전진했다. 그 동안에도 그 기이한 소리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좀 더 다가가자 뭔가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뒷모습이 흐릿하게 문 틈으로 보였다.
익숙한 모습이라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연화다.
으드득 소리에 맞춰 그녀의 고개가 조금씩 까딱였다.
새벽 4시에 저기서 뭘 먹고 있는 거야?
하마터면 소리를 내 연화를 부를 뻔했지만 간신히 내 방으로 돌아왔다. 방금 본 광경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에게 몽유병이 있었나? 같이 여행을 간 적도 있지만 그런 적은 없었는데. 영인 아주머니와 그 꼬맹이 녀석의 일까지 생각하자 여러 생각들로 머리가 아파져 날이 밝도록 다시 잠들지 못했다.
해가 떠올랐고, 아침까지 계속 뒤척이던 내 방을 먼저 노크한 건 연화였다. 그녀는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내게 인사를 건넸다.
“나 다녀올게.”
“어…응. 잘 다녀와.”
연화는 일요일마다 아파트에서 하는 봉사모임에 참석한다. 주로 고아원이나 양로원에 가는데, 요즘은 힘쓰는 일은 하지 않고 간단한 일만 돕는다고 했다. 결국 그녀에게 밤에 있었던 일은 묻지 못했다. 그녀가 현관문을 나서 복도를 걸어가는 소리가 멀어지고 나자, 나는 성큼성큼 항아리가 있던 방으로 들어가 안을 확인했다.
안이 비어 있었다.
그 뒤로 일요일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런저런 집안일도 하고 밥도 먹었지만 저녁에 돌아온 연화를 맞이할 때까지도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꺼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돌아온 그녀가 내 얼굴을 살피면서 걱정스럽게 묻기도 했다.
“오빠, 많이 피곤해? 정신이 없어보이네.”
“그런가?”
“나 오늘 무슨 일 있었는지 알아? 등대지기 재단이라는 곳에서 전화를 받았는데, 우리 봉사모임 취지가 참 좋아서 지원해주고 싶대. 언제 한 번 찾아오기로 했어.”
“그거 잘 됐네.”
그렇게 심란한 마음으로 일요일 시간을 다 날리던 와중에 갑자기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클라이언트의 급한 요청이라고 해서 업무용 메일을 확인하고 답변을 보내느라 한두시간을 또 보냈더니 어느새 밤이 되어 있었다. 아니, 이러면 안 되지… 나는 한숨을 쉬고 일어나 연화에게 가기로 마음먹었다. 방을 나가니 거실이며 부엌에 다 불이 꺼져 있었다.
노곤하다고 하더니 먼저 잠든 모양이었다. 그녀의 방 문이 반쯤 열려 있었고, 침대에 누워 있는 연화의 흐릿한 실루엣이 보였다. 오늘 대화하기는 틀린 것 같다. 문이나 닫아 줘야겠다는 심정으로 내가 연화의 방으로 다가가자, 침대 옆 어둠 속에 ‘무언가’ 있는 것이 보였다.
잠을 제대로 못 자서 헛것이 보이는 걸까?
아니다. 그 어둠 속에서 덩치 큰 ‘무언가’가 틀림없이 연화를 굽어보고 있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잠든 그녀를 불렀다.
“연…!”
그러나 입을 떼고 미처 그녀의 이름을 다 부르기도 전에 그 형체는 사라졌다. 연화는 푹 잠들었는지 내 목소리에도 깨어나지 않았다. 방 안으로 들어가 샅샅이 살폈지만 방금 전 봤던 형체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떨리는 손 끝으로 방 문을 닫았다. 잘못 본 걸꺼야. 피곤해서 그런 거겠지.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문 손잡이를 조심스럽게 놓고 돌아섰다. 하지만 채 몇 걸음 걷지 않은 내 등 뒤에서, 미세한 소리와 함께 한 줄기의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갑자기 집 안에서 바람이 불 리는 없었다. 돌아보지 않아도 직감할 수 있었다.
방금 닫았던 문이 다시 열린 것이다.
순간 집 안이 싸늘해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착각인가?
내가 침을 꿀꺽 삼키는 그 소리마저도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이대로, 얌전히 내 방으로 돌아가 잠이나 자야 되는 게 아닐까?
돌아봐야 한다는 비이성적인 충동과 정체 모를 공포심에 사로잡혀 그 자리에 굳어 있던 나는 삐걱삐걱 고개를 돌렸다.
잠들었다고 생각한 연화가 눈을 뜨고 있었다.
그 번들거리는 두 눈동자가
깜박이지도 않고 나를 빤히 응시했다.
-------
“오빠, 일어나 봐. 괜찮아?”
“응…?”
몸을 흔들어 대는 손길에 눈을 떠 보니, 연화가 양 어깨를 붙잡은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제부터 왜 그래? 멀쩡한 방 놔두고 거실에서 자고 있네.”
“어…”
머리가 아팠다. 소파에 구겨져 있던 몸을 일으켜 간신히 앉자 그녀는 출근에 늦겠다며 잔소리를 몇 마디 하더니 욕실로 들어갔다. 나는 양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혼란스러운 심정으로 곱씹었다. 왜 내가 여기서 자고 있었지? 마지막 기억을 되짚었다. 빈 쌀독, 어젯밤 불이 꺼져 있던 집 안, 연화의 방으로 찾아간 나, 어둠 속의 형체…
그리고 시선.
그 뒤로는 기억이 없었다. 부르르 떤 나는 소름이 돋은 양 팔을 쓸면서 연화가 들어간 욕실을 쳐다봤다. 내 정신이 갑자기 어떻게 된 게 아니라면 문제가 있는 쪽은 내가 아니다. 하지만 연화는 겉보기에 몹시 멀쩡해 보였다. 자신이 뭘 했는지도 모르는 눈치였다.
잠자리가 바뀐 데다가 오지랖 넓은 이웃들 때문에 나 또한 너무 예민해진 걸지도 몰랐다. 아이 때문에 신경 쓰이는 점도 많을 텐데 스트레스를 더 받게 할 수는 없었다. 나는 뒤이어 출근 준비를 하고 애써 평소와 같은 태도로 연화를 먼저 배웅한 뒤 방의 항아리를 살폈다. 어느새 거기에는 쌀이 가득 차 있었다.
“하…”
출근한 사무실에서도 내가 이런 문제로 상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른 채 점심을 먹고, 정신을 어디다 빼 놓았냐는 타박을 몇 번 듣다가 퇴근 시간을 맞이했다.
아파트로 돌아가 현관문을 여니, 거실의 불이 켜져 있었다. 틀림없이 끄고 나갔을 텐데…나는 멍해진 머리로 연화를 맞이하고 저녁을 대충 먹었다. 그녀는 발랄한 말투로 희소식을 전했다.
“옆집 아저씨가 이번에 승진한대. 저번에도 누락됐었다는데, 아주머니가 엄청 좋아하시더라.”
“아, 승진…그래. 축하할 일이네.”
듣는 둥 마는 둥 하던 나는 이 날 밤 죽은 듯이 잤고, 아무런 꿈도 꾸지 않았다.
이 날 이후로는 한동안 밤에 자다가 깨는 일이 없었다.
차라리 모든 게 없었던 일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신경이 과민한 것뿐이었다고.
하지만 잘 준비를 하고 침대에 앉았더니 방의 불이 툭 꺼지는 현상을 몇 번 겪고 나자 나는 의사 대신 평생 믿은 적도 없었고 볼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무속인을 검색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게다가 그녀의 휴대폰이 식탁 위에 놓여져 있는데도, 연화는 가끔 방에서 누군가와 즐겁게 이야기하곤 했다.
나는 연화의 작은 웃음소리를 들으며 미간을 찡그린 채 허공을 노려보았다. 그날 밤을 떠올리면 그녀의 방 문을 열어보는 게 왠지 두려웠다. 집 안이 이제 더 이상 아늑하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신경이 날카로워지니 집 안에 앉아 있는 게 무슨 짐승의 뱃속에 들어있는 것 같았다. 끊었던 담배가 생각나 저녁에 무작정 아파트를 나섰다. 편의점에서 한참 고민하다가 연화와 아이 생각에 차마 담배는 사지 못하고 결국 캔맥주 몇 개만 사서 터덜터덜 돌아가는 길, 1층 엘리베이터 앞에 윗집 노인이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인사를 건네자, 노인이 인자하게 웃었다.
“총각, 연화랑 혹시 싸웠나?”
“네? 아뇨…”
나는 질문의 의도를 몰랐지만 일단 부정했다. 어쨌든 싸운 적은 없으니까. 이웃들의 원하지 않는 참견에 질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그는 내 대답을 신경도 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허허, 젊을 땐 다투기도 하지.”
엘리베이터가 띵 하고 도착하는 소리가 나자 나는 대답 대신 대충 목례만 건넸다. 더 이상 아무 대화도 하고 싶지 않았다. 노인은 아랑곳 않고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위로하는 어조로 말했다.
“다 잘 될 걸세.”
도망치듯 내린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틈 사이로, 노인의 마지막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왔다.
“우리 아파트는 터가 좋거든.”
그 때 내 표정이 어땠는지는, 모르겠다.
-------
연화를 잘 챙겨줘야 하는데도 어쩐지 예전처럼 웃어주기가 어려웠다.
며칠 지나지 않아 연화는 금세 내가 데면데면하게 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어느 날 밤 그녀는 퇴근하고 곧장 방으로 돌아가려던 나를 붙잡고 굳은 어조로 말했다.
“우리 얘기 좀 해.”
“…“
나는 잠자코 거실로 끌려가 묵묵히 그녀 앞에 섰다. 연화는 팔짱을 낀 채 내가 뭔가를 숨기고 있기라도 한 듯이 추궁했다.
“오빠 요즘 정신 다른 데 팔린 거 같아. 무슨 일 있어?”
“아무 일도 없어.”
“살도 빠진 거 같고.”
나를 아래위로 훑던 그녀가 코앞으로 바짝 다가왔다.
“솔직히 말해봐, 화 안 낼게.”
“아무 일도 없다니까!”
순간 언성이 높아졌다. 흐려진 연화의 얼굴을 보자 바로 후회가 되었다. 어떤 이유가 있든 큰 소리를 내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 그렇다고 밑도 끝도 없는 소리를 늘어놓기에는 거부감이 들었다. 혹시 방에서 누구랑 얘기하고 있는 거야? 언제부터 밤에 돌아다녔어? 주민들이 사이비 종교 믿는 건 아니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온갖 의문을 꾹 누르는 사이 연화가 내 손을 가져가 그녀의 배 위에 살포시 얹었다.
“나 우리 아이, 행복한 집에서 자라게 해 주고 싶어.”
맞다. 그녀는 우리 아이를 가지고 있었다. 무슨 일이 생겨도 연화와 아이를 지켜줘야 했다. 내가 누그러진 기색으로 손을 마주 잡자, 그녀가 달콤한 목소리로 말했다.
“좋은 일만 겪고, 다 잘 풀리게…”
연화가 한 걸음 더 앞으로 다가와서 무심코 뒤로 물러섰다. 차가운 거실 벽이 등에 닿았다. 모든 의혹들을 해소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이야말로 그녀와 진지하게 대화를 해야 하는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타이밍을 놓치면 연화의 배가 불러올 때까지도 나는 불안과 망상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다. 사실 알고 보면 별 일 아닐지도 모르는데. 얼굴이 발갛게 상기된 연화가 손을 들어 내 뺨을 살며시 쓰다듬었다.
“오빠가 도와줄 거지?”
대답을 재촉하는 듯한 그녀의 부드러운 손짓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지금까지 했던 생각들을 털어놓으려고 했다.
방금 전까지 차갑다고 생각한 벽이 내게 묘하게 달라붙으며, 부드러워진 걸 알아차리기 전까지는.
“그럴 거지?”
긴장으로 순식간에 몸이 뻣뻣해졌다. 착각이 아니었다. ‘무언가’ 가 느릿하게 내 등을 건드렸다.
나는 도움을 청하는 눈길로 연화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뭐라도 해 주길 바랬다. 내 등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날 끌어당기고, 갑자기 또 왜 그러냐고 물어주기를.
그러나 연화는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하는 나에게 여전히 대답을 기대하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피가 차갑게 식는 듯했다. 움직이려고 해도 몸이 무슨 덫에 걸린 것 마냥 꼼짝도 하지 않았다. 잠시 끈적한 정적이 흐르고, 내 뺨을 맴돌던 그녀의 손이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띵동
그 순간, 현관의 초인종이 울렸다.
“안녕하세요? 등대지기 재단에서 나온 현장 1팀의 윤재영이라고 합니다.”
문 너머에서 쾌활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눈을 굴려 인터폰 화면을 바라보자 지팡이를 들고 있는 젊은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화질이 썩 좋지 않아서 자세한 생김새는 보이지 않았다. 남자는 살짝 문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가, 손을 들어 현관문을 똑똑 노크하고 이어 말했다.
“예전에 전화로 인터뷰 약속 잡았는데,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안에 계시죠?”
연화에게는 남자의 말이 들리지 않는 듯했다. 그녀는 고개를 돌리기는커녕 열정적으로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나를 본다고 생각했는데 그 들뜬 시선은 묘하게 비껴 나가 내 뒤를 향했다. 어디를 보고 있는 거야? 나는 목이 졸리는 것 같은 기분에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연화의 두 눈동자는 마치 그 날 밤처럼 기이하고 뜨겁게 번들거렸다. 이윽고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내 귓가에 소근소근 속삭였다.
“난 이 아파트가 정말 좋거든.”
그 때, 틀림없이 닫혀 있을 현관문의 잠금 장치가 돌아가고
문이 서서히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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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영역
쓸데없이 길어짐
무섭다 재밌게 몰입해서 잘읽었음
근 한달간 읽은것중 제일 무서웠음...
짤 평범한 아파트 복도인데 존나무섭네 시벌ㅋㅋ
글들 다 개재밋네
좋다
ㅁㅊ 개존잼 …… 진짜 개잘쓴다 걍
다음편주세요 - dc App
와 미쳐따 존잼 - dc App
님 왤캐 글 잘씀 ㅋㅋ 표현 미쳤노 - dc App
남자는 아슬아슬하게 살았네 - dc App
남자이름이 문경이면 저 남자 재단에 들어간건가. 재단 직원 중에 이문경이라는 사람있었는데.. - dc App
근데 저 남자는 평범하게 살 것같았는데 의외다. - dc A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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