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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미망(未忘)은 섬에 남지 않는다

ㅁㄷㅊ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12.14 23:27:21
조회 4401 추천 75 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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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어머니는 오랫동안 아팠다. 

몇 번째인지 모를 면회를 가면서도 희망을 찾지 못했지만 이 날 어머니의 안색은 유달리 평온했다. 


“네 아버지는 잘 지내고 계실 거야. “


병이 깊어진 와중에도 어머니는 그렇게 말했다. 

아버지는 그가 어릴 때 실종된 이후로 소식을 알 수 없었지만 그녀의 믿음은 굳건해 보였다. 


“항상 말씀하시던 그 섬에서요?“ 


대답 대신 기운 없는 잔기침만 돌아왔다. 

작은 배를 가진 선장, 뱃사람이었던 아버지는 어느 날 홀로 바다로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그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아버지의 부재에 그가 울음을 터트릴 때마다 어머니는 그를 안고 조용히 달랬다. 


「아빠는 섬에 있어. 우리를 두고 간 게 아니야.」

「그럼 왜 안 와요?」

「그 섬이 너무 멀어서 그래. 아빠가 그만 멀리까지 가 버려서 그렇단다.」


그는 그 때 자신이 얼마나 울었는지 돌이켜보았다. 

아버지의 얼굴은 이제 사진 속에서 가장 선명하다. 

몇 가지의 추억은 꺼낼수록 낡아가는 그림처럼 흐릿해져서, 어른이 된 후에는 거의 떠올리지도 않았다. 


한때는 그가 정말로 아버지가 섬에 있다고 믿어본 적도 있었다. 

자라고 나서는 그게 얼마나 순진한 생각이었는지 깨달았다. 

그 섬은 단순히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일 뿐이다. 

물 속에 있는 수중초(水中礁)에서는 물리적으로 사람이 살 수도 없다. 


아버지의 실종 이후 모자는 제주도를 떠나 육지로 이사했지만 어머니는 종종 바다를 그리워했다. 

그 또한 어머니가 해 주는 바다 이야기를 좋아했다. 

어머니의 말솜씨가 유달리 훌륭한 날이면 그는 이야기 속에서 소금기 실린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느끼곤 했다. 


이 공간에는 이제 바다의 냄새 대신 병원 특유의 소독약 냄새만 가득하다. 창문을 통과하는 햇빛마저도 한 풀 꺾이어 그 빛이 병든 것마냥 색이 바랬다.  

어머니는 그 너머로 아득히 먼 그 곳을 바라보며 작게 속삭였다. 


“돌아오지 않는 뱃사람들은 다 거기 있어.“


그는 아픈 어머니의 말을 반박하는 대신 묵묵히 듣는 쪽을 택했다. 

그의 대답이 없어도 어머니는 개의치 않았다. 

바짝 마른 손가락이 바람에 흔들리는 고목나무 가지처럼 그의 손등을 더듬었다. 


“아들아.”

“네.” 

“내가 죽으면...”


어머니가 그의 눈을 들여다보며 흐린 미소를 지었다. 


“화장해서 그 근처로 나를 데려가 주겠니?” 


그는 손가락을 걸어 약속했다. 






*** 






싸늘한 바람이 부는 3월 초의 어느 아침, 그는 부두에 서 있었다. 


어머니는 마치 더 이상은 기다릴 수 없다는 듯이 홀연히 떠났다. 죽은 사람이 재가 되는 것은 평생의 세월에 비하면 찰나였다. 그는 분골함을 가지고 고향인 제주도로 내려갔다. 


최대한 어머니가 말한 근처까지 갈 수 있는 어선을 찾았지만 정확히 그 위치까지는 가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황 선장이라는 배 주인에게 적당히 값을 치렀다. 


약속한 부둣가에서는 그 말고도 예상치 못한 한 명의 손님이 더 있었다. 그보다 나이가 몇 살 더 많아 보이는 30대 후반의 여자였다.  


“안녕하세요.”


먼저 인사를 건네자,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던 여자가 힐끔 고개를 들어 분골함을 쳐다보았다.


“네…들고 계신 분은 어머니?”

“아,네.”


그녀가 기이한 눈초리로 분골함을 응시하다가 무언가 낮게 중얼거리기에 그가 되물었다. 


“뭐라고 하셨죠?”

“아뇨.”


고개를 저은 여자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도 딱히 할 말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여자는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와는 목적이 다른 것 같았다.


그렇게 침묵의 시간을 보낸 것도 잠시, 어느새 황 선장이 도착해서 그들을 태웠다.


“어휴, 날씨 한번 지랄맞게 춥네.”


진동이 느껴지는 갑판 위로 올라서자 생선 비린내가 훅 끼쳐 왔다. 선장은 인사 대신 날씨에 대해 몇 마디 불평하다가 출발한다고 휘휘 손짓했다.


그는 말없이 멀어지는 부두를 바라보았다.

살을 에일 듯한 바람이 불어오고, 배가 바다로 내달릴수록 풍경이 빠르게 멀어졌다. 


어선 중에서는 큰 축에 속했지만 파도가 칠 때마다 배는 너울대며 흔들렸다. 멀미가 심한 사람에게 이런 배를 타는 일은 고역이었다. 약도 잘 듣지 않으니 어지러워 갑판에 서 있을 수조차 없었다. 


그것은 여자도 마찬가지였는지, 곧 그와 여자는 좁은 선실 안에서 마주보고 끙끙대며 앉아 있는 모양새가 되었다. 선실은 안락함과는 거리가 멀어서 지저분한 데다 퀴퀴한 냄새가 났다. 


“저, 무슨 일로 배를 타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할 말은 여전히 없었지만 어색함을 견디기 어려웠던 그가 먼저 말을 꺼냈다. 여자는 팔짱을 낀 채로 허공을 보고 있다가 여상한 어조로 답했다. 


“신이 안 느껴져서요.”

“신?” 

“아, 이상하게 들리겠네요. 전 영화보살이라고 해요.”

“보살님이요?”


그가 당황한 기색으로 되묻자 여자가 옅게 웃었다. 


“무속인 찾아가신 적 없죠?”

“네...”

“그럴 거 같았어요.” 


그는 무속신앙을 믿지 않았기에 여자에게 어떤 대답을 해야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다만 영화보살이라는 여자가 왜 어선을 타고 바다로 가고 있는지 궁금했다. 


“모시는 분 말씀이 안 들린지 좀 됐거든요.”

“어…큰 문제인 거죠?”

“소위 말하는 신기가 떨어진다고 해야 하나? 그런게 있어요.”


정확한 해결책은 아니지만 뭐라도 될까 싶어서 멀리 나가보는 거라며 여자가 어깨를 움츠렸다. 


“그럼…보살님이 모신다는 분이 바다신인 건가요?”

“바다신? 바다에 신이 한둘인줄 아세요?”


그의 질문을 들은 여자는 우스운 농담을 듣는다는 듯이 웃었다. 역시 육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며. 고향 여부와 별개로 어릴 때 제주도를 떠난 그로써는 반박할 수 없는 말이었다. 


한번 대화를 트고 나니 어색한 분위기가 한결 나아졌다.

여자가 모시는 신은 음력 2월 초하룻날에 제주도로 들어왔다가 보름간 머물고 떠나는 할망이라고 했다. 

들어오는 날부터 굿을 한다며 몇 마디 더 설명했지만, 그는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워 간신히 몇 마디만 보탰다. 


“음력 2월 1일이면 며칠 안 남았네요.”

“그렇죠. 그러니까 더 문제인데…응?”


여자가 하던 말을 멈추고 선실 밖을 바라보았다. 


“근데 배가 멈춘 거 같지 않아요?”

“네? 그러고 보니…”


여자가 그에게 묻자 그 또한 이상함을 느꼈다. 

멀미에 시달리는 사람들끼리의 대화가 어쩐지 원활하게 진행되더라니.

파도에 출렁이던 배에서 어느 순간부터 흔들림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와 여자는 밖으로 나와 함께 갑판으로 향했다. 


“이런 씨팔…”


뱃머리에 서 있던 황 선장이 새파란 낯빛으로 욕설을 뇌까리고 있었다. 


“선장님, 무슨 일이 생겼나요?”

“망했네, 망했어! 장씨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요새 바다가 미쳐돌아가지고…”


선장은 전혀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완전히 패닉에 빠진 선장을 보니 그 또한 혼란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여자도 표정을 찡그린 채로 저 너머를 바라보았다.


바다에는 더 이상 파도가 치지 않았다. 

수평선은 물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고,

배는 마치 호수에 떠 있는 것처럼 고요했다.

 

그가 고개를 숙여 배 밑바닥 쪽을 내려다 보니 수면이 배를 중심으로 붉게 물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선장님, 저기 색깔이…”

“보지 마!”


선장이 성큼성큼 다가와 우악스런 손길로 그의 어깨를 확 잡아당겼다. 그는 휘청대면서 물러나다가 그만 넘어졌다. 하마터면 분골함을 놓칠 뻔 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사고가 난 거라면 말을 똑바로 해 줘야죠!”


황 선장은 그의 항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고래고래 소리치며 손가락질했다. 


“지금 당장 안에 들어가! 꼼짝도 하지 말고! 난 선장실에 갔다올 테니까 절대…”


그 순간,

배가 뒤집혔다. 


아무런 전조 현상 없이, 동전을 뒤집듯 순식간에.


꾸르르륵


무언가 더 말하려고 입을 벌렸던 그는 놀라서 물을 잔뜩 먹었다. 갑판이 어느새 자신의 머리 위에 있었다. 


돌연 물 속에 빠지게 된 세 사람이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허우적대기 시작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온 몸의 구멍으로 찌르는 듯이 바닷물이 밀려들어왔다. 오싹할 정도로 차가웠다. 


눈을 뜨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수면이 어느 방향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는 공포감에 미친 듯이 몸을 비틀었다. 


이대로 죽는 건가?


헐떡이던 그가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던 남은 숨을 놓쳤다. 

부글대는 공기방울이 코와 입에서 새어 나오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숨이 막혀왔다.  


심장은 빨리 뛰기는 커녕 차츰 느려지고 있었다.

전신이 오그라들듯이 저려 오다가, 곧 감각을 잃은 것처럼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팔다리를 휘젓던 그는 의식이 희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바다 아래로 가라앉고 있는 분골함의 모습이었다. 


그 하얀 도자기는 마치 누군가가 잡아당기는 듯이 빠른 속도로 하강하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저 깊은 곳으로.


‘안 되는데…분골함을…’


그는 정신을 잃기 전 무언가 본 것도 같았다. 






***






“저기요, 정신이 들어요?”


그가 눈을 떠 보니 여자가 자신의 가슴께를 꾹꾹 눌러대고 있었다. 그는 대답 대신 옆으로 몸을 반쯤 돌려 구역질을 했다. 극심한 구토감이 밀려왔다.


온 몸에 한기가 돌자 기침도 같이 터져 나왔다. 폐가 불타는듯이 아팠지만 죽지 않은 것만으로도 천운이었다. 


“어떻게…어떻게 살았죠?”


짠 물을 잔뜩 토해내고 잠긴 목소리로 묻자 그의 등을 두드리던 여자가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요. 저도 방금 깼거든요.”


그는 비척이며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신이 기절해 있던 곳은 울퉁불퉁한 바위 위였다. 입고 있던 외투며 옷은 홀딱 젖었고, 외투는 반쯤 넝마가 되어 의복의 기능을 잃었으나 신경쓸 정신이 없었다. 


배는 사라졌고, 물에 빠지고, 분골함은 잃어버렸다. 


그들은 섬에 갇혔다.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작은 섬이었다. 


한 바퀴를 도는 데 30분도 걸리지 않을 것 같은 크기에, 바위 덩어리로 이루어진 기묘한 공간이었다. 


나무는 커녕 풀 한 포기도 자라지 않는 곳이었다. 

언덕 하나 없이 사방의 바다가 잘 보이는 휑한 섬.


하늘에는 구름도 해도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고요한 가운데 어슴푸레한 빛만 조금 있어 시간대도 짐작하기 어려웠다.


둘러본지 얼마되지 않아 그들은 황 선장도 발견했다. 다만 선장은 좀처럼 의식을 되찾지 못해 한참이나 시간을 써야 했다. 

선장이 쿨럭대며 죽는 소리를 내고 나서야 그는 몸을 일으켰다. 


“이대로라면 얼어 죽겠는데요.”


다들 몸을 덜덜 떨었다. 젖은 옷에 급격히 체온을 빼앗기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저체온증으로 죽을 판이었다. 여자도 입술이 새파랬다. 


“저 안이라도 들어가 보죠.”


그의 말에 여자가 손을 들어 섬 중앙을 가리켰다. 바위섬에 유일하게 솟아올라 존재하는 구조물이 있었다. 

대체 누가 어떻게 만든 것인지 의심되는 작은 목조 사당이었다. 기와로 된 지붕이 옛스러웠는데, 생김새를 보면 마치 오래된 문화재 같았다. 


그들은 비틀대며 사당으로 향했다. 여자는 문을 몇 번 두드려 보고 응답이 없자 대뜸 창호문을 열고 머리부터 집어넣었다. 


“안이…따뜻하네요?”

“그러게요.”


채 열 명도 눕지 못할 것 같은 크기였지만 사당 마루는 난방을 하는 것처럼 온기가 돌았다. 문과 먼 제일 안 쪽에는 반듯하게 생긴 나무 제단과 물이 솟아오르는 석재 수곽(水廓)이 하나 있었고, 그 외에는 아무 장식도 없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지 의심할 새도 없이 세 명은 허겁지겁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외투 쪼가리로 서로를 대충 가리고 각자 물기를 짜냈다. 몸이 따뜻해지자 그제야 살 것 같았다.


“좀 누웁시다.”


황 선장은 여전히 몸이 좋지 않은지 꾸물꾸물 자리를 잡더니 대뜸 모로 누웠다. 


“여기가 대체 어딘지…보살님, 휴대폰 있으세요?”

“없어요. 빠질 때 잃어버렸나 봐요.”

“나도 없수.”


여자가 낭패한 얼굴로 입술을 깨물었다. 


“이러면 저희 구조 요청도 못 하는 거 아니에요?”


아직 최악의 상황은 아니다. 배나 비행기가 지나갈 수 있으니 최대한 구조 신호를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한편 그는 배가 멈췄을 때 선장의 반응이 마음에 걸렸다. 

장씨 말을 들었어야 한다고 했는데, 바다에 무슨 재해(災害)가 벌어지고 있는 건가? 자신은 아무것도 들은 바가 없었다. 


그가 등을 보이고 누운 황 선장에게 말을 걸었다. 


“선장님, 무슨 일인지 알고 계신 거 아닙니까? 좀 전에…”


선장은 답이 없었다. 


“잠들었어요. 아니, 기절한 건가?”


돌아누워 있던 선장을 확인한 여자가 인상을 찡그렸다. 


맥이 빠져 버린 그가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상황에 대해 몇 마디 더 얘기하던 여자 또한 하얗게 질린 얼굴로 좀 쉬어야겠다고 했다. 구석에 웅크린 여자는 이내 눈을 감더니 규칙적인 숨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에게도 졸음이 몰려왔다. 물에 빠졌던 몸이 이곳저곳 아프고 피로했다. 가물해지는 정신을 붙잡던 그는 눈꺼풀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의 아버지도 혹시 바다에 빠졌던 걸까?


물에 빠진다는 것은 몹시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사고로 익사했거나 배의 문제로 망망대해에 갇혔으리라 여겼는데, 이제 와 생각해보니 둘 다 너무 가혹한 추측이었다. 

게다가 그는 죽지 않았으니 아버지가 겪었을 일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아버지에 대해 생각하던 그는 까무룩 잠이 들었다.


잠든 순간 짧은 꿈을 꾼 것 같기도 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동네 놀이터에 갔던 기억이었던가.

아버지는 그가 탄 그네를 밀어주는 것을 좋아했다. 


한참동안 떠올린 적 없는 아버지가 하필 이 순간 꿈에 나오다니…

꿈의 장면이 채 전환되기도 전에, 여자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귀를 돌연 파고들었다.


“들려요!”

“헉.”


그는 놀라 눈을 번쩍 떴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몸을 돌려 보니 그들은 여전히 사당 안에 널브러져 있었다. 


여자가 반쯤 혼이 나간 듯한 기묘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뭐,뭐가요?”

“할망이 주변에 계신 거 같아요.”


그의 더듬대는 물음에 여자가 한층 밝아진 안색으로 답했다. 도무지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천천히 고개를 젓던 그의 시야에 사당 안 나무 제단이 들어왔다. 


무심코 그 쪽을 본 그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 제단에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없었다. 

분명 없었을 텐데.


제단 위에,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흰쌀밥 한 공기가 놓여져 있었다.






*** 






“다 먹고 찝찝해하면 무슨 소용이에요.”


여자가 손가락에 붙은 밥풀을 떼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할망이 어쩌고 하더니 조금 전보다 기운있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도 많은 것이 이상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흰쌀밥은 수상쩍기 그지없었다. 자신이 환각을 보는게 아닌지 의심하다가, 그 다음엔 단체 환각 증상을 겪는게 아닌지 의심했다. 


하지만 흰쌀밥은 환상이 아니었고, 섬에는 먹을 것이 전혀 없었다.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로 밥을 방치해 두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진짜 귀신에 홀리기라도 한 걸까요.”

“안 믿는다고 하지 않았어요?”

“상황이 이러니.”


그가 여자의 질문에 허탈히 답했다. 


“황 선장님은요?”

“안 먹소.”

“남겨놓을까요?”

“됐수.”


황 선장은 정신을 차리더니 여자와 반대로 완전히 생의 의지를 잃은 것 같았다. 그의 물음에 선장은 누운 채로 답했을 뿐 전혀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는 다시 캐물어 볼까 하다가 선장이 이쪽을 보지도 않는 것을 보고는 그만두기로 했다. 여기를 나가는 데 전혀 도움을 줄 것 같지 않았다. 


선장을 사당에 남겨둔 채 그와 여자는 나와서 섬을 빙빙 돌았다. 이 섬에서는 시간의 흐름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낮이라고 하기엔 어둡고, 밤이라고 하기엔 밝은 상태가 지속되고 있었다. 


펼친 손을 이마에 갖다대고 한참이나 섬 밖을 바라보던 여자가 고개를 저었다. 


“바람도 안 불어요. 다른 섬이 보이는 것도 아니고.”


그 또한 막막한 기분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한 점 없었지만 어째서인지 해도 보이지 않았다. 한참이나 지켜봤지만 지나가는 다른 선박의 그림자 하나 보지 못했다. 


“SOS 표식이라도 만들어 둘까요? 어떻게든 불을 피우면 좋겠는데 태울 게 전혀 없네요.”


그러죠, 하고 답한 여자가 그를 도와 바위섬 표면에 표식을 만들었다. 입었던 옷 쪼가리나 밝은 색의 돌을 사용하는 것 정도가 현재 최선이었다. 

그는 옆에 쪼그려 앉아 알파벳 모양이 보일지 고심하는 여자를 잠시 지켜보다가 질문을 던졌다.


“그…느껴진다는 건 대체 뭐죠?”


여자는 그를 바라보지 않고 즉답했다. 


“가까이 계시면 저는 알아요. 기운이란 게 있으니까.”

“그 신기를 되찾으신 거라면, 혹시 무슨 도움이 될까요? 뭐라도 간절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이미 도와주셨어요.”

“네?”


돌멩이 하나의 위치를 바로잡던 여자가 이윽고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눈빛에는 그로써는 이해할 수 없는 믿음이 들어차 있었다. 낯설지 않은 느낌이었다. 


“저희를 바다에서 구해주셨잖아요.”

“어…그러니까, 보살님이 모시는 신께서요?”

“네.”

“정말요?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바다에 빠진 저희가 어떻게 전부 다 살아 있겠어요?”


막무가내식 논리였지만 어쨌거나 여기에 살아있는 건 사실이었다. 그는 이성적으로 따져서 반박하기를 포기했다. 


“그럼 저 밥도 할망이 주신 거라고요?”

“그것까진 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안 먹어도 방법이 없잖아요. 바다에 들어가서 채취해 오시게요?”

“그런건 해녀나 할 수 있는…아니, 그만하죠.” 


여자는 그가 한숨을 쉬든 말든 개의치 않고 열성적인 태도로 말을 이었다.


“속삭임이 들려요. 평생 이렇게 잘 들린 적이 없었어요…분명, 분명히 방법을 찾아주실 거에요.”


그는 확신에 차 있는 여자의 표정을 보고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다. 여자가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셈이지만 이런 쪽으로는 쉽게 동의해 줄 수 없었다. 갑자기 무속신앙을 믿을 준비가 되었을리도 만무했다. 


여자가 멀어져 가고, 그가 다시 섬 밖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바다는 잠잠하기만 했다. 

그 광경을 바라보니 어쩐지 어지럽고 속이 메스꺼웠다. 


정말 구해준 게 신이라면, 

그들을 물에 빠지게 한 건 무엇일까.






***






덜 어두운 때를 낮, 더 어두운 때를 밤이라 대충 나눈 채로 시간이 흘렀다. 


“우욱.”

“괜찮아요? 저도 좀 토할 거 같긴 한데.”


그와 여자는 둘 다 현기증에 속이 안 좋은 증상을 겪고 있었다.


“저 밥 때문일까요?”


밥은 한잠 자고 일어나면 귀신같이 제단 위에 나타났다. 

그게 원인인가 싶어 애써 굶어봐도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영양 상태 불량으로 컨디션이 안 좋아도 누워 있을 상황은 아니었다. 그와 여자는 최대한 자주 나와서 바깥을 확인했다. 


“섬 같은게 보이지 않아요?” 

“아, 그러네요.”


그러다 보면 무언가 보이는 때도 있었다. 

다른 바위나 섬 같은 것들.


“잠깐…지금은 또 없어졌는데요?”


그러나 기묘한 점은 그들이 밥을 먹거나 잠을 자고 일어나면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저기 등대가 있어요.”


그가 눈을 가늘게 뜨며 먼 곳을 응시했다. 손가락 한 마디 정도로 보이는 등대에서 희미한 빛이 여기로 쏘아지고 있는 것 같았다. 거리상 그럴 리가 없었지만.


그 등대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이런 현상이 반복되자 그의 마음 속에서는 서서히 의심이 자라났다. 분명하지 않았으나 외면할 수 없는 의혹이었다. 


여자는 매일 바위 위에서 홀로 기도 시간을 가졌고, 황 선장은 여전히 의욕이 없었다. 선장은 마냥 누워 있나 싶다가도 슬며시 사당 밖을 배회하곤 했다. 기력이 달려 흐느적거리는 모습을 보면 반쯤 이미 귀신이 되어 버린 듯한 모양새였다.


살이 쭉 빠진 선장이 푹 파인 눈으로 바다를 바라보며 중얼거릴 때, 그는 무슨 얘기를 하나 궁금해서 다가가 본 적이 있었다. 


황 선장은 그가 가까이 온 줄도 모른 채 초점이 없는 눈으로 끊임없이 읊조리고 있었다. 


“앉은조금,무시,한물,한조금,한매,두물,한매,두매,세물,두매,세매,네물,무릎사리,네매,다섯물,배꼽사리,다섯매,여섯물,턱사리,일곱매,여덞물,턱사리…일곱매…여덞물…”


반복 재생을 한 것처럼 웅얼대는 주문 같은 내용이었다. 그 목소리에 어쩐지 소름이 끼친 그는 조용히 물러났다. 배가 침몰하고나서부터 선장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저쪽에서 기도가 끝났는지 바위 위를 총총 걷던 여자가 그를 향해 손짓했다. 그가 옆으로 오자 그녀는 허리를 숙인 채 바닥을 내려다봤다. 


“이 자국은 또 뭘까요.”


그도 고개를 숙여 여자가 보는 지점을 들여다봤다. 달팽이가 지나간 자리에 반짝이는 자국이 남는 것처럼, 뭔가 무겁고 축축한 것을 끌고 간 듯한 흔적이 바위 표면에 남아 있었다. 


하지만 섬 내에 생물이라곤 본 적 없는 상태에서 답이 나올리가 없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휴…하긴 이런 게 무슨 소용이겠어요.”


여자가 한숨을 쉬며 허리를 펴자 그가 말했다. 


“그 할망이 방법을 찾아주신다면서요. 들으신 게 있으면 저한테도 좀 알려주세요.” 

“안 믿으시잖아요.”

“지금 그게 중요합니까?”

“딱히 말씀드릴 만한 내용이 없어요. 그쪽한테는 별로 의미가 없기도 하고…”


여자는 초반의 자신만만함이 대폭 꺾였는지 애매한 대답을 내놓았다. 오늘 그녀는 기도를 하다가 혼자 되묻거나 언성을 높이곤 했다. 신이 대체 뭐라고 하는지는 몰라도, 지금 당장 여기를 나갈 방안은 제시해 주지 않은 것 같았다.


지친 표정에 꽉 다물린 입. 

그 옆모습을 훑던 그는 문득 알아차렸다. 


여자도 뭔가 의심하고 있다. 


그 의심이 그와는 다른 것일지 몰라도, 그는 얘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 이동하는 거 같지 않아요?” 

“네?”


대뜸 던진 그의 말에 여자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상하게 들릴 거 아는데, 섬이 움직이는 것 같지 않냐고요.”

“움직인다고요…?”


그녀는 본인이 딛고 선 바위를 께름칙하게 한번 쳐다보다니 되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우리 계속 어지럽고 속이 안 좋았잖아요. 처음에는 물에 빠진 후유증인 줄 알았는데…”


그는 말을 하면 할수록 강하게 드는 확신에 단정적인 어조로 결론을 내렸다.


“그냥 멀미하는 거 같아요.”


여자는 대답 없이 멍하니 서 있었다. 

한참이나 그 상태로 굳어있던 그녀가 시선을 떨구고 물었다.


“섬이…섬이 어떻게 움직일 수가 있죠?”

“보살님도 의심한 거 아닌가요?”

“전,저는…다른 생각을…”


머뭇거리던 여자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구해주려면 머,먼저 빠져야 하는 게 아닌가…”

“뭐라구요?” 


그가 여자의 말이 무슨 뜻인지 자세히 생각하기도 전에 유령처럼 황 선장이 나타났다. 입을 벌려 흐흐 웃는 그 얼굴이 창백했다. 


“뭐하러 기운을 빼?”


생기 한 점 없는 주름진 얼굴 피부에 약한 경련이 일었다. 선장은 그와 여자에게 삿대질을 하더니 손을 들 힘도 없는지 팔을 축 늘어뜨리고 말을 이었다. 


“쓸데없이 싸돌아다녀봐야 소용없어. 어차피 살아서 못 간다 그 말이요.”

“선장님은 대체 뭘 안다고 그러는 건데요!”


그는 답답함이 폭발해 선장 앞으로 성큼 다가섰다. 황 선장이 닭 모가지는 커녕 손수건 하나 비틀 힘도 없어 보이지 않았다면 멱살이라도 틀어잡았을 격한 다그침이었다. 


“뭘 아냐고? 모르지, 몰라서 문제야!”


선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턱을 홱 쳐들었다.


“뱃사람들이 최근에 바다에 나갔다가 몇 없어졌는데…하나도 못 돌아왔어. 하나도.”

“그러면 위험한 걸 알았으면서 선장님은 왜 저희를 데리고 나왔습니까?”


그가 따져 묻자, 선장이 눈을 몇 번 굴리더니 먼 기억을 떠올리는 듯 천천히 대답했다. 


“그, 무슨 매뉴얼인가 뭔가를 받았었는데…그게 몇 번은 소용이 있었거든.”

“그건 또 뭔…어?”


그 때, 사방이 돌연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였다.

여자가 짧은 비명을 질렀고, 

그와 선장의 대화는 더 이어지지 못했다. 


“이게 무슨.”

“완전 깜깜해졌어요.”

“갑자기 밤이 된 거라고요?”

“그런거 같은데. 보살님, 저 보이세요?”

“아뇨, 아무것도…” 

“일단 전부 사당 안으로 돌아가요, 빨리!”


그는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서 일단 여자와 선장의 팔을 되는대로 붙잡았다. 


그리고 몇 걸음이나 뗐을까, 

철퍽, 하고 바위 위로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






그 소리는 하나가 아니었다. 


마치 물에 젖은 몸을 끌고 무언가 떼를 지어 올라오는 것처럼 끝도 없이 이어 들려왔다. 


철퍽.

철퍽.

철퍽.


“뭐야, 뭔데!”


여자가 공포에 찬 기색으로 그를 잡아끄는 게 느껴졌다. 

그들은 이곳에서 이렇게 완전한 밤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셋은 처음으로 한 마음이 되어 다급히 움직였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지만 존재감이 느껴졌다. 


희미한 바람 소리, 질질 끄는 소리, 물 비린내 사이에서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여럿이다. 

그들보단 많다. 

움직이고 있다. 

가까이 오고 있다. 


“문! 문이요!”


그들은 사당에서 멀리 있지 않았다.

선장을 끌고 가다시피 해서 속도는 내지 못했지만, 그가 위치를 가늠했다. 

여자가 재빨리 사당의 창호문을 열었다.  


“들어와요!”


그와 여자가 사당 안으로 몸을 구겨 넣고 선장을 당겼다. 


퉁.


그 순간 무언가 창호문을 둔중하게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황 선장의 몸이 반쯤 들어오다가 덜컥 멈췄다. 


“억…”

“어떡해, 뭐에 걸렸어요?”


선장이 신음하자 여자가 더 힘을 주지 못하고 깜짝 놀라 물었다. 그 또한 두드리는 소리에 놀라 몇 걸음 물러났다가 인상을 찡그렸다.


“도와줘…잡…잡혔어…”


선장이 모기만한 소리로 애원했다. 


탕, 탕…


그것들은 울음소리를 내지도 않았고, 그들을 향해 으르렁거리지도 않았다. 

단지 밖에서 사당을 두드려 댈 뿐. 


“아마 여기 안으로 못 들어오나 봐요!”

“선장님은 어떻게 해요?”


여자가 겁에 질려 물었다. 


어둠에 적응한 그의 눈이 희끄무레하게나마 사람의 형체를 포착했다. 선장을 한쪽 다리를 사당 안에 걸쳐놓은 채 한 쪽 손으로 사당의 문틀을 붙잡고 있었다. 


“제가 당겨볼게요.”


그가 선장의 팔목을 붙들었다. 


퉁…


무언가가 다시 벽을 느릿하게 한 번 쳤다.

사당 전체가 울리더니, 목조 벽 일부가 우지끈 하고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여자가 다시 비명을 질렀다. 


“빨리…이쪽…”


선장이 남은 힘을 쥐어짜서 악을 썼다.

그가 힘껏 당겨보았지만, 선장의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무언가 황 선장에게 달라붙어 단단히 붙잡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는 방법을 바꿔 선장에게서 그것을 떼어내려고 팔을 휘젓기 시작했다. 


“바로 내 옆에 있다니까…!내 옆,내 옆에…”


황 선장은 고함을 지르다가, 흐느끼다가, 돌연 뚝 멈췄다.


그는 소리를 들었다. 


그것이 선장의 귓가에서 부드럽게 휘파람 같은 소리를 냈다. 


그 속삭임을 들은 선장의 눈이 커지고, 

이내 사당을 두들기는 소리가 멎었다. 


“선장님?”


돌연 찾아온 고요 속에서 여자가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선장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는 사당의 문틀을 잡고 있던 손이 툭 떨어져 나가는 것을 알아차렸다. 


“선장님!”


손을 놓자마자 정체 모를 것들에게 떠밀려 황 선장의 모습이 순식간에 완전한 암흑 속으로 삼켜졌다. 그가 외치며 뒤늦게 손을 뻗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철퍽…


목적을 달성한 것마냥 그것들이 서서히 물러가는 움직임을 보였다. 첨벙, 첨벙하는 물 소리가 들려온다. 다시 바다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전부는 아니었다. 

사당 앞에 남아 있는 게 있었다.


습도가 높아진 공기 속에서 비린 냄새가 강하게 코를 찔렀다. 그는 황 선장처럼 어둠 속에서 자신에게 다가온 기척을 느꼈다. 


「네 엄마가 걱정한다」

“……엄마?”


휘파람 같은 소리에서 그는 마치 사람이 말하는 것과 같은 의미를 알아들었다. 

멍청하게 중얼거리던 그의 몸이 뻣뻣해졌다. 

낡은 추억 속에서, 단숨에 어떤 기억이 되살아났다. 


“설마…아버지…?”

「여기를 떠나라」


가타부타 대답도 없이 상대방은 할 말만 했다. 


「빨리 나가」

“진짜 아버지 맞아요? 어디 계셨던 거에요?”

「섬…」

「도망쳐 내려왔다」


그가 팔을 뻗어 눈 앞에 있으리라 여겨지는 존재를 잡으려고 했지만,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아버지? 안 보여요. 그 섬이란게 진짜 있는 거에요? 살아 계셨던 거에요?”

「섬은 하나가 아니다」


휘파람 소리는 빨라졌다가 급속히 희미해졌다. 


「신이 움직인다…돌아가야 한다」


다급해 보이는 의사 전달을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기척이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풍덩,하는 물 소리가 나서야 정신을 차린 그가 소리쳤다. 


“아버지…?아버지!아버지!!”


장막처럼 내렸던 어둠은 걷히는 것도 갑작스러웠다.

다시금 어슴푸레한 빛이 사당으로 새어 들어왔다. 

 

주위를 둘러보니, 그와 여자는 둘 다 사당 벽에 기대 주저앉은 채 망연한 표정이었다. 


남은 것은 반쯤 부서진 사당과 그 제단에 어느새 올라온 흰쌀밥 한 공기, 


그리고 바위 위에 남은 축축한 흔적 뿐이었다. 






***






선장이 실종되었다. 


아니, 애초에 그걸 실종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것들이 황 선장을 바다로 데려갔다. 


그리고 그 중에는 아버지로 추정되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도 여자와 같이 넋이 나간 얼굴로 바다를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졌다. 

여전히 지나가는 배도, 비행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겪는 멀미 증상도 여전했다. 


게다가 벽이 반쯤 무너진 뒤로는 사당의 온기가 부쩍 약해졌다.

얼어 죽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애초에 쌀밥 한 공기는 성인 두 명이 하루 동안 버티기에는 부족한 양이었다. 


그들은 하루하루 말수가 줄었고,

어느 날은 밥을 나눠 먹으려다 싸움이 일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싸울 기운도 없어서 오래 가지 못했다. 

몇 마디 옥신각신하던 그와 여자는 곧 지치고 말았다. 


멍하니 앉아 바다를 바라보던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깟걸로 다퉈봐야 쓸데없는 일이었다.

그가 옆에 퍼져 있는 여자에게 몇 마디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저는 어머니 분골함을 유언대로 가지고 가려고 했을 뿐인데…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네요.”


여자는 한참 동안이나 대답이 없더니, 갈라진 목소리로 낮게 말했다.


“…그쪽 어머니는 부두에서부터 이미 두려워하고 있었어요.”

“뭘요?”

“저도 몰라요.”


그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 할망이 별로 도움은 안 되네요.”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보살님이 그 얘기 했었잖습니까.”

“뭐가요?”

"구해주려면 먼저 빠져야 한다고요."

“그래서요? 제가 모시는 분이 저희를 바다에 담궜다가 건졌다는 말이라도 하고 싶으세요?”


여자가 날카롭게 받아치자 그도 열이 올랐다.


“그 신이 그렇게 대단하면 지금 여기서 뭘 해 줄 수 있는데요?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고 뭐 얻은 거라도 있어요? 둘 다 여기서 얼어 죽거나 굶어 죽게 생겼는데!”


길게 쏘아붙이는 말에 여자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대화를 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 그는 일어나서 사당 안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할망은 그 날 이후로…계속 몸을 찾겠다는 말씀밖에 안 하세요.”


여자는 망설이더니 돌아선 그의 뒷모습을 향해 말했다. 


그가 돌아보니, 서 있는 여자의 표정은 왠지 겁에 질려 있었다.


“몸을 찾는다니요?”

“저도 다는 이해가 안 가지만.”


그녀가 머뭇거리다가 설명을 덧붙였다. 


“설화에 따르면 할망은 바다에 빠진 어부를 구하다가 거인들에게 사지가 찢겨 돌아가셨어요…그 뒤로 제를 올리게 됐고…”


여자가 말끝을 흐리며 웅얼거렸다. 


“팔…다리…몸통이…”


그녀가 말을 멈추고 눈을 가늘게 떴다. 


서늘한 바람이 몰아쳐 머리칼을 한바탕 헤집고 지나갔다.


그녀는 초조한 기색으로 제자리를 몇 걸음 빙글빙글 돌다가,멈춰 서더니 고개를 숙여 딛고 선 바위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웃음 소리가 들렸다. 


“보살님?”


불안해진 그가 여자를 불렀다. 


“아, 알았어요…이제야 알겠어요.”

“대체 뭘요?”


여자는 고저 없는 목소리로 알겠다는 말만 반복하며 웃었다.

입꼬리를 길게 찢는 웃음이었다. 


머리를 흔들며 웃던 그녀는 휘청휘청 걷기 시작했다. 


“하하하하…왜 이걸 이제 알았지…이걸 이제야…”

“보살님!”


여자가 바다로 걸어 들어갔다.

 

그가 여자의 미친 짓을 말리기 위해 반쯤 뒤에서 껴안다시피 했지만, 어디서 그런 초인적인 힘이 나왔는지 그녀는 그를 쉽게 뿌리쳤다. 


그는 바다로 들어가는 여자를 멀거니 바라보았다.

거침없이 깊은 곳으로 향하는 여자의 다리가 잠기고, 허리까지 물이 차올랐다. 


그가 이를 악물었다. 


그녀가 정신이 나갔다 해도 이렇게 죽게 내버려 둘 순 없었고, 이 이상한 곳에서 혼자가 되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그는 여자를 따라 바다로 뛰쳐나갔다. 


쏴아아


파도 소리도 그의 편을 들어주듯 세차게 울렸다. 

바닷물에 막 발을 담그던 그가 멈칫했다. 


파도?


쏴아아아 


3미터는 족히 될 법한 파도가 수평선에 나타났다. 


빠르게 몰려온 물살은 순식간에 그들의 앞으로 다가와 철썩 하고 섬에 부딪혔다. 나타난 순간과 거의 차이가 없는 찰나였다. 


물살이 갈라지면서 물이 튀어 옷이 흠뻑 젖었는데도 그는 움직일 수 없었다. 

흰 포말이 부서지는 사이로, 놀라 눈을 깜박였을 뿐.


파도가 사라진 바위섬 위에 두 사람이 홀연히 서 있었다.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소년과 소녀였다. 


소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한 손에 기절한 것으로 보이는 여자의 뒷덜미를 쥐고 있었다. 대체 언제 의식을 잃었는지 그녀는 짐짝처럼 축 늘어진 상태였다. 


그를 발견한 소년이 희미한 미소를 짓고 다가왔다. 


“음…저희가 확인차 온 건데 여기 사람이 있을 줄 몰랐네요. 괜찮으세요?”


그는 얼이 빠져서 대답했다. 


“누구…어떻게 여기…”

“전 태웅이라고 해요. 그동안 고생이 많으셨죠? 걱정하지 마세요. 저기 저 분이랑 같이 나가게 해 드릴게요.”


그토록 원하던 탈출 제안을 들었음에도 그의 머릿속은 한참 동안이나 안개 속을 헤매는 것처럼 몽롱했다. 


모든 것이 급작스러웠다. 

이 애들이? 그렇게 쉽게? 

대답도 질문도 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안절부절 못하던 그는 간신히 최초의 목적을 기억해냈다. 


애초에 배를 타고 나왔던 그의 목적을.


“혹시 제 분골함이랑 아버지…”

“아.”


그가 간청하는 어조로 묻자 소년이 곤란한 기색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시선은 바다를 향했다가 그의 얼굴로 되돌아왔다.


“분골함은 그렇다 치고…아버지를 만나고 싶으세요?”


소년은 친절해 보였지만 그는 위화감을 느꼈다. 

여자가 신 타령을 할 때보다 더 강렬하게 느껴지는 기이한 감각이었다. 


소년이 흑백이 분명한 눈동자로 그를 응시한 채, 또박또박한 말투로 다시 물었다.


“정말로 만나고 싶으세요?”


그는 곧 위화감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방금 바다 속에서 나온 것처럼 보이는 이 사람들의 몸에는, 물 한 방울 묻어있지 않았다. 


소년의 시선을 따라 바다를 향했던 남자의 표정이 굳어졌다.

삐걱대던 그의 사고에 희미한 공포심이 스며들었다. 


자신은 완전히 지쳤다. 

이제 정말로 집에 가고 싶을 따름이었다.

그는 이제 온전한 이성으로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없었고, 바라는 것이라고는 자신이 아는 육지에 발을 딛는 것 뿐이었다.


소년이 말하는 동안 소녀는 정물처럼 그 자리에 서 있기만 했다. 

그에게 시선을 전혀 돌리지 않은 채 찌푸린 얼굴로 그저 섬 바닥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모든 의문을 묻어두고,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아,아니요…”

“네.”


여전히 온화해 보이는 미소를 지은 소년이 소녀를 돌아보았다. 


“나인아, 가능하겠지?”


소녀가 성큼성큼 다가온 순간 그의 기억이 끊겼다. 


그가 다시 정신을 차린 곳은 남해안의 어느 해변이었다. 


그의 옆에는 가지런히 벗어둔 여자의 신발 한 켤레와, 

비어 있는 어머니의 하얀 분골함이 놓여져 있었다. 






***






그는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왔다. 


경기도에 있는 집까지는 아무리 오래 걸려봐야 몇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그 동안 그는 분골함을 껴안은 채 쉴새없이 몸을 떨었다. 


몇몇 광경을 도저히 잊을 수 없었다. 

집에 돌아온 이후에도 그는 악몽에 시달렸다. 


황 선장의 웃음소리, 정신을 잃은 여자, 그에게 대답을 재촉하는 소년의 목소리…


꿈조차도 기억에 선명했다. 

여자가 꿈에 나올 때면, 그녀는 비바람 한가운데에서 춤을 추며 그가 모르는 노래를 불렀다. 


「입도(入島)하신다」


「이제 곧 입도(入島)하신다...」


이제 그는 이따금 빈 분골함에서 흘러나오는 파도 소리를 듣는다.

그때마다 그는 아파트 방 안에서 보일러를 한껏 켜 놓은 채로도 한기에 몸을 떨었다. 


‘3월 18일 수요일, 긴급속보입니다. 제주도의 한림읍 방면 해안에 육안 관측 가능한 이름 미상의 섬이 출현했다고 합니다. 자세한...지지직...소식...치직...은...’


TV에서 흘러나오다 멎는 소음조차 그는 한 귀로 흘려들었다. 


그러다 몸을 웅크리고 힘겹게 잠이 들면, 

저 멀리 수평선 경계에 걸린 형체가 보였다.  



섬이다. 



잘못 본 게 아니다. 



저것은 섬이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그는 다시 어둠이 찾아온 것을 알았다. 


소금기 실린 바람이 그의 곁으로 불어왔다. 


바닷물 냄새가 나는 기척에게서는 가느다란 휘파람 소리가 났다. 



'아버지'는 천천히 다가와,


그의 귓가에 그날과 같은 말을 속삭였다.


‘아버지’는 어디에서 왔을까.


그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어디로?



어디로 갈 수 있지?



자신에게는 더 이상 갈 수 있는 곳이 없다.




아.



그렇다면, 



어쩌면…




























[시리즈] 등대지기 재단
· 등대지기 재단 시리즈 링크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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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닉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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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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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ㅁㄷㅊ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기다렸다면ㅈㅅ바빠서 늦음...현실이 괴담이라 낲괴에 의욕이 저하되긴했는데 다음편은 이거보단 빨리옴
    길다고 좋은게 아닌데 오랜만에 쓰니 늘어지네ㅜㅜ읽어줘서 고맙다

    2024.12.14 23:27:52
  • ㅇㅇ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넘 무서워

    2024.12.15 13:12:01
  • ㅇㅇ(211.246)

    이번것도 겁나 재밌었다 잘보고감

    2024.12.15 13:57:23
  • 빵똥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크아아아아아 등대지기가 돌아왔다!!!!! 포기 안 하고 존버하고 있었는데! - dc App

    2024.12.15 22:26:17
  • 빵똥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바다니까 용왕이랑 관련있으려나? 태웅이 사람인줄 알았는데 아닌갑네 - dc App

    2024.12.15 22:28:24
  • ㅇㅇ(203.251)

    개쩌노 - dc App

    2024.12.16 01:05:15
  • ㅇㅇ(112.175)

    ㅠㅠㅠㅠㅠㅠ등대지기 돌아왔구나

    2024.12.16 10:05:40
  • ㅇㅇ(112.175)

    옛날에 영등할망이 제주 어부의 배가 폭풍우로 인해 외눈박이거인섬으로 가는 것을 구해 주었다. 이 일로 영등할망은 외눈박이거인들에게 죽음을 당하고 온몸이 찢긴다. 그리하여 머리는 소섬에, 사지는 한수리에, 몸통은 성산까지 밀려오게 되어서, 그때부터 영등할망을 신으로 모시며 굿을 해주었다고 한다

    영등할망은 영등달인 음력 2월 1일에 한림읍 귀덕리로 입도하여 2월 15일 우도를 통해 제주를 떠난다. 제주에 머무는 동안 섬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소라와 전복·미역 등 해산물을 증식시켜 주며, 어로 일반까지 보호해 준다고 하여 해녀와 어부들이 중심이 되어 영등굿을 치른다.
    영등 기간이 끝나갈 때쯤 비가 오기도 하는데, 이를 영등할망의 눈물이라고 하고, 이 무렵에 부는 모질고 차가운 바람을 영등바람이라고 한다.

    2024.12.16 10:25:38
  • 매일머리통깨기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짜고 시리고 축축하고 어두컴컴하고 무섭다

    2024.12.16 20:36:16
  • ㅇㅇ(218.51)

    진짜 말도 안되게 맛있네

    2024.12.16 23:41:35
  • ㅇㅇ(211.198)

    러브크래프트 소설중에 비슷한 거 읽어본 것 같은데
    재밌구만ㅋㅋㅋ

    2024.12.20 23:01:09
  • 생돌콩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와 너무 재미있다. 진짜 상업소설보다 더 재미있음 - dc App

    01.15 23:09:12
  • ㅇㅇ(211.36)

    설마 태웅이가 이사장인가
    교류학습 사건=설희고등학교인건 확정이고
    설희고등학교에 이사장 방문 의사가 있었는데
    그럼 "방문"이라는게 뭐지..? - dc App

    04.06 16:52:54
  • ㅇㅇ(118.223)

    너무 재밌다

    06.22 00:56: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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