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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괴담] 살아남고 싶으십니까?앱에서 작성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3.12.19 13:49:49
조회 7464 추천 105 댓글 13
														


눈을 뜨셨습니까?

분명 혼란스러우실 겁니다. 그러실 수 밖에요.

주변에는 희부연 안개가 내려앉은 돌투성이 황무지가 펼쳐져 있고, 생명의 징후란 이파리 하나 없이 앙상한 자작나무들과 바위에 붙은 축축한 이끼 뿐, 그것도 모자라 음울한 회색 그림자들이 정처없이 숲 사이를 떠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도움을 받으신다면 이 이상한 세계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귀를 열어두시고 제 말씀을 경청하십시오.




1. 부드러운 웅얼거림이 귓가에 들려올 때가 있습니다.
뒤를 돌면 길게 뻗은 손이나 입을 벌린 얼굴을 미묘하게 닮은 형상의 작은 암석들이 표토를 뚫고 솟아나 있을 것입니다.
힘껏 깨부십시오. 차고, 밟고, 짓누르십시오. 허무할 정도로 쉽게 부서질테지만, 그것들의 정체가 무엇일지 생각해본다면 그조차도 부족합니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때까지 잘게 뭉개십시오.
그리하면 웅얼거림은 완전히 멎을겁니다.
그렇게 하기 전까지는 절대 그 자리를 떠나서는 안됩니다.


2. 바위 틈바구니에서 주변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 생기있는 풀꽃이 피어날 때가 있습니다.
만약 그게 흰 백합이라면 반드시 줄기를 분지르십시오. 꽃은 분명 재생과 부활의 상징이나 이곳은 그런 가치가 통하지 않는 세계입니다. 높은 확률로 그것은 외부의 권능이 개입한 결과이고, 그런 권능을 가진 존재에게 있어 당신의 목숨은 그리 중요한 가치가 아닙니다.


3. 뱀이 보인다면, 즉시 머리를 밟아 죽이십시오.
은 미혹의 상징입니다. 간혹 그것이 목숨을 구걸하거나 당신을 어디론가 안내하듯이 행세할 때가 있으나, 영원히 자작나무 숲 속을 헤메고 싶지 않다면 결코 현혹되지 마십시오. 이 세계에서 당신이 닿아야 할 목표는 따로 있습니다.


4. 간혹 주변에 보이는 자작나무 줄기 표면에 껍질을 긁어 새긴 글이 보일 때가 있습니다.
읽지 마십시오. 대부분은 공포에 질린 미치광이의 헛소리이며 지금의 당신에겐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5.앞서 말씀드린 사항들을 지키며 저 멀리 어슴푸레하게 보이는, 거친 돌로 쌓은 투박한 성채를 향해 나아가십시오.
성채의 입구에는 수문장이 있습니다.
수문장에게 당신이 오면서 지킨 수칙들의 증표를 보여주십시오. 부서진 돌이나 꺾은 백합, 죽은 뱀의 시체 따위를 말입니다. 수문장은 자비로운 존재이기에, 증표가 없다면 말로 당신이 한 일을 설명하는 것만으로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증표를 제시하면 더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십시오.

그가 비켜주면 문을 밀고 성채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손가락이 셋 뿐이고 모자를 쓴 노인이 상석에 앉아있을겁니다.
그에게 무릎을 꿇고 예를 표하십시오.
노인은 수초간 그대를 깊이 응시하다가, 검은 맥주가 찰랑이는 황금잔을 건넬 것입니다. 예의있게 받들고, 내용물을 전부 들이키십시오.
맛이 썩 좋은 편은 아니지만 단 한 방울도 남겨서는 안됩니다.
전부 마셨다면 노인에게 잔을 돌려주고 다시 예를 표한 뒤 성채에서 나오십시오. 서두르지 말고 여유있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성채 밖으로 나오셨습니까?
좋아요. 이제 심호흡하고. 눈을 지그시 감으십시오.
그리고 셋을 세세요.




하나.




둘.




셋.




이제 눈을 떠도 좋습니다.
무엇이 보이십니까?


가장 먼저 드는 감정은 의문이실겁니다.
지시를 따랐는데도 여전히 주변의 풍경에는 변함이 없을테니까요. 여전히 똑같은 자작나무와 이끼낀 바위, 회색 그림자들뿐, 일견 당신의 처지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어쩌면 제가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군요.
신들에게 맹세코, 전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살아남았습니다. 단지 본래 세상으로 되돌아가지 못할 뿐입니다.
이 허무하고 쓸쓸한 땅을 정처없이 헤메십시오. 처음 잊어버리는 것은 사소한 것들입니다. 그러나 그 다음은 소중한 것들, 그 다음은 당연한 것들까지...
그러다가 마지막 남은 이름마저 잊어버리면 당신이 깨어날때 보았던 회색 그림자들처럼 변하게 됩니다. 어쩌면 비망록이라도 쓰는게 그런 변화를 늦추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군요. 가능한 지면이라고는 자작나무 껍질이 전부겠지만요.

도무지 인정할 수 없다고요?
그런 결말을 맞느니 스스로 목숨을 끊으시겠다고요?
안타깝게도, 늦으셨습니다.

제가 여지껏 피하라고 조언한 들은 전부 당신이 죽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들이었습니다.

제가 얼마나 노심초사했는지 당신은 짐작도 못할겁니다.
혹시나 당신에게 가족의 염원이 닿는다면, 물러터진 외신(外神)이 구원을 베푼다면, 형상을 바꾼 영웅이 호의를 보인다면, 앞서 도착한 이들의 기록이 미래를 일러준다면 어떻게 될지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어느 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군요.
당신이 스스로의 손으로 영원히 묶여버렸으니까요.


- dc official A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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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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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블루워터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마지막에 기만하는 이런 전개 맛있다

    2023.12.19 13:56:00
  • 괴라는나물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감정이입해서 읽었다..... 개추

    2023.12.20 11:12:27
  • ㅇㅇ(220.88)

    tts와 사진영상 입혀서 유튜브에 업로드해도 될까요?
    설명란과 영상 끝부분에 원작자와 링크 첨부하겠습니다 !

    2023.12.20 17:49:52
    • ㅇㅇ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맘대로 - dc App

      2023.12.20 20:39:55
    • ㅇㅇ(220.88)

      감사합니다 ~

      2023.12.20 21:51:55
    • ㅇㅇ(39.125)

      미스테리 북?!

      2024.02.02 00:27:16
  • ㅇㅇ(175.123)

    파괴 안하고 그냥 냅두면 어떻게 됨?

    2023.12.21 22:02:46
    • ㅇㅇ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살아서 돌아갈 수도 있고, 그림자가 되지 않고 편하게 죽을 수도 있고, 뭐가 되었던 부수는 것보다는 나은 결말 - dc App

      2023.12.21 23:18:00
  • Sollux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진짜 재밌게 읽었다 개추

    2023.12.22 12:27:23
  • ㅇㅇ(39.125)

    근디 여기서 外神이 어떤 신을 말하는거임?
    그 세계 신은 ㄴㄱ임?

    2024.02.02 00:29:05
    • ㅇㅇ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괴담 내용 전반은 핀란드 신화의 지옥인 투오넬라에서 따온 것. 외신은 기독교의 신

      2024.02.02 23:24:20
  • 응애(1.249)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혹시 글을 캎에다가 올려도 될까요?
    출처는 글 마지막에 적겠습니다

    2024.09.17 17:46:16
    • ㅇㅇ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맘대로 - dc App

      2024.09.22 20:5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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