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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장르 중 하나인 나폴리탄 괴담에 대해 다루는 갤러리입니다.
흰개(dcwhitedog)
블루워터(bluewate…) Rosefield_0313(subject0…) ㅇㅇ(clean738…) winter567(soccer28…) 이혁영(injury21…)
2021-03-02
괴담 장르 중 하나인 나폴리탄 괴담에 대해 다루는 갤러리입니다.
흰개(dcwhitedog)
블루워터(bluewate…) Rosefield_0313(subject0…) ㅇㅇ(clean738…) winter567(soccer28…) 이혁영(injury21…)
2021-03-02
"악귀는 사람을 홀린다."
"그러니 더는 귀신의 목소리를 쫓지 말아라. 네 팔자상 필시 큰 업보를 지게 될 테니까."
내가 무당한테 들었던 말이었다. 저 때 귀신의 목소리 듣는 법을 알려달라고 했었나.
정작 내가 저 말을 꺼내게 된 계기도 저 말을 했던 무당 때문이었다.
나는 귀신을 믿는다.
내가 살던 동네에는 아주 용한 무당이 있었는데 그녀가 사람들의 크고 작은 대소사를 거의 다 맞췄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두가 나와 같았던 건 아니다.
정말로, 귀신을 안 믿는 사람은 정말 죽었다 깨어나도 믿지를 않는다.
그들에게는 내가 존경하던 그 무당조차 사기꾼에 불과했다.
나는 귀신의 실체를 찾아내어 그녀를 비웃는 사람들에게 그녀가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귀신을 믿고 증명하려는 물리학자는 그렇게 탄생하였다. 뭐, 아직은 평범한 대학생일 뿐이지만.
"선우ㅡ! 여기야ㅡ!"
그리고, 지금 내 눈앞에서 나와 비슷한 또 한 명의 괴짜가 손을 흔들고 있다.
케일은 내 미국 유학시절 친구로, 학창 시절 우린 서로 유일한 친구임과 동시에 인생에 있어서 커다란 공통 주제를 가지고 있었다.
그건 바로 귀신을 진심으로 믿으며 찾으려 했다는 거였고, 조금 달랐던 점은 그는 암흑물질, 암흑에너지를 증명하기 위한 목적으로 그랬다는 것이다.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 싶겠지만 그의 생각은 이랬다.
"있잖아, 인류가 암흑물질, 암흑에너지를 찾아낼 수 없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아직 기술이 부족해서? 아니면 애초부터 우리가 절대 찾을 수 없도록 설계되어서?"
"나는 그렇게 생각해. 접근 방식 자체가 잘못된 거라고."
"넌 그것들과 가장 유사한 게 뭐라고 생각해?"
존재는 하는데 영향은 끼친다. 실존은 하지만 어떠한 방법으로도 관측할 수 없다. 그것이 직접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케일은 귀신의 성질이 암흑물질 또는 암흑에너지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여튼, 그런 그가 여름 방학을 맞아 한국에 오게 된 건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하나는 내 부모님을 만나 뵌 뒤 한국의 심령 스팟을 체험해 보기 위해서였고, 다른 하나는 금성에서 온 돌멩이를 보기 위해서였다.
우린 함께 내가 어릴 적 살았던 동네로 향했다.
낡은 양철 문과 부적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콘크리트 담장이 보였다. 앞서 말한 동네에서 가장 용한 무당이 사는 집이었다.
이 집은 굳이 간판 같은 걸 내걸 필요도 없었다. 점괘가 워낙 확실하다 보니 사람들은 입소문을 타고 끊임없이 찾아왔으니까.
그곳의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 그를 향해 말했다.
"케일, 통역기는 꺼둬. 그녀는 억양이 거세고 사투리를 사용해서 제대로 번역되지 않을 거야. 내가 대신 통역해 줄게."
그 후, 익숙하게 안으로 들어서며 소리쳤다.
"엄마ㅡ! 다녀왔어ㅡ!"
그 용하다는 무당은 내 엄마였다. 그녀는 커다란 점상을 앞에 두고 방석 위에 걸터앉아 나를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엄마! 얘가 내가 데려온다던 친구! 이쪽이 우리 엄마야, 인사해 케일"
나는 손바닥을 펴 둘을 번갈아 가리키며 서로에게 소개해 줬다.
"안여하세요. 반갑씀니다."
케일은 배꼽에 손을 얹고 허리를 숙이며 그가 아는 몇 안 되는 한국어 단어를 이용해 공손히 인사했다.
"친구를 데려온다더니 웬 양놈 새끼를 끼고 들어왔어?"
그런 그가 알아들었다면 무안해질 정도로 엄마는 내게 쏘아붙이며 말했다.
사실, 우리 엄마는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
"선우, 너희 부모님이 뭐라고 하신거야?"
"자기도 널 만나서 반갑대."
엄마가 나쁜 사람은 아니었지만, 직업 특성 때문인지 말이 항상 거칠었다.
거짓말까지 해가며 케일의 통역기를 끄게 한 것도 엄마의 거친 말투에 혹여라도 그가 상처받을까 봐 한 내 나름의 배려였다.
"아, 외국인이라고 내가 말 안 했나? 아무튼-! 얘 점 한 번만 봐줘. 얘가 요즘 하는 일이 있는데 잘 안 풀리고 있거든."
아무 말 없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엄마에게 한 번 더 큰 목소리로 졸랐다.
"먼 데서 왔잖아! 신기한 경험 시켜주면 좋잖아!"
"너한텐 점이 무슨 관광상품이니?"
엄마는 헛웃음을 지으며 손가락으로 점상 위를 두 번 두들겼다. 복채를 내라는 뜻이었다.
"아ㅡ! 무슨 부모 자식 간에 돈을 받아?!"
이건 부모로서 받는 돈이 아닌 신령님께 드리는 성의라는 말에, 나는 볼에 바람을 한가득 채워 넣어 빵빵하게 만들고는 5만원짜리 두 장을 내밀었다.
엄마는 아무것도 캐묻지 않은 채, 눈을 슬며시 감고는 점상 위에 놓인 방울과 부채를 들어 올려 흔들기 시작했다. 신점이었다.
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흔히 사주팔자랑 엮어서 보는 건 역술점이고, 신점은 별도의 정보 없이도 신령과의 소통을 통해서 모든 것을 알아낸다.
하도 봐서 익숙한 나와는 달리 케일은 그 광경을 신기한 듯 쳐다봤다.
엄마는 한동안 방울과 부채를 흔들며 혼잣말로 떠들어대다가 갑자기 뚝 멈춘 후 눈을 부릅 뜨더니 우리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이 녀석 잠시 밖으로 내보내."
나는 주먹을 꽉 쥔 채로 마른침을 삼켰다. 어지간해선 당사자를 밖으로 내보내는 경우가 없는데, 대체 얼마나 안 좋게 나왔길래 저러지?
케일을 밖으로 내보낸 뒤 물었다.
"왜, 무슨 일이라도 생겨? 큰 사고라도 당해?"
"너, 더 이상 저놈이랑은 엮이지도 마라."
갑자기 뭔 소리람, 이유부터 좀 알려주던가.
"왜? 아니, 진짜, 점 본 내용부터 말해줘야 내가 납득이든 뭐든 할 거 아니야."
"저놈 때문에 먼 훗날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될 거다."
이 아줌마가 드디어 노망이 들었나, 아니면 이젠 신빨이 다 떨어진 건가?
도저히 내가 받아들일 수 없던 그 말에 재차 되물었다.
"그러니까, 방금 걔가 사람을 많이 죽이게 된다고? 뭐 연쇄살인마 그런 거처럼?"
"연쇄 살인마 따위가 아니다. 저건 재앙 그 자체다. 나는 살면서 저런 점괘를 본 적이 없다. 저놈은 훗날 셀 수조차 없을 정도로 많은 생명을 불구덩이 속에 밀어 넣게 될 거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절대 가까이하지 마라."
말이 안 된다. 케일은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일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남자 치고는 매우 체격이 왜소했다. 나보다도 키가 작았고 그 때문에 걸핏하면 괴롭힘당하기 일쑤였다.
그렇다고 호전성이라도 가지고 있냐면, 그런 건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개미 새끼 한 마리 조차 죽이길 주저하는 성격이다.
그가 가진 육체적, 정신적 조건 중 무엇 하나 사람을 죽인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가 없단 말이다.
"엄마의 점이 틀렸을 수도 있잖아. 항상 맞았던 것도 아니고."
"점이란 그 사람에게 일어날 가장 가능성 높은 미래를 보는 거다. 네 말대로 무조건 맞는 경우는 없지만, 가장 확률이 높은 셈이다."
진짜 미치겠네, 저건 누가 봐도 케일에게 가장 가능성 낮은 이야기인데.
"아니, 엄마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쟤는 그럴만한 애가 아니야. 쟨 그냥 평범한 물리학자고 암흑물질이랑 암흑에너지 밖에 관심이 없다고. 이건 분명 뭔가 잘못된 거라니까?!"
"얘는, 야! 내가 그렇게 본 게 아니라 신령님이 그렇다는데 그걸 왜 나한테 지랄하니?! 그리고 방금 그 새끼가 뭐라고 그리도 감싸고돌아? 뭐 애인이라도 돼?!"
"아니, 애인이 아니고 쟤는 학교 다닐 때 내가 많이 의지했던 친구인데ㅡ"
그 새끼가 네 애인이라도 되냐는 엄마의 추궁에 하나하나 반박하다가 그만 내가 오컬트에 심취했던 것과 귀신의 목소리를 쫓았던 것까지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고 말았다.
결국 저 양놈 새끼랑은 죽어도 엮이지 말라는 말과 그렇게 부모 말 무시하고 네 맘대로 살 거면 이 집에서 꺼지라는 말을 동시에 듣고는 쫓겨나듯 밖으로 나왔다.
"선우, 부모님이 뭐라셔? 내가 다시 들어가 봐야 해?"
"네 운세가 좋게 나왔데. 조만간 네 꿈을 이룰지도 몰라. 오늘은 바빠서 인사는 안 받아도 되니 먼저 가보라고 했어."
웃는 얼굴로 그에게 거짓말을 했다. 사실대로는 말 못 한다. 죽어도 말 못 한다. 이번 건 엄마가 틀린 거다.
"그러니 어서 다음 일정으로 넘어가자. 전시관부터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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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착잡하다. 내가 가장 믿고 있던 사람의 입에서 가장 믿을 수 없는 말이 튀어나왔다. 저딴 걸 들으려고 케일을 데리고 집에 들렀던 게 아니다.
내가 뭐 대단한 걸 바랐던 것도 아니다. 좋은 점괘까지는 아니라도 평범한, 아니, 솔직히 어느 정도 나쁜 운세까지도 각오하고 있었다.
케일의 꿈과 목적은 단순했다. 그는 그저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를 밝혀낸 최초의 학자가 되고 싶을 뿐이다.
우리의 앞에 놓인 금성에서 최초로 채굴해온 저 돌멩이처럼 무언가의 첫 시작을 끊는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가치가 있으니까.
그런 그가 셀 수조차 없는 사람을 죽이는 대량 학살자가 된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엄마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그녀의 점괘를 신뢰하지만 이번만큼은 틀린 게 분명하다.
정작 내 앞에 돌멩이는 안중에도 없이 한참을 엄마가 했던 말에 대해 생각하던 그때 무언가가 귓가로 후벼파고 들어왔다.
"아ㅡ, 아ㅡ"
갑자기 전시관 안쪽에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ㅡ, 아ㅡ, 거기 당신ㅡ"
주변을 둘러봤지만 누구도 입을 열고 있지 않았다. 누가 내는 소리지?
"아ㅡ, 거기 당신. 제 말이 들리십니까?"
날 말하는 건가?
내 옆에 있던 여자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저기, 혹시 저... 부르셨어요?"
"네? 아니요."
그녀는 나를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씁... 쪽팔리게... 대체 뭐지?
남들은 아무 소리도 못 듣는 거 같아 보이는데...
"왜 그래? 선우, 무슨 일 있어? "
"케일, 누군가 부르는 소리 못 들었어? 아ㅡ 아ㅡ 거리는 소리라든지."
"아니? 전혀"
나랑 함께 있던 케일도 방금 그 소리를 못 들었다고 한다.
뭐지? 내가 헛것이라도 듣는 건가?
"아닙니다. 그쪽이 아닙니다. 이쪽입니다. 이쪽. 당신이 원래 보고 있던 곳"
내가 원래 보고 있던 곳? 저 돌멩이 말인가?
"맞습니다. 바로 그 방향입니다. 역시! 당신은 제 말이 들리시나 봅니다."
"뭐...?"
그러니깐, 지금 저 돌이 나한테 말을 걸고 있다는 건가?
기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이가 없었다.
여태껏 그 수많은 심령 스팟이며 강령술 시도는 죄다 실패했는데, 고작 이런 전시관 안에서 심령현상을 겪고 있다는 것인가?
"저기, 너 나한테 말한 게 맞아?"
순간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나한테 쏠렸다.
"맞습니다. 당신에게 한 이야기가 맞습니다. 이제야 대화가 가능합니다. 오ㅡ"
하아... 왜 하필 이곳에서? 전시관 안은 사람들 시선 때문에 제대로 된 이야기를 나눌 수가 없다. 돌을 앞에 두고 혼잣말을 주절주절 씨불였다간 미친 사람으로 볼게 분명하니까.
그렇다고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도 않았다. 그동안 얼마나 간절히 찾아다녔던 심령현상인데 여기서 물러서면 또 언제 기회가 찾아올지 모른다.
그러고 보니 엄마는 눈을 감은 채 아무 말 안 하고도 신령님과 대화를 했던 적이 있었다. 만약 저게 귀신이라면 나도 가능하지 않을까? 한번 시도는 해 봐야겠다.
그 돌에게 말을 건다는 생각으로 차분히 마음속으로 소리 내어 보았다.
ㅡ저기, 이렇게 말해도 들려?
"아ㅡ, 들립니다. 너무나도 잘 들립니다."
"선우, 무슨 문제라도 있어? 갑자기 혼잣말하다가 또 멍 때리고"
ㅡ잠깐만, 잠깐만 기다려줘.
돌멩이에 집중하던 와중 날 걱정하며 그가 물어왔다. 당장 이걸 케일한테 전부 설명해 주기엔 주변에 사람도 너무 많고 시간도 부족할 것 같다.
"케일, 미안한데 나 오늘은 여기 계속 있어야 될 거 같아."
"뭐? 그러면 우리가 함께 하기로 한 일정은?"
"정말 미안! 이번엔 너 혼자서 가줘! 왜 그런지는 나중에 내가 다 설명할게. 지금은 꼭 여기 있어야 해."
나는 두 손뼉을 모으며 고개 숙여 케일에게 부탁했다. 그는 살짝 서운한 기색을 내비쳤지만 다행히도 이해하고 넘어가 줬다.
"알겠어, 뭔가 이유가 있는 거 같은데 어쩔 수 없지... 다 끝나면 전화해 줘."
케일을 먼저 보낸 후, 나는 다시 그 돌멩이를 바라봤다.
ㅡ이제 됐어. 기다려줘서 고마워.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동안의 기다림에 비하면 그다지 길지도 않았습니다."
귀신과의 첫 조우는 내가 예상했던 만남하고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야 우리 엄마는 신령님이라 부르던 그것을 꽤나 깍듯이 떠받들어 모셨으니까.
나 역시 약간은 고개 숙일 생각이 있었건만, 이 돌멩이 귀신은 너무나도 공손했다.
ㅡ너는 그 돌멩이 안에 있는 거야?
"그렇습니다. 저희는 이 안에 있습니다."
ㅡ왜 나만 네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당신에게서만 어떠한 기운 같은 게 보였습니다. 왜 인지는 저희도 모릅니다."
속으로 예스를 외치며 신이 나서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갑자기 신통력이라도 생긴 것일까? 뭐가 됐던 내가 꿈에도 바라던 일이 현실화된 것이다!
"궁금한 게 너무 많습니다. 질문 좀 해도 되겠습니까?"
ㅡ좋아, 한번 해봐.
"이곳은 어디입니까? 당신들은 누구입니까? 당신들은 처음 보는 종입니다. 우린 이렇게 생긴 종을 본 적이 없습니다."
이건 또 뭔 소리람?
ㅡ사람을 처음 봐? 너희는 인간이 아니야?
"저희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신들과는 달랐습니다. 이곳은 어느 행성입니까?"
ㅡ여긴 지구야. 너희는 금성인이야?
"지구! 그리운 이름입니다! 저희는 금성인이 아닙니다. 저희는 지구에 살았습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입니까? 지구는 열기가 식고 다시금 생명이 태동하기 시작한 것입니까?"
"아마 그렇다면 당신들은 우리의 후손일 겁니다. 비록 유전자는 이어져 있지 않아도 말입니다. 기쁜 일입니다. 정말 기쁜 일입니다."
이 돌멩이 귀신이 내게 무슨 말을 하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다.
ㅡ나 지금 네 말이 하나도 이해가 안 가서 그런데 뭐 좀 물어볼게.
"네"
ㅡ너는 이곳에 오기 전에, 그러니까 죽은 시점에서 그 돌멩이에 깃든 거야?
"그렇습니다."
당황스럽다. 저 말인즉슨, 저 돌멩이 안에 있는 귀신은 인간이 아닌 금성인이라는 소리다.
난 기껏해야 전시관 안에 있던 귀신이라 생각했는데.
ㅡ아오-! 그럼 너희가 살던 행성은 금성이 맞잖아! 우린 우주선으로 이 돌을 금성에서 지구로 옮겨온 거라고.
ㅡ왜 지구가 너희 행성인 것처럼 말한 거야? 사람 헷갈리게.
"금성, 금성... 아닙니다. 우리가 살던 곳은 금성이 아닙니다. 금성은 네 번째 행성입니다. 우린 지구에서 살았습니다."
ㅡ무슨 소리야. 지구는 여기인걸? 그리고 네 번째 행성은 설마 화성 말하는 거야?
"금성... 당신들이 금성이라 부르는 행성은 몇 번째 행성입니까?"
ㅡ금성은 두 번째 행성이지.
"그렇다면 이곳은 태양으로부터 몇 번째 행성입니까? 저희는 첫 행성을 화성이라 불렀습니다. 태양으로부터 너무나도 가까워서 열기가 가득했던, 불과 같던 그 행성을 화성이라 불렀습니다."
"두 번째 행성을 지구라고 불렀습니다. 태양계에서 유일하게 생명이 존재하던 낙원을, 우리가 땅을 밟고 살아가던 그곳을 지구라고 불렀습니다.'
"세 번째에 있던 행성 표면에 물이 가득한 행성을 수성이라 불렀습니다. 네 번째에 있던 차갑게 얼어붙은 작은 행성을 금성이라 불렀습니다."
ㅡ일단, 우리가 있는 이곳은 너희가 수성이라 부르던 행성이야.
참 웃기는 일이다. 대화는 잘만 나누면서 단어의 의미는 또 달랐다는 건가?
"그렇습니까. 역시 뭔가 이상하다 싶었습니다. 저희의 지구... 아니 금성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직도 뜨겁습니까?"
ㅡ적어도 수백도 이상? 불 지옥처럼 뜨거워서 아무것도 살지 못하고 있어.
"아쉽습니다. 그래도 기쁘고 반갑습니다. 어쨌든 우린 같은 태양계 안에서 태어난 생명 아닙니까."
생각해 보니 뭔가 이상한데, 이 녀석 진짜 외계인 귀신 맞아?
ㅡ잠깐, 나 너한테 궁금한 게 생겼어. 물어봐도 돼?
"물론입니다. 아는 선에서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ㅡ우린 어떻게 대화를 하는 거야? 서로 언어가 다를 텐데.
아니, 이건 단순히 언어가 다른 수준을 넘어섰잖아. 외계인인데.
"언어가 무엇입니까?"
ㅡ무슨 뜻이야?
"언어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ㅡ그야... 문자를 음성화한 것?
"사상과 감정, 의미를 나타내고 의사소통하기 위한 음성, 문자 따위의 수단. 아닙니까?"
ㅡ음... 맞는 거 같네.
"음성과 문자로부터 우리의 사상과 감정, 의미가 피어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성체가 가진 사상과 감정,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낸 한 가지 수단에 불과합니다."
"당신과 저는 사상과 감정, 의미의 영역에서 대화하고 있습니다. 언어의 제약은 받지 않습니다."
듣고 보니 또 일리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근데 그러면 내가 금성이라 말했을 때 척하면 척하고 알아들었어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묻고 싶었지만 질문이 너무 길어질까 봐 참았다.
ㅡ아무튼 참 놀랍다. 너도 영혼이 있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ㅡ그러니까 내 말은, 넌 우리랑 같은 인간이 아니잖아?
"..."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방금 당신이 한 발언은 너무나도 오만한 생각입니다."
ㅡ뭐?
"저희도 당신들과 같이 지성을 지닌 생명체였습니다. 어째서 당신들만이 영혼을 가진다 생각합니까."
대답을 듣고 나서 순간 아차 싶었다. 녀석과의 대화에 심취한 나머지 뇌에서 필터링을 거치지 않고 말이 튀어나와 버렸다.
ㅡ혹시 내가 한 말에 기분 나빴다면 미안. 그럴 의도는 아니었어.
"괜찮습니다. 저희 또한 저희만이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존재라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다리가 살짝 저려오자 눈을 돌려 시계를 확인했다.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시간이 여의치 않았다.
ㅡ너랑 정신없이 이야기하냐고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난 거 같아. 우리 내일 다시 이야기할 수 있을까?
"물론입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
.
.
.
어젯밤, 집으로 돌아간 나는 케일에게 있었던 일을 전부 이야기했다.
그는 자신은 그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면서도 내 말은 믿어주고 진심으로 축하와 기쁨을 전해줬다.
여하튼, 케일한테는 미안하지만 앞으로 3일간은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저 돌멩이랑만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어쩔 수 없었다. 시간이 넉넉했다면 몰라도 3일 뒤면 저 돌멩이는 프랑스로 가게 될 테니까, 정말 다행히도 케일은 또 한 번 나를 이해해 줬다.
대신에 그에게는 꼭 내가 돌한테서 알아낸 모든 것을 알려주기로 약속했다.
ㅡ안녕, 어제 말한 대로 다시 왔어. 물어볼 것도 대충 정리해서 왔고.
"반갑습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뭐부터 물어볼까...
ㅡQ1. 어제 말한 영혼과 지성체가 대화하는 방법이라던가, 그런 건 어떻게 아는 거야?
"이 상태가 되자마자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 몇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중 하나입니다."
ㅡ그건 원리가 뭐야?
"자세한 원리는 저희도 모릅니다.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죽어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존재합니다."
이건 뭐 더 말해봤자 대화가 진전되지 않을 것 같네, 패스
ㅡQ2. 너는 호칭을 저희라고 하던데, 그 안에 들어있는 건 혼자가 아닌 거야?
"물론입니다. 이 안에 한 1만 명쯤 들어있는 것 같습니다."
스스로를 복수형으로 지칭하길래 설마설마 했는데 내 생각이 맞았다.
ㅡ엄청 많네... 그럼 앞으로는 복수형으로 불러야 하나?
"아무렇게나 편하게 부르셔도 상관없습니다."
ㅡ오케이, 그럼 Q3. 너는 나쁜 영혼이야? 착한 영혼이야?
"잘 모르겠습니다. 저희 중에 착한 사람도 있었고 나쁜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긴, 1만 명이나 있으니 뒤죽박죽이긴 하겠다.
ㅡ너 스스로 너를 생각할 때, 어느 쪽이 더 많은 것 같아?
"전체적으로 볼 때 착한 사람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나쁜 영혼은 아닌 것 같습니다."
ㅡ나도 네가 악귀는 아니라고 생각해, 다음 질문 Q4. 너는 몇 살이야?
"질문을 이해 못 하겠습니다. 저희 한 명 한 명의 나이를 묻는 것입니까?"
아, 이렇게 물으면 당연히 이해 못 하려나?
ㅡ그러니까 내 말은, 네가 죽은 시점으로부터 얼마나 지났는지를 알고 싶어.
"당신의 문명은 현재 우주의 나이가 몇인지 관측할 수 있습니까?"
ㅡ물론, 138억 년
"... 불가능합니다. 138억 년은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이곳은 미래가 아닌 과거가 됩니다."
이건 또 뭐라는 거지, 대충 짐작 가는 바는 있지만.
ㅡ그... 이번에도 1년의 기준이 서로 다른 거 아니야?
"1년의 기준이 무엇입니까. 저희는 저희 행성이 태양을 한번 공전하는 것을 기준으로 하였습니다."
ㅡ마찬가지야. 우리도 똑같아.
"이해했습니다. 수성, 아니 지구의 공전 주기를 기준으로 하면 138억 년이라는 시간이 어느 정도인지 대충 계산됩니다."
"저희는 우주의 나이가 약 160억 년 정도일 때 멸망당해 죽었습니다. 당신들의 시간으로 하면 약 98.5억 년쯤 될 것입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훨씬 더 오래됐다. 그 시점이면 지구는 유기체조차도 없던 시절인데 금성에는 이미 문명이 존재했었다는 건가?
약 39.5억 년이라는 나이는 너무 커서 잘 와닿지조차 않았다. 녀석은 조상님이라 부르기에도 아득히 먼 거리에 있었다.
그리고 멸망이라니, 현재 금성에는 생명체가 살고 있지 않으니 예상했던 바이지만, 그걸 겪은 당사자였단 말인가? 게다가 멸망당했다는 말은 무언가에 의해서란 소리인데 대체 뭐에?
질문 하나 던졌을 뿐인데 물어봐야 할게 두 개가 더 생겨나왔다. 복잡한 문제를 풀기 위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무언가를 계속 알아내야 하는 격이었다.
본능적으로 대화가 옆으로 새려는 낌새를 느꼈다. 당장 생겨난 궁금증은 나중으로 미루고 원래 주제로 되돌아가야 한다.
ㅡ너, 생각보다 나이가 너무 많은데 지금이라도 내가 존댓말 써야 할까?
"괜찮습니다. 저희도 이게 더 익숙합니다."
ㅡ알겠어, Q5. 혹시 너도 미래를 내다볼 수 있어?
"대략적으로 가능합니다."
ㅡ대략적으로? 어떤 의미야?
"완전히 확정된 미래를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한 결괏값이 나오게 되는 원인과 과정 또한 알 수가 없습니다."
"단지, 대상에게 일어날 가장 가능성 높은 무언가만 확인할 수 있습니다."
ㅡ틀릴 수도 있다는 거네?
"가능성은 낮지만 그렇습니다."
엄마가 그랬었지. 누군가 복권이 당첨되는 것까진 봐도 그 번호까지는 볼 수 없다고.
녀석은 꽤나 비슷한 소리를 했다. 때문에 어느 정도 신뢰가 생겨 마지막 질문은 이걸로 정했다.
ㅡQ6. 그럼 내 미래를 내다봐줘!
엄마는 내가 귀신의 목소리를 쫓으면 큰 업보를 짊어지게 될 것이라 하였지만, 케일의 경우도 그렇고 내 경우도 그렇고 이번만큼은 엄마가 틀렸을 거라 생각한다.
이 귀신이 다른 대답을 내놓으면 엄마의 점괘를 더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이다.
"당신에게서는 두 가지 미래가 보입니다. 하나는 누군가를 죽이고 감옥에 가 있습니다. 그 누군가는 당신과 첫날 함께 왔던 사람입니다."
ㅡ뭐?
내 예상에는 전혀 없던 이야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또 하나의 미래는 그보다는 조금 더 긴 시간이 지난 후의 이야기입니다. 당신은 불길 속에 휩싸여 고통스럽게 죽어가고 있습니다."
"후자는 이곳을 방문한 모든 이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보였던 미래이기도 합니다."
당황스러움을 넘어 순간 아무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ㅡ내가 사람을 왜 죽여? 그리고 첫날 함께 왔던 사람? 케일 말하는 거야?
너무 어이없는 내용 아닌가? 내가 사람을 죽인다고? 그것도 케일을? 난 나를 괴롭혔던 애들조차 죽이는 상상을 해본 적이 없는데?
"추측되는 것은 있습니다."
ㅡ뭔데
"당신이 다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그를 죽이는 것입니다."
이건 또 뭔 소리래.
ㅡ내가 케일을 죽이는 거랑 남들의 목숨을 구하는 거랑 무슨 상관이 있다고?
"저는 첫날 당신과 함께 온 사람의 미래도 보았습니다. 그는 훗날 많은 사람을 불길 속에서 죽게 만듭니다. 세상을 멸망시킬 정도로 말입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저희의 과거와 비슷해 보였습니다."
엄마의 점괘와 똑같은 내용, 심지어 규모까지 더 구체적으로 나왔다.
ㅡ아니, 그게 왜 그렇게 되는 건데? 케일이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을 다 죽게 만드는지, 납득 되게 설명 좀 해봐!
"저희는 저희가 본 것만 말해드렸을 뿐입니다. 말했다시피 결과를 제외한 원인과 과정은 알 방법이 없습니다."
머리를 벅벅 긁으며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두 번이나 같은 내용이 나왔으니 기억을 더듬으며 케일에 대해 뭔가 내가 놓친 부분이 있나 살펴봤다.
없다. 당연히 그런 건 없었다. 생각나는 것도 없고 받아들일 수는 더더욱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었으니까.
ㅡ하... 씨..., 너네 귀신들 전부 머리가 망가진 거 아니야?! 왜 죄다 가능성 없는 이야기만 처하고 있어?!
"기분 나빴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거짓말은 없었습니다."
더 물어보고 싶은 것이 산더미처럼 남아있었지만, 정신없이 대화하다 보니 또 시간이 다 됐다.
ㅡ너, 어디 갈일 없는 건 알지만 딱 기다리고 있어. 내일 다시 와서 질문할 거니까!
집으로 돌아온 나는 밤새 녀석과 한 대화를 곱씹으며 내일 할 질문들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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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릴 적 엄마가 무당이란 이유로 동네에서 왕따를 당했다. 그걸 두고 볼 수만 없었던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나를 미국으로 유학 보냈다.
결과적으로 엄마의 선택은 그다지 현명하지 못했던 것 같다. 여기선 부모가 무당이라서 따돌림당했다면 거기서는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했으니까.
그때 나한테 먼저 다가와 친구가 되어준 게 케일이다. 몇 년 동안 가장 가깝게 알고 지냈던 세상 유일한 친구였기에 확답할 수 있다.
그가 세상을 멸망시킬 가능성은 0%에 수렴한다.
"반갑습니다."
그러나, 이토록 같은 점괘가 반복해서 나오는 것도 무언가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ㅡ바로 본론으로 넘어가도 돼?
"물론입니다."
엄마에게 케일에 대해 쉼 없이 설명해 줬지만 돌아온 대답은 '나는 단지 봤을 뿐이고, 그것만 가지고는 모른다'였다.
아마, 이 녀석도 똑같을 거라 생각한다. 케일에 대한 이야기를 떠들어봤자 시간만 날릴 공산이 크다.
그러니까, 차라리 내가 저들의 과거를 알아봐야겠다. 분명 케일이 인류를 멸망시키는 미래가 자신들의 과거와 비슷해 보였다고 말했으니까.
녀석들이 어떻게 멸망했는지를 알아내면 조금은 실마리가 잡힐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ㅡQ1. 너희는 왜 멸망한 거야? 어제 멸망당했다고 표현한 걸로 보아 무슨 이유가 있어?
"공격당했습니다."
ㅡ공격?
"다른 지성체 문명에게 발각당한 뒤 공격당했습니다."
ㅡ그런데 우리 미래가 너희의 과거랑 비슷하다고?
"그렇습니다. 다만, 저희는 미래의 지극히 일부만을 보았습니다."
"그것이 정말 다른 문명의 침공을 예고하는 것인지, 아니면 커다란 화산 폭발이나 운석 충돌이 일어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ㅡ알겠어. 다시 너희 이야기로 돌아가자. Q2. 너희는 너희가 멸망하던 시점에서 어느 정도 문명 수준을 이뤘어?
"이제 막 원자력 시대에서 벗어나 테라포밍과 항성간 이동이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ㅡ지금 우리보다는 훨씬 더 발전했다는 거네. 우린 아직 원자력 문명이니까.
"아마 그런 것 같습니다."
ㅡ그 정도로 발전한 너희가 속수무책으로 당했을 정도로 녀석들이 강했던 거야?
"아닙니다. 단순히 그들이 강했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ㅡ무슨 소리야? 그놈들이 더 강했으니까 멸망한 거 아니야?
"인지하지 못하였습니다. 우주의 전쟁이 어떤 양상으로 이루어지는지 저희는 전혀 인지하지 못하였습니다."
ㅡ양상?
"당신이 생각하는 우주 전쟁은 무엇입니까?"
ㅡ그야, 우주 전함이나 폭격기를 이끌고 행성을 초토화시키는?
"저희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고 잔인한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ㅡ어떤 식인데?
"가장 먼저 빛이 도착합니다. 그것이 행성 표면에 닿았을 때야 비로소 공격받은 것을 인지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행성 전체를 파괴할 만큼의 에너지가 아닙니다. 행성의 표면만을 뜨겁게 달굴 정도의 에너지입니다."
"이후부터 행성은 스스로 자신이 품어 왔던 모든 유기체를 파괴하기 시작합니다."
"생명들에게 따듯한 온실을 제공해 주던 자기장과 중력은 열기가 우주로 방출되지 못하게 가둬 행성을 뜨거운 불 지옥으로 만듭니다."
"하늘도, 땅도, 물도, 모두 끓습니다. 그 어떤 유기체도 그 뜨거운 열기에 적응해 살 수 있도록 진화할 수 없습니다."
"그 뒤에는 소수의 전함이 옵니다. 그들은 우주에 떠다니는 일부 생존자들과 모든 잔해를 완전하게 소각시킵니다. 그렇게 한 문명은 흔적도 사라집니다."
녀석의 말에 따르면, 우주 규모의 전쟁은 빛을 이용하여 공격한다. 빛이기에, 그것을 관측한 순간 이미 내게 도달한 직후가 된다.
공격받은 것을 인지한 순간부터는 더는 대응할 방법이 없다. 때문에 적을 먼저 발견하고 선제 타격하는 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ㅡQ3. 너희는 왜 공격당한 거야. 공격당한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이유를 모릅니다. 어느 날 빛이 날라왔습니다.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모든 것은 무로 돌아갔습니다."
"추론할 뿐입니다. 가게 주인은 경쟁자를 원치 않습니다. 기득권은 도전자를 원치 않습니다."
"선두주자는 후발주자를 짓밟습니다. 경쟁자가 되기 전, 도전자가 되기 전 싹을 자릅니다."
그들이 갑작스럽게 타 문명에게 공격당한 데에는 마땅한 이유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단지 추론할 뿐이다.
앞서 우주 문명을 이뤄놓은 이들은 새로운 경쟁자를 원치 않으며 잠재적 위협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다른 문명이 발전하기 전에 먼저 공격한다.
대답을 거의 다 들었지만 내 안의 궁금증이 해소되지는 않았다.
들은 내용 전부, 케일이 세상을 멸망시키는 것에 대한 근거가 되지 못하였다.
ㅡQ4. 네 말대로라면 네가 본 미래가 좀 틀린 것 같아. 케일은 그런 쪽 하고는 아예 관련이 없다고.
ㅡ오히려 우리가 위험에 처한다면 전혀 다른 이유 때문일 거야. 전파라던가, 우리 문명은 지금도 외계인을 찾겠다고 우주를 향해 수많은 전파를 쏘아보내고 있거든.
ㅡ우리가 외계 문명에 발각되어 멸망한다면 이것 때문이 아닐까?
"전파는 아마 괜찮을 것입니다."
ㅡ왜? 네 말대로라면 위험한 거 아니야? 놈들이 우리의 신호를 볼 수도 있잖아.
ㅡ내 생각엔 네가 본 미래도, 그 신호를 받은 놈들이 지구를 인지하고 공격하는 시나리오 같은데?
"전파로는 관측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전파 때문에 그들에게 관측당한 것이 아닙니다."
ㅡ그것은 어떻게 알아?
"마찬가지로 추론했습니다. 저희도 수백 년 동안 우주를 향해 전파를 쏘았지만 응답받지 못했습니다."
"생각했습니다. 전파는 너무 많습니다. 초신성, 백색왜성, 중성자 별, 블랙홀, 우주가 만들어내는 거대한 전파에 문명의 전파는 묻힙니다."
ㅡ그럼 너네는 어쩌다가 놈들한테 관측당한 건데?
"예상컨대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 때문입니다."
ㅡ뭐?
"원자력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서 문명은 반드시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를 활용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너무 균등하고 고르게 퍼져있습니다. 한 곳에 집약되어 있지 않습니다."
"서로가 앞다투어 주변에서 닥치는 대로 끌어모읍니다. 거대한 에너지 공동이 생겨납니다."
"그리고 관측 당합니다. 초신성도, 백색왜성도, 중성자 별도, 블랙홀도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를 빨아들이지 않습니다."
"우주 문명에게 있어 그것을 관측하는 것은 매우 쉽습니다. 저희도 가능했습니다."
인류가 원자력 문명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를 활용해야 한다.
그로 인해 먼저 발전한 다른 문명한테 필연적으로 관측당한다. 그 후에 공격받는다.
마지막 답을 듣자마자 단번에 엄마가 봤던 미래, 그리고 녀석이 봤던 미래가 무엇인지 이해가 갔다.
케일이 꿈을 이룬다. 그의 위대한 업적으로 인해 인류는 한 단계 더 진보함과 동시에 다른 문명한테 관측당하고 멸망한다.
내겐 두 가지 미래가 존재한다. 케일을 죽이고 인류의 멸망을 막는 미래와, 방관자가 되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손 놓는 미래.
완벽하게 아귀가 딱 맞아떨어졌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워 더는 대화를 잇지 못하고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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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구석에 쪼그려 앉아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생각했다.
대체 나보고 뭘 어떻게 하라는 걸까. 난 사람 죽이긴커녕 작은 짐승조차도 죽여본 경험이 없다.
이런 내게 갑자기 '저 녀석을 죽이지 않으면 세상이 멸망한다' 한들 '네, 알겠습니다' 하고 죽일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렇다고 세상이 멸망한다는 걸 알면서도 손 놓고 태평하게 살 성격도 못된다.
어쩌면 저것이 진짜 악귀고 나는 그저 홀린 게 아닐까. 하지만 그렇다기엔 엄마의 점괘가 먼저 나왔다.
엄마의 말까지 틀렸다고 부정해야 할까? 그래서는 내가 살아온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밤새도록 고민했지만 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고작 스물한 살짜리 대학생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거대한 운명을 맞닥뜨렸다.
내일 다시 한번 녀석과 이야기를 나눠봐야겠다. 그래야만 내가 무엇을 할지 정할 수 있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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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갑자기 떠나서 걱정했습니다. 많이 당황했습니까."
ㅡ당황했지. 아니, 당황한 정도면 다행이게.
ㅡ하늘에 먹구름이 조금 끼어 있길래 비가 오려나 확인해 보려 했는데, 곧 폭풍우가 몰려와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든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ㅡ게다가 그걸 피하거나 막을 방법은 내 머리로는 도저히 떠올릴 수가 없어. 이런 내 심정을 네가 알긴 하려나?
"조금은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이곳에 다시 오지 않는 것도 생각했습니다."
ㅡ사실, 네 말대로 네가 정말 악한 귀신이고 거짓말로 나를 홀리려는 게 아닐까, 이곳에 발도 들이지 않는 게 맞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봤어.
ㅡ근데, 그건 아닌 거 같아. 엄마의 점괘가 너보다 먼저였으니까.
ㅡ이제 와서 내가 줄곧 믿어왔던 모든 걸 부정해버리면, 나는 그냥 내 입맛에 맞는 이야기밖에 듣지 않겠다는 뜻이니까.
"무슨 뜻인지 잘 이해가 안 됩니다."
ㅡ네가 한 말을 믿겠다는 뜻이야.
"감사합니다."
ㅡ그리고 너한테 할 말이 있어.
나는 녀석에게 그간에 있던 모든 일을 설명해 주었다.
내 친구인 케일의 꿈을, 엄마에게 들었던 점괘를, 그리고 내가 추론한 생각들을.
"저희도 당신의 생각이 맞는 것 같습니다."
ㅡ그래서 고민이야. 내가 대체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아예 감도 안 잡히거든. 오늘 너랑 이야기한 뒤 결정하려고.
"어떤 이야기를 원하십니까."
ㅡ폭풍우를 막거나 피할 방법을 알아내고 싶어. 멸망을 막을 방법을, 내가 묻는 말에 자세히 대답해 줬으면 좋겠어.
"알겠습니다.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아는 한 전부."
ㅡQ1. 너는 분명 가장 가능성 높은 미래라고 말했어. 네가 본 미래는 절대적인 게 아닌 거지?
"그렇습니다."
ㅡ그렇다면 네가 본 미래 말고도 다른 미래도 존재한다는 거네? 가령, 케일이 꿈을 이뤄도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 미래도.
"가능성은 낮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존재합니다."
내 예상대로, 비록 확률은 낮아도 케일을 죽이거나 모든 것을 손 놓고 방관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존재한다.
ㅡQ2. 네가 멸망한 시점으로부터 시간이 상당히 지났어. 수십억 년이란 시간은 말도 안 되게 긴 시간이야.
ㅡ너희를 멸망시킨 그들은 우리가 무슨 짓을 해도 피하거나 이기지 못할 정도로 강성해지지 않았을까?
"가능성이 매우 낮습니다."
ㅡ왜?
"마지막에 우주 전함이 왔다는 말을 기억하십니까. 함선까지 보냈다는 건 그들이 태양계에서 상당히 가까운 거리 내에 존재했었다는 뜻입니다."
"그 긴 세월 동안 꾸준히 번영하고 발전하였다면 지구에도 이미 손이 뻗혀있어야 합니다."
"아마도 멸망하였거나 퇴보하였을 확률이 높습니다."
ㅡQ3. 그럼 우리를 공격하는 건 누구야? 또 다른 지성체 문명?
"그렇습니다."
ㅡ확실해? 모든 우주 문명이 공격적인 건 아닐 거 아니야.
"당신들은 어떤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희는 그랬습니다. 폭력성과 잔인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성이란 다른 종, 다른 개체와의 경쟁 과정에서 발달합니다. 폭력성과 잔인함을 필연적으로 동반합니다. 그것이 연구 결과였습니다."
ㅡ네 말은, 놈들이 아니더라도 우주에 다른 문명이 존재한다면 너희를 멸망시킨 놈들처럼 다른 문명을 멸망시킬 거다?
"그렇습니다. 저희는 같은 종족끼리도 끝없이 경쟁하며 싸웠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갖기 위해, 당신들은 다릅니까?"
ㅡ우리도 똑같은 거 같아. 여전히 세계 어딘가에선 전쟁이 일어나고 있으니까.
"아마도 모든 지성체가 동일할 것입니다. 끝없이 싸우고 빼앗고 정벌하려 드는 것, 그것이 모든 지성체가 속한 굴레입니다."
"벗어난 문명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주 전쟁은 빛으로 싸웁니다. 선공이 유리합니다. 평화주의자가 불리합니다."
문명은 반드시 폭력성을 동반한다.
거기서 벗어난 평화주의적 문명이 존재한다 한들, 선제 타격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우주 전쟁에서 살아남기에는 너무나도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
즉, 이들을 멸망 시킨 우주 문명이 사라졌다 해도, 그 자리를 다른 놈들이 꿰차고 있을 거란 뜻이다.
ㅡ잘 알겠어, Q4.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를 개발하면서 놈들의 눈에 띄지 않을 방법이 있을까?
"통제한다면 가능합니다."
ㅡ통제?
"스스로 발전 속도를 통제한다면 가능합니다. 들키지 않을 정도로 종족 전체를 통제해야 합니다.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당신이 그러한 위치에 있습니까? 혹은 실현시킬 방법이 있습니까?"
ㅡ아니, 난 그냥 평범한 대학생이야. 네가 방금 한 말, 도저히 감도 안 잡혀.
ㅡ통제 없이도 인류 스스로 그것을 조절할 가능성은 아예 없을까?
"당신은 방금 당신의 종족도 전쟁을 치르고 있다 말했습니다. 당신의 종족은 쪼개어져 있습니까? 몇 개로 쪼개어져 있습니까?"
ㅡ나라 숫자를 말하는 거면 거의 이백 개쯤 되는 거 같아.
"가능성이 매우 낮습니다. 그들은 우주 너머에 존재하는 미지의 적 보다 당장 눈앞의 경쟁자를 제치려 들 것입니다. 스스로 절제할 수 없습니다."
ㅡ내가 대화로 세상 사람들을 설득할 순 없을까?
"당신이ㅡ"
ㅡ아니다. 됐어. 방금 건 내가 생각해도 어이없는 질문이었네. 나조차 상상이 안 가는걸.
정치인이 되거나 최소한 업계에서 권위자는 되어야 한다. 현재의 내게는 너무나도 먼 이야기이다.
ㅡQ5. 만약, 그 외에 멸망을 피하거나 막을 방법이 존재할까? 존재한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
"여러 가지가 존재합니다."
"가령, 그가 꿈을 포기하도록 당신이 설득하는 것입니다."
케일이 꿈을 포기한다라, 쉬워 보이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그의 삶의 원동력이자 희망 그 자체였다. 그에게서 꿈을 앗아간다는 것은 나도, 그의 부모님조차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ㅡ그것 외에도 다 말해줘, 당장 네가 떠오르는 게 있다면 전부.
"발전을 포기할 수 없다면 방어 수단을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ㅡ방어수단?
"거울을 만들어야 합니다. 굴절을 만들어야 합니다. 빛의 원리를 생각한다면 만들어낸다는 가정하에 충분히 막을 수 있습니다."
ㅡ그게 생각만큼 쉽게 가능할까?
"그래서 당신의 미래에서 볼 수 없었습니다. 어렵기에, 확률이 낮습니다. 그를 죽이거나 방관하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든 길입니다."
적어도 행성 규모의 거대한 방어막을 필요로 할 것이다. 역시나, 이것도 까마득한 이야기였다.
알고는 있었다. 죄다 어렵고 힘든 길이기에, 그렇기에 내 미래에 보이지 않았던 거겠지.
막상 들어보니 그 거리감이 얼마나 먼 지 체감이 되었다.
ㅡQ6. 어차피 인류가 발전을 계속하는 이상 언젠가는 결국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를 찾아내게 될 거야.
ㅡ내가 케일을 죽인다고 해서 바뀌는 게 있긴 할까?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멸망은 매우 높은 확률로 일어납니다."
"당신이 그를 죽이는 미래에서는 멸망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당장 닥쳐올 재앙은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ㅡ그래, 고마워. 하려던 질문은 이게 끝이야.
ㅡ마지막으로, 네가 조금 불편할지도 모르겠지만 개인적인 거 물어봐도 돼?
"네"
ㅡ너에 대해, 너희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어.
ㅡ왜 이런 중요한 이야기를 미리 하지 않은 거야? 네가 케일의 미래를 보았다면 처음부터 어느 정도는 짐작 가는 게 있었을 거 아니야?
ㅡ내가 묻지 않았다면, 우리가 멸망하건 말건 손 놓고 구경할 생각이었어?
ㅡ나는 네가 우리의 조력자가 되고 싶은 건지, 방관자인지, 아니면 우리가 너희처럼 멸망하기를 바라는지 알고 싶어.
"멸망을 바라지 않습니다. 조력자가 좋습니다. 하지만 이유가 있었습니다. "
"하나는, 확신이 없었습니다. 정말로 저희의 생각이 맞는지 확신이 없었습니다."
"저희의 능력은 전지전능하지 않습니다. 극히 일부만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화산 폭발, 운석 충돌, 혹은 예상치 못한 어떠한 이유로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당신에게서 친구의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확신이 없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그래도 말할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장은 믿지 않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충분히 대화를 나눈 후 이야기를 꺼냈을 것입니다. 단지, 당신이 더 빨랐습니다. 너무 빠르게 다가왔습니다."
"믿지 않을까 우려했습니다. 조금 더, 친해진 뒤 하려 했습니다."
ㅡ그럼, 내가 이야기를 안 꺼냈으면 한참 뒤에 꺼냈을 거란 거네?
"그렇습니다."
녀석의 말에 나는 그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 중요한 이야기를 미리 하지 않았던 것은 '아직 믿지 않을까 봐, 좀 더 친해진 다음에 하고 싶어서'라는 소심한 이유였다.
수십억 년의 삶을 살아온 귀신이라기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대답이었다.
ㅡ이 멍청아, 오늘이 마지막이야. 너랑 내가 이렇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거,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ㅡ내가 먼저 이야기 안 꺼냈으면 어쩔 뻔했어?
"그게 무슨 뜻입니까? 어째서 오늘이 마지막입니까?"
ㅡ너는 내일 파리로 떠나.
"파리는 어디입니까?"
ㅡ이 행성 반대편 쯤 돼. 만나려면 만날 수는 있겠지만, 아마 한참 뒤의 이야기일 거야.
"한참... 저희는 또 억겁의 고독 속에 빠지는 것입니까?"
ㅡ그 정돈 아냐~ 바보야~ 수십억 년의 기다림에 비하면 찰나에 불과할 테니까.
ㅡ그래도, 당분간은 만날 수 없다는 뜻이야.
"알고 있습니다. 농담한 것입니다."
ㅡ너, 농담도 할 줄 알아?
"당연합니다. 모든 지성체는 농담을 할 줄 압니다. 저희도 지성체였습니다."
ㅡ지금 네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궁금한걸.
"웃고 있습니다. 해묵은 이야기를 모두 풀어내어 즐거웠습니다. 당신과 이야기하는 모든 순간 웃고 있었습니다."
ㅡ나도 즐거웠어. 그리고 고마워, 덕분에 뭘 해야 할지 결정했어.
"당신이 내린 선택은 무엇입니까?"
ㅡ궁금해?
"궁금합니다."
나는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한쪽 눈을 감고는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 댔다.
ㅡ비밀이야~
"치사합니다. 저희는 거짓 없이 모든 것을 알려드렸는데, 숨기는 것입니까?"
ㅡ농담이야. 사실 아직은 정하지 못했어.
ㅡ있잖아, 너는 내가 어떤 선택을 하길 원해? 솔직하게.
"저희 말입니까? 역시 당신이 친구를 죽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종족이 살아남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만약, 우리를 멸망시킨 그들이 아직도 우주 어딘가에 존재한다면 당신들이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복수해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ㅡ그래... 그렇게 생각한다 이거지... 넌 내가 케일을 죽이길 바란다는 거지...
녀석을 향해 검지로 아래 눈꺼풀을 잡아당기며 혓바닥을 빼꼼 내밀었다.
ㅡ역시 넌 악귀가 맞아! 평온하던 내 인생에 지독한 고생길을 열어준 악귀!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한순간 모든 것을 잃고 멸망당했는데 어찌 증오와 원망을 품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저희는 악귀가 맞을 것입니다."
나는 웃으며 녀석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럼, 나중에 또 보자."
"기다리겠습니다. 당신이 오는 그날까지, 그리고, 살았으면 합니다. 부디 당신들만이라도 이 가혹한 우주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았으면 합니다."
내가 낸 소리에 주변의 시선이 쏠렸다. 후다닥 전시관을 뛰쳐나왔다.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정말 세상을 구하기 위해 그를 죽여야만 할까.
친구를 죽일 순 없으니 모든 것을 손 놓고 포기한 뒤 방관자가 되어야 할까.
아니면 저 두 가지 방법보다 훨씬 힘들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른 방법을 찾아 나서야 할까.
녀석과 대화를 했고 궁금한 것을 모두 들었지만 결국 나는 내 미래를 결정짓지 못했다.
아직도 모든 것이 막연하게만 느껴진다. 너무나도 거대한 운명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느낌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당장 해야 할 행동은 정해졌다.
케일을 만날 거다.
그리고 이야기할 거다.
설령, 그가 나를 미워하고 싫어하게 된다 하더라도, 내 말을 믿지 않더라도
그 또한 이 커다란 운명에 휩쓸린 당사자기에 모든 것을 알아야만 한다.
그래, 전부 들려줘야만 한다.
내가 들었던 모든 이야기를,
금성에서 온 목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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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영역
나도 내가 뭘 쓴건지 모르겠습니다. SF연습한다고 쓴건데 긴 글 읽고 똥글이면 죄송합니다.
잘보고감
열린 결말로 끝난 게 아쉬울정도로 몰입감높았음
SF에서 중요한 게 과학적 검증이 아니라 설득력이라고 지나가다 들었는데, 주축이 되는 SF 내용이 정말 일어날 미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설득력이 높다고 느낌. 2만자라고 생각 안될정도로 집중해서 재밌게 읽었음..
지식이 많이 돋보이는 좋은 글이었음
솔직히 재밌다
내려도 내려도 끝이 안나네; 잘 읽었으
다들 고맙다 쓰고나서 너무 밝게 끝나서 괴담인가 싶긴 했음 근데 어둡게 끝내자니 너무 억지 공포 강요같아서 그렇게 못했네
재밌는데? 잘 읽었어
고맙다 사실 공포로 끝마무리 지을려 했는데 내 역량 부족인지 그게 안됐고 글자수 까지 뻠핑돼서 올릴까 말까 고민이 많았다...
다음글언제나옴?
그럼에도 인간이 위대한 것은- 역경을 극복하고 포기하지않는 정신이며, 필연적인 실패에도 달려드는 용기 덕분일지니.
인간에 대한 찬가는 멈추지 않으리.
이건 그냥 괴담이 아니라 재밌는 소설이잖어
그렇지만 만족스러웠어 좋아해
호킹 스럽네 ㄷㄷ 들쑤시고다니지 말아야겠다
재밌었음. 괴추
ㅅㅅ
재밌네
삼체같은 설정
존나 재밌네
개맛있다오늘 재밌는거보고잘랬는데 이거덕에잘자겠다
괴담이 아닌데도 홀린듯이 읽었네 발상이 재밌다
안 멈추고 계속 쭉쭉 읽게되네 재밌었다 - dc App
오히려 그 사이에 케일이 암흑에너지를 발견해서 공격받은 그런 엔딩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른가보네
ㄹㅇ 괴담 아닌데도 존나 몰입되어서 봤다
존내재미잇네
재밌는데 너무씹덕같음 그리고 안무서워 근데 재밌긴해
괴담보다는 장르소설에 가깝네
개재밌네 ㅋㅋㅋ
테드창느낌
맛있다
언제 뒤통수치나 기대했는데
빛으로 전쟁한다는게 진짜 난 개인적으로 참신했다 굿굿 넘 재밌게봤다
필력 좋다
단편만화로일본에투고햇으면대상받을수준 - dc App
참신한 설정 밭이네 ㅋㅋㅋ
기립박수
개좋다..
sf 참좋아
레전드. - dc App
꿀잼
만약 금성이 지구를 버린 지구인에 의해 멸망당했다면????
재밌노 - dc App
재밌었다 ㄹㅇ - dc App
개재밌다 글자수따위 알빠노 길 수록 읽을 게 많고 가득해서 좋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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