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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백계, 천경(百界,千景) 전시회는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上)

ㅁㄷㅊ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3.11.04 19:19:22
조회 8817 추천 120 댓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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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합니다!




저는 이번 백계, 천경(百界,千景) 전시회에서 작품의 안내를 맡고 있는 해설 가이드입니다.


기술과 예술이 융합되어 인간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미디어 아트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하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디지털 미디어, 사운드스케이프, 인터랙티브 작업의 매혹적인 융합을 통해 백 개의 경계가 무너지고 천 개의 새로운 지평이 열리는 교차점을 탐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노련한 예술가이시든, 미디어 아트 전시회가 처음이시든 열린 마음과 호기심을 갖고 작품을 감상하신다면 이 여정을 즐기신 뒤 새로운 경이로움을 안고 떠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참, 해당 전시회를 관람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주의사항이 있습니다. 원활한 관람을 위해 제가 말씀드리는 사항을 모두 지켜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첫 번째, 여러분은 그저 수동적인 관람객이 아니라 작품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을 둘러싼 작품과 상호 작용하고 몰입해보세요. 저희 전시회의 작품은 관람객에게 되도록 많은 것을 드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전시회가 진행되는 내부는 전반적으로 어둡습니다. 항상 발 밑을 조심하세요. 뭔가 밟은 느낌이 들었을 때, 정중히 사과하신다면 문제는 없을 겁니다.


그리고 만약 전시장 내부에서 길을 잃으셨다면 저희 직원을 찾아 주세요. 직원들은 모두 검은 후드를 입었으며 흰색 가면을 쓰고 있습니다.


그들은 스태프만 다닐 수 있는 통로를 사용하므로 갑자기 어디선가 튀어나오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도움을 요청하시면 여러분이 가고자 하는 곳으로 직원이 안전하게 데려다 드릴 것입니다.



세 번째, 작품들은 독립된 감상을 위해 통로와 문 등으로 분리되어 있으며, 통로의 끝마다 빛이 새어나오지 않도록 암막 커튼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나오거나 들어가실 때 누군가 여러분을 위해 커튼을 걷어 준다면, 상대방이 잘 보이지 않더라도 매너 있는 태도로 꼭 감사의 말씀을 전해주세요.



네 번째, 전시회에서 하나의 작품도 감상하시지 않고 나가시는 것은 용납되지 않습니다.


이 사항은 최근 초대받지 못한 분들의 난입으로 인해 만들어졌습니다. 열과 성을 다해 준비한 만큼 최소 세 작품 정도는 관람해 주시기 바랍니다. 만약 아무것도 보지 않고 나가려고 하시는 분은, 저희 직원이 추천하는 작품으로 직접 모시겠습니다.




자, 주의 사항은 모두 잘 들으셨나요?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출발해 보겠습니다.


이곳에 훌륭한 작품들이 참으로 많아서 다 보시려면 하루로는 부족할 겁니다. 유감스럽게도 모든 작품을 설명해 드릴 시간적 여유가 없으니 대표적인 몇몇 작품들만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쪽으로 와 주세요. 저희 전시회는 현재 세 개의 테마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관람 동선 순서로 말씀드리자면 첫 번째는 <추상>, 두 번째는 <풍경>, 세 번째는 <존재> 입니다.




<추상> 테마부터 먼저 보실까요?


이름을 통해 아셨겠지만, 이쪽 테마에는 형상을 정확히 정의할 수 없는 작품들을 주로 전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감동을 받기 위해서 꼭 어떤 형체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다른 테마보다 더 와닿으실 수도 있죠.


발 밑 조심하시구요, 바로 앞 쪽에 첫 번째 작품이 있습니다. 커튼을 걷고 들어오시면 됩니다.





첫 번째 작품의 이름은 ‘그리움’ 입니다.


전면에 있는 대형 스크린을 바라보시면, 끊임없이 움직이는 선들의 교향곡을 보실 수 있습니다.


수백 개의 선이 아름답게 물결치고 있는 게 보이시나요?

라디오 파형을 연상시키는 이 선은 불규칙적으로 돌아가거나, 비틀어지거나, 서로 얽히면서 진동하기도 합니다.


전파에서 영감을 얻은 이 선들은 무선 신호로 정보를 전송하는 방법을 예술적으로 나타낸 작품입니다. 계속 바라보고 있으면 우리를 둘러싼 보이지 않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는 것처럼 명상의 상태에 빠지는 기분이 들죠.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을 감상하는 게 전부는 아닙니다.


혹시 전시회 예약하실 때 다들 휴대폰 전화번호를 입력하셨나요? 예, 모두 입력해 주셨군요. 요즘 티켓 예약에 그 정도 개인 정보는 다 들어가니까요.


왜 이걸 지금 여쭤보냐면 곧 여러분의 휴대폰으로 발신인 불명의 전화가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 자유롭게 받으시면 됩니다. 저희는 전시회장 내부에서 휴대폰 사용을 제한하지 않습니다. 제가 아직 이 작품의 이름이 왜 ‘그리움’ 인지 설명을 해 드리지 않은 것 같은데, 전화를 받아 보시면 알게 되실 겁니다.


이 작품을 감상하시는 동안 여러분은 가장 그리워하는 이로부터 오는 전화를 받을 수 있습니다. 상대방이 얼마나 멀리 있든, 살아 있든 죽었든, 설령 이 차원에 속해 있지 않더라도 상관없습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구요? 해당 부분에 대해서는 답변해 드릴 수 없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저기 몇몇 분들이 전화를 받고 벌써 눈물을 흘리시는군요. 제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지 않으시겠지만 주의할 점을 알려드립니다.


그 통화는 너무 오래 하시면 안 됩니다. 현재 여러분은 그 경계를 넘으실 수 없습니다.


통화가 길어질수록 여러분은 상대방이 하는 말을 전적으로 믿게 되실 겁니다. 꽤 이상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더라도 말이죠.


분명히 알려드리자면, 이 작품 앞에는 제단 같은 게 없습니다. 관람객께서 자꾸 뭔가를 바쳐서 상대방을 이 쪽으로 데리고 오려고 시도하시는데 그 때마다 직원들이 청소하는데 애를 먹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여기엔 제단 같은 게 없습니다. 적당한 시점에서 통화를 마쳐 주세요.


10분 뒤 밖에서 뵙겠습니다.











아, 모두 나오셨나요?


한 두 분이 안쪽에 남으신 것 같군요.


사람의 간절한 마음이란 참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저희도 계속 남아 있으려고 하는 분들을 내보내느라 어려움이 많거든요. 전시회장의 청결 유지에 많은 협조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럼 지체할 시간이 없으니 다음 작품으로 가시죠.


이 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소개해드릴 두 번째 작품이 있습니다.


들어가는 문과 나오는 문이 있는 10여 미터 가량의 긴 직사각형 상자가 보이시죠?


이쪽 문이 입구입니다. 여기로 들어가셔서 작품 내부를 걸어 반대편 문으로 나오시면 됩니다.


저는 출구 문 앞에서 여러분을 기다리겠습니다.






두 번째 작품의 이름은 ‘환희의 터널’ 입니다.


여기는 사실 관람하시는 분마다 보시는 게 다르기 때문에 제가 설명해 드릴 부분이 딱히 없습니다.


‘환희의 터널’은 작품 내로 입장하시는 관람객 분에게 맞춰 최대한 행복한 영상을 보여드립니다.


안에서 걷고 계신 동안에는 그게 정말 사실처럼 느껴질 겁니다. 원활한 관람 진행을 위해 영상은 여러분이 걸으실 때만 재생됩니다.


그런 상상들 대부분 한 번씩 해 보시지 않나요? 모든 일에서 최선의 선택을 한 빛나는 삶, 혹은 지금 부자가 된다면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한 공상들 말입니다.


이 작품 내에서는 그 바람들이 모두 실현된 본인의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그건 또 어떻게 가능한지 궁금하시겠지만, 사실 사람들이 바라는 욕망은 다들 비슷한 면이 있거든요.


이 작품은 관람객분들의 체험 만족도가 무척 높은 편입니다. 출구로 나오시는 분들이 얼마나 환히 웃고 계신지 보고 있는 제가 다 즐거워지니까요.


물론 이 작품에도 유의할 점이 있습니다. 작품에 대한 입장 횟수 제한은 없지만 되도록 한 번만 입장해 주세요.


사실 저희도 처음에는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계속 입장하는 분들의 상태가 점점 안 좋아 보인다는 직원의 보고에 조사해 보고 나서야, 세 번 이상 관람하게 되면 여러분의 도파민 수용체가 조금씩 망가지기 시작한다는 걸 알아낼 수 있었죠.


작품 내에서 무엇을 보시든 그것은 현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거듭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극도로 행복을 주는 영상이 관람객 분들을 끌어당기는 마력이 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여러분의 도파민 수용체가 파괴되면 파괴될수록 이 작품 내부가 아니면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될 겁니다.


마침 바로 저기에 쳇바퀴 돌듯이 입장하는 분이 있군요. 부디 같은 상황에 처하지 않도록 조심해 주시기 바랍니다.










모두 감상하셨으면 세 번째 작품으로 가 보겠습니다.


한 번만 다시 들어가시겠다구요?


음...반드시 가셔야겠다면 제가 말씀드린 주의사항을 유념해 주시기 바랍니다. 안내는 이대로 계속될 겁니다.


다음 작품은 왼쪽으로 좀 더 들어가야 합니다.


네, 저희가 여러 작품을 지나치고 있죠.


다들 좋은 작품들이니 다음에 기회가 되신다면 재관람하셔도 좋겠습니다.


지금 소개드리는 작품은 <추상> 테마에서 마지막으로 소개드리는 작품입니다. 이 쪽으로 들어오세요.






세 번째 작품의 이름은 ‘베아트릭스'입니다.


가운데 원통형의 구조물이 보이시죠? 빙 둘러싸듯이 서서 관람해 주시면 됩니다. 지금은 꺼져 있네요.


이 작품은 평면 스크린 형태가 아니라 구조물 아래쪽에서 입체 홀로그램을 투사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즉 원통 안쪽을 보시면 되는 거죠.


작품 특성 상 항상 켜져 있지 않고 관람객이 있을 경우에만 일정한 시간 간격으로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합니다.


자, 작품을 보시기 전 한 손을 들어보시 겠습니까?


어느 쪽 손이든 편한 쪽을 사용해서 한 쪽 눈 위를 덮어주십시오. 보이지 않게 완전히 가려야 합니다. 이 작품은 오른쪽 눈이나 왼쪽 눈, 즉 한 번에 한 쪽 눈만 사용해서 관람해 주셔야 하거든요. 보는 눈을 바꾸고 싶으실 때는 꼭 다른 쪽 눈을 가린 뒤 떠야 합니다.

저만 다 뜨고 있는 것도 이상하니 여러분과 같이 가리겠습니다.


이제 켜지는 것 같군요. 구조물 안의 베아트릭스가 보이시나요?


표정을 보니 다들 보이시는 거 같습니다. 정말 아름답죠? 한 쪽 눈으로 보는 베아트릭스는 궁극의 미를 나타내는 작품으로, 인간의 기준에서 모든 미적 감각을 동원해 만든 걸작입니다.


그 혹은 그녀는 천상의 존재처럼 구름 위에 걸터앉아 있습니다. 가끔 비스듬히 고개를 돌려 일곱 가지 빛깔이 맴도는 오팔 같은 눈동자로 이쪽을 내려다보기도 하죠.


천천히 심호흡해 주십시오. 들이마시고, 내쉬고. 천천히. 좋습니다.


베아트릭스는 어느 쪽 눈으로 보냐에 따라 성별이 다른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중성적인 모습으로 기억하는 분도 계셨는데 그것도 맞는 말입니다. 아름다움이 아득한 경지에 다다르면 성별을 초월하게 되니까요.


사소한 후일담이지만, 이 작품을 보고 붓을 꺾는 예술가나 성적 취향이 바뀌신 분도 있다고 합니다.


혹시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분들은 물러서서 벽에 기대 주십시오. 실수로라도 눈을 가리지 않고 다 뜨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시구요.


제가 아까부터 계속 말씀을 드리는 건 관람객 분들이 이 작품에서 대부분 겪는 스탕달 증후군 때문입니다. 심한 분은 환각을 보거나 실신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쪽 분, 너무 가까이 가셨네요. 베아트릭스는 이쪽으로 걸어나올 수 없습니다. 이건 영상 작품이라는 걸 기억해 주십시오.


아, 양 쪽 눈으로 보고 싶으시다구요? 그건 곤란합니다.


여러분이 보기에 명백한 형체가 있는 베아트릭스가 왜 <추상> 테마에 있는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사실 제작자는 여러분이 두 눈으로 감상하기를 기대하며 작품을 만들었지만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양쪽 눈을 모두 뜨고 바라보는 순간, 베아트릭스는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형태에서 이탈하기 때문입니다.


완전한 작품의 형상은 실로 테마에 걸맞습니다. 어떠한 모양,선,색상으로도 베아트릭스를 설명할 수 없는데, 겉보기에는 혼란스럽지만 그 내면에서는 완벽한 조화가 느껴지니까요.


<추상>의 베아트릭스는 고정된 아름다움이 아니라 개인에 따라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는 무한한 미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온전한 작품의 형상을 여러분이 관람하지 못하는 게 유감입니다.


시간이 다 되었나 보군요. 홀로그램이 꺼졌습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깊게 숨을 들이마셔 주세요.


네, 이제 두 눈을 모두 뜨셔도 됩니다.


천천히 나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추상> 테마에서의 안내는 이것으로 끝입니다.


아직도 베아트릭스의 후폭풍에 시달리고 계신 것 같아서 잠시 쉬어야겠군요.


제 말을 듣지 않고 두 눈으로 보려고 시도했던 분들은 저희 직원이 따로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음, 여기 청소도 해야겠네요.


<추상> 테마에 남으시고 싶은 분들은 자유롭게 관람해 주십시오. 안내를 이어갈 때마다 가이드해 드리는 관람객 수가 한 두명씩 줄어들곤 합니다.


그만큼 여러분을 붙잡는 매력적인 작품이 많다는 뜻이니, 한 명의 관람객만 남으신다 해도 저는 최선을 다해서 여러분을 안내하겠습니다.











그럼 두 번째 테마인 <풍경>으로 넘어가 볼까요.


<풍경> 테마의 작품들은 모두 360도로 스크린이 있는 대형 작품입니다. 바닥에도 영상이 투사되므로 더욱 실감나게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테마 이름 그대로 주로 근사한 전경에 대한 작품들을 전시하며, 아나몰픽 일루전을 적용한 뛰어난 그래픽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스크린은 평면이지만 감쪽같이 입체적으로 보이는 기술이죠.


그래서 이 쪽은 모두 첫 번째 테마보다 작품의 규모가 큽니다.


첫 번째 작품에 다 왔군요. 커튼을 걷고 들어오시면 됩니다.





보시는 첫 번째 <풍경> 테마의 작품은 '기도 광장'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어떤 도시의 넓은 광장 바닥에 무릎 꿇고 있는 광경입니다. 앞 쪽에는 융단이 깔린 계단이 있고, 그 위에 어떤 사람이 단정한 자세로 의자에 앉아 있습니다.


역광이라 얼굴이 잘 보이지 않으시죠? 모두 저 사람을 향해 몸을 수그리고 있군요. 희미한 종 소리, 풍경이 흔들리는 소리와 사람들이 기도를 하는 듯한 중얼거림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이 영상은 종교적인 행사에 대해 묘사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특정 종교를 지정하여 제작된 것은 아닙니다. 저기 앉아 있는 '선지자'를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만약 종교를 가지고 있다면 저 선지자의 모습은 여러분이 믿는 신앙의 주인으로 보일 것입니다.


선지자는 자신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 기꺼이 말씀을 베풀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군중들은 이 광장에서 계속해서 그를 찬미하며, 수많은 의문에 대해 답해주기를 원하고 있죠.


선지자를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그의 압도적 존재감이 작품 바깥으로 흘러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이 광장에 서 있는 여러분들은 곧 일종의 영성 체험 상태에 진입하게 될 것입니다. 대표적으로는 상위의 존재와 정신적으로 하나가 된 듯한 일체감, 영적 영역에서 느껴지는 강력한 심리적 고양감 등이 있습니다.


이 때 선지자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그 시선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이 작품 앞에서는 빳빳이 서 계셔야 하며, 무릎을 꿇거나 절하는 것도 안 됩니다.


스스로 굴복했다는 어떠한 신체적 제스쳐도 드러나지 않게 주의해 주세요.


이 중에는 신앙이 없는 분도 분명히 있을 겁니다. 혹은 무신론자거나요. 저희가 파악하기로, 무종교인 관람객에게는 선지자가 자신의 모습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이 경우는 아까 말씀드린 영적 감각에 군중이 보내는 숭배까지 합쳐져 정신에 심각한 혼란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기억하세요, '기도 광장'에 있는 선지자는 여러분이 아니며 여러분일 수도 없습니다.

이 선지자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신앙의 주인이 아닙니다.


참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거나 무릎을 꿇으셨다면 제가 더 안내해 드릴 수 있는 부분이 없습니다.


선지자는 해당 관람객을 흔쾌히 새로운 신자로 인정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전시회를 떠나더라도 그는 결코 신자를 잊지 않습니다.











자, 작품을 충분히 관람하셨다면 여기로 모여 주십시오.


새 신자가 발생한 것만 빼면 멋진 관람이었죠?


<풍경>의 두 번째 작품으로 출발하겠습니다.


처음부터 조금 무거운 주제가 아닐까 싶지만 의외로 전시회에서 인기가 많은 작품입니다.


어떤 종류의 신앙이든 가졌거나 가지고 싶은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거겠죠.


사이비가 아니고서야 영성 체험을 쉽게 할 수 있다고 하는 종교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작품을 보고 본인의 자아가 나아갈 길을 찾았다고 고백하는 관람객도 있었으니, 제작자의 의도가 잘 나타났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고보니, 두 번째 작품을 관람하기 전에 제가 검사해야 할 사항이 있었네요.


전시회에 입장하시기 전에 나눠드린 종이가 있을 텐데, 거기에 꽃은 다 그려 오셨나요?


만약 아직 그리지 못했다면 이곳에 비치된 색연필과 펜을 통해 꽃을 그려 주십시오. 잘 그리고 못 그리고는 상관없습니다. 성의가 중요하니까요.


다 그리신 분들은 종이를 가지고 들어와 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작품의 이름은 ‘만개한 화원’ 입니다.


지저귀는 새 소리가 감미롭죠? 감탄하시는 분들이 많군요. 이 화원의 아름다움은 각별합니다. 영상에 담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는데, 이곳은 생동감 넘치고 섬세한 꽃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형형색색의 꽃들이 온화한 한낮의 햇살을 받아 빛나고 있는 게 보이시나요?


나비가 한 꽃에서 다른 꽃으로 날아다니고, 벌새가 꽃잎 사이를 날아다니며 부드러운 미풍에 무지개빛 날개를 반짝이는 화원의 다채로운 색상을 감상해 보십시오.


각각의 꽃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작품이며, 자세히 들여다보시면 꽃잎의 질감까지 느낄 수 있습니다.


이 화원은 항상 낮이기 때문에 해가 질 걱정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원하는 만큼 화원의 경치를 감상하면서 풀밭 위에 앉아 휴식을 취하실 수 있습니다.


멀리서 들리는 새의 휘파람 소리와 곤충이 웅웅대는 자연의 선율을 듣고 있으면 여러분의 마음이 절로 평온해질 것입니다.


아, 종이는 어디에 쓰냐구요? 이건 나가시기 전에 저쪽에 비치된 스캔 장비에 넣으시면 됩니다. 스캔한 꽃이 영상에 등장할 겁니다.


여러분이 그린 꽃이 화원의 일부가 되는 거죠. 이곳도 참여형 전시를 하는 작품이라서요. 만약 종이를 넣지 않고 나가려고 하시면 출구의 직원이 여러분을 되돌려 보낼 겁니다. 잊지 말고 스캔 장비를 사용해 주세요.


영상에는 보이지 않지만 이 화원을 열심히 관리하는 정원사가 있습니다. 이 정원사는 여러분이 그린 꽃을 받으면 적당한 위치를 찾아서 심을 겁니다. 워낙 꽃이 많은 곳이라 눈에 안 띌 수도 있지만 틀림없이 영상 어딘가에는 여러분이 그리신 게 있습니다.


그리고 가끔 관람객 분이 선물한 꽃이 정원사의 마음에 무척 들어서 답례를 보내는 경우가 있는데, 이 때는 스캔한 종이 뒷면에 본인이 그리지 않은 식물이 나타날 겁니다.


지금까지 발견된 식물은 맨드라미 한 송이, 검은눈의수잔 한 송이, 원숭이 난초 한 송이, 연잎고사리 한 줄기, 가막살나무 열매다발로 총 다섯 종류입니다.


혹시 해당 식물이 뒷면에 그려져 있으면 스캔한 종이를 버리지 마세요. 작품 근방을 벗어나는 순간 종이는 저절로 사라질 테니까요.


인간에게 뇌는 한 개, 눈은 두 개, 얼굴은 한쪽 면, 신장은 최대 두 개, 폐포는 약 오억 개가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만 정원사의 호의를 거절할 수는 없습니다.


부디 관람객 여러분의 신체에 추가적인 부분을 원활히 수용하시기 바랍니다.










자, 그럼 <풍경> 테마에서 마지막으로 소개해드릴 작품으로 가 보겠습니다.


새로운 눈이 생기신 분, 본인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더라도 잠시 적응의 시간을 가지면 곧 괜찮아질 겁니다.


사람의 육체는 생각보다 적응력이 높습니다. 작품을 더 자세히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겠네요.


잠시 휴식의 시간을 가져 볼까요? 곧 다시 출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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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댓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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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ㅁㄷㅊ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문단 나누다가 힘들어서 일단 올린다. 피드백이나 의견 있으면 말해줘...하편도 곧 올라감

    2023.11.04 19:27:49
  • ㅇㅇ(61.77)

    맛있어요:D

    2023.11.04 19:39:52
  • ㅇㅇ(182.219)

    오 잘읽히네

    2023.11.04 20:11:45
  • ㅇㅇ(183.100)

    '다른 차원','노련한 예술가(윤회)'를 떡밥으로 본다면 '전시회'자체는 연옥 아니면 주마등 느낌의 인생의 축약을 말하는듯. 제목인 백계는 범부가 살면서 느낄 수 있는 미혹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작품'이란 인간이 느끼는 헛된 욕망을 말하는거고. 각 작품마다 잔류된 인원이 생겨 그곳에 머무르다는건 그 욕망에 넘어가 욕망에 종속됐음을 말하는거 같구 완전히 끝까지 가 새로운 경이로움을 얻을 수 있다는건 모든 욕망을 버려 열반에 드는걸 말하는것 같음.

    2023.11.04 21:43:49
    • ㅇㅇ(183.100)

      스태프들이 흰색가면과 검은 후드를 입고 있다는건 음양의 조화를 말하며 이들이 갑자기 어디선가 튀어나온다는건 일상속에서 깨달음을 얻는것을 말하는듯. 스태프들을 안전하게 데려다 준다는건 범부들을 올바른 길로 이끈다는 거고. 뭔가를 밞자마자 사과하라는것은 욕망에 종속된 범부들을 불쌍히 여기라는것이며 암막커튼을 가린걸 치운다는것은 누군가의 도음을 얻어 깨달음에 한발짝 나아간다는것. 또한 초대받지 못한 자들이란 자살을 말하는거고. 그들에게 직원들이 작품을 추천한다는것은 주마등에서 자살한 사람이 그동안 깨닫지 못했던 자신의 욕망내지는 소원을 말하는거구.

      2023.11.04 21:46:35
    • ㅇㅇ(183.100)

      배아트릭스는 각자 상상하는 이상 또는 완벽. 오팔이 여러가지 방면으로 봐도 각각 색이 다르듯이 이상은 각자 다르고, 가까이 갈수 없다는건 결국 허상의 존재이기 때문에 그녀에게 갈 수 없다는것을 말하는듯. 한쪽눈만 뜨라는건 두눈을 뜨면 결국 그것이 허구인것을 알기 때문. 기도광장이란 살아가면서 하는 신앙 내지는 우상적인 존재에게 신앙을 바치는것. 만개한 화원은 사랑을 말하는듯. 심는 꽃은 '연심'이구. 발견된 식물이란 전부 피, 건강, 아름다움등 사랑을 의미하며 기관이 더 생긴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자신의 신체같이 사랑한다는듯. 뒷면에 꽃이 그러져 있다는건 첫사랑 내지 짝사랑인듯.

      2023.11.04 21:53:43
    • ㅇㅇ(183.100)

      쓰니 작품처럼 종교적인 색체가 섞이면서도 다양하게 상상하거나 해석할수있는 작품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디 글써줘서 고마웡

      2023.11.04 22:01:15
    • ㅁㄷㅊ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이런 방향의 해석이..?긴 감상 고맙다

      2023.11.05 01:12:12
    • 네른네른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베아트릭스는 스탕달 신드롬을 처음 일어아게 만들었던 베아트릭스의 초상화에서 따 온 이야기 같은데 ..
      엄청 장황하게 해석하는구망 - dc App

      2023.11.05 17:21:51
    • ㅇㅇ(14.47)

      어떻게 해석하든 본인 자유지 ㅋㅋ

      2024.09.19 20:27:09
  • ㅇㅇ(123.212)

    러브데스로봇 느낌나고 좋다

    2023.11.05 17:20:49
  • 괴라는나물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진짜 개재맸음

    2023.11.06 13:42:43
  • ㅇㅇ(118.235)

    세번째 눈으로 베아트리스 보고싶은 작성자면 개추~~ - dc App

    2023.11.17 17:07:24
    • ㅇㅇ(211.197)

      천잰데

      2024.05.26 13:32:37
  • ㅇㅇ(211.197)

    꽃 사람 신체부위랑 적절하게 잘 매치했다. 이런 거 좋아함.

    2024.05.26 13:3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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