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에서 내리자 날이 흐렸다.
서울에서는 한여름이었는데, 이곳은 을씨년스러울 만큼 싸늘했다. 하늘은 잿빛으로 드리워져 있었고, 멀리 보이는 굴뚝들은 검은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어서 가자.”
누군가 내 어깨를 툭 쳤다.
짐을 짊어진 채, 우리는 어미 오리를 따르는 병아리들처럼 무리 지어 움직였다.
독일 놈들이 우리를 보며 수군거렸다.
하나같이 키가 크고, 피부가 희고, 표정이 굳어 있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말들 속에, 익숙한 단어들이 흘러나왔다.
“Koreaner.”
(한국 놈들.)
“Du hast dein Land wegen des Geldes verlassen.”
(돈 때문에 나라를 버리고 왔구나.)
“Das sind harte Kerle.”
(하여간, 독한 놈들이라니까.)
딱히 듣고 싶지 않았는데도 들렸다.
우리는 서독 정부와 계약을 맺고, ‘필요한 노동력’으로 이 땅에 온 것이지만, 그들에게 우리는 그냥 낮은 임금으로 부려먹을 동양인 광부에 불과했다.
한 독일 관리가 우리에게 서류를 내밀며 말했다.
"Hier unterschreiben."
(여기 서명해.)
서류에는 빼곡한 독일어가 적혀 있었다.
몇 명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대부분은 한 달짜리 독일어 교육을 받았지만, 갱도에서나 쓸 법한 단어들밖에 몰랐다.
관리들은 우리가 이해했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나는 묵묵히 서명했다.
우리는 이제, 이 나라에 노동력을 팔아야 하는 몸이었다.
* *
지하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는 삐걱거렸다.
철골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갱도가 보였다. 모두는 송골송골 검은 땀방울이 맺힌 채 곡괭이를 휘두르고 있었다.
매캐한 석탄 냄새. 흙먼지.
숨을 들이마시는 순간, 목구멍이 텁텁해졌다.
광부들은 하나둘씩 내려갔다.
머리 위의 안전 등이 희미하게 빛났다.
서독 정부는 한 달 600마르크를 준다고 했다.
하지만 독일 놈들은 우리와 같은 일을 하면서 두 배를 받았다.
같은 갱도에서 같은 석탄을 캐지만.
결단코 같은 인간으로는 취급받지 않았다.
하지만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다.
우리는 감히 그런 걸 요구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3년만 버티고 버텨서, 돈 벌어서 돌아갑시다.”
가족에게 돈을 보내야 했다.
홀어머니, 고된 밭일에 등 굽은 마누라, 공부도 접어놓고 공장일 하며 고생하는 동생 놈. 나날이 커가는 자식들 공부시켜 대학 보내주리라는 꿈.
그 꿈 하나만 붙잡고 우리는 곡괭이를 휘둘렀다.
그러나, 우리는 그때 몰랐다.
'돌아갈 수 있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될 줄은.
* * *
1 - 작성자: 박진우 (작업반장, 33세)
«1968년 07월 04일»
나는 서독 페어겟쎈 광산(Vergessene Zeche)에서 일하는 파독 광부다.
이곳에서 일한 지도 벌써 4년째다.
하지만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많다.
같이 일하는 독일 광부들은 우리와 같은 갱도에서 같은 일을 하지만, 임금은 두 배, 대우는 하늘과 땅 차이다. 같은 광부일지는 몰라도 같은 인간은 아닌가 보다.
독일 놈들은 가끔 쉬는 시간에 자기들끼리 이런 말을 주고받는다.
“Ehrlich gesagt, sie arbeiten hart, aber…”
(솔직히 말하면, 한국인 노동자들 열심히 하긴 하는데…)
“Müssen wir wirklich so hohe Löhne wie jetzt zahlen?”
(굳이 지금같이 높은 임금을 줄 필요가 있을까?)
솔직히 얼추 알아들었지만 그냥 묵묵히 일하기로 했다.
우리는 이방인이다. 여기서 다른 선택지가 없다.
조금만 더 참고 견디자.
* * *
2 - 작성자 : 유재훈 (광부, 41세)
«조난 1일 차»
지하 5층에서 작업 중이었는데 콰르릉 소리가 들리더니, 천장이 무너지더군.
한국인 광부 11명, 그리고 독일인 광부 4명.
우리는 그대로 갇혀버리고 말았지.
독일 감독관 요제프 마이어가 침착하게 말했어.
“Wir schicken ein Rettungsteam. Keine Panik.”
(구조대를 보낼 거야. 당황하지 마.)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네.
구조대가 오면 독일인 4명이나 먼저 구조될 것이란 것을.
우리는 가장 마지막에 고려나 해보겠지.
그런데 요제프의 얼굴이 갑자기 구겨지는 게 아닌가.
놈이 말하길 구조 신호가 이상하단다. 무전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데, 응답이 없다나 뭐라나….
설마 구조대가 우리를 버렸단 말인가?
조금 무서워지는구만.
집에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 * *
3 - 작성자: 김형수 (광부, 36세)
«조난 2일 차»
우리는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하지만 허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먼지 속에서 앉아있는데 목도 타지 않는다. 이건 정말 말이 되지 않는 일이다.
영수형이 어깨를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형수야, 우리 체질이 된 거 아니냐? 식량도 아끼고 좋지 뭐.”
사람들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깔깔 웃었다.
하지만 나는 웃지 못했다. 이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몸이 이상해지고 있다.
독일 광부 프리드리히 바우어가 나를 보고 말했다.
“Das ist nicht normal.”
(이건 정상적인 게 아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우리의 신체가 이 광산 안에서 적응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대체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
* * *
4 - 작성자: 이지윤 (광부, 29세)
«조난 3일 차»
우리는 조용히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침묵을 깨고 벽 너머에서 소리가 들렸어요.
“거기 있습니까?”
분명히 한국말이었습니다.
하지만 말이 안 되는 일이었어요. 이 부근에서 일하는 한국인들은 다 이곳에 갇혀있는데, 대체 누가 한국말로 말을 건단 말입니까?
나는 떨리는 목소리를 겨우 진정시키며 물었습니다.
“누구요? 구조대입니까?”
그러자,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고.
“아니요.”
그 후론 정적이 맴돌았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는 아마 같은 마음이었겠지요.
‘차라리 답이 들려오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그날 모두는 그 목소리에 대해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습니다.
* * *
5 - 작성자: 김도현 (광부, 37세)
«조난 4일 차»
“출구를 찾았다!”
누군가 소리쳤다.
벽 너머, 저 아래쪽에서 희미한 빛이 보였다.
“저기가 출구인가?”
그러나, 우리는 곧 깨달았다.
붕괴된 페어겟쎈 광산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아니지. 아니 될 말이지. 애초에 출구는 위쪽에 있는 게 당연하다. 저 지하 아래쪽에 출구가 있을 리가 있나.
“Licht… Aber kein Strom?”
(빛이 있는데…. 전기는 없다고?)
독일 광부 게르하르트 뢰브가 중얼거렸다.
그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Es ruft mich.”
(그 빛이 나를 부르고 있어.)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
* * *
6 - 작성자: 최영수 (광부, 42세)
«조난 6일 차»
우리는 원래 몇 명이었나?
내가 쓴 기록을 보면 15명이라 적혀있는데, 왜 나는 14명이었던 것 같지?
그게 사실이라면 누가 사라진 거지?
어째서 우리는 기억을 못 하는 거지?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주변을 둘러보았지.
우리는 무리 지어 모여 있었지만, 뭔가 미묘하게 달랐어.
나는 내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순간적으로 떠올릴 수 없었네.
“이보게 자네 이름이 뭐였나?”
내가 묻자, 그는 멍하니 나를 바라보더군.
순간 목이 메었어.
“나는….”
그는 말끝을 흐렸는데.
그리고, 나는 깨달았지.
그가 사라지고 있는 것을.
그가 존재했던 기억조차 흐려지고 있더군.
나는 황급히 노트에 적으려 했는데….
우리는… 15명…….
아니, 14명…….
……젠장, 몇 명이었지?
* * *
7 - 작성자: 유재훈 (광부, 41세)
«조난 8일 차»
벽에 달라붙은 먼지를 손으로 쓸어봤다.
그런데 그곳에서 이상한 문양이 보였다.
“뭔가 새겨진 거 같은데… 이보게 이거 독일어인가?”
독일 광부 프리드리히 바우어가 그걸 보고 입술을 깨물었다.
“Nein…. das ist älter. Viel älter.”
(아니…. 이건 더 오래된 거다. 훨씬 오래된 거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소름이 돋았다.
“…우리가 아는 독일어보다 더 오래된 거라고?”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Diese Zeichen… ich habe sie schon einmal gesehen. Aber nicht hier.”
(이 문양… 전에 본 적이 있어. 하지만 여기서가 아니야.)
모든 광부들은 조용해졌다.
여긴 단순한 갱도가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이곳은 우리가 알던 세계가 맞긴 한 걸까?
* * *
8 - 작성자: 박진우 (작업반장, 33세)
«조난 9일 차»
오늘 아침, 김형수 형이 보이지 않았다.
그의 작업복은 그대로 있었다. 그의 물통도, 그의 장화도. 그가 목숨처럼 여기던 가족사진까지. 방금 전 앉아있던 것 마냥 그 자리에 놓여 있었다고.
그런데, 아무도 그가 나가는 걸 보지 못했다.
그리고 김형수란 이름을 아는 사람이 없다.
나는 그의 물건들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기억이 뒤틀리는 기분이었다.
애초에 김형수라는 사람이 원래 있었던가?
* * *
9 - 작성자: 프리드리히 바우어 (독일 광부, 39세)
«조난 10일 차»
이젠 어둠 속에서도 모든 것이 보인다.
저 멀리 떨어진 바위도, 옆에 있는 이의 얼굴도, 무너져내린 입구의 잔해들도 너무나 선명히 보인다.
랜턴이 필요 없게 되었다.
처음엔 단순히 눈이 어둠에 적응한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나는 벽에 새겨진 문양들을 바라보았다.
이전까지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이제 선명하게 보인다.
문양이 흐릿한 푸른빛을 띠고 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눈을 문질렀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없었다.
“Du musst es jetzt akzeptieren….”
(이제 그만 받아들여….)
누군가가 뒤에서 속삭이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나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등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더욱 끔찍한 것은, 곱씹어 생각할수록 그것이 내 목소리 같았다는 점이다.
* * *
10 - 작성자: 김도현 (광부, 37세)
«조난 11일 차»
문득 시계를 보았다.
초침이 가만히 서 있었다.
고장 났나 싶어 강하게 흔들어 봤다.
그러자 초침이 한꺼번에 몇 시간을 뛰어넘었다.
단순히 내 시계만 그러면 고장 났다고 생각하겠으나, 모두의 시계가 몇 시간씩을 일순간에 건너 뛰고 있다.
숨이 멎을 것만 같다.
이 안은 시간의 흐름이 다르기라도 한 건가?
그보다 대체 지금 얼마나 시간이 지난 거지?
* * *
11 - 작성자: 최영수 (광부, 42세)
«조난 12일 차»
오늘 밤, 독일 광부 요아힘 슈타이너가 이상행동을 보였어.
그는 갑자기 광산 바닥에 무릎을 꿇더니, 두 손을 하늘로 뻗고선 기괴한 어조로 독일어를 중얼거리더군.
“Er ruft mich…. Ich muss gehen….”
(그가 날 부른다…. 가야 해….)
프리드리히가 나서서 그를 붙잡았지.
“Joachim, was machst du?!”
(요아힘,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하지만 요아힘은 우리를 보지 않았어.
그는 벽을 향해 천천히 걸어갈 뿐이었지. 마치 거기에 문이 있는 것처럼. 그러나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어. ‘벽’이었다고, 그냥 딱딱한 암석을 파내 만든 벽.
그런데 그는 그대로 사라져버렸어.
그는 단 한 번도 광산을 나간 적이 없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이제 그가 존재하지 않는 사람인 것처럼 굴더군.
마치 요하임이라는 작자가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그리도 기괴한 꼴은 난리 때.
빨갱이 하나가 수류탄을 목구멍으로 삼키더니 눈앞에서 폭사하는 것을 본 이후로 처음이었네.
* * *
12 - 작성자: 유재훈 (광부, 41세)
«조난 13일 차»
어제, 지하 6층 아래에서 빛이 새어 나오는 걸 봤다.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빛이었어.
갱도 깊숙한 곳에서.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공간에서.
그 빛이 흔들리고 있었다고.
마치 이리로 오라고 손짓이라도 하듯이.
“자네들도 보이나?”
누군가가 중얼거렸지만, 아무도 답하지 않았네.
그런데, 그 순간 프리드리히가 벌떡 일어나더니 손을 뻗으며, 독일어로 소리치더군.
“Schau nicht hin! Schau nicht ins Licht!”
(보지 마! 빛을 보면 안 돼!)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돌렸지만.
하지만 이미 몇몇 광부들은 그 빛을 향해 한 걸음 다가서고 있었어. 황급히 달려가 그들을 붙잡았어.
“멈추게! 자네들 뭐 하는 겐가!”
그들의 얼굴을 보았지만, 그들의 눈에는 이미 초점이 없더군.
그 순간, 프리드리히가 내 손목을 강하게 움켜잡으며 말했다.
“Es ist zu spät….”
(이미 늦었어….)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차마 묻지 못했어.
그는 눈을 질끈 감은 채 떨고 있었거든.
* * *
13 - 작성자: 김도현 (광부, 37세)
«조난 14일 차»
나는 지금까지 몇 끼를 굶었지?
삼 일? 사 일? 더 오래된 것 같은데.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나는 마지막으로 밥을 먹은 게 언제인지 기억하지 못한다.
나는 다급히 옆에 있는 영수 형을 붙잡았다.
“성님, 우리가 처음에 몇 명이었죠?”
영수 형은 뭐가 이상하다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웃거리곤 말았다.
나는 더듬거리며 메모장을 펼쳤다.
“12명…?”
이상하다. 나는 원래 11명이었던 것 같은데?
나는 메모장을 덮었다.
그런데 수첩을 다시 펴서 확인했을 때는 숫자가 13명이 되어 늘어나 있었다. 마치 누군가 내 수첩에 장난질을 쳐 놓은 것 마냥.
숨이 턱 막혔다.
우리는 원래 몇 명이었지?
* * *
14 - 작성자: 박진우 (작업반장, 33세)
«조난 15일 차»
나는 빛을 보고 있다.
우리는 지하 6층에서 그 빛을 찾았다.
처음 그 빛을 발견했을 땐 단순한 착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건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도현이 형이 진지한 얼굴로 말해왔다.
“저게 출구일 수도 있어.”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우리는 너무 오래 이곳에 갇혀 있었고, 이젠 우리의 존재마저 흐려지고 있었다.
하지만 저게 정말 출구일까?
누군가는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누군가는 믿지 않았다.
프리드리히가 더는 견디지 못하겠다는 듯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Ich traue diesem Licht nicht…”
(난 저 빛을 믿지 않아….)
그러자 최영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이상해…. 반장님 올라갑시다. 이건 말이 안 되잖소.”
나는, 나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갈라지게 되었다.
* * *
15 - 작성자 : 프리드리히 바우어 (독일 광부, 39세)
«조난 16일 차»
“Ich werde nicht dort hinein gehen.”
(난 저 안으로 들어가지 않을 거야.)
최영수도 내 옆에 섰다.
그는 빛을 쳐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내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소. 분명 여길 빠져나갈 방법이 있을 거요.”
우리는 위쪽으로 향하기로 했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우리는 같은 곳을 계속해서 맴돌고 있었다.
나는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Es bewegt sich… Die Mine verändert sich…”
(움직이고 있어… 광산이 변하고 있어…)
최영수가 벽을 두드렸다.
“젠장! 자네 자꾸 뭐가 움직인다는 겐가? 우린 나가는 길을 찾고 있는 거잖아!”
나는 다시 한번 천천히 벽을 손으로 쓸어봤다.
그런데 벽이 부드러웠다.
마치, 살아 있는 살덩이 같았다.
우리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벽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알았다. 아무리 발버둥 쳐봐도 여기에서 나갈 수 없다.
그러자 멀리서, 빛 속으로 향하던 그들이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표정은, 그들의 얼굴은.
더 이상 우리가 알던 사람들이 아니었다.
* * *
16 - 작성자: 프리드리히 바우어 (독일 광부, 39세)
«1968년 08월 04일»
“Ich… Ich bin am Leben?”
(나… 나는 살아 있나?)
눈을 떴을 때, 나는 하얀 천장을 보고 있었다.
온몸이 무거웠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의료진들이 분주히 걸음을 옮기고, 앓는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려오는 평범한 병실이었다.
그리고 내 옆에는 최영수가 누워 있었다.
그는 나를 바라보았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동안 그렇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나는 입을 열었다.
“Wir sind draußen…”
(우리는 밖이야…)
최영수는 입술을 떨었다. 그러고는 힘겹게 말했다.
“…정말 여기가 바깥일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우리는 동시에 깨달았다.
우리는 구조되었다.
하지만 아직 그 광산에, 우리는 갇혀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기분 탓일까. 이 병원에서 흙먼지 냄새가 나는 것 같다.
태양이 흔들리고 있는 것만 같다.
* * *
대한민국-서독 합동 매몰 사건 조사 보고서
(발행: 1968년 11월 10일)
문서번호: KOR-GER-01968-07-10
발행기관: 대한민국 외무부, 서독 연방 내무부
분류: 기밀 (CONFIDENTIAL)
사건명: 1968년 페어게센 광산(Vergessene Zeche) 실종 및 매몰 사건
* * *
1968년 07월 07일:
- 페어게센 광산 (Vergessene Zeche) 붕괴 사고 발생.
- 한국인 광부 11명, 독일인 광부 4명 실종 신고 접수.
1968년 07월 09일:
- 서독 연방경찰 및 대한민국 외무부, 합동 실종자 수색 작전 착수.
- 구조 신호 발신 시도, 무응답 확인됨.
1968년 07월 25일:
- 실종자 2명 발견 (한국 국적 1명, 서독 국적 1명).
- 생존자 진술 확보, “광산 내부에서 비정상적인 현상을 목격했다”는 증언 포함.
1968년 08월 11일:
- 실종자들이 언급한 ‘빛의 위치’에 대한 현장 조사 실시.
- 특이사항 없음.
1968년 08월 15일:
- 페어게센 광산(Vergessene Zeche) 지하 6층 및 인근 지역 정밀 탐사.
- 자연 동굴, 외부 통로 없음 확인.
1968년 08월 18일:
- 페어게센 광산 (Vergessene Zeche) 내부에서 비정상적인 문양 발견.
- 추가 조사 결과, 관련 자료 없음.
1968년 08월 21일:
- ‘빛’과 관련된 물리적 흔적 발견되지 않음.
- 생존자들이 언급한 위치에서 특이점 없음.
1968년 08월 30일:
- 실종자 13명의 흔적 일체 발견되지 않음.
- 페어게센 광산 (Vergessene Zeche) 내부 추가 탐색 진행하였으나 성과 없음.
1968년 08월 31일:
- 수색 종료, 사건 공식 종결.
- 사망자 13명, 생존자 2명으로 확정.
1968년 10월 25일:
- 페어게센 광산 (Vergessene Zeche) 폐쇄 결정.
- 서독 정부, 추가 사고 방지를 위한 영구 폐쇄 발령.
* * *
본 문서는
대한민국 외무부 및 서독 연방 내무부 협약에 따라
기밀로 분류됨.
기록 보관 기한: 영구 보관 (Retained Permanently)
[서명]
- 대한민국 외무부 장관 강천명 (서명)
- 서독 연방 내무부 장관 Johann Müller (서명)
댓글 영역
맛있다 냠냠
그래도 저 두 명은 구조된 게 맞긴하네 ㅋㅋ
마지막에 흙먼지 냄새, 태양이 흔들린다 이러는거 봐서는 뭔가 쎄한데 구조된 게 아닐수도
생존자 2명 확정인데, 그러면 구조됐거나 구조됐는데 제정신이 아니거나 아니면 광산의 유독가스? 라고, 해야 할까…. 그거에 중독돼서 헛소리 써놓은 걸 수도.
작품 밖에서 봤을 때는 구조된 게 맞지만 저 둘은 영원히 지금 자신이 있는 곳이 아직 광산 안이 아닌지 끝없이 의심하게 되는 거일수도
보고서에 적혀있으니 구조되긴한거지
허억 맛도리다.. 역시 대회가 답이었어...
개좋누
약간 크툴루 느낌도 나는게 맛있네ㅋㅋ
1960년대인데 이름이 너무 2000년대스러워서 떡밥인가 했는데 아니네ㅋㅋㅋㅋ 재밌게읽었음
ㅈㄴ맛있다
독일어 전공자로서 이글읽는데, 독일어는 빼는게 나았을듯. 너무 번역체고 실생활에서 쓰지도않는 글투성이라 몰입 완전 해쳤음. 재미있는데 아쉽네 - dc App
이게 지식의 저주인가 뭔가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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