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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비전 챗 - 6

흰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8.16 17:16:05
조회 915 추천 43 댓글 5
														






제6장: 문제 인식




넥스비전 본사 로비의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다. 레이첼이 의자에 힘없이 풀썩 앉는다. 그녀는 두 손을 가만히 무릎 위에 올려둔 채 어두운 표정으로 깊은 생각에 잠긴다. 폴은 그녀를 흘낏 보며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한다. 톰 그린의 사건은 그들의 예상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를 암시하고 있었다. 레이첼은 이를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듯 보인다.


"박사님... 괜찮으세요?"


폴이 천천히 레이첼 옆으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레이첼은 멍하니 바닥만 바라보며 흔들리는 목소리로 겨우 입을 연다.


"톰이... 그 사람이 정말로 죽으려 했다는 게... 믿기지 않아요. 내가 만든 기술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걸 받아들일 수 없어요..."


폴은 잠시 침묵한 뒤, 그녀에게 부드럽게 말한다.


"이건 박사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누구도 이런 일을 예상할 수는 없었을 거예요. 그러니까..."


레이첼은 고개를 저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하지만 제가... 비전 챗의 개발자로서... 제가 이걸 통제했어야 했어요. 사용자들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걸 미리 알아챘어야 했다고요. 그런데 톰... 톰은 제 동료예요. 그 사람이 그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 했다는 사실이..."


폴은 그녀의 곁에 가까이 앉아 그녀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한다.


"우리 모두 실수할 수 있어요. 중요한 건 그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무엇을 하느냐입니다. 박사님, 톰은 살아남았어요. 우리는 분명 이 문제의 원인을 찾고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레이첼은 여전히 눈을 떨구고 있다. 그녀는 그동안 자신이 해온 연구와 개발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생각하며 혼란스러워한다. 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든다.


"감사합니다, 형사님... 하지만 이 일이 어떻게 끝날지 모르겠어요. 우리가 통제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생겨나고 있는 것 같아서... 저는 그게 너무 무서워요."


폴은 그녀가 완전히 무너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을 잡는다.


"박사님, 우리 둘 다 같은 마음일 겁니다. 하지만 함께 해결할 수 있어요."


단호하면서도 부드러운 폴의 말에, 레이첼은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은 듯 미소를 지으려 하지만 여전히 어두운 표정이 남아 있다. 그 순간, 폴의 전화가 울린다. 그는 조심스럽게 손을 떼고 전화기를 꺼내 화면을 확인한다. 화면에는 '카일 존슨'이라는 이름이 쓰여 있다. 폴은 서둘러 전화를 받는다.


"해리스 형사님. 톰이 깨어났습니다."


폴은 그 말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카일은 계속 말을 이어 간다.


"의사는 당장은 톰이 특별히 신체적으로 어디 문제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눈을 뜨고 깨어 있기는 한데, 말을 걸어도 듣는 건지조차 모르겠습니다... 톰이 다시 말을 할 때까지는 더 알아낼 수 있는 게 없을지도 모릅니다."


폴은 카일에게 계속 병원에서 상황을 지켜봐 달라고 지시하고 전화를 끊는다. 레이첼이 폴에게 불안한 눈빛으로 묻는다.


"톰이 깨어났나요?"


"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레이첼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거운 마음을 추스르려 애쓴다. 잠시 후, 그녀는 무엇인가 결심한 듯 자리에서 일어난다.


"일단은, 개발자 프리뷰 버전 배포를 중단해야겠어요. 비전 챗이 더 퍼지는 걸 막아야죠."


냉정함을 되찾은 레이첼의 진지한 표정을 보고, 폴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두 사람은 발걸음을 맞추어 다시 비전 챗 개발 부서의 연구실로 향한다. 무거운 공기를 가르며 두 사람의 발소리가 울려 퍼진다.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서자 두 사람은 묵묵히 각자의 생각에 잠긴다.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의 조용한 기계음만이 직육면체 공간을 채운다. 폴은 톰이 했던 말들을 신중하게 되짚어 본다.


"박사님, 톰이 말한 '그분'은 비전 챗의 인공지능일까요?"


레이첼은 톰이 했던 말들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을 털어놓는다.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하지만 비전 챗은 단순히 인공지능과 일대일로 대화하는 개념이 아니에요. 사용자가 무언가를 묻거나 말하면, 비전 챗의 인공지능은 대답으로서 가상현실을 눈앞에 보여줘요. 톰이 말한 '그분'은, 이 가상현실을 토대로 한... 어떠한 가상의 인물이거나 가상의 존재일 가능성도 있어요. 그래서 비전 챗이 무엇을 보여줬는지를 알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아시다시피 문제의 출력 기록이 삭제되어 있으니..."


레이첼은 말끝을 흐린다. 폴은 그녀의 마지막 문장에 대해 나지막이 말한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죠."


레이첼은 폴의 말을 듣고는 머지않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는다. 그녀도 그 방법을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톰의 일을 겪으며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 두고 꺼내지 않으려 하고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지하 11층에 도착했음을 알릴 때까지도 그녀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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