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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장르 중 하나인 나폴리탄 괴담에 대해 다루는 갤러리입니다.
흰개(dcwhitedog)
블루워터(bluewate…) Rosefield_0313(subject0…) ㅇㅇ(clean738…) winter567(soccer28…) 이혁영(injury21…)
2021-03-02
괴담 장르 중 하나인 나폴리탄 괴담에 대해 다루는 갤러리입니다.
흰개(dcwhitedog)
블루워터(bluewate…) Rosefield_0313(subject0…) ㅇㅇ(clean738…) winter567(soccer28…) 이혁영(injury21…)
2021-03-02
“그게 뭔데?”
“너 밤은 뭔지 알아?”
이오는 그것도 모르겠냐는 듯 웃었다.
“당연하지, 먹는 거잖아. 구워 먹으면 맛있어.”
“아니 그거 말고.”
“다른 밤이 또 있어?”
“원래 해는 지는 거였대.”
구사의 말에 이오는 조금 혼란스러워졌다. 진다니? 해가 누구랑 싸우기라도 했다는 얘긴가?
구사는 패드를 들어 올려서는 이오에게 보여주었다. 하늘 그림이었다. 파랗고 구름이 떠다니는, 해가 아래를 비추는 그림.
“이게 하늘이야.”
“나도 알아.”
“그리고 이것도 하늘이야.”
구사가 패드를 넘겨 다른 화면을 보여주었다. 이상한 건, 하늘이 검은색으로 칠해져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검은색 하늘에 반쪽짜리 해와 이상한 하얀 점들이 쏙쏙 박혀 있다.
“이건 달이라고 해. 계속 모양이 바뀐대. 해가 지고 나면 달이 뜨는 거야. 달 주변에 이 반짝이는 게 별이야.”
“그게 무슨 소리야? 해가 지면 달이 이겨?”
“해랑 달이 싸우는 게 아니라, 해가 이렇게 움직여서 땅 아래로 내려가는 걸 진다고 해. 다시 올라오는 걸 뜬다고 하고.”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해가 움직인다니. 이오는 그런 얘기는 듣도 보도 못했다.
“진짜라니까? 자, 네가 봐. 그럼.”
구사가 건넨 건 종이 뭉텅이였다. 이오는 종이 뭉텅이를 보고 당황했다.
“이게 뭔데?”
“이건, 책이라는 거야.”
“책은 또 뭐야?”
“종이로 된 건데, 이렇게 패드 넘기듯이 종이를 넘기면 글이 다음 종이에 나와.”
구사가 종이를 넘기는 걸 보고 이오가 미간을 구겼다.
“왜? 패드가 있는데 굳이? 심지어 무거워. 패드는 깃털처럼 가볍잖아.”
“몰라. 옛날 사람들은 무거운 걸 좋아했나 봐.”
“왜?”
“옛날엔 운동이란 것도 했대. 일부러 무거운 걸 들어서 몸을 더 좋게 만드는 거래.”
“그게 거기에 나와?”
“어.”
“그건 어디서 났는데?”
“저기 벽 너머서.”
이오는 벽을 보면서 살짝 놀랐다.
“야, 어른들이 거긴 가지 말라고 했잖아.”
“그래도 궁금하잖아. 맨날 뭐가 있냐고 물어보면 대답도 안 해주고. 뭐 때문에 가지 말라는 거냐고 물어봐도 그냥 얼버무리고.”
“근데 안 다쳤어? 뭐가 있었어?”
“그냥 평범해. 여기랑 똑같아.”
“진짜?”
이오와 구사가 사는 곳은 평범한 도시였다. 연구소에서 배급용 식량을 생산하고, 사람들은 일하고, 먹고 자고 다시 또 일한다. 그 밖에서 일어나는 일은 이상할 정도로 무슨 일인지 몰랐다. 아니, 구사가 보기엔 그냥 모르고 싶은 것 같았다.
“내가 중일 있어 봤는데 괜찮았어. 게다가 일주일 내내 밖으로 나갔다 왔는데 봐, 멀쩡하잖아?”
“그런가?”
이오 역시 궁금하긴 했다. 밖엔 무엇이 있을까? 이오는 호기심이 많을 나이였다.
도시는 단조로웠다. 평화는 좋은 거라곤 했지만 평화는 재미없었다. 어른들은 다들 기계처럼 일만 했다. 친했던 동네 형 누나들도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기계처럼 먹고 자고 일하기만을 반복했다.
이 도시에 남은 재밌는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너도 같이 나가자.”
“음, 엄마한테 허락 맡아볼게.”
구사는 아니꼬운 표정을 잠깐 지었으나 이내 어깨만 으쓱거리고 말았다.
“뭐 그래. 어차피 딱히 열심히 말리시지도 않을 텐데 뭐.”
“앗, 이제 집 가야겠다. 내일 봐!”
“응- 잘 가-!”
이오는 뛰어서 트램에 올라탔다. 트램은 금방 출발해서 이오네 집 앞에 도착했다.
“다녀왔습니다.”
“어 왔니? 오늘은 뭐 하고 놀았어?”“구사랑 놀았어요.”
“오늘도? 구사랑 정말 친하네. 근데 요즘은 집에 안 데리고 오네?”
“요즘은 밖에서 노는 게 더 재밌대요.”
“그러니.”
이오의 집에 들어오면 어머니가 반갑게 웃으며 이오를 맞아주었다. 이오는 잠깐 떠들고 나서
“엄마.”
“응?”
달그락달그락, 무언가 요리하는 이오의 어머니 이사는 다정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번 밥은 뭐에요?”
“음- 닭볶음탕.”
“맛있겠다.”
이오는 그러고는 잠깐 머뭇거리며 발길질을 했다. 이오의 어머니가 뒤를 힐끔 보고는 다시 물었다.
“이오, 뭐 하고 싶은 말 있어?”
“응? 아니 뭐. 딱히.”
“음, 엄마는 이오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거 같은데?”
이오의 어머니가 이오를 바라봤지만 이오는 시선을 피했다. 요리를 다 끝낸 이오의 어머니는 상을 다 차린 후 이오의 앞에 앉아 웃었다.
“엄마는 이오가 무슨 얘기를 해도 괜찮아. 하지만 이오가 거짓말을 한다면 그건 엄마를 조금 슬프게 할 거 같아. 그건 이오가 엄마를 못 믿는다는 얘기잖아?”
“네.”
이오는 멋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뭐 때문에 그러는지 이제 말해줄 수 있을까?”
“사실은, 구사가 벽 바깥으로 나가보자고 했어요. 그래서 엄마한테 허락을 받으려 했는데…….”
이오의 어머니는 벌떡 일어나서 굳은 표정을 지었다. 이내 입을 열었다.
“해당 내용은 대상 개체에게 허용되지 않은 주제입니다. 귀하께서는 타 개체 앞에서 해당 주제에 관한 대화를 자제해주십시오. 해당 대화 내용의 삭제를 위하여 재부팅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메뉴얼을 참고하십시오.”
털썩. 이오의 어머니는 그대로 쓰러졌다. 이내 금방 다시 일어났다.
“으음, 어머 내 정신 좀 봐. 피곤해서 그랬나 잠깐 쓰러졌네. 어서 밥 먹자.”
이오의 어머니는 싱긋 웃었다. 이오는 어머니가 이상한 말을 할 때마다 조금 무서웠다.
*
“뭐라셔?”
“으응, 안 된대.”
이오는 어머니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런 말 마라는 거보니 어쨌든 하면 안 된다는 듯했다.
“그래 그럼.”
하지만 구사는 계속해서 바깥 이야기를 해줬다. 바깥 이야기는 재밌었다.
“시간이 뭐야?”
“옛날에는 시간이라는 게 있었대. 낮과 밤이 한 번씩 지나면 하루를 24시간, 1시간을 60분, 1분을 60초로 나누는 거야. 또, 달은 모양이 하루가 30번 지날 때마다 돌아와서 그걸 한 달이라고 한 대. 그리고 달을 12번 반복하면 1년이라고 해.”
“1년은 왜 12번으로 나눠?”
“그건 몰라. 안 쓰여있어. 그냥 년이랑 달이랑 일을 써놓은 걸 보고 내가 대충 생각한 거야. 이걸 날짜라고 하나 봐”
“복잡하네.”
“그러게 옛날은 세상이 더 복잡했던 거 같아.”
“어, 근데 나도 패드에서 비슷한 거 봤던 거 같은데?”
“음? 어, 그러게.”
이오가 패드를 꺼내 열었다. 그곳에는 오른쪽 구석에 변하지 않는 숫자가 있었다. 2:44라고 쓰여있었다.
“아 옛날에 있었다는 시간이 이건가 봐.”
“우와 신기하다. 근데 지금은 왜 없어졌을까?”
“글쎄. 그것보다 이것도 신기해.”
구사는 다시 책이라는 물건을 꺼냈다. 구사가 가져온 책에는 날짜가 적혀있었고 그 날짜마다 그 날에 일어난 일들이 적혀있었다.
구사와 이오는 이 책에 있는 얘기로 매일 떠들었다. 옛날 얘기는 무척 재밌었다. 이오의 마음속에서 벽 바깥으로 나가보고 싶은 욕망은 커져만 갔다.
“여기 보면 끝나기 전까지- 라는 말이 있잖아. 도대체 뭐가 끝나기를 기다린 걸까?”
“보면 여기에 들어간다는 말도 있어. 로그아웃? 이건 무슨 말일까?”
“모르겠어. 이건 저 멀리까지 가봐야 알 수 있을 거 같은데.”
“어디가?”
일어난 구사를 보고 물었다. 이오의 말에 구사가 웃었다.
“더 멀리 가보려고. 다른 것도 보고 싶어.”
이오의 고민하는 표정을 보고, 구사가 웃으며 되물었다.
“같이 갈래?”
“위험한 건 없었다고 했지?”
“진짜야. 아무것도 없어.”
“그럼 가자. 나도 바깥이 궁금해졌어.”
이오와 구사는 벽 밖으로 나가는 문을 향했다. 문을 지키는 사람은 없었다. 나가려면 뭐 아무나 나가라는 듯한 태도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니 사실 다들 저 문으로 가기 싫은 눈치였다. 구사가 말하는 걸 보면 그렇게 위험한 건 아닌 거 같은데 왜? 그렇게 위험하다면 왜 가지 않는 거지?
구사는 신이 나서 문을 열었다. 혼자 나가는 게 남짓 외로웠던 모양이었다. 이오는 살짝 겁이 났다. 문밖에 뭐가 있을지 몰랐다.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밖은, 정말 별거 없었다.
“안쪽이랑 똑같은데?”
“맞아. 그냥 사람만 없어.”
“그래?”
안쪽과 완전히 똑같았다. 규칙적으로 배열되어있는 집과 그 사이를 쏘다니는 트램들. 심지어 멀쩡히 운영도 하고 있었다.
이오와 구사는 걸어 다니면서, 또 트램을 타기도 하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람이 없는 도시를 보는 기분이라 초반에는 재밌었지만, 나중에 가서는 재미가 없어졌다. 너무 지루했다.
“이제 안에 들어가 보자.”
“응? 우리 집도 아닌데 어떻게?”
“원래 주인이 없는 집은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잖아.”
“주인이 없어?”
“글쎄. 있었는데 없어졌나 봐. 지금은 아무도 없어.”
“단 한 명도?”
“응.”
이오는 살짝 오싹해졌다. 왜 아무도 없지?
집안에 들어가 보면 방금까지 누가 살아있었던 것 같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갑자기 다들 사라진듯한 분위기.
“다 보통 이렇게 재미없어. 좀 멀리 가야 재미있는 게 있어. 타자.”
구사의 말에 따라 이오는 같이 트램에 탔다. 트램에 꽤 오래 탔다. 도착한 곳에 내리고 나니 표지판이 보였다.
“이곳을 넘어가시면 데이터가 불안정할 수 있으므로 접근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무슨 소릴까?”
“몰라. 넘어가도 근데 아무 일도 없긴 했어.”
여기서부터는 실제로 집의 모양이 달랐다. 원래 높이 솟은 아파트 형태로만 있던 집들이 좀 더 못생겨져 있었다. 크고 투박하며 디자인과 대칭 같은 건 찾아볼 수 없는 형태.
안으로 들어가면 신기한 게 많았다. 화면들이 잔뜩 있었고 전선들도 많았다. 구사가 가져왔던 책이란 것도 무척이나 많았다.
“환경 공학 연구학개론. …개론이 뭐야?”
“글쎄? 그건 나도 모르겠어. 한 번 읽어봐.”
이오는 책을 펼쳐 읽었다. 단 한마디도 이해할 수 없었다. 눈이 핑핑 도는 기분을 느끼며 다시 책을 있던 자리에 갖다 놓았다.
아주 무거운 패드들도 많았다. 화면이 두껍고 만져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뭔가 신기한 물건들이 아주 많았다.
다만 대부분의 패드는 꺼져있었다. 켜는 법을 몰랐으므로 켜지는 못했다. 다만 마지막으로 켜져 있던 패드에는 이런 글자가 쓰여있었다.
- 연구기록 5412번
이미 늦었다 나는 죽
“뭐가 늦었다는 거지.”
“밥?”
“으음, 잘 모르겠어.”
다른 집들도 다 비슷했다.
어디는 환경 공학, 어딘가는 에너지 공학, 어딘가는 데이터 보존, 데이터 확장에 관한 연구, 가상 현실 개선 연구, 뇌 연동과 시간 배속에 관한 고찰. 다 알아듣기 어려운 얘기들이 잔뜩 쓰여있었다.
“이번에는 끝까지 가보자.”
이오와 구사는 트램을 탔다.
끝으로 갈수록 건물은 없었다. 건물만 없는 게 아니라 많은 것들이 없었다. 가로수도, 벤치도, 공원도, 도로도, 풀도, 새도, 바닥에 있는 흙도 사라져갔다. 심지어는 하늘의 구름도 조금씩 사라져갔다. 트램은 도로도 없이 잘도 달렸다. 바닥에 깔려있던 흙과 콘크리트도 사라졌다. 무엇인지 모를 새파랗고 매끈한 바닥만이 남았다.
“조금 무서운데.”
“괜찮을 거야. 여기도 몇 번 와봤으니까.”
“그래?”
트램이 도착한 곳에는 외딴집이 하나 있었다. 이질적이었다.
바닥도 하늘도 파란색 배경에 흰 줄이 그어진 격자만 남은 공간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가정집 하나.
구사도 이번에는 조금 겁을 먹은 듯했다.
“...가자.”
들어가는 일을 망설이진 않았다. 둘은 성큼성큼 들어가 안을 바라보았다. 탁자 위에는 병 하나, 그리고 빨간 액체가 채워진 잔 하나, 그리고 책이 있었다.
“이건 뭘까?”
“마셔볼까? 읍, 웩 쓰고 셔. 이런 걸 왜 마시는 거지.”
“글쎄. 책이다. 읽어보자.”
이오가 냉큼 책을 집어 펼쳤다.
*
2097년 12월 5일
순조롭다. 가상 현실에서 시간 배속을 일으켜 연구 속도를 늘려보자는 아이디어는 획기적이었다. 텔로미어 소모 속도가 약간 더 빨라진다는 단점이 있지만 인류의 미래를 생각하면 그리 큰일도 아니다.
밤은 굳이 구현이 필요치 않다고 생각하여 구현하지 않았던 것도 꽤 괜찮았다. 24시간을 내내 연구를 할 수 있다는 건 큰 장점이다. 정신적으로는 조금 어색하긴 하겠지만 금방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2098년 1월 5일
생각보다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가상 현실을 기준으로 약 3년이 지났음에도 탄소 매집량을 늘릴 방법을 찾지 못했다. 시간 배속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우선이라 생각이 들어 연구팀을 늘렸다. 다들 열심히 해주니 금방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2098년 1월 20일
시간 배속을 더욱 늘렸다. 사소한 단점이 있기는 했다. 이곳에서 영원히 나갈 수 없게 되었다는 단점이다. 물론 정보 자체는 밖으로 내보낼 수 있으므로 적절한 데이터를 얻는데 성공하면 인류의 수명을 늘리는 데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었다. 이 사실은 다른 연구원에 밝히진 않았다. 시간 배속 관련 연구원들이 약간의 우려를 표했지만 인류의 미래를 위해 협조해주었다.
2098년 2월 28일
밖에서부터 연락이 되질 않고 있다. 시간 배속을 고려하더라도 주에 한 번은 반드시 연락이 닿았어야 했지만 아무런 연락이 돌아오지 않는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방법이 없다. 바깥에서는 겨우 한 달밖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그 사이에 획기적인 발명이 일어나지는 않았을 터.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탄소 매집량을 늘리는 방법을 연구하는 일뿐이다. 결국 연구소에까지 닿았다고 하더라도, 언젠가 누군가가 내 연구를 발견해내길 바라며 계속해서 연구를 해나가는 일뿐. 신이시여 저희를 돌보소서.
2100년 3월 1일
드디어, 드디어 연구에 성공했다. 엔트로피의 진행을 거의 일으키지 않으면서 에너지를 얻는 방법부터 환경 복구 계획까지도 완벽하게 완성했다. 정부에 전달되기만 하면 그 즉시 실행할 수 있는 완벽한 계획이다. 다만, 여전히 바깥 사람들로부터 연락이 닿진 않았다. 2년이 조금 넘는 시간이지만 아직도 연락이 닿지 않는 이유는 뭘까.
다른 연구원들에게는 계속해서 연락이 닿고 있다고 얘기했지만 연구가 끝났다고 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거의 수백 년을 인류를 위해 애써온 연구가 아무 성과를 보지 못했다고 말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2100년 3월 3일
당연한 얘기지만 이곳에서는 죽음이 구현되어 있지 않다. 연구원들은 나를 죽이려 들었다. 고문을 포함한 모든 행동을 시도했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고통 역시 구현되어 있지 않다. 연구에 필요한 최소의 촉각 외에 충격을 받을 만한 고통은 구현되어 있지 않았으니까.
이 연구소는 지하 벙커에 존재하며 최소 100년 이상 가상현실 시스템을 가동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인류의 손이 닿지 않아도 최소 100년이며 누군가가 손을 댄다면 그 이상으로도 가능했다. 우리는 인류의 역사와 같은 수명을 얻게 된 것이다. 연구원들이 나를 죽이려 드는 것도 당연했다.
다만, 나에 대한 분노도 백 며칠이 지나니 사그라들었고 연구원 중 하나가 아이디어를 냈다. 차라리 여기 영원히 갇히게 된 거라면 생명의 탄생과 죽음도 구현을 해주면 안 되냐고 물었다. 여기서라도 살고 있다는 착각이라도 느껴보고 싶다고 말했다.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가상 현실의 유지 보수는 시스템 내에서도 가능했다. 애초에 시간 배속 시스템의 유지 보수 및 수정은 내부에서만 가능했으므로 얼추 현실과 비슷하게 만들 수는 있다.
우리는 그렇게 했다. 생명의 탄생을 위한 교미와 잉태, 수정과정을 만들었고, 데이터의 삭제 및 비활성화 과정을 만들어냈다. 세계는 현실인 척했다. 우리의 부족한 상상으로나마 세상을 구현했다.
2100년 3월 8일
인간과 똑같은 AI를 구성했다. 연구원들끼리 서로 아이를 갖고 잉태하는 과정을 구현한 건 좋지만 그에 필요한 아이들을 구현하는 과정도 필요했다. 태아의 성장 과정을 구현하는 건 어려웠기에 모든 태어난 아이들은 5살부터 시작했다.
우리는 인간을 연구했다. 생명 공학을 연구하던 연구원 중 하나가 아이의 성장 발달, 인간의 해부학적 구조 및 뇌 과학을 연구했다. 인공지능을 연구하던 연구원도 있었기에 이를 기반으로 하여 완벽한 인간을 모방하는 인공지능의 개발을 착수했다.
우리는 성공했다. 수백 년에 걸쳐 밤 없이 연구에 몰두한 우리들의 연구 및 개발 능력은 신에 비교해도 좋을 무언가가 되어 있었다. 물론 바깥의 사람들이 보면 어색하다 느낄지도 모르겠으나 어차피 이곳에 진짜 인간들은 우리뿐이었다.
2100년 3월 11일
인공지능의 성능이 너무 좋아졌다. 현실을 알게 된 인공지능들은 그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기능 이상이 발생했으므로 AI에게 이러한 주제에 대한 언급을 금지했다. 즉시 데이터를 리셋 하지 않으면 심각한 기능 이상을 초래했으므로 이에 대한 수정 작업을 마쳤다.
이런 점에서 인공지능은 사실상 인간과 똑같았지만, 연구원들은 가끔씩 울음을 터뜨렸다. 기억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인공지능으로 살아갈 수 없었다.
2100년 3월 15일
비활성화를 요구한 연구원이 나타났다. 비활성화는 죽음의 개념을 최대한 모방한 시스템이지만, 천국과 지옥 같은 것이 아니라 완전한 무의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미 우리는 다른 세계에 있는 것과 다른 게 없었으므로 천국도 지옥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는 평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존재는 고통이라 했다. 그 말에 조금은 동의했다.
2100년 4월 2일
비활성화를 선택했거나 기억을 지운 존재 중에 남은 건 나뿐이다. 나는 그런 평안을 얻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남은 인간이 비활성화를 선택하든 혹은 죽기 전까지는 그들을 지켜보기로 했다.
기억을 지우고 인공지능 사이로 스며든 모든 연구원은 전부 사망 후 비활성화를 선택했다. 그리고 이제 남은 인간은 나뿐이다. 뭐랄까 그래도 아직은 이 세계에 대한 애정이 남아있는 것도 같았다.
인공지능들은 너무도 인간 같았기에 적어도 내가 관리하지 않아도 계속해서 유지될만한 세계는 만들고 싶었다. 신이라도 된 듯 싶나? 우습기도 하지만 이곳에서 즐길 거리는 이런 것뿐이다.
2100년 5월 30일
인공지능의 성능을 인간 수준으로 끌어올리니 세상에 대한 의구심을 끊임없이 가졌다. 자신의 존재를 이해하지 못했으며 그에 대해 계속해서 의문을 갖는 듯했다. 모든 인공지능에 기능 이상이 발생하든가, 아니면 스스로 기능 이상이 생기길 원했다.
그런 인공지능들을 격리하지 않으면 세상은 돌아가지 않았다. 따로 격리 구역을 만들어놓았다. 그곳에 갇힌 인공지능들은 갇혀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끼며 스스로 사회를 구성했다. 그곳에 갇힌 인공지능들은 어떠한 의문도 갖지 않았다.
시간이란 개념을 지웠다. 더는 남은 시간을 보고 싶지 않았다.
질렸다.
“이게, 뭐야?”
구사와 이오는 이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멍청하진 않았다. 세상이 가짜라고? 구사와 이오는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신음이 새어 나왔다. 구사와 이오가 머리를 부여잡고 소리를 지르려던 즈음에 갑작스레 표정이 굳었다.
구사와 이오가 동시에 입을 열어 똑같은 톤으로 말했다.
“이름이 정해지지 않은 임시 개체 213458941256725번, 이름이 정해지지 않은 임시 개체 213458941256794번의 기능 이상이 확인. 해당 개체를 격리 구역에 격리합니다. 재부팅은 격리 구역 도착 이후에 즉시 실시 됩니다. 자세한 내용은 메뉴얼을 참고하십시오.”
이오와 구사는 뒤를 돌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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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영역
나폴리탄에 SF 비벼먹는 기분이고 진짜 맛있다
크리스마스에 좋은 글 써줘서 고마워 잘 먹었어!!
주인공들 이름이 25랑 94인데 무슨 의미일까
개체 번호 뒷자리 두자리
낲갤의 보배
기립박수
간만에 좋은거봤다
요즘 잠을 못자서 핸드폰 하다가 깔짝 읽게되었습니다. 너무 재밌고 늘 새로운 글 기대합니다
와 미친... 이건 시리즈로 나와야 된다... 겁나 내 취향이네...
시리즈는 좀 짜치는데..
이오 엄마 쓰러지기 전에 하는말 보고 소름돋았네ㄷㄷ
이거 맛있다
지렸다 잘 읽고 갑니다
밖은 어떻게 된걸까
급식화된갤에서 진짜 오랜만에 재밌는거찾았네 고맙다
결국 모든 AI가 격리되어서 밖 세상에 아무도 없었던 거네
글 정주행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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