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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D-1. 마더 구스 노래 -막간- (샐러리맨 이규성 시리즈)

나폴리우레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3.10.23 06:26:58
조회 8525 추천 121 댓글 20
														



창 밖을 바라보니,


아직 미처 동이 터오지 않은 어둠 속에서,


나를 바라보는 작은 그림자가 하나 서 있었다.





나는 그림자에게 말을 걸기 위해 다급히 창문을 열었으나, 잠깐 창틀에 눈을 돌린 사이, 이미 그림자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서늘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나는 어젯밤 일어난 일을 반추해보았다.



나에게 죄가 없는지 물어보던 버스, 갑작스럽게 방으로 들어온 연우와 그녀의 목소리에서 느꼈던 기시감, 그리고 나에게 벌을 주는 것만 같았던 이상하고 괴로운 악몽까지…



이 모든 것들이 뭔가 한 지점을 가리키고 있는 것 같았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도저히 떠올릴 수가 없다.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야.”



마른 손으로 세수를 하며 머리를 북북 긁은 나는 다시 한번 천천히 생각을 가다듬었다.



그러다 문득, 어느 지점에서 난 멈칫하고 말았다.



"가엾은 우리 규성이"



방을 나서기 전에, 연우가 나에게 던지고 간 마지막 말이다.



언제부터 나를 봤다고 저런 말을 했던 것일까.



무엇보다도 나는 연우가 했던 ‘착한 아이네.’라는 말에서 왜 갑자기 기시감을 느꼈던 것일까?



'우리 규성이는 착한 아이네?'



내 머릿 속을 스쳐 간 목소리의 내용은 그것이었다.



무언가 굉장히 그리우면서도 오래된, 기억의 저 깊은 어딘가에 묻혀있는 목소리다.



도대체 무슨 기억인지 떠올려 보려고 하였으나,



“기억이 안 나….”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무엇인지가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이 곳 XX시에 도착하기 전에 겪었던 일들이나, 왜 이곳에 오게 된 것인지 구체적인 경위를 포함한 그 어떤 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진정하자 진정해. 내 이름은 이규성, OO자동차 본사에서 근무하다가 이곳 XX시의 XX지역본부로 오게 되었다. 본사에서 하던 일은….”



‘뭐였지? 지역본부 운영팀장이 말한 본사 이팀장이라는 사람은 또 누구지?’



그러고 보니, 이곳에 와서 한 번도 휴대폰을 알람 이외의 기능으로 썼던 적이 없다.



아니, 누군가에게 연락을 해야겠다는 생각 자체도 없었을뿐더러, 연락이 온 것도 전혀 없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서울에서 일하던 사람인데, 하다못해 광고 문자라도 하나쯤은 왔어야 정상 아닌가?



갑자기 다른 지역으로 오게 되었는데 가족들하고도 연락을 한 번도 안 한 것도 이상하다.




그러고 보니 나에게 가족이 있었나?




여자친구는?




대학동기는?




고등학교 친구는?




중학교?




초등학교?





“으악!”




초등학교를 떠올리려고 하는 순간, 갑자기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왔다.



아픔을 참지 못해 소리를 지르며, 머리를 감싸 쥐고 침대 위를 데굴데굴 굴렀다.




‘우리 규성이는 착한 아이네?’




‘오늘부터 이동수업이 있을 때 …하고 규성이가 같이 다녀주면 되겠다.’




‘한 꼬마 두 꼬마 세 꼬마 깜둥이!’




‘야 저 년은 장애인이래’




‘하지마! 하지마!’




‘꾸성아! 꾸성아!’




‘너희들 무슨 일 있었니?’




‘아니오. 아무것도요.’




‘그래 규성아 앞으로도 …희를 잘 챙겨줘야한다.’




‘한 꼬마 두 꼬마 세 꼬마 깜둥이!’




‘야 가만 있어봐, 내가 쏴볼게.’




‘꾸성아 도와줘.’




‘꾸성아!’




‘꾸성아!’




‘꾸성아!’




‘야 내가 아빠 몰래 라이터 뽀려왔어!’




‘한 꼬마 두 꼬마 세 꼬마 깜둥이!’




‘꾸성아!’




‘꾸성아!’




‘꾸성아!’








“미안해 지희야, 미안해!”





나도 깜짝 놀랄 정도의 목소리가 내 입에서 터져 나왔고, 그와 동시에 날 괴롭히던 두통도 씻은 듯이 사라졌다.



기억의 조각들이 모여들면서, 어젯밤 일어난 일들에 대해 조금씩 퍼즐이 맞춰져 갔다.



하지만 아직 모든 기억이 온전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은 그저 실낱같이 이어진 끈을 붙잡은 것에 불과하다.



이것을 제대로 정리해보기 위해서는 지금바로 만나봐야 할 사람이 있다.



스마트폰을 보니 시간은 아직 7시, 지금이라면 ‘그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난 방문을 벌컥 열고 밖으로 나와, 주방으로 이어지는 문으로 향했다.



숨을 한 번 고르고, 주방 문을 열어젖히려는 찰나, 맞은편에서 먼저 문이 열렸다.



“얘기 좀 합시다.”



파리한 인상의 남자, 최경찬에게 난 말을 걸었다.



“그럽시다.”



툭 던지듯이 말하고 몸을 돌려 식탁으로 향하는 경찬의 뒤를 따랐다.



“별로 놀라지 않으시는 군요.”



“들었으니까.”



“지희의 이름 말인가요?”



그는 대답하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뭘 좀 마실까 하는데, 드릴까요?”



“됐습니다.”



냉장고를 열며 내가 물었으나,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 빨간 밀폐용기.”



냉장고 안에 들어있는 빨간 밀폐용기–슬립여자 예진의-통을 힐끗 바라보며, 난 냉장고 문을 닫았다.



“손대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겁니까?”



“내가 그걸 어떻게 압니까.”



“당신이 썼으니까.”



냉장고 안에서 꺼낸 작은 생수 하나를 식탁위에 탁 올려 놓으며, 난 경찬의 맞은편에 앉았다.



“쉐어하우스 해피 생존 매뉴얼.”



그의 눈썹이 꿈틀한 것 같았다.



“당신이 쓴 거 맞죠?”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요.”



“당신이 흘리고 간 ‘여우를 조심해라’라는 메모, 글씨가 뭔가 낯익다고 생각했습니다.”



“대단하시군. 탐정하셔도 되겠어.”



“목적이 뭡니까? 여기는 뭐하는 곳입니까?”



“잠깐, 그 전에.”



손을 들어 경찬이 내 말을 가로막았다.



“당신이 그 매뉴얼을 읽었다면, 나하고 이렇게 쉽게 말을 하고 있어도 되는게 맞나?”





2-1. 종이찢는 남자


당신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스타일이라면,

아침에 주방에 갔을때 식탁에 앉아서 멍하니 종이를 찢는 남자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 남자는 종이를 찢다가 당신이 들어오면 행동을 멈출 것이다.

이 때, 절대 그와 눈을 마주치면 안된다.




매뉴얼의 내용이 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어차피 뭘해도 제 정신으로 지내긴 글른 곳이니까,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고.”



“웃기는군.”



그가 피식 웃으며, 내가 가져온 생수를 휙 낚아채가서는 마셨다.



“안 마신다더니?”



내 말에 그가 날 째려보았다.



“…후. 그래 당신 말대로 그 매뉴얼은 내가 쓴 게 맞아. 그런데, 그렇다면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은 어떻게 믿을 거지? 모순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이제 더이상 점잔뺄 필요도 없다는 것인지, 어느새 그의 말투가 거칠어져 있었다.



“그건….”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었다.



“그래, 짐작대로 매뉴얼을 쓴 건 나다. 그런데 그 매뉴얼에는 나와는 눈도 마주치지 말라고 적혀있었을 거다.


그런데 이렇게 나하고 당신은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 그러면 매뉴얼은 다 거짓말인가?


그렇다면 지금 당신은 거짓말쟁이하고 말하고 있다는 건데, 이거 상당히 위험한 거 아냐?”




“일부는 진실이고, 일부는 거짓일 수도 있지.”



“하!”



어이가 없다는 듯이 그가 혀를 찼다.



“그건 어떻게 구분할거지?”



“사실 그건 굳이 구분할 필요도 없는 문제지.”



날 노려보는 그에게 지지 않겠다는 듯이 나도 그를 노려보았다.



“당신이 나에게 확인해줘야하는 건 하나야. 최지희, 그 아이하고 당신은 무슨관계지?”



순간 허를 찔린 듯이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내가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한 말은 ’지희야 미안해‘가 다였어. 그런데 아까 당신 입으로 말했어. 지희의 이름을 말하는 내 목소리를 들었다고.”



“…”



“묵비권인가?”



내가 물병을 다시 낚아채왔다.



“나한테 그걸 물어봤자 소용없어.”



목을 축이고 있는 나에게 그가 입을 열었다.



“거기까지 말하는 걸 보니, 대충 눈치챈 것 같은데? 네가 이런 것들을 물어봐야 되는 사람은 내가 아니야.”



“그래.”



난 물병을 식탁에 탁 내려놓았다.



“그를 만나고 올테니, 연우…씨에게 전해주겠어?”



“뭘?”



“내 환영회, 오늘 밤에 하자고.”



내가 일어나자, 의자가 바닥에 드르륵 끌리는 소리가 났다.



“그런데, 왜 새삼스럽게 그런 매뉴얼을 쓴 거지? 친절하게 경고 쪽지도 남겨두고.”



그는 대답이 없었다.



“내 앞에 살던 사람도 나 같은 사람이었나?”



여전히 그는 대답이 없었다.



더 들을 얘기가 없었기에, 나는 휙 몸을 돌려 문으로 향했다.



“…이젠 지쳤어.”



“뭐라고?”



경찬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걸 듣고 뒤를 홱 돌아봤으나, 그는 내 눈을 피했다.



결국 더 이상의 대답은 듣지 못한 채로 난 주방을 나섰다.



방으로 돌아가서 대충 옷을 챙겨입고 나오자, 현관으로 향하는 복도에 연우가 서 있는 게 보였다.



“규성 씨, 난….”



“이따 저녁에 봅시다.”



그녀의 곁을 쌩하니 스쳐가며, 내가 중얼거렸다.



“…선생님.”








잠시 후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선 나는 눈 앞의 광경에 어이가 없어 그만 실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하, 나 참. 이제는 숨길 생각도 없다는 건가?”



쉐어하우스 해피의 바로 맞은편 길 건너에, OO자동차 XX지역본부 건물이 서있었다.



“어차피 얼른 갈 생각이었는데, 가까워져서 좋네.”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회사 건물 앞에 도착하자,



“이대리님 어서오세요!”



1층 출입구 앞에서, 눈알이 있어야 할 자리가 시꺼멓게 파여있는 오예림 대리가 말을 걸었다.



“도망가실 줄 알았는데, 용케도 또 출근하셨네요.”



입안도 눈알의 빈자리처럼 시커먼 그 모습이 너무 기괴해서, 나는 욕지기가 올라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아 네. 먹고 살아야죠.”



“먹고 살다니요! 꺄하하하! 참 농담도 잘하셔!”



그녀가 머리통을 360도로 회전시키며 깔깔 웃었다. 그녀의 시커먼 입 속에서 작은 거미들이 마구 쏟아져나왔다.



“그럼 한 번 열심히 먹고 살게 출근 잘 해보세요!”



머리를 마구 돌리며 웃어대고 있는 그녀를 뒤로하고, 난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갑자기 풍겨오는 향냄새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진원지 쪽을 바라보니, 새빨갛게 물든 목걸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 왜냐면, 그 사람들한테서 뭔지 모를 야릇한 냄새가 나요.

혹시나 숨을 미처 참지 못하고 냄새를 맡았으면, 얼른 2층으로 뛰어올라오세요.

그리고 탕비실에 있는 검은색 물통에 든 액체를 마시면 돼요.‘





입에서 거미를 내뿜는 여자의 말을 그대로 믿을 수는 없지만, 어쨌든 불쾌해진 나는 숨을 참은 채로 계단을 두 칸씩 겅중겅중 뛰어 올라갔다.



순식간에 2층에 도착해서 문을 열었지만, 내가 찾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아니 그보다도 사무실에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하게 있었던 책상, 의자 등 비품들도 몽땅 비어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새하얀 방에 불과한 사무실에 서서 내가 잠시 멍을 때리고 있던 그 때, 등 뒤에서 누군가가 내 팔을 확 낚아챘다.



“오! 이대리, 벌써왔나! 어제 본부장님께 인사 못 드렸으니까 얼른 인사드리러 가야지!”



뒤를 돌아보니, 얼굴이 불로 지져진 듯 기괴하게 일그러진 팀장이 겨우 뚫려있는 입으로 뻐끔뻐끔 말하고 있었다.



“아 저는….”



’괜찮습니다.‘라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가 어마어마한 완력으로 나를 잡아당겼다.



반쯤 끌려가다시피 3층으로 올라간 나는 다행히(?) 멀쩡하게 비품들이 그대로 있는 3층 사무실을 지나, 어제는 미처 들어가지 못한 본부장실 앞에 도착하였다.



“본부장님, 운영팀장입니다. 어제 저희팀으로 전입온 이규성 대리를 데려왔습니다.”



팀장이 문을 두드리고 입을 뻐끔거리며 말하자, 안 쪽에서 ’들어오게!‘라는 대답이 들려왔다.



“자, 규성대리. 어서!”



팀장이 문을 열고 날 우악스럽게 방 안으로 던져넣었다.




비틀거리다가 겨우 중심을 잡고 서자, 밧줄에 묶인 채로 방 한복판에 거꾸로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노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추천 비추천

121

고정닉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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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댓글 20
댓글 등록본문 보기
  • ㅇㅇ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캬 이용자 알림 최고 - dc App

    2023.10.23 06:59:35
    • 나폴리우레탄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31
      2023.10.23 12:13:31
  • ㅇㅇ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 dc App

    2023.10.23 07:01:10
  • ㅇㅇ(220.71)
    4
    2023.10.23 08:39:03
  • 그리워해요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4
    2023.10.23 08:57:04
  • 츠루기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이궈궈던~~~~~

    2023.10.23 10:23:41
  • ㅇㅇ(106.102)

    기다렸다공

    2023.10.23 10:32:50
  • 나폴리우레탄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7
    2023.10.23 12:11:52
  • 나폴리우레탄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이게 뭐라고 기다려준 갤러들 모두에게 압도적 감사... 이규성 시리즈는 더 이상 뇌절되기 전에 다음 챕터에서 완결낼 계획임(분량 조절 실패하면 한편 더 갈지도...)

    2023.10.23 12:13:14
    • ㅇㅇ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글 사이즈가 뇌절가도 괜찮을 것 같은데 어떻게 결말날지 기대되네요
      주인공 개인에 국한된 현상일지 지역에 깔려있는 현상일지 다음편에서 나올까 싶네요 - dc App

      2023.10.23 15:43:17
    • ㅇㅇ(1.228)

      뇌절하면 오히려 고맙다 게이야 - dc App

      2023.10.23 22:23:31
    • ㅇㅇ(116.42)

      제발뇌절제발뇌절제발뇌절제발뇌절

      2023.10.26 19:30:48
  • ㅇㅇ(39.7)

    아시발꿈만 아니면 다 좋아! 훌륭해!

    2023.10.23 18:01:24
  • ㅇㅇ(106.102)

    맛있어 최고야 짜릿해

    2023.10.23 23:09:03
  • 손끼임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미쳤네 - dc App

    2023.10.24 13:06:12
  • ㅇㅇ(223.62)

    장편인데도 폼 안떨어지는게 신기하고 대단하네 존나 재밌다ㅋㅋ

    2023.10.24 17:53:42
  • ㅇㅇ(121.135)

    빨리써!

    2023.10.24 20:14:38
  • ㅇㅇ(125.180)

    나폴리우레탄<< 나갤 현폼원탑

    2023.10.25 05:13:00
  • ㅇㅇ(125.180)

    그나저나 이 괴이놈들 드디어 본성을 드러내는구나

    2023.10.25 05:13:41
  • 나폴리우레탄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3
    2023.10.25 06:5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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