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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C-1. 고해 -막간-

나폴리우레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3.09.28 17:49:05
조회 8624 추천 99 댓글 12
														



'쉐어하우스 해피'



"하하하, 젠장."



그렇게 피하고 싶어서 하루종일 도망다녔는데,

보람도 없이 돌고돌아 결국 도착하고 말았다.



정말 들어가고 싶지 않았지만,

얼굴, 옷 할 거 없이 온 사방에 묻은 토사물과,

지쳐버린 내 심신이,

이곳을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을 이겨버렸다.



나는 교수대로 끌려가는 사람마냥,

터벅터벅 힘없이 집앞으로 걸어가서 현관문을 잡았다.



'후우-'하고 길게 한숨을 내쉬고 문을 연 바로 그 순간-






'드드드드드드드득'



현관 옆에 붙어있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위에서,

여자 하나가 미끄럼을 타듯이 누운 채로 내려오고 있었다.



"어, 위험..."



'위험해요!'라고 말하려던 내 머릿속에,

불현듯 어제 읽었던 '생존 매뉴얼'의 문구들이 스쳐 지나갔다.





'3-2. 누운여자'


'가끔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중간에 누워있는 여자가 있다.'


'B. 계단에서 미끄럼을 타듯 내려온다.

그러면 당신은 '잘한다!'라고 칭찬을 하며 박수를 쳐줘야 한다.

박수는 그녀가 미끄럼틀 놀이를 끝낼때까지 계속해서 쳐야한다.'


'또한, 무슨일이 있어도 그녀에게 '위험해!'라거나,

'다친다.'라는 등의 경고성 발언을 해서는 안된다.'




멋들어진 포즈로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온 김수아와

허공에서 눈이 떡하니 마주쳐버렸다.



"위...험험, 우와 멋지네요~"



'위험해요!'를 가까스로 꿀꺽 삼키고,

-속으로 이게 무슨 미친짓인가 싶었지만-

난 그녀를 칭찬하며 박수를 작게 짝짝짝 쳤다.



1층 현관과 계단 사이에 비스듬히 몸을 걸친 채 누워서

멍하니 날 쳐다보고 있던 김수아가, 갑자기 용수철처럼 몸을 일으켰다.



그러더니, '아야야.'하는 신음소리를 내면서,

약간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날 흘겨보며 입을 열었다.



"에휴, 계단에서 미끄러져서 넘어진 사람보고,

멋지다니 무슨소리 하시는거예요 오빠? 아파죽겠네."



"에? 아 그게 아니라..."



"하긴, 넘어진 제가 생각해도

방금 어이없을 정도로 멋있게 내려오긴 했어요.

이거 탁톡이나 뉴튜브 숏츠 이런데 찍어서 올렸으면

완전 조회수 터졌을텐데 그쵸?"



"아, 하하 그러게요. 미안해요. 나도 모르게."



"그렇게 멋져 보이면 오빠도 한 번 해보실래요?

생각보다 안 아파요."



짓궂은 표정으로 배시시 웃으며,

김수아가 내 팔을 잡아당겼다.




'미끄럼틀 놀이를 만족스럽게 끝냈을 경우,

그녀는 당신에게도 이 놀이를 권할 것이다.

이 때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놀이에 참여하지 않도록 한다.'




"아, 미안해요. 지금 옷이 좀 더러워서."



팔을 팍- 내쪽으로 잡아당겨서 그녀의 손을 떼어냈다.



그리고 그녀가 더 말을 붙이기 전에,

'좀 씻을게요.'라는 말을 남기고 쌩하니 내 방으로 들어와버렸다.






방으로 들어와 문을 잠그고,

아까 현관문을 열 때보다도 훨씬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마구 떠올랐다가 사라져갔다.



그녀는 정말 발을 헛디뎌서 미끄러진 걸까?

내가 매뉴얼대로 제대로 대처를 했기 때문에 별 일이 없었던 걸까?

그보다, 애초에 매뉴얼을 지키지 않으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지?

매뉴얼을 쓴 사람은 대체 이 모든 일을 어떻게 예견하고,

심지어 대처 방안까지 적을 수 있었던 거지?



잠시 머리를 정리하기 위해 깊이 심호흡을 하자,

잊고 있던 토사물 냄새가 내 코를 찔러왔다.



"일단은 씻고 생각하자."



캐리어에서 주섬주섬 세탁망을 꺼내,

옷을 벗어서 마구 쑤셔넣었다.



속옷바람이 되고 보니,

아까는 미처 몰랐는데 버스에서 내린 뒤에 무릎이 까진 모양이었다.

인지하고 나니 뒤늦게 따끔따끔한 통증이 밀려들었다.







샤워바구니를 챙겨 화장실로 들어온 나는

따뜻한 물에 몸을 녹이자 긴장이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흐어어어'하는 이상한 소리가 내 입에서 새어나왔다.



바디워시로 거품을 왕창 내서 몸을 씻으며,

다시 한 번 천천히 생각을 정리해보기로 했다.



일단 이 '매뉴얼'을 쓴 것으로 추정되는

이전에 내 방에 묵었던 남자의 정체부터-



'똑똑, 똑, 똑'



갑자기 들려온 노크소리가 내 상념을 방해했다.



몸에 비누거품이 잔뜩 묻어있어 문까지 가기 귀찮았던 나는

큰 소리로 '네!'하고 답하려다가,

순간 매뉴얼의 구절이 또 하나 떠올라 멈칫했다.





'2-2. 노크남'


'욕실에서 샤워를 하다보면 문을 4번 노크하는 남자가 있다.

(다른 횟수로 노크하는 사람은 노크남이 아니니, 주의할 필요 없다.)

그는 4번 노크하고 아무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이 때 '누구세요.' 라든가, '안에 있어요'라든가 하는 대답을 해서는 안된다.'


'그저 2번 노크를 똑똑 두드리면 그는 알아서 자리를 피할 것이다.'





매뉴얼이 시키는대로 휘둘리는 것 같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회사에서도, 돌아오는 버스에서도 하루종일 이상한 일을 겪고나니,

웬만하면 일단 지키고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조심조심 문으로 가서 '똑똑' 문을 두 번 두드리자,

저벅저벅하는 소리와 함께

문 앞에 서있던 사람이 멀어지는 기척이 느껴졌다.



"다행히 샴푸를 챙겨올 필요는 없었구나."



혹시 몰라서 왼손에 챙겨온 샴푸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 집에서 안전한 곳은 내 방 밖에 없다는 생각에,

따뜻한 물을 더 즐길 시간도 없이,

훈련소에서 하던 것처럼 후다닥 샤워를 마쳐버렸다.








타월로 몸을 닦은 후,

미리 챙겨둔 잠옷으로 갈아입고 문을 열고 나서는 순간,

부엌에서 나오고 있는 방장의 모습이 보였다.



"아, 규성 씨 언제 오셨어요?"



아침에 본 예의 그 목이 늘어난 티셔츠를 입고 있는 그녀가,

활짝 미소를 지으며 날 반겼다.



"아, 네 조금 전에 도착했어요."



"식사는 하셨어요?"



"아 아뇨, 먹지는 않았는데, 속이 별로 좋지 않아서."



"왜요 무슨 일 있으셨어요?

어! 다리는 어쩌다가 그러셨어요?"



잠옷이 반바지라서 그런가,

까져있는 무릎이 그녀에게 보인 모양이다.



연우가 훅 몸을 낮춰서 내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나의 무릎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그녀의 얼굴 높이와 ,

내 페니스의 높이가 비슷하다는 사실이 나도 모르게 갑자기 의식되었다.



그녀의 헐렁한 앞 섶을 훔쳐보며,

순간 손을 뻗어서 그녀의 얼굴을 움켜쥐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찰나,



'변태같은 놈, 여자 만지는 놈!'



아까 만난 노파의 추상과도 같은 호령이 또 다시 귓가에서 재생되었다.




"아, 별 거 아니에요."



쪼그리고 앉은 그녀를 피해 한 걸음 뒤로 물러난 나는

후다닥 몸을 돌려 뛰듯이 내 방으로 도망쳤다.








"하, 씨발 갑자기 발정이 나버렸나..."



방 문을 걸어잠그고,

침대에 몸을 던져 누운 후 중얼거렸다.



연우가 보기 드문 미인은 맞지만,

내가 여자를 한 번도 안아본 적이 없는 사람도 아니고,

이정도로 욕망이 들끓어 오르는 게, 뭔가 이상했다.



'꼬르륵-'



허기가 몰려오는게 느껴졌지만,

방문을 열고 나갔다가 다른 사람들과 또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잠이나 자자"



아직 이른 시간이었지만,

여러모로 지쳐있기도 했고,

허기도 잊고 싶었기에

난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오늘 겪은 여러 사건들이

머릿속에 마구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지역본부에서 인수인계 받은 이상한 행동지침,


버스에서 겪은 초현실적인 감각,


회사에서 마주쳤던 사람들,


최과장,


김수아,


송연우


몸이 침대에 스며들듯이 잠에 빠지려는 그 순간,








'위이이잉'



잠을 깨우는 불청객의 소리가 들려왔다.



'하, 여름도 아니고 웬 모기야.'



적당히 한 두방 물려주는 걸 감수하고 잠에 들려고 하였으나,

모기는 바로 내 근처도 아니고,

그렇다고 먼거리도 아닌 곳에서

계속해서 '위이이잉'하고 날아다니는 모양이었다.




소리가 크게 들리는 것도,

그렇다고 아주 안 들리는 것도 아니었다.

어정쩡한 거리에서

자신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만 알리려는 듯이

그렇게 불쾌한 소리를 내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하 씨!"



짜증이 솟구친 나는

녀석을 잡아버리고 자야겠다는 생각에,

방의 불을 확 켰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녀석은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잘도 숨네, 망할 모기새끼."



그렇게 1~2분정도 방을 뒤지던 나는,

포기한 채 다시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그런데 침대에 누운지 10초도 채 지나지 않아,

또 '위이이잉'하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잡는다!'는 생각으로,

소리가 들리자마자 침대에서 튕겨나와 불을 켰지만,

모기는 역시나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잘못들은 것인가도 생각해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모기소리가 분명했다.



그렇게 한참동안 방을 뒤지던 나는

결국 녀석을 찾지 못한 채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위이이잉"



"탁"



"..."



"탁"



"위이이잉"



"탁"



"..."



"탁"



"위이이잉"



"탁"



"..."



"탁"



"위이이잉"



"탁"




그렇게 몇 번을 반복했을까?

녀석을 찾는데 실패한 나는

초췌해진 몰골로 불켜진 방 한가운데에 우두커니 서있었다.



"이 새끼 내가 잡고야 만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녀석이 숨어있다는 생각에,

나는 방에 있는 가구들을 마구 옮기기 시작했다.



책상, 침대, 벽장할 것없이

낑낑거리며 벽에서 떨어뜨려놓았다.



이제는 더 이상 숨을 곳이 없을거라는 생각에,

한 번 더 이 잡듯이 방을 뒤졌지만,

그 어디에도 모기는 없었다.



"하하, 하하하...이런 젠장할."



자포자기한 채 또 다시 불을 끄고,

어중간한 위치에 놓여진 침대에 누웠다.



"위이이잉"



"탁"





"이런 씨발!"



나도 모르게 꽤 큰 목소리로 욕설이 터져나왔다.



분노에 차서 씩씩거리며 편집증 환자처럼 방을 둘러보고 있는 그 때,

갑자기 내 방 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문을 열자,





그 앞에는 깜짝 놀란 표정의 송연우가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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